소설리스트

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법-140화 (140/173)

#140화 공주님의 사정

2018.07.02.

“잘 지냈어?”

방에 들어온 칼리드의 말에 루시펠라가 그를 외면하듯 등을 돌렸다.

칼리드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루시펠라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아 그녀를 돌려세웠다.

루시펠라는 이를 악물었다. 이미 저항 따윈 무의미했다.

“에스텔.”

예전엔 다시 에스텔이라 불리길 바랐지만, 이 이름이 불린다는 게 이렇게 끔찍한 일일 줄은 몰랐다.

그녀가 칼리드를 노려보자,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좋은지 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서렸다.

그가 하얀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루시펠라가 머리를 흔들며 그를 뿌리쳤다.

“손대지 마.”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구나.”

“화? 이게 단순히 화가 났다고 할 일인가?”

그녀는 아이딘 백작이 남긴 유언에 대한 세부 사항까지 낱낱이 들었다. 그것을 듣자마자 아이딘 백작을 개자식이라고 욕할 수밖에 없었다.

칼리드는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루시펠라 아이딘을 제외하고는.

루시펠라가 결혼에 실패할 시를 대비해 그런 대책을 세운 모양이지만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제드가 아닌 칼리드와 그녀를 결혼시키려는 음습한 집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선대 하인트 공작도 그렇고, 아이딘 백작도 그렇고 지금 다들 대체 자식을 뭐로 생각하는 것인지!

그는 알고 있을까? 그의 어리석은 선택이 결정적으로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을.

심지어 칼리드는 아이딘 백작의 살해 사건 조사에 대해 중단을 요청했다.

즉, 이드리스 공작이나 저놈이 살인범이라는 것을 밝히는 길은 요원해졌다는 소리다.

어느 쪽으로든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그만큼 오랫동안 짜왔던 함정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만 해도 답답할 노릇인데 그날 이후 루시펠라는 방에 감금되어 단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다. 누군가를 만날 수도 없었다. 오로지 그녀의 방에 들어올 수 있는 이는 로이자를 비롯한 하녀들뿐이었다.

“게다가 내가 왜 이렇게 감금되어야 하는 거지? 왜 아이딘 백작가에 기사단이 상주해 있냔 말이야.”

“그거야 네가 혹시라도 함부로 움직일까 봐 그렇지.”

“아아, 제드에게 갈까 봐 그러는 건가? 굉장히 치졸하네.”

“……나를 화나게 하지 않는 게 좋을 텐데.”

루시펠라가 차갑게 빈정거리자 그의 목소리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눈 하나도 깜짝하지 않았다.

“왜, 칼리드. 날 때리기라도 할 생각이야?”

저놈이 자신을 때린다고 해도 기꺼이 맞아줄 생각이 있었다.

물론, 저놈도 그만큼의 대가는 각오해야겠지만.

칼리드는 루시펠라가 긴장한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을 흔들었다. 사용인을 부르는 종이었다.

“너 뭐 하는 거야!”

칼리드가 무슨 일을 벌이려는지 깨달은 루시펠라의 안색이 변했다.

이 새끼, 지금 아이딘 가의 사용인들을 가지고 협박하는 것이다.

종이 울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부르셨나요?”

로이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루시펠라가 소리쳤다.

“로이자, 나가!”

“이리 오도록.”

루시펠라와 칼리드의 말이 상반되자 로이자가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루시펠라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나가라고! 내 말 안 들려?”

“하, 하지만 백작님께서…….”

로이자가 머뭇거렸다. 저 바보! 눈치가 이렇게 없을 줄이야. 그것을 본 칼리드가 상냥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듣자 하니 아가씨와 친밀한 사이라던데.”

“제, 제가 아가씨와요? 당치 않습니다.”

로이자도 조금이나마 들은 바 있는지 겁을 먹은 듯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저 자식이 지금 웃고 있지만 화가 나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저놈이 수틀려서 검이라도 휘두르면…….

루시펠라는 이 순간, 칼리드가 어떻게 나올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해!”

루시펠라가 소리쳤다. 칼리드가 웃으며 루시펠라를 돌아보았다.

“뭘 그만하라는 거야?”

“네가 지금 하려는 짓 말이야.”

“나는 그저 너와 친하게 지낸다는 하녀가 궁금했을 따름이야. 내가 저택에 없는 동안 널 가까이에서 모실 사람이니까 말이야. 그렇지?”

칼리드가 부드럽게 웃으며 로이자를 바라보았다. 로이자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 없는 그녀가 보기에도 이 상황은 상당히 괴상해 보이는 듯했다.

“그렇지만 알겠다는 네 말은 기꺼이 받아들일게. 이만 나가 보도록.”

로이자가 허리를 숙이며 바깥으로 나갔다. 빨리 나가면 좋으련만, 로이자는 걱정스럽다는 듯 나가면서도 루시펠라를 힐끔거리며 바라보았다.

결국 루시펠라가 눈에 힘을 주자 그녀가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로이자가 방을 나가자 루시펠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을 본 칼리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토라 기사단 녀석들이었으면 그대로 죽이게 내버려 둘 거잖아. 저 하녀가 죽는 건 무서운 거야?”

“그놈들은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녀석들이었지만 저 앤 아니니까.”

“에스텔, 너는 다정한 주제에 그런 데에선 항상 냉정하더라.”

그녀가 칼리드를 노려보자 그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다가와 루시펠라의 뺨을 쓸었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의 손이 루시펠라의 허리에 내려왔다. 그 손에 루시펠라가 움찔하자 칼리드가 속삭였다.

“좀 더 좋은 표정은 지어줄 수 없어?”

“뭐?”

“내게 좋은 표정을 지어줘. 우린 평생을 함께할 사이잖아.”

“그 ‘좋은’ 표정의 정의가 뭔데?”

루시펠라가 차갑게 물었다.

“나긋하게 웃는 거?”

“그러니까, 나는 널 위해서 내 기분 여하에 상관없이 웃어야 한다는 거네. 그저 네가 그런 모습을 보고 싶으니까. 네 기분만을 위해서.”

칼리드가 무어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루시펠라가 날카롭게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웃던 그녀는 웃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몸은 분노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시선이 칼리드를 향했다.

“그냥 차라리 솔직해지는 게 어때? 그냥 너한테 꼬리 치는 개새끼를 원한다고.”

“에스텔.”

“넌 나를 사람으로 안 보는 거잖아. 어차피 네 마음대로 할 거 왜 웃어달라고 해? 그렇게 하면 네 찝찝한 기분이 좀 편해져서?”

그녀가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며 소리쳤다.

“좋아, 웃어줄게! 내가 어떻게 당해낼 수 있겠어? 난 네가 키우는 개새끼니까 네 마음대로 해! 내 머리를 쓰다듬고 싶으면 얌전히 있어줄게. 입을 맞추고 싶으면 언제든 입 맞춰. 아, 그래, 잠자리도 하고 싶다면 그래, 그렇게 해!”

“에스텔. 나는 그러려는 게…….”

“네가 지금 내게 바라는 것과 뭐가 다른 건데! 넌 날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니잖아!”

그녀가 버럭 소리쳤다. 동시에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분하다. 분해서 견딜 수가 없다. 저놈은 이제 자신을 위해 웃어달라고 한다. 그가 사랑하는 에스텔이 어떤 감정을 가지는지보다는 자신에게 웃어달라며 강요한다.

원치 않음에도 방에 불쑥 들어오고, 원치 않음에도 신체를 접촉한다. 저놈에게는 자신이 사람이긴 할까?

에스텔이었을 적, 그녀와 칼리드의 관계는 그런 점에서 자유로웠다. 그녀가 싫으면 거부할 수 있었고, 만약 칼리드가 신체를 억지로 접촉하려 한다면 거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에스텔은 힘을 잃어버렸으며 칼리드는 그런 에스텔을 권력으로, 그리고 힘으로 자신을 찍어누를 수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엿 같은 일인지 그녀는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러니까 네 마음대로 해, 개자식아. 견디는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녀가 이를 악물며 낮게 중얼거리자 칼리드가 서서히 그녀의 허리와 얼굴로부터 손을 떼었다. 대신 그는 루시펠라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포옹마저 싫었기에 얼굴을 찌푸렸다.

“미안. 울지 마, 에스텔.”

“…….”

“널 희롱하고자 하는 건 아니었다. 정말이야.”

“…….”

“화가 나는 네 심정은 이해해. 화를 내고 싶으면 마음껏 내. 내가 정말 잘못했어.”

“…….”

“우리 얼샤로 돌아갈까? 얀스가르의 모든 권리는 이드리스 공작에게 주고, 우리끼리 얼샤에 가서 사는 거야.”

“…….”

“그러면 너도 그때처럼 웃어줄까? 얼샤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왜 저 자식은 저렇게 애틋하게 말을 하는 것인가. 루시펠라는 칼리드의 품 안에서 괴로운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에스텔, 미칠 것 같아. 정말로 미칠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는 꽤나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루시펠라는 그대로 서 있었다.

칼리드가 루시펠라를 껴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어떻게 해야 네 마음이 풀릴까. 응? 그냥 사실대로 다 말해주면 될까?”

‘사실대로?’라니,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루시펠라는 칼리드를 바라보았다. 루시펠라가 그 ‘사실’이라는 게 뭔지 물어보려고 할 때였다.

“아니면 제더카이어 하인트, 그 거슬리는 자식을 죽여야 괜찮으려나?”

다정했던 어조가 다시 음산하게 가라앉았다.

그에 루시펠라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녀는 칼리드를 밀어내며 물었다.

“그 사람이 뭐라고 하는 거야?”

제드를 굳이 ‘그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칼리드를 자극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더욱 칼리드를 자극시켰다.

“여태 대답하지 않더니, 그놈에 대해 얘기하니까 입을 열어주는구나.”

그는 원망이 그득한 표정으로 루시펠라를 노려보았다. 루시펠라의 불안한 표정을 본 칼리드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놈을 죽일까 봐 겁나?”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야.”

루시펠라의 말에 칼리드가 비웃듯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해? 무인들의 생각은 참 단순해서 읽기 쉬워.”

그게 무슨 뜻일까. 제드가 단순하다는 말일까? 루시펠라의 불안해하는 표정을 본 칼리드가 말했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제더카이어 하인트는 죽을 테니까.”

칼리드가 루시펠라의 얼굴에 손을 얹으려 했지만 루시펠라가 그 손을 피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심심하면 책을 가져다줄게.”

“책?”

“그래, 그거라도 읽고 있어. 잘 안 읽는 건 알지만.”

“…….”

“그리고 답답하면 방에서 나가게 해줄게.”

“…….”

“앞으로 내가 오는 동안은 정원을 같이 산책하도록 하자.”

“…….”

“그러면 너는 조금은 날 기다려 줄까.”

그 말에 루시펠라가 대답하지 않자 칼리드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에스텔, 나는 네가 레이디로 다시 돌아와서 기뻐.”

레이디가 되어, 그보다 약해졌기에 기쁘다는 건가? 루시펠라가 냉소적으로 생각했다.

“열흘 뒤 아이딘 백작의 장례식이 있을 거야. 오늘은 이 말을 하러 왔어. 그리고 아까의 일은 미안해.”

“…….”

“그럼, 이만 가볼게.”

칼리드가 방 밖으로 나가자 루시펠라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던 그녀가 풀어진 몸을 세우고 입술을 깨물었다.

정신 차려야 한다. 여기서 무너져 내릴 수는 없었다.

방금 칼리드는 무인들의 생각은 간단하다고 했다. 그것이 무슨 뜻일까. 제드의 생각을 미리 알고 있다는 뜻일까? 그게 제드를 죽일 키가 된다는 것인가.

무인들의 생각은 단순하다라…….

우선 그녀는 기사 에스텔로서 생각하기로 했다. 만약 자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일단 다 쓸어버리겠지.’

설마 이런 단순한 생각을 제드도 한다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루시펠라는 언제나 이성적이고 침착한 제드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럴 놈은 아니…….

그때, 루시펠라의 머릿속에 테미르에게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던 제드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 널 황제로 모시지 않겠다는 말을 했었지? 게다가 그는 루시펠라가 시토라 기사단에게 납치당했을 때, 정말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혼자서 와서 독약을 마시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니 단순한 놈 맞잖아!’

루시펠라가 속으로 소리쳤다.

또 다른 문제는 제드가 그것을 실현할 만한 광활한 영지와 무기, 군사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단순한 짓을 제드가 벌인다면 어마어마해질 거다.

제드가 모든 것을 쓸어버리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면 ‘반역’이 된다.

황제가 결코 군사를 일으키는 것을 허락해 주지 않을 테니까.

루시펠라가 입을 떡 벌렸다.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었다.

루시펠라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레이디 루시펠라로, 현 사안을 판단해 보기로 했다.

이유 없는 행동은 없다고 했지.

그녀는 없는 머리를 굴려서 이 상황에 대해 정치적으로 판단해 보기로 했다.

‘신전이 아이딘 백작가의 편을 들었다는 건 신전의 권위만을 강화하려는 게 아닐 거야. 혹 황위 싸움에, 그것도 1황자를 지지하겠다는 표현일까.’

루시펠라는 눈을 감았다. 어렵다.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돌리려니 너무 어려웠다.

‘이드리스 공작가는 지금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있겠고, 이오지프, 그 인간은 사실상 황위 싸움에 패했다고 봐야겠지.’

그것을 생각한 루시펠라의 등골이 오싹했다.

궁지에 몰린 이오지프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제드가 그 미친 짓을 하자고 제안한다면 이오지프가 그 손을 잡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문제는 이것을 칼리드가 예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황자파도 그것을 예상하고 준비에 들어간다는 소리겠지.

루시펠라는 ‘반역’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제드가 역으로 당해 처형당한다.

그녀도 안다. 제드는, 분명히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을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제드가 성급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아니, 없었다.

만약 제드가 죽는다면 어떻게 하지? 칼리드는 제드가 죽기만을 바라고 있다. 설령 칼리드 그놈이 제드를 살리더라도 테미르와 이드리스 공작은 그를 죽일 것이다.

제드만 죽겠는가? 이오지프도, 클로렌스도 죽겠지. 이오지프야 제 알 바 아니었지만 클로렌스는 걱정이었다.

제드가 하려는 행동은 너무나 위험했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게 다 그녀가 아무런 힘이 없어서 그렇다. 아무 힘도, 아무 권력도 없어서 그렇다.

시토라 기사단의 단장인 에스텔이 아닌 레이디 루시펠라는 이렇게 무력했다.

루시펠라는 문득 어렸을 적 들었던 동화를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공주님은 용이나 악당에게 납치되어 왕자나 기사에게 구해지지. 에스텔은 그런 공주가 참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나약하게 납치만 당해서 왕자와 기사를 고생시키며 온갖 민폐를 다 끼치니까.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상했다.

언제 사악한 용이 권력 있는 국왕이나 힘이 센 기사를 납치한 적이 있었는가.

공주에게 어떤 힘이 있었겠는가. 힘이 없어서 납치당하고, 힘이 없기에 누군가의 구출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녀가 지금 그 공주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루시펠라의 머릿속에 독약을 먹고 쓰러진 제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느꼈던 슬픔은 다신 느끼고 싶지 않았다. 사랑을 알게 되어, 상실에 대한 지독한 두려움을 깨달았다.

그를 믿는다. 그러나 그를 위험에 처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 후, 그녀는 방에 틀어박힌 채 머리를 굴렸다. 칼리드의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녀는 주어진 식사를 끝마쳤으며, 때때로 고분고분하게 그와 산책을 나갔다. 바람을 쐬며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며칠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벗어날지에 대한 고민밖에 없었다.

어느 날, 루시펠라는 무심결에 칼리드가 들고 온 책을 펼쳐 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얼샤의 지도책에 닿았다. 그러자 머릿속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다. 말이 안 되긴 하지만 그런 방법이 존재했다. ‘그것’을 실현 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했다! ‘그렇게’ 하면 되었다!

심장이 흥분으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전술을 짜는 것과 똑같다.

아니, 똑같은 게 아니라 전술을 짜는 것이었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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