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어떤 꿈
2018.05.17.
아침을 알리는 햇빛이 커튼이 사이로 새어 나왔다.
루시펠라는 침대 위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살짝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바람이 불며 커튼이 날아가자 새하얀 햇빛이 루시펠라의 두 눈을 찔렀다. 이윽고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평온하게 잠을 자는 이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구름이 해를 가리고 방 안은 다시 어두워졌지만, 루시펠라는 얼굴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이젠…… 지쳤어…….”
흐느끼듯 토해낸 숨과 더불어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침대 시트를 꾹 잡는 손가락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계속 숨을 헐떡이며 울음을 터뜨렸다.
“지쳤단 말이야…….”
흘러내린 눈물이 베갯잇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녀는 꽤나 오랫동안 눈물을 흘렸다. 울음으로 그녀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그때, 바람이 불어오며 햇빛이 얼굴을 비추자 루시펠라가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멍하게 눈을 뜬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눈가에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굴려 마치 처음 온 것처럼 주변을 살펴보았다.
폭신한 베개, 부드러운 이불, 화려하게 꾸며진 방. 바로 루시펠라의 방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순간 그녀의 몸이 중심을 잃고 기우뚱해서 그녀는 팔로 상체를 지탱해야 했다. 루시펠라의 두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햇빛에 반짝였다. 그녀는 침대 시트에 스며드는 자신의 눈물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던 루시펠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
그녀는 한숨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숨을 토해냈다. 몽롱한 정신 속, 가슴은 찢어질 것처럼 아릿했다.
“대체 왜 이제…….”
루시펠라는 이를 악물며 분노에 찬 듯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그녀의 입꼬리가 다시 올라갔다.
“이건 너무 우습잖아. 내가, 내가…… 하하!”
그녀는 몸을 떨며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강하게 밀려오는 감정의 격류에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웃기 시작했다.
어떤 잔혹한 꿈을 꾸고 난 아침이었다.
***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왜?”
클로렌스의 걱정 어린 말에 루시펠라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클로렌스는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정말이야, 아무것도 없어.”
루시펠라가 애써 안심시켰지만, 클로렌스는 그녀의 두 눈을 뚫어져라 보았다. 마치 그러면 그녀가 실토라도 할 것처럼.
“그거 알아요? 루시 아까 만났을 때부터 조금 가라앉아 보여요.”
“내가?”
“네.”
루시펠라는 미소를 지었다. 클로렌스는 여전히 속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정말로 루시펠라에게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황후 폐하껜 제가 잘 말할 테니 돌아가 쉬시는 게 어때요?”
“아니야, 클로렌스. 괜찮아.”
이상하다. 분명히 입가에는 계속 미소를 띠고, 울음으로 부은 얼굴 역시 화장으로 가렸는데 클로렌스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왜 그녀의 가면은 이렇게 쉽게 간파된 것일까. 그녀가 그렇게 허술한 것일까. 설마 황후도 눈치채는 건 아니겠지. 슬그머니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요, 루시.”
“황후 폐하께서 모처럼 초대해 주신 건데 돌아갈 수 없지. 그리고 그럴 만한 큰일도 없고.”
황후가 갑작스럽게 초대한 티 파티다. 갑자기 빠지는 것도 결례였다. 만약 이것이 후환이 되면 어떻게 하겠는가.
게다가 그녀는 가라앉은 기분으로 집에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더 우울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알았어요. 그래도 힘들면 저한테 말하는 거예요. 아셨지요?”
루시펠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미소 짓자 클로렌스가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참 즐거워 보이는군.”
루시펠라와 클로렌스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루시펠라는 클로렌스가 움찔하는 것을 느꼈다. 테미르가 그녀들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그들이 마지못해 인사하자 테미르가 그녀들 앞으로 다가왔다. 클로렌스가 테미르를 두려워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루시펠라는 그녀 앞에 서서 물었다.
“전하께서 여기 어쩐 일이신가요?”
용건이 없으면 돌아가 달라는 것을 부드럽게 말하자 테미르가 입가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
“당연히 루시 네가 잘 돌아왔는지 궁금해서 보러 왔지.”
그러면서도 루시펠라를 훑어보는 시선이 영 기분 나빴다.
왜 저렇게 실실 웃으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걸까. 꼭 온몸에 뱀이 기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루시, 나를 ‘황자 전하’라고 하다니. 벌써 내가 황자가 되었다는 걸 알고 있나 보네. 정말 이런 소문은 빨리 퍼지는가 보군.”
“…….”
아니나 다를까, 테미르는 공연히 트집을 잡을 모양이었다.
화풀이로 시비라도 걸겠다는 건가. 버러지만도 못한 자식 같으니라고. 루시펠라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왜 그런 시선으로 쳐다보지? 이제 황태자가 아닌 난 버러지만도 못하다는 거야?”
테미르가 그녀가 했던 생각을 그대로 말하자 루시펠라는 깜짝 놀랐다.
마음을 읽는 건 아닐 테고, 자기가 무슨 욕을 먹을지 알면서 대체 왜 욕먹을 짓을 하느냔 말인가. 그녀는 황당했다.
루시펠라는 일단 여기서 벗어날 방법을 생각했다. 황후 핑계를 대며 벗어나는 게 제일 좋았다.
“뭐, 그래, 그렇게 건방지게 구는 것도 여기까지야.”
“……?”
다시 테미르를 보니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라? 갑자기 왜 저러지? 좀 더 질질 끌 것 같았는데. 저런 표정을 보니 어쩐지 불안함이 들었다.
테미르가 루시펠라에게 다가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우리 어여쁜 루시.”
“…….”
“그러게 계속 고분고분하게 살면 좋았잖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그가 엄지손가락으로 루시펠라의 드러난 쇄골을 만지작거렸다. 그 은근한 속삭임에 루시펠라는 뒤로 물러나며 자신의 손으로 테미르의 손을 떼어냈다.
“실례합니다, 전하. 황후 폐하가 기다리고 계셔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너!”
“혹 제가 황자 전하께 불손하다 생각하셨다면 황후 폐하께 말씀드려 벌을 청하겠습니다. 저와 함께 가주시겠어요?”
황족 모독죄로 아무리 트집 잡아도 황후에게 이 일이 들어갈 테니 소용없다는 말이었다.
루시펠라가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하자, 테미르가 이를 악물며 억지로 삐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그는 홱 돌아서서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아무래도 황후 폐하는 무섭나 보네.”
테미르가 보이지 않자 루시펠라가 작게 말하며 클로렌스를 돌아보았다. 클로렌스는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다.
“역시 이상하죠?”
“응?”
“1황자가 왜 저렇게 자신만만하지요?”
“미쳐서 그런가 보지.”
루시펠라의 말에 클로렌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역시 이상해요. 지금 이드리스 공작가 이외에는 1황자가 믿을 만한 구석이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요? 루시를 건드리면 하인트 공작 각하가 분노한다는 걸 알면서도 왜 저런 도발을 하는 걸까요?”
“허세를 부리고 있는 걸 거야.”
“그런 걸까요?”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루시펠라가 애써 미소를 지었다.
“뭐, 그렇더라도 2황자 전하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정도로 무능하거나 제드가 바보 같진 않잖아? 걱정 마. 그 사람들이 바보는 아니니까.”
클로렌스가 여전히 불안해하자 루시펠라가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그리고 클로렌스도 이렇게 현명하잖아. 상대는 분별없는 1황자야. 설령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도,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겠지요?”
클로렌스의 말에 루시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펠라의 두 눈을 본 클로렌스가 한결 안심한 듯 미소를 지었다.
“황후 폐하께서 기다리시겠다. 어서 서두르자.”
클로렌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조금 발걸음을 빠르게 해서 정원을 가로질렀다. 테미르를 만나 불쾌한 감정의 잔흔이 남았으나, 선선한 바람과 만개한 꽃향기는 그런 기분을 깨끗하게 씻어 내리게 할 정도로 향기로웠다.
하녀들을 따라 그녀들이 당도한 곳 역시도 정원이었다. 초록색 잔디와 대비되는 하얀 테이블 위에는 화려한 찻잔과 더불어 먹음직스러운 간식이 쌓여 있었다.
“어서 와요.”
반대쪽에서 걸어온 황후의 모습을 보고 루시펠라와 클로렌스는 동시에 치마를 쥐며 인사했다.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그 인사에 그녀가 싱긋 미소 지었다.
“어서들 앉아요.”
그녀가 권하자 루시펠라와 클로렌스는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이에요, 아이딘 영애. 얼샤에서 고초를 당했다고 들었어요. 몸은 괜찮나요?”
“네, 괜찮아요.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루시펠라의 예의 바른 답변에 그녀가 미소 지었다.
“본디 영애를 쉬게 둘까 했지만, 영애의 얼굴을 직접 보고자 영애를 불렀어요. 다행이네요, 무척 건강해 보여요. 기분도 좋아 보이고요.”
다행히 황후는 클로렌스처럼 그녀의 기분을 간파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루시펠라는 그에 안심했다.
그런데 황후는 왜 그녀를 굳이 부른 것일까. 하인트 공작부인이 될 그녀를 자신의 사람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일까?
“이오지프의 말로는 하인트 공작과 곧 결혼한다던데, 사실인가요?”
“네, 사실이에요.”
“정말 축하할 일이군요.”
아니나 다를까, 황후는 제드의 이야기를 꺼냈다.
역시 그런 모양이었다. 루시펠라는 내심 긴장한 상태로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결혼은 언제 하는가, 언제 영지에 내려가는가, 아이딘 백작은 언제쯤 올 예정인가 등등.
다행히 황후는 결혼과 관련하여 무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아이딘 영애, 날 너무 어려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네?”
“클로렌스에게 들어보니 아이딘 영애는 좀 더 자유로운 사람인 것 같은데, 제겐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더군요.”
루시펠라가 클로렌스를 바라보자, 클로렌스가 미소를 지었다.
뭘까, 이 상황은.
루시펠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황후를 바라보자, 그녀는 호의적인 표정으로 루시펠라를 보고 있었다.
어려워하지 말라고 진짜 어렵지 않은 듯 굴었다간 어떻게 될까. 루시펠라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의 얼굴이 굳어 있자 황후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영애가 왜 그러는지는 알고 있어요. 나라도 그런 생각을 하겠지요. 결혼에 대해 계속 물어본 건 영애를 도와 결혼 준비를 할 이가 있나 궁금해서 그랬어요.”
루시펠라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왜 결혼 준비를 도와줄 이가 있는지 알고 싶은 걸까. 그녀가 의아해할 때 황후가 입을 열었다.
“결혼하는데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 많을 거예요. 영애를 돌봐줄 안주인이 없으니 번거로운 일이 많을 거고요.”
“…….”
“만약 괜찮다면 내가 도와주고 싶은데. 이건 영애에게 너무나 큰 부담일까요?”
루시펠라는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결혼 준비를 도와준다는 것은, 즉 그 사람을 딸로 여긴다는 말과 똑같았다.
하지만 황후와 그녀는 접점이 거의 없지 않았나?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 거지?
“폐하.”
클로렌스 역시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표정으로 봐서 이것은 루시펠라의 생각대로 너무나 엄청난 일인 듯했다.
한 나라의 황후가 일개 백작 영애의 결혼 준비를 돕다니. 분명 이상했다.
“영애나 아이딘 백작의 입지가 곤란하다면 거절해도 돼요. 하지만 생각은 해달라는 거예요.”
아이딘 백작 때문일까? 아니면 제드 때문일까?
하지만 아이딘 백작가는 1황자파였고, 사실 그리 끌어들이기에 매력적인 가문은 아니었다.
제드 같은 경우도, 이미 제드는 테미르를 황제로 떠받들지 않겠다고 공언한 상황이고, 딱히 그녀를 위해준다고 해서 제드의 태도가 변하는 건 아니었다.
제드는 이미 이오지프를 대놓고 지지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로지 루시펠라에게만 이득이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여성의 지원을 받은 이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지겠는가. 사교계에서 애쓰지 않아도 루시펠라의 입지는 절로 탄탄해질 것이다.
“그 이유를 여쭈어도 될까요?”
루시펠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차라리 이쯤 되면 서로의 의도를 조심스레 파악하기보다는 직접적으로 묻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황후가 웃으며 말했다.
“이 자리를 빌어 말하지만, 영애의 어머니와는 안면이 있었답니다.”
“저희 어머니와 안면이 있으셨다고요?”
그건 또 처음 듣는 말이었다.
“생전 이곳에 왔을 때 차를 몇 번 마셨답니다. 참으로 맑고 고운 사람이었죠. 이곳 황궁과 어울리지 않는.”
“…….”
“영애에게 그간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건, 영애가 괴로워할까 염려되어서였어요. 또 몇 번 차만 마셨을 뿐, 백작부인과 전 친구라고 할 관계는 아니었으니까요.”
“…….”
“다만 영애, 저는 영애의 어머니가 참 부러웠답니다.”
“부러웠다니,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언제나 자유로웠으니까요. 저는 황제 폐하를 무척 두려워했는데 그녀는 거침이 없더군요. 제가 가장 바라는 모습을 지녔지요. 백작부인과 정말 친해지고 싶었지만, 차마 친해질 수는 없었어요.”
“황후 폐하이시잖아요. 원하신다면 친해지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으셨을 텐데요.”
“권위를 내세워 억지로 친해지는 건 매우 쉽지요. 하지만 영애도 알지 않나요? 그게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그런 말을 하는 황후의 얼굴에는 쓸쓸함이 느껴졌다. 그 씁쓸한 미소를 가리려는 듯 황후가 차 한 모금을 들이켰다.
“아이딘 백작부인은 얼샤 출신이라 친분이 있는 이들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영애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계속 생각했어요.”
이 사람, 진실을 말하는 것 같다.
“영애를 항상 눈여겨보고 있었어요. 그러나 나는 힘이 없었기에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지요. 지금이라면 영애를 도와주고 싶군요.”
그러고 보니 황후의 초대로 억지로 황궁에 왔던 일을 제외하고 몇 번 만나지 않았지만 루시펠라는 황후가 자신에게 호의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루시펠라가 테미르로부터 당한 일을, 혹 피해가 갈까 봐 신관까지 시켜서 숨겨주지 않았나.
“알아요. 이런 자리에 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여러 해석의 여지가 있지요. 그렇지만 생각은 해주시겠어요?”
황후가 부드럽게 웃었다. 루시펠라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태도였다.
“아버님과 약혼자와 상의해 볼게요.”
루시펠라는 황후의 두 눈을 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나쁘지 않은 사람이다. 진심으로 그녀에게 힘이 되길 바라서 그런 것이다.
“신경 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진심이에요.”
만약 황후가 정말로 원하는 바가 있어 이 제안을 한 거라면, 지금 여기서 수락하도록 그녀를 압박했겠지. 그렇지만 그녀는 오히려 루시펠라가 곤란하진 않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어머, 폐하. 이러면 제가 너무 질투가 나는데요.”
클로렌스가 일부러 토라진 목소리로 말하자 분위기가 다시 밝게 바뀌었다.
황후는 루시펠라를 배려해서인지 화제를 바꾸었다. 주제는 책에 대한 것이었다.
역사서, 시집 등. 이야기의 화제는 다양했고, 이들의 대화가 ‘소설’로 접어들 때였다.
클로렌스가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폐하, 그간 궁금한 게 있었는데요.”
“뭐지요?”
“이오지프 전하는 왜 하필 로맨스를 보시는 건가요? 사실 본인을 숨기시려면 역사서도 나쁘진 않았을 텐데요. 사실 지금도 이오지프 전하의 책장엔 로맨스 소설뿐이에요. 무인이시니 이제 병법서나 역사서로 채워도 될 것 같은데, 제 말을 들어주시지 않네요.”
“그런가요?”
황후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루시펠라는 그녀가 없는 동안 클로렌스와 황후의 사이가 퍽 가까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클로렌스의 말은 어떻게 보면 로맨스 소설을 보는 2황자를 비난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이걸 들어도 되려나?
사실 궁금하긴 했지만, 어째 관심도 없는 남자의 이야기를 굳이 깊게 알고 싶지 않기도 했다.
“병법서나 역사서가 그 애의 방에 채워질 일은 평생 없을 거랍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평생이라니? 알고 싶지 않다는 루시펠라의 마음이 슬며시 강한 호기심으로 변할 때였다.
“이오지프는 전쟁을 진저리나도록 싫어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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