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법-126화 (126/173)

#126화 집으로

2018.05.14.

서늘한 가을바람이 칼리드의 머리칼을 간질였다.

그는 루시펠라가 묵는 곳을 올려다보았다. 창문은 불이 켜져 있었고, 루시펠라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의 자색 눈에 강렬한 열망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때 또 다른 그림자가 보였다. 굳이 보지 않아도 안다. 제더카이어 하인트였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겹쳐졌다.

그에 칼리드의 두 눈에 분노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가 이를 갈았다.

“쓸모없는 새끼들…….”

그가 음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체 그놈들은 왜 저 새끼를 살려둔 것인가. 그러고 나서 왜 마치 저놈을 죽인 것처럼 자신을 농락한 것인가.

제더카이어 하인트와 자신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겠다고?

대체 무엇이 그리도 큰 차이가 있다고. 그는 피어오르는 살기를 억눌렀다.

제드가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 루시펠라가 자신을 살리려고 했을 때 칼리드의 행복은 극에 달했다.

드디어 에스텔이 자신을 알아주는구나, 그녀가 드디어 자신을 봐주는구나, 이제 아무것도 방해될 건 없을 거라고 기뻐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제더카이어 하인트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

“그놈들의 증오도 거기까지였던 거지.”

칼리드는 주먹을 꽉 쥐며 욕설을 내뱉었다.

어찌 되었든 루시펠라는 제드를 선택하고 칼리드를 버렸다. 과거를 아예 버린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에게 품은 증오마저 버린다고 했을 때, 그는 또다시 에스텔을 증오하고 또 증오했다.

칼리드는 창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림자가 겹쳐 있었다.

지금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새로이 얻은 육체로 제더카이어 하인트과 입맞춤을 나누고 있을까. 아니면 육체를 섞고 있을까.

“에스텔, 네가 과거를 잊겠다면 난 기꺼이 네 현재가 될 거야.”

그녀는 영원한 그의 별이었으니까. 칼리드는 창문으로부터 등을 돌려 걸어갔다.

***

“다 왔어.”

제드의 말에 루시펠라는 커튼을 걷어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린힐의 성문이 보였다. 루시펠라는 그것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했다. ‘돌아왔다’라는 느낌이 들며 긴장이 탁 풀렸다. 루시펠라는 자신을 바라보는 제드의 시선을 느꼈다.

‘계속 저러네.’

납치 사건 이후로 제드는 루시펠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다. 눈이 마주치면 제드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한 번 납치가 되었으니 또 납치될까 봐 불안한 모양이었다. 자꾸 쳐다보는 건 부담스러웠지만, 그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기에 루시펠라는 그 시선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때, 제드가 입을 열었다.

“루시.”

“응?”

“결혼이 코앞이군.”

“응.”

이대로 얀스가르와 돌아가면 결혼을 서두를 예정이었다. 이 사람과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위기도 불안도 없이 그렇게 행복하게.

“후회하게 될 거야.”

갑자기 칼리드의 목소리가 떠올라 루시펠라가 움찔했다.

정말 그럴까? 남은 건 결혼뿐일까?

칼리드는 에스텔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날 그를 죽이지 않은 것은 아직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연유 모를 찝찝함이 들었다.

“뭔가 걱정이라도 있나?”

“그런 거 없어.”

루시펠라는 제드에게 미소 짓자 제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섬세한 사람 같으니라고. 루시펠라가 눈을 굴리며 말을 돌렸다.

“참, 루이르크 공작은 어디 간 거야? 안 보이는데.”

“그 인간이라면 영애가 잘 때 떠났어.”

“왜?”

“얀스가르 시찰이라는 원래 임무에 복귀한 거지.”

칼리드가 자신을 보지 않고 헤어졌다고?

루시펠라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서운하다거나 하는 기분은 아니다. 그냥, 그녀를 포기하지 않겠다던 남자가, 이렇게 말없이 사라지니 찜찜했다.

“그 사람이 가서 아쉬운 건 아닐 테고.”

제드의 목소리에 루시펠라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제드는 루시펠라의 얼굴을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맞아, 이 사람, 칼리드를 싫어했었지.

“그냥 궁금해서 그런 거야. 있던 사람이 없으니 궁금해할 수도 있지.”

말을 돌리려고 꺼낸 화제가 칼리드에 대한 화제라니 주제 선정이 나빴다.

그러고 보니 제드는 이전보다 더더욱 칼리드와 루시펠라가 만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전에도 제드는 칼리드가 루시펠라를 보는 눈빛이 기분 나쁘다고 이야기하고는 했다.

“다시 결혼 이야기로 돌아가지.”

다행히 제드는 칼리드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루시펠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를 만나면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말할 거야.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르게 하도록 할게.”

루시펠라는 아이딘 백작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돌아오면 모든 걸 이야기해 주기로 약속했었지. 그가 이야기할 말은 무엇일까.

루시펠라는 곰곰이 생각하다 제드의 시선을 눈치채고 다시 미소 지었다. 대화 중에 혼자만의 생각에 자주 잠기는 건 좋은 버릇이 아니었다.

“그리고 번거롭지만 엄청 화려하고 귀찮은 결혼식을 올리고 나는 루시펠라 아이딘이 아니라 루시펠라 하인트가 될 거고. 당신의 집에 가서 평생 당신과 살면 되는 거지?”

“그렇게 말하니 지나치게 간단하게 들리는군.”

“그리 간단한 건 아니지.”

에스텔의 기준으로 ‘평범’한 여자들이 해왔던 걸 그녀도 하게 되었다.

하인트 공작가의 ‘안주인’이라니. 그렇다면 그의 집안을 관리해야 한다는 말인데, 그걸 잘할 수 있을까?

그것은 루시펠라의 적성과는 상관없이 이미 준비된 역할이었다. 모든 여자가 하는.

“내가 거기서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알잖아, 나는 자수도 제대로 놓지 못해. 나한테 뭔가 제대로 된 걸 바라면 안 된다고.”

루시펠라의 말에 제드가 피식 웃었다. 그런 고민을 했던 게 귀여웠던 탓이었다.

“그런 거 바라지도 않으니 그냥 자유롭게 살면 돼. 그대가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 들어주도록 하지.”

루시펠라는 그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도 들었다.

에스텔이었을 때는 그녀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뭘까. 적성에 따라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지 않고,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문의 내부를 관리하는 것밖에 없었다.

게다가 제드가 자유롭게 살도록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준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제드의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게 아닌가.

“또 표정이 왜 그러지?”

“그게 말이야. 당신이 날 자유롭게 해주겠다고 하면, 그게 진짜 자유로운 건가?”

“뭐?”

“내가 자유롭도록 제드가 도와준다고 했잖아. 그럼 내가 제드가 원하는 걸 들어주지 못하면 자유롭지 못하는 거야? 그리고 제드가 날 미워하게 되면 자유로울 수 없는 거고?”

“…….”

그 말에 제드가 얼굴을 찌푸렸다.

역시 이런 화제는 기분이 나쁜 걸까? 하지만 루시펠라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만약, 그에 대해 제드가 불쾌감을 드러낸다면 루시펠라는 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생각이었다. 그는 한참 동안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렇군. 레이디에겐 스스로 무언가를 할 권리가 없으니 말이야.”

“…….”

“게다가 그대 입장에서는 불안하기도 하겠군. 어떻게 보면, 사랑이라는 불확실한 감정에 모든 인생을 건다는 말이니까. 게다가 평생을 그러하다니, 생각해 보니 빌어먹을 정도로 불공평해.”

오히려 그 대답에 놀란 것은 루시펠라였다. 제드는 자신의 마음이 변함없을 거라며 사랑을 속삭였다. 그럼에도 그 사랑에 기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내 마음이 영원하다고 말해도 그대는 내가 아니니 그걸 알 수 없는 노릇이지.”

“……제드, 기분 안 나빠?”

“기분이 나쁘다니?”

“지금 내 말은 제드의 마음을 믿지 못한다는 말과 똑같잖아.”

그에 제드가 빙그레 웃었다.

“그대의 마음이 평생 나를 향하지 않을지도 몰라 나도 불안한데 그대라고 나와 다를까.”

루시펠라가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미소 지었다. 제드가 말을 이었다.

“그러나 나와 그대의 차이라면 그대의 마음이 떠나도 나는 삶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지만, 내 마음이 떠나게 되면 그대는 삶 전체가 어그러질 테니, 그건 확실히 불공평한 거지. 그대가 불안함을 느끼며 의문을 품는 건 합당한 일이야.”

“…….”

정말로 제드는 불쾌함을 숨기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는 아직도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때, 그가 갑자기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와 이런 대화도 나쁘진 않군.”

“그래?”

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얀스가르의 법을 통째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니, 신전에서 계약서라도 작성해 보도록 하지. 그대가 덜 불안해하도록 말이야.”

“그걸 원한 건…….”

“알고 있어. 내가 필요하다 여겨서야.”

제드의 말에 루시펠라가 불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본 제드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대가 이런 점에 대해 말하는 게 기뻐. 이런 불안을 감내하고 억지로 사는 걸 원하지 않아. 적어도 내 곁에 있는 사람은 그랬으면 좋겠어.”

그가 루시펠라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따스하고 커다란 손이 루시펠라의 손을 부드럽게 쓸었다.

“여기, 이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울 날이 기대되는군.”

제드는 들뜬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루시펠라가 미소 지었다.

결혼이라는 게 아직 와 닿지도 않고, 딱히 아주 좋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 사람과 평생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아버님이 또 영지에 내려가셨다고?”

“네, 그렇습니다.”

“언제부터?”

“일주일 전부터요.”

루시펠라는 그 말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서운해야 하는 거지, 이거? 한 계절이 변하도록 보지 않던 딸이 곧 도착인데 영지에 내려갔다니. 게다가 돌아와서 백작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하지 않았나. 나름 궁금한 게 많았는데 김이 팍 새버렸다.

“목욕물 좀 준비해 줘.”

이럴 줄 알았으면 제드와 좀 더 있을 걸 그랬나. 괜히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루시펠라가 한숨을 내쉴 때 집사가 말했다.

“저, 아가씨?”

“응?”

“손님이 와 계십니다.”

“손님?”

“그게…….”

그와 동시에 문이 열리고 복도에 누군가가 뛰어와 루시펠라를 끌어안았다.

“루시!”

밝은 목소리가 품에서 들렸다. 루시펠라는 그에 환하게 미소 지었다. 클로렌스였다.

부드러운 백금발 머리카락을 보자 루시펠라의 마음이 따스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일이야?”

“루시가 온다는 소릴 듣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내일 찾아갈 거라고 했잖아. 굳이 오지 않아도 됐는데.”

“보고 싶으니 그렇죠.”

“나도 보고 싶었어.”

“정말요? 편지 한 통도 안 보내놓고서.”

클로렌스가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내밀었다. 그 표정에 루시펠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 미안해.”

“아니요, 무사히 돌아왔으니 됐어요.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데요.”

“그게 여기까지 퍼졌어?”

“당연하죠. 공작 각하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소문까지 돌았어요. 이오지, 아니, 2황자 전하가 상당히 신경 쓰셨죠.”

“제드가 2황자 전하를 지지하니까 그렇게 됐겠네.”

“그래도 큰 타격은 없었어요. 황태자가 폐위되었으니까.”

“황태자가 폐위되었다고?”

“네.”

그녀가 얼샤에 다녀온 뒤로 많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루시펠라는 결국 목욕은 나중으로 미루고 클로렌스와 수다를 떨기로 했다.

“바반드 백작가와 이드리스 공작가의 사이가 틀어졌어요.”

“왜?”

“서로 약혼했던 이드리스 공자와 바반드 백작 영애의 사이가 틀어졌거든요. 자세히 알아보니, 이드리스 공자가 약혼녀를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났대요.”

루시펠라가 얼굴을 찌푸렸다. 왜 그런 놈들은 사라지지 않는 걸까.

바반드 백작가는 하인트 공작가에 비견되진 못하지만 무가로 이름이 나 있는 곳으로서, 이드리스 공작의 도움을 받아 중앙에 진출한 가문이었다.

아무리 이드리스 공작가가 바반드 백작가의 중앙 진출에 도움을 주었다고 해도, 약혼했다면 적어도 약혼녀에 대한 신의는 지켜야 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이드리스 공자가 바반드 백작 영애를 모욕했다나 봐요. 너는 후실감도 아니라고.”

“…….”

“그 사실을 알게 된 바반드 백작이 이드리스 공작과 다퉜어요.”

아버지로서는 당연한 거지.

루시펠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클로렌스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라는 게 이유지만, 글쎄요.”

“뭐?”

“지금 황위 쟁탈전이 치열하고 2황자 전하께서 두각을 드러내니, 발을 빼고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심산일지도 몰라요. 그러니 알 수 없는 거죠.”

“…….”

나는 아직 멀었네. 루시펠라는 모든 것을 표면적으로 받아들이던 자신을 반성했다.

“그런데 그것도 요즘 이상해요.”

“이상하다니?”

“황태자 자리에서 폐위되었고 유력 가문이 다 떠나는 마당에 지금 이드리스 공작도, 1황자 전하도 자신만만한 게 이상해요. 그래서 떨어져 나가려던 귀족들도 함부로 행동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고.”

“수도는 여전히 머리 아프구나.”

“다른 이들은 단순한 허세라고 생각하는데, 이오지, 아니, 2황자 전하는 다른 게 있다고 생각하나 봐요.”

바반드 백작과 결별한 이드리스 공작, 그러나 황태자도 이드리스 공작도 무언가가 있는 듯 행동한다. 단순한 허세일까, 아니면…….

루시펠라가 눈을 가늘게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어머, 나 좀 봐.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에게 머리 아픈 이야기를 했네요.”

“아니야, 제드도 관련된 일인걸.”

클로렌스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공작 각하와 관련된 일이니 괜찮다는 건가요? 세상에나, 루시가 저한테 이런 말도 하다니. 그런 사이가 되어버린 거죠?”

“응?”

클로렌스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까 창문으로 봤어요.”

“뭘?”

“마차에서 내리는 루시요. 공작 각하와 손을 꼭 잡고 있었지요?”

“…….”

“공작 각하 눈빛이 뜨겁던데요. 그전과는 다른 사이가 된 거죠?”

“달라졌지, 아주 많이.”

루시펠라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고 보니, 얼샤로 출발하기 전 루시펠라와 제드의 사이는 ‘약혼’으로 의무적으로만 묶인 관계였다. 단지 미묘한 감정의 부딪힘과 끌림이 그들 사이에 존재한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루시펠라는 자신과 제드를 ‘연인’이라고 칭할 수 있었다.

진짜 많이 바뀐 모양이구나.

“루시 얼굴에도 사랑이 가득하던데요. 이제 마음을 나누기 시작한 거죠?”

“그, 그렇게 됐어.”

“이겼네요!”

“엉?”

클로렌스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뭐가 이겼다는 거야?”

“이오…… 아니, 2황자 전하와의 내기요. 이오지프는 루시와 공작 각하가 다녀오시는 동안 서로 마음이 통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거든요.”

루시펠라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나 가지고 내기한 거야? 그리고 생각해 보니 내 마음도, 제드의 마음도 알고 있었던 거?”

“그럼요! 물론이죠. 곁에 있으면 얼마나 표가 났는데.”

“…….”

“아, 너무 아쉬워요. 2황자 전하도 아쉬워할 거예요. 서로 눈치 보는 걸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그거 알아요? 제가 루시를 데려가면 공작 각하는 언제나 불쾌해하셨어요. 저도 질투했다는 거죠.”

“클로렌스!”

그에 클로렌스가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이 사람들이 진짜, 이오지프야 그렇다 치지만 클로렌스는 대체 왜 저런 성격이 된 것인가. 이게 다 이오지프 때문이었다.

잠깐, 이오지프? 루시펠라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는 클로렌스 너는?”

“네?”

“아까부터 2황자 전하를 자꾸 이오지프라고 부르고 있네?”

“어…….”

“클로렌스, 자세히 이야기해 줘야지. 달라진 건 나뿐만이 아닐 텐데?”

“음…….”

“너만 나에 대해 아는 거 불공평해. 말 안 해주면 제드와 결혼하고 나서 영지로 내려가 수도로 안 올라올 거야.”

“이렇게 내게 잔인할 수는 없어요. 우정을 가지고 협박하다니!”

그녀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했다. 결국 클로렌스는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클로렌스가 좋아하는 차를 몰래 내온 이오지프, 클로렌스가 루시펠라와 이오지프 사이를 오해하자 그날 이후 황후를 제외한 다른 여자들을 멀리하던 것. 올 때마다 클로렌스를 위한 선물을 주는 것.

“항상 로맨스 소설에 빠져 있는 이상한 책벌레나, 어딘지 꿍꿍이가 있는 듯 신뢰가 가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지만 생각보다 착하고 좋은 사람이에요.”

클로렌스가 얼굴을 붉히고 말하자 루시펠라가 얼굴을 갸웃했다.

지금 이오지프를 칭찬하는 거 맞지?

“하긴, 제드도 검밖에 몰라서 사회성이 좋지 않고, 심지어 원래 성격도 좋진 않지만 사실 좋은 사람이니까.”

“…….”

클로렌스 역시 루시펠라와 비슷한 표정을 했다. 그러다 둘은 다시 마주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클로렌스를 보자 루시펠라는 비로소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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