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그들에게 남긴 것
2018.05.21.
이오지프가 전쟁을 싫어한다고? 그것도 진저리나도록?
물론 그녀는 이오지프가 전쟁을 싫어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앙의 권력이 약해지는 걸 염려해서 그런 게 아니었나? 감정적으로도 전쟁을 ‘싫어’했단 말인가?
“왜 전하께서는 전쟁을 싫어하시는 거죠? 폐하께서는 정복전쟁을 벌이셨는데 말이에요.”
클로렌스가 의문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루시펠라 역시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까지도 루시펠라와 클로렌스는 이 이야기가 아주 가벼운 화제일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의 시작 자체가 이오지프와 로맨스 소설이라는, 아주 가벼운 화제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오지프가 전쟁을 싫어하는 이유도, 그저 로맨스의 낭만과 반대되는 끔찍한 것이니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후가 꺼내는 이야기는 굉장히 묵직한 것이었다.
“이오지프가 열네 살 때 폐하를 따라 이자힐로 출정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을 들은 루시펠라의 얼굴이 굳었다. 황후의 그 한마디만으로도 그녀는 이오지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렸다.
루시펠라의 얼굴을 본 클로렌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자힐이 왜요? 거긴 얀스가르에 정복된 나라 중 하나잖아요.”
“몰라?”
루시펠라가 묻자 클로렌스가 고개를 저었다.
왜 모르지? 그 잔혹한 역사를? 클로렌스가 이런 일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것을 본 황후가 말했다.
“사실 이 일은 기사들을 제외하고 얀스가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에요. 알고 있는 아이딘 영애가 대단한 거예요.”
그런 거였나? 또 어색하게 행동했나 보네. 루시펠라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자힐과의 전쟁은 무언가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 왜, 전하가 전쟁을 싫어하시게 된 거죠?”
“그만큼 끔찍했으니까요.”
클로렌스는 미묘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쟁이 끔찍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혹, 그때 전하의 신변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요?”
클로렌스의 걱정 어린 물음에 황후가 대답했다.
“아니요. 이오지프는 후방에서 기사들의 호위를 받고 있었답니다. 심지어 그 옆에 있는 이는 하인트 공작이었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선대 공작을 따라 출정할 만큼 대단한 인재였거든요. 따라서 그 아이는 안전했어요.”
갑작스럽게 제드가 나오자 루시펠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만, 제드도 그것을 봤다는 건가?
루시펠라가 의아해할 때 황후가 말을 이었다.
“다만, 이오지프가 그 참상을 목격했다는 게 문제였어요.”
“대체 어떤 참상이었기에.”
루시펠라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가벼운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지나치게 이오지프의 속사정을 알아버린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황후가 클로렌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자힐 정복전쟁 중 영주 한 명의 저항이 거셌어요. 폐하는 그가 가진 도시를 전부 손에 넣었고, 마지막 도시 하나만이 남았지요. 그 영주는 군사를 끌고 내려가 마지막 도시의 성문을 단단히 잠그고 최후까지 항전했어요.”
루시펠라는 눈을 감았다. 얀스가르와 얼샤의 전쟁이 발발했을 때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듣던 일화였다.
사람들은 이 일에 대해 떠들며 얀스가르로부터 얼샤를 지키기 위해 검을 들었다. 에스텔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전쟁에 대해서는 내 아는 바가 적습니다만, 본디 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충분한 식량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도시 내에는 식량이 부족했다고 해요.”
식량 부족. 수성(守城)을 하기엔 최악의 상황이었다. 당연히 항복을 해야만 옳았다. 그러나 그 도시의 영주는 얀스가르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이들은 최후까지 싸우기로 했어요.”
“…….”
“영주는 식량을 축내는 도시민을 모두 내보냈지요. 모두가 다 황제 폐하가 무장하지 않은 도시민들을 얌전히 보내줄 거라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아무 죄도 없었기 때문이죠.”
“폐하께서 지배할 땅을 지탱하는 사람들이니 당연한 일…… 설마 폐하께서 병사들을 시켜 그들의 목숨을 거두기라도 했단 말인가요?”
클로렌스가 당황한 표정으로 묻자 황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폐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얀스가르 군에 접근하는 이들을 ‘위협’을 명목으로 모두 죽인 것 이외에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어요.”
“그 말은?”
“성은 얀스가르 군대에 포위되어 있었지요. 한데 얀스가르 군대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말은, 어디든 벗어날 수 없다는 말과 똑같았어요.”
“그럼 다시 성안으로 돌아가면 되잖아요.”
클로렌스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 간단했던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루시펠라는 씁쓸하게 생각했다.
“영주는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성문으로 접근해 열어달라는 도시민들을 활로 쏴 죽였지요.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말라는 의사 표현이었던 거죠.”
“그럼!”
“도시민들은 자신이 살던 도시 성문 바깥에서, 영주의 군대와 폐하의 군대 사이에서 갇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이!”
이후로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에스텔이었을 적에도 너무나 듣기 끔찍했으니까. 얼샤의 사람들이 모두 멍청해서 얀스가르에 저항했던 게 아니었다. 그만큼 이자힐의 사건이 너무나 끔찍했기 때문이다.
“도시민들은 여자와 노인, 어린아이들, 병자가 대부분이었고, 그들은 싸우지 못했어요. 그렇게 그들은 양쪽 군대 사이에서 빨리 죽을지 늦게 죽을지 결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죠.”
“그 말은…….”
“사람은 보통 늦은 죽음을 선택하지요. 그렇지 않나요?”
“하지만 영주잖아요!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병사들은 반항하지 않았단 말인가요? 분명 도시민의 가족이 있었을 거잖아요.”
“남은 군대들은 모두 도시민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설령 그 안에서 반발이 있었더라도 모두 제거되었겠지요. 그들은 같은 국민에게마저 버림받은 거예요.”
“그렇다면…….”
“식량이 부족해서 쫓겨난 이들이 대체 어떻게 오래 살 수 있었을까요?”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 클로렌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루시펠라 역시 입술을 깨물었다.
사람들이 어디서 식량을 구했는지 너무나 명확했다.
자신들을 버린 나라. 자신들을 침략하는 침략자. 그 사이에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너무나 약한 이들.
삽시간에 얼마 남지 않은 식량이 동이 났고, 모여 있던 도시민들이 돌변하기 시작했다.
식량이 없다면 만들면 된다. 주변에 식량들이 이렇게 지천에 깔려 있지 않은가? 그렇게 사람들이 광기에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오지프는 매일매일 언덕 위에 올라가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고 해요.”
“…….”
“맨 처음은 아이가 죽었고, 그다음은 여자들이 죽었지요.”
도덕이 사라지고, 인간의 존엄마저 사라져 버린 그 지옥도.
루시펠라는 입을 다물었다.
“그 아이는 울면서도 그것을 계속 바라봤다고 했어요.”
루시펠라가 에스텔이었을 때도 분명 보기 힘든 장면이었을 것이다. 이오지프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 장면을 외면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을 매일 보며 울었다니, 이오지프는 생각보다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오지프가 제드를 이용하려 했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반감을 가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한 면만 봐서는 안 된다더니.
언제나 자신을 숨기며 실실 웃고 다니기에 별로 정이 안 가는 녀석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녀석도 나름의 과거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나요?”
“40일 만에 도시민들은 모두 죽었어요. 그리고 폐하의 군대가 움직이기 시작했지요. 도시민들의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본 영주의 군대는 약해져 있었어요. 폐하는 그곳을 너무도 쉽게 점령했지요.”
이오지프가 언덕에서 그들을 지켜본 만큼 성을 지키던 이들도 망루에서 아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 역시도 자신들이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겠지.
심지어 병사들과 그들은 같은 나라 사람이었다. 그들은 죄책감을 느끼며, 조용히 미쳐 갔다.
그리하여 얀스가르 군이 성을 공격했을 때 그들은 제대로 된 대응도 못 하고 대패했다. 심지어 소식을 들은 이자힐의 국왕 역시 항복했다.
“그래서 전하는……. 이오지프 전하는요?”
“어린 그 아이는 궁에 돌아와 절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안겼지요. 몇 날 며칠을 울면서 끙끙 앓았어요.”
“…….”
“그렇게 울면서 내게 왜 사람들이 죽어야 했냐고 묻더군요. 저는 대답해 주지 못했어요.”
“…….”
“폐하께서는 그 아이를 나약하다고 말하며 두 번 다시 전쟁터에 데려가지 않으셨지요. 전 그게 다행이라고 여겼어요.”
“…….”
“그래서 이오지프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한 일은 병법서를 버리는 것이었어요. 아버지처럼 되고 싶다며 모았던 것을 버리는 건 쉬웠지요. 이제 그 아이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
“얼마 후 얀스가르의 역사서를 본 이오지프는 또 화를 내기 시작했어요. 이들이 얼마나 잔혹한 일을 벌였는지에 대해 기록되지 않고 승리의 영광만 남았다며, 이오지프는 그 기록들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화를 내더군요. 그리고 역사서도 모두 버렸어요.”
갑작스럽게 들어버린 그의 과거 이야기에 루시펠라는 기분이 가라앉았다.
전쟁을 일으켰다고 해서 얀스가르 내에도 그것을 찬성하는 사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겠지. 이오지프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오지프는 아직도 그 일을 잊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그건 그 우유부단한 아이의 인생을 결정 내리게 했지요.”
절대 잊지 못할 끔찍한 기억. 그 기억을 안고 이오지프가 선택한 것은…….
“설마, 그래서 황위를…….”
“루시!”
클로렌스의 말에 그녀는 흠칫 놀랐다. 자신도 모르게 황위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이다. 사사로이 황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까딱하다간 벌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황후는 다행히 그 말에 화를 내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이오지프는 자신의 길을 정했어요. 가장 험하고도 가장 어려운 길이죠.”
“전하는…… 전쟁을 없애고 싶어 하셨던 건가요?“
클로렌스의 물음에 황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펠라는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바보 아닌가? 어떻게 전쟁을 없애?
그러나 루시펠라는 이오지프가 선택한 길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아아, 그래서 그 녀석은 얼샤를 독립시켜 주겠다고 한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아서. 모든 게 평화롭길 바랐기에.
“나는 기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전쟁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어.”
이오지프는 그때 루시펠라에게 그렇게 말했다. 생각해 보니 그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녀는 이오지프를 그때 책만 읽는 샌님이라고 말했던 것을 반성했다. 그리고 이오지프가 품은 생각에 다다르지 못한 자신을 반성했다.
사람들이 죽고, 고통받음에도 그녀는 그것이 어쩔 수 없는 가혹한 일이라 여겼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오지프는 그들의 죽음을, 전쟁의 잔혹함을 막기 위해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로 했다. 그것을 뭐라고 말해야 하나. 루시펠라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어 말했다.
“참, 다정한 분이시네요.”
“그렇지요?”
황후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루시펠라는 이오지프의 마음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그녀가 섬겼던 이가 아렌트나 파비아누스가 아니라 이오지프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든 이를 가엾게 여겨 황제가 되고자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모신다면, 그 사람을 위해 검을 쓰다 죽는 것도 영광이었으리라.
이오지프는 황제가 될 만한 사람이었다. 아니, 그는 반드시 황제가 되어야 했다.
한편, 루시펠라가 이곳에 왔다는 소리를 듣고 황후의 정원으로 향하던 제드는 나무에 기댄 채 서 있는 이오지프를 보며 물었다.
“뭐 하는 거지?”
“어마마마가 내 과거를 함부로 말하고 있는 모양이더군.”
이오지프가 턱짓으로 테이블을 가리켰다. 제드는 어렵지 않게 그중에서 루시펠라를 볼 수 있었다.
“그게 싫었으면 말리지 그랬어? 로에르 영애가 네 이야기를 들을 텐데. 그리고 내 약혼녀도 네 개인사를 듣는데 괜찮은 건가?”
“딱히 숨길 것도 아닌데 뭐. 아이딘 영애가 그래서 나를 좋아해 주면 더 좋지. 난 이렇게 인간적이고 멋있잖아.”
“넌 가끔 내가 화를 내는 걸 보고 싶은 것 같더군.”
그에 제드가 싸늘한 미소를 짓자 이오지프가 식은땀을 흘렀다. 그러던 그가 문득 표정을 굳히더니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말이야, 그 전투, 아니, 그 학살을 보지 않았다면 너와 난 어떻게 되었을까.”
“나에겐 딱히 큰일이 아니라서 별로 말해줄 게 없어.”
제드의 말에 이오지프가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솔직하지 못한 녀석이었다.
“부황께서 한 건 엄연한 학살이었어.”
“폐하가 아직 건재하시다. 말을 골라서 해.”
제드가 정색하며 딱딱하게 말하자 이오지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피식 웃었다.
그날 어린 이오지프도, 제드도 언덕 위에서 이자힐의 도시민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을 보았다. 피가 붉은 융단처럼 깔렸고, 그들은 흡사 마물처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오지프는 생각했다.
저것이 사람인가? 분명 자신과 같은 언어를 쓰는 이들이 맞는가? 그런데 왜 저들은 괴로움에 울부짖는가. 왜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가. 저들은 무슨 죄를 지었지? 왜 저런 끔찍한 일을 겪는 걸까.
이오지프는 왕, 그러니까 현 황제에게 무릎을 꿇으며 저들을 보내줄 것을 애걸했다. 황제는 대로했고, 이오지프는 그날 황위 싸움에서 영원히 배제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을 어린 제드가 지켜보았다. 제드는 그날 이후 이오지프가 어떤 목표를 가졌는지 바로 눈치챘다.
“로맨스만 읽는 네 연기, 정말 보기 힘들었어.”
“어마마마가 읽고 계시던 것을 보니 참 재밌더라고. 거기서는 사람이 거의 죽지 않잖아. 전쟁도, 머리 아픈 역사도 안 보이고, 개인의 소소한 행복이 가장 중요하잖아.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람들에게 성취해야 할 최고의 가치가 되는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
“아무튼 가자, 제드. 내 약혼녀가 이러다가 울어버리겠어.”
이오지프는 제드와 함께 티 테이블로 다가갔다.
그가 황후에게 인사를 올리자마자 클로렌스가 눈물을 흘리며 이오지프에게 다가가 끌어안았다.
그것을 본 제드는 부러움을 느꼈다. 가만히 앉아 있던 루시펠라가 제드를 바라보자, 활짝 미소를 지었다. 평화로운 티 파티가 끝이 났다.
***
루시펠라와 제드는 손을 잡은 채 황궁의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클로렌스가 이오지프를 끌어안고 울었기에 티 파티는 끝이 나버렸다. 황후는 제드와 루시펠라를 먼저 보내주었기에 그들은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루시펠라의 긴 머리카락을 간질였다. 제드는 손을 뻗어 루시펠라의 머리를 넘겨주었다.
언제나 그녀의 머리카락은 부드럽고, 매끈했으며, 만지면 기분이 좋았다. 그 손길을 받아들이는 루시펠라를 보던 제드의 얼굴이 굳었다.
“혹 무슨 일이 있나?”
“응?”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 이자힐에 대한 걸 황후 폐하께 들어서 놀란 건 아닐 테고…….”
“클로렌스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대체 나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거야?”
루시펠라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황후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왜 클로렌스와 제드만이 그녀의 기분을 기민하게 알아챈단 말인가. 오히려 제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당연히 그대에게 애정이 있으니까.”
“…….”
그렇구나. 애정이 있어서 그렇구나.
루시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대화가 전부 다 들릴 자리였나? 그녀가 이자힐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걸 제드도 알고 있었나?
“이자힐 이야기를 듣고 내가 왜 놀라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
그 말에 제드가 걸어가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제드는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제드?”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그럴 거라 생각했어.”
“그래.”
사실, 별생각 없이 물었기에 루시펠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궁금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황후 폐하가 말씀하시길 제드도 거기 있었다고 했어.”
“그랬지. 그 녀석이 매일 언덕에 갈 때 나도 따라 올라가야 했으니까.”
그렇다면 제드 역시 이오지프 옆에서 매일 그 장면을 봤다는 건가? 루시펠라의 얼굴이 굳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글쎄, 난 이오지프와 달라. 끔찍하긴 했지만, 삶을 바꿀 정도로는 대단하지 않았어.”
“그래?”
그게 정말일까? 루시펠라가 제드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제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대의 예상대로 거짓말이야.”
“…….”
“그 녀석은 모르지만, 나도 이오지프처럼 내 아버지에게 그들을 보내달라고 주장했거든.”
“…….”
“언제나 말하지만 나 역시 사람을 죽이는 걸 즐기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제드 역시 저들을 보내줘야 한다고 청했구나. 그러나 겨우 열넷, 열다섯 살 남짓한 소년들이 대체 무엇을 바꿀 수 있었을까.
“아버지는 폐하의 명령이니 따라야 한다며 단칼에 거절하시더군.”
“…….”
“아버지는 폐하와 달리 그런 참상을 보고 감정의 동요를 못 느끼는 인간은 아니었어. 적어도 죄책감이라는 건 가지고 있긴 했었지. 괴로운 표정으로,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데 거기서 이상한 감정이 들더군.”
“…….”
“대체 아버지가 좇는 권력이 무엇일까. 충성은 무엇일까. 영토 확장은 무엇일까. 모든 게 다 납득할 수 없더군.”
“…….”
“그래서 내린 결론은 진실은 없다는 것이었어. 모든 게 다 의심스러웠고, 모든 걸 다 믿을 수 없었지.”
루시펠라는 제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앞을 본 채 말하는 그의 얼굴은 분명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한 표정이었으나, 자세히 보면 그가 어떤 괴로움을 품었는지 보였다.
그날의 일이 이오지프에게 활활 타오르는 의지를 남겼다면, 제드에게는 서늘한 냉소를 남겼다.
“이런, 내가 내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군. 그대가 물어보면 나도 모르게 솔직하게 대답하게 된다니까.”
제드는 피식 웃으며 루시펠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소소한 대화를 나누던 그들이 마차들이 서 있는 곳에 다다르자, 아이딘 백작가의 마차가 보였다.
“일해야 해?”
“그래. 표면적이지만 그래도 단장이니까, 밀린 업무가 좀 많더군.”
“그렇구나.”
루시펠라가 아쉬운 듯 그의 손을 잡았다. 제드 역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럴 땐 얼샤에 있었을 때가 그립군.”
“왜?”
“그땐 서로 같이 있는 게 당연했으니까. 지금은 기껏 하루에 한 번씩밖에 못 보잖아.”
그 투정에 루시펠라가 피식 웃었다. 그녀도 비슷하게 느끼는 바였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제드와 거의 매일을 함께하다가 이렇게 각자의 장소에 떨어져 지내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이딘 백작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꽤나 지루한 일이야.”
그에 루시펠라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 오늘, 당신 집에서 자고 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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