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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법-122화 (122/173)

#122화 비극과 미래

2018.04.30.

지독한 악몽을 꾼 것 같았다. 루시펠라는 눈을 뜨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악몽이 아니다! 그녀는 약을 먹고 잠들어 버렸다.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이곳은 어디지?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자신이 누워 있는 곳에 기대 쓰러진 남자를 보았다. 제드였다.

“에스텔.”

리엄이 자신을 불렀지만 루시펠라는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미끄러지듯 제단 아래로 내려가 쓰러진 제드를 안아 들었다.

팔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녀의 품에 안긴 제드가 힘없이 미끄러졌다.

“아…… 아아.”

아무 언어도 나오지 않았다. 다시 본 그의 입가에는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해진 지 오래였다. 그의 온기가 싸늘하게 식어 내리고 있었다. 루시펠라는 직감했다.

리엄이 독을 먹인 것이다.

이 감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루시펠라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아프고, 아프고, 너무 아팠다.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제드! 안 돼, 제드!”

그녀는 제드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그렇게 하면 그가 깨어나기라도 할 듯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지? 그때 물을 마셔서는 안 됐었다. 너무 어리석게 동료를 믿었다. 이들이 자신을 생각해 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얼마나 안이한 생각이었단 말인가. 왜 이런 일이 벌어져야만 했지?

“그냥,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차라리 내가 되살아나면 안 되었는데. 이 사람은, 이 소중한 사람은 자신과 관계없이 그냥 살 수 있었을 텐데.

“에스텔.”

리엄의 목소리에 루시펠라가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새파란 증오를 담은 채 리엄을 쏘아보았다.

“이제 만족해, 리엄?”

“…….”

“내가 이 사람이 죽은 모습을 직접 보게 하는 거, 이게 네가 내게 하는 복수였구나.”

눈물을 뚝뚝 흘리며 루시펠라는 서늘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녀는 이 순간, 자신의 앞에 있는 이가 증오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

그녀는 다시 제드를 보았다. 기가 막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다 루시펠라는 그를 끌어안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품 안에 있는 남자가 세상의 전부라는 듯.

리엄은 그것을 본 후 한숨을 쉬며, 그녀를 지나쳐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그녀는 품에 안긴 자신의 연인을 보며 구슬피 울었다.

참으로 이상하지. 동료를 잃었을 때도 슬펐는데, 지금 이것은 슬프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가슴이 찢겨 나가는 것 같았다.

이 세상에 그가 없다고 생각하니 그것만으로도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제드.”

차라리 되살아나지 말걸.

차라리 고백하지 말걸.

차라리 이 녀석들을 설득하려 하지 말걸.

차라리 그냥 죽어버릴걸.

너무나 많은 절망과 후회가 들었다. 더 슬픈 것은 루시펠라는 저들을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두 번째 삶은 에스텔의 삶보다 훨씬 비참했다. 생애 지극한 행복을 경험하고, 그것을 누릴 길이 영영 사라져 버렸으니 그 공허함이 고통이 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기사였던 에스텔이 적국의 기사인 제더카이어 하인트를 사랑했고, 그녀는 에스텔이었던 전생을 버리지 못했으니까.

그녀는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렇게 그녀는 제드를 껴안은 채 엉엉 울었다.

한참이 지나자 다시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걸어 들어왔다. 그러나 루시펠라는 상관하지 않았다.

“단장.”

아니카였다. 그녀는 흐느끼고 있는 루시펠라를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루시펠라의 앞에 앉았다.

그러자 루시펠라가 제드를 꽉 껴안았다. 마치 그를 지키려는 듯이. 그녀의 눈에서 명백한 경계와 적의를 읽은 아니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단장, 그만 울고 하인트 공작의 맥 좀 짚어봐.”

“…….”

“지금 내 말 안 들려? 해보란 말이야.”

“…….”

그녀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저 멍하게 아니카를 노려볼 뿐이었다.

“단장, 내가 지금 이걸 말해줘야 해? 하인트 공작 살아 있다고!”

그 말에 루시펠라가 번쩍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손을 들어 그의 목을 짚었다. 강하게 맥동하는 맥이 느껴졌다.

안 죽었다! 죽지 않은 것이다. 그녀가 어떻게 된 일이냐는 듯 아니카를 바라보았다.

“방금 리엄이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

“…….”

“‘놀고 있네. 다시 일어나면 좀 쪽팔릴 거다’라고 했어.”

“…….”

“리엄은, 하인트 공작을 죽이지 않는 걸 선택한 거야.”

***

“그래서 하인트 공작을 마음에 담았나 봐.”

아니카의 말을 들은 리엄은 잠든 루시펠라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작전을 결행하기 전, 그녀는 아니카에 의해 약을 먹고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그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게 하인트 공작과 그런 관계가 된 이유라고?”

“그래.”

리엄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더니 루시펠라에게 다가가 멍든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차라리 되살아나지 말지.”

“…….”

“영원한 우리의 별이라고 생각하게 해주지.”

리엄의 말에 아니카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리엄, 단장은 변한 게 아니야.”

“…….”

“우리 단장, 아니, 에스텔은 혼자 진실을 발견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 거야. 과거에 갇힌 우리와는 달라.”

“…….”

“그냥, 두 번째 삶을 살아가기로 한 거야.”

그 말을 들은 리엄은 루시펠라의 손을 잡았다. 이전 에스텔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곱고 보드라운 감촉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니카는 그것을 바라보며 서글픔에 입술을 깨물었다. 리엄은 다른 이들과 다르게 에스텔에게 각별했다.

얼샤가 멸망하기 전, 이들은 꽤나 사이좋은 동료였다.

단장과 단원이라는 위계질서가 성립하지 않는, 친구 같은 존재.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아니, 이유는 알고 있다. 이유를 알고 있음에도 왠지 따지고 싶었다.

아니카는 그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그를 지켜보았다.

한참 후, 그가 그녀의 손을 놓고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할 거야?”

“죽여야지.”

리엄의 단호한 대답에 아니카는 씁쓸한 표정으로 루시펠라를 보았다.

미안, 단장. 아무래도 리엄은 마음을 바꿀 생각이 들지 않나 봐.

그녀는 앞으로 일어날 비극을 생각하며 고통스럽게 눈을 감았다.

“단, 마음에 안 들면.”

“뭐?”

아니카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리엄의 설명을 들은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은 결국 살려준다는 말이 아닌가.

***

“사실 처음부터 죽이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어. 약은 두 개가 준비되어 있었거든.”

“그럼 이 약은…….”

“약 두 시간 정도 좀 악몽을 꾸게 하는 약이야. 몸이 차가워지고 피를 토하는 건, 음, 사실 리엄이 설명해 줬는데 잊어버렸어. 제더카이어 하인트가 어떤 꿈을 꿀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 괴로움은 죽음에 비해 가벼운 거지. 그 정도는 복수는 허락해 줄 거지?”

죽는 게 아니라 악몽이라니. 루시펠라는 제드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제드의 얼굴은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죽지 않았던 거구나. 그녀의 두 눈에서 다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리엄은 제더카이어 하인트가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다른 약을 먹여 죽게 할 생각이었어.”

“…….”

“그렇게 증오스러우면서도 마음에 안 들진 않았나 봐.”

루시펠라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그런 거야? 너흰 제드를 죽일 거라고 했잖아.”

“왜, 이젠 안 죽이니까 이상해?”

“하지만 이해가 안 가서 그래. 리엄은 제드를 미워하잖아. 이 녀석이 우리 기사단원들을 죽인 건 변함없어. 그래서 이런 짓까지 벌인 거 아니야? 한데 대체 왜…….”

“에스텔. 언제나 넌 단순하구나.”

“내가, 단순해?”

“언제나 누가 미워할 만해서 평생 미워하는 게 아니잖아. 그럼 단장은 대체 왜 이 남자를 사랑해 버린 건데?”

“…….”

“리엄도 마찬가지야. 미워할 만한 이유가 있어 계속 쭉 미워하는 감정만 가질 정도로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루시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카가 하는 말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단순한 한 가지 감정으로 살아가기엔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다.

그녀가 칼리드를 미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깝게 여기듯, 그녀가 제드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가졌듯. 리엄도, 아니카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우린 널 사랑해, 에스텔.”

그 말에 루시펠라의 두 눈을 크게 떴다. 아니카가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도 네가 정말 미워 죽겠어. 그렇지만 단장이 두 번째 삶에서 우릴 버리면서까지 선택한 행복을 망칠 수는 없잖아? 그건 사랑하는 게 아니니까.”

“아니카.”

루시펠라는 눈물을 흘렸다.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냥, 우리가 충성을 바칠 나라가 잘못되었던 것뿐이야. 우리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 그걸 인정하는 게 먼저였는데, 첫 단추부터 ‘복수’라니. 그것부터 잘못되었던 거야.”

“…….”

“우리도 이제 단장처럼 미래로 나아가야지.”

어째서인지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무어라고 할 말을 찾지 못하자, 아니카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에스텔, 행복하길 바라.”

루시펠라는 그에 다시 한 번 울컥했다.

그렇게 훌쩍이던 루시펠라는 겨우 울음기를 억누르면서 말했다.

“그러면 지금 리엄은 뭘 하고 있는 거야?”

만약, 작별 인사를 하려고 했다면 이곳에서 하는 게 옳았다. 그 질문에 아니카의 얼굴이 흐려졌다. 루시펠라는 불길한 예감에 얼굴을 굳혔다.

“설마, 죽으려는 건 아니지? 새로운 삶을 찾겠다고 했잖아!”

그녀가 소리쳤다. 아니카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려는 거 아니야.”

“아니카!”

“그냥, 그전에 매듭을 지으려는 거야.”

“무슨 매듭을 말하는 건데?”

아니카는 곤란한 듯했다.

“곧 끝날 거야.”

“아니카, 제발, 마지막까지 내게 숨기지 마. 어서 말해줘!”

그녀의 말에 아니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칼리드 루이르크와 매듭을 지어야지.”

“뭐?”

“사실 리엄은 제더카이어 하인트뿐만이 아니라 칼리드 루이르크도 노렸어.”

“…….”

“이자가 우리 기사단을 죽였던 게 적국의 기사로서 어찌할 수 없었던 거라면, 칼리드 루이르크는 ‘선택’한 거니까. 선택으로 단장을 죽이고, 그 녀석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니까.”

아니카가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두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단장을 죽이고, 모든 이를 죽여서 제국에 공작위를 받고 살아남은 배반자는 피의 복수를 받아야 마땅하지.”

“…….”

“단장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카가 물었다. 루시펠라는 그 말을 듣고 혼란스러웠다.

리엄이 칼리드를 노리고 있다. 당연히 발데르와 오이겐도 마찬가지였다.

“칼리드 루이르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죽을 거야.”

리엄이 죽이려던 건 결국 제더카이어 하인트가 아니었다. 칼리드 루이르크였다.

***

발데르와 리엄은 방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칼리드를 바라보았다.

대신관이 신관과 신도들을 데리고 예배를 올리는 대기도실. 새하얀 방 안에는 성화가 가득 차 있었다.

리엄이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아니카의 활 솜씨는 여전했지? 네게 편지를 정확히 날렸잖아.”

“…….”

“아니, 내가 지나치게 흥분했나 보군. 먼저 인사를 해야 했는데. 공작 각하께 너무 무례했어. 오랜만이야, 칼리드 가브라인. 아니, 이제 칼리드 루이르크인가?”

리엄의 인사를 들은 칼리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오랜만이야, 내 동지들.”

그 ‘동지’라는 말에 발데르가 욕설을 내뱉으며 뛰쳐나가려고 했지만 리엄이 어깨를 잡으며 만류했다. 칼리드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어디 있지?”

칼리드의 말에 발데르가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누구 말하는 거야?”

“…….”

“네가 그 사랑해 마지않는다는 아이딘 백작 영애? 이런, 소문이 사실인가 본데.”

“답을 알면서도 말을 돌리는군. 우리의 별, 이슈타르 말이야.”

칼리드의 말에 리엄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미소 지었다.

“잘도 이슈타르라고 말하는군. 네가 죽여놓고서 우리가 다시 그녀를 죽인다니 그건 무서웠나 보지?”

“너희가 그녀를 죽이진 않을 거 알고 있어.”

칼리드의 어조는 자신만만했다. 리엄이 피식 웃더니 일부러 고개를 갸웃하며 조롱하듯 말했다.

“그렇다면 칼리드, 대체 이곳에 왜 혼자 온 거야?”

“…….”

“우리가 에스텔을 죽일 수 없다는 걸 알았다며. 그럼 얌전히 하인트 공작을 죽이는 걸 기다리고 있지, 왜 이곳에 온 건데?”

“…….”

“하인트 공작을 따라 죽겠다는 에스텔의 마음은 믿었던 거 아니야?”

정곡을 찔린 듯 칼리드가 어둡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발데르가 그것을 보며 피식 웃었다.

“리엄이 그렇게 보내자고 했을 때 설마 했지만 정말 올 줄은 몰랐네.”

―루시펠라 아이딘은 연인을 따라 목숨을 끊으려고 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를 배신한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려 한다. 동지여, 그대 역시 그 죽음을 같이 관람할 텐가?

이것이 칼리드에게 보낸 이들의 메시지였다. 당연히 제드를 죽였다는 말은 거짓이다.

발데르는 이 쪽지를 보고 칼리드가 이곳에 온다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리엄은 아니카를 통해 화살로 그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네가 시찰 때문에 얼샤 가까이 왔다는 걸 들어 알고 있었어. 그래서 이 일을 벌이면 너도 분명히 올 거라 생각했지. 왜냐면 너는 분명 단장의 비밀을 알고 있었을 테니까.”

“…….”

“지금 생각해 보면 에스텔이 죽기 전에 하인트 공작에 대해 이야기했던 걸 넌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지. 다른 놈은 몰라도 나는 알았어. 에스텔이 하인트 공작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싫어했잖아.”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에스텔은 제더카이어 하인트를 타도해야 한다며 언제나 외치고 다녔다. 리엄은 그때마다 또 시작이다라고 생각하며 지겨워했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듣는 칼리드의 눈빛이 이따금 서늘하게 가라앉는 것을 보며 기이함을 느꼈다.

“사실 그때 에스텔이 그놈에게 끌리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

“…….”

“그리고 지금도, 에스텔이 사랑하는 하인트 공작을 따라 죽는 건 용납할 수 없었던 거지? 그건 믿었던 거잖아. 이렇게 못 참고 올 만큼 말이야.”

“에스텔이, 그를 사랑한다고?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건데?”

칼리드는 그것을 코웃음 치며 비웃었다. 그러나 리엄은 칼리드의 눈이 분노로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솔직히 말해. 미친 소리라 여기는 게 아니잖아?”

“이제 그만 닥치고 그녀를 내놓는 게 어떨까?”

결국 평정을 잃은 칼리드의 말에 발데르가 능글맞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옛 동지에게 시간 하나 여유롭게 내주지 못하다니 서운하네. 그렇지, 리엄?”

“그러게 말이야.”

“……장난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럼 칼리드, 너는 우리가 에스텔을 죽일 걸 처음부터 믿지 않았으며 에스텔이 그놈을 따라 죽을 걸 알고 있다는 소리잖아? 만약 네가 단장을 구해내도 단장은 죽을 텐데, 그 점에 대해선 생각해 놨어?”

“그녀가, 죽는다고?”

“네가 단장을 구해내나 구해내지 않나 단장은 똑같이 죽을 거야. ‘사랑하는 하인트 공작’이 죽었으니까, 단장이 살고 싶을 리가 없잖아?”

“에스텔이 그 새끼를 사랑할 리가 없잖아!”

“사랑한다고 자기 입으로 직접 말했어. 얼샤에 대한 복수도 하지 말라고 우릴 다그쳤지. 아직도 그놈을 부여잡고 울고 있을 거야.”

그 말에 칼리드의 얼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하인트 공작’이라는 말이 충격인 것 같았다. 그는 이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그녀가 죽으려 하든 죽으려 하지 않든 상관없어! 그럴 생각이 들지 않게 하면 돼!”

“…….”

“너흰 내가, 에스텔을 그렇게 멋대로 하게 둘 거라 생각해?”

그의 얼굴에 삐뚜름한 미소가 서렸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를 악물고 분노한 어조로 소리쳤다.

“두 번 다시 그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 거야! 검을 들어 자길 찌르려고 하면 그 손을 묶어버리고, 뛰어내리려고 하면 그 두 다리를 묶어둘 거야!”

어둡게 가라앉은 자안을 보고 발데르와 리엄이 시선을 교환했다.

“만약, 그녀가 답답해한다면 에스텔만을 위한 새장을 또 만들면 돼! 내가 할 수 있는 최고로 좋은 것만 그녀에게 다시 보여줄 거야!”

“…….”

“감히 날 두고 죽는다고? 날 떠난다고? 자살은 생각하지도 못하게 할 거야. 그녀가 부활한 그 기적을 허망하게 떠나보낼 수는 없으니까!”

“…….”

“에스텔은, 평생 내게서 벗어날 수 없어!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테니까!”

그가 악을 쓰듯 외쳤다. 그것을 본 리엄과 발데르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저 미친 새끼.”

리엄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저런 광기를 품은 채 에스텔 옆에 평범하게 붙어 있을 수 있었을까.

칼리드가 음습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새장을 또’라고? 그렇다면 그는 생전 에스텔을 새장에 가둬두고 있었단 말인가?

원래부터 광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에스텔을 죽이고 광기가 더 심화된 것인가. 알 수 없었다.

“리엄, 발데르, 너흰 이미 내가 미쳤다는 걸 알고 있었지 않아?”

그는 그 아름다운 얼굴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두 번 다시 에스텔을 너희와 공유하지 않을 거야.”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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