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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법-117화 (117/173)

#117화 그리움에 미치다

2018.04.12.

루시펠라는 눈을 떴다. 폭신한 침대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녀는 멍하게 눈을 깜빡이며 생각에 잠겼다.

분명 자신은 지하로 추정되는 방에 감금된 것 같았는데…… 이 부드러움은 뭐지? 설마, 제드가 벌써 구해준 건가?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자신의 묶인 손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걱정한 상황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 깨어났다.”

아니카가 루시펠라를 보며 말했다. 그 어조엔 다행이라는 기색이 서려 있었다.

또렷하게 보이는 그 얼굴에 루시펠라가 아니카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아직도 이 사람이 자신의 앞에 있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어? 정신을 못 차리는 건가? 그러면 안 되는데.”

그녀가 다가와 루시펠라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약 기운 때문에 생긴 어지럼증에 이마에 손을 대봤자 뭐 하게,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루시펠라는 그것을 삼켰다. 아니카의 손길이 기분 좋았기 때문이다.

“아가씨, 괜찮아?”

루시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동안인지는 모르지만, 잠을 자고 일어나니 그래도 개운했다. 어지러움도 덜한 것 같았다.

“여기 물.”

이번에는 미리 준비되어 있는지 아니카가 물을 내밀었다.

“고마워.”

루시펠라가 벌컥거리며 물을 마셨다. 레이디치고는 편하게 물을 마시는 루시펠라를 보고 아니카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아니, 아무것도.”

자고 일어나 잠긴 목소리가 어느새 맑아졌다.

루시펠라는 자신이 앉은 침대를 보았다. 납치된 인질을 간호라도 했던 것일까. 여전히 사람 좋은 녀석들이다. 루시펠라는 속으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배고파?”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겠어.”

“빵을 가져올게.”

“됐어, 어차피 화장실 가야 하잖아. 갈 때마다 따라올 텐데 그건 싫어.”

그 말에 아니카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한 채 그녀를 보고 있었다.

“아가씨, 우리 언제 본 적 있어?”

“본 적이 있냐니?”

“아니,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인지.”

그녀는 자신의 땋은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아니카의 버릇이었다.

루시펠라는 자신도 모르게 그 기다란 머리카락을 잡았다. 에스텔은 아니카의 긴 머리가 신기해서 자주 어루만지고는 했다.

그새 머리가 더 많이 길어졌네.

길어진 그녀의 머리카락에 갑자기 루시펠라의 두 눈에 울컥하고 눈물이 맺혔다.

갑작스럽게 머리를 잡자 아니카가 뭐라고 하려고 했지만 루시펠라의 표정을 보고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 뒀다.

“그거 잡아당기면 가만 안 둬.”

루시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참 동안 그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손끝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니 실감이 났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살짝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복도를 보고 그녀는 이곳이 저택임을 알았다.

들어오는 사람은 오이겐이었다.

루시펠라는 반가움에 비명을 지를 뻔했다. 다소 어렸던 녀석은 세월이 지나서인지 제법 얼굴선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분명 어린 녀석이었는데, 벌써 이렇게 어른이 되다니. 어쩐지 이 녀석의 성장이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깨어났어요?”

“…….”

그의 정중한 말투는 변하지 않았다. 루시펠라가 반가움을 애써 숨기며 고개를 끄덕이자 오이겐이 미소를 지었다. 그녀를 안심시켜 주려는 것인지 참 친근한 미소였다.

“뭐야, 오이겐. 이 아가씨한테 반하기라도 한 거야?”

아니카의 물음에 오이겐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냥. 깨어났으니 다행이잖아. 이틀을 잠들어 있었는데.”

“평소엔 아무한테도 그렇게 관심 없던 인간이, 참 사람도 좋아.”

아니카가 피식 웃었다.

오이겐이 아니카의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루시펠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머리카락을 만지는 그녀를 보았다.

“뭐야, 왜 머리카락을 줬어?”

“이 아가씨가 만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네 머리카락은 무슨 밧줄이라도 되나 봐? 단장한테도 그렇고 말이야.”

“그러게.”

단장. 루시펠라는 오이겐의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단장’이라는 말을 듣고 놀랐다. 꼭 그의 대화는 에스텔이라는 인물이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또 자신을 앞에 두고 그들끼리 대화를 할까 봐 루시펠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아니카와 오이겐이 동시에 그녀를 보았다.

“어떻게 되냐니?”

“나를 가지고 원하는 걸 요구할 생각으로 납치한 거 아니었어?”

“그거야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니 우리가 진짜 나쁜 사람처럼 느껴지네.”

아니카의 말에 오이겐이 고개를 끄덕였다.

떳떳한 짓을 한 건 아니잖아.

루시펠라가 두 눈을 가늘게 좁히며 그들을 보았다.

아니카가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발데르, 그러니까 영애에게 처음 인사했던 그 사람이 안심시켜 줬다면서? 아가씨는 별로 신경 쓸 거 없어. 그냥 여기서 밥 잘 먹고 반항하지 않으면 다치게 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해도 돼.”

“그럴 생각이었어.”

루시펠라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아니카가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마치 동의를 구하는 듯 오이겐을 바라보았다. 오이겐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때, 루시펠라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날 책임자와 만나게 해줄 수 있어?”

“책임자라니?”

“이야기할 게 있어.”

“이야기를 하려면 나에게 말해. 우리 모두가 책임자야.”

아니카가 방금까지 친근하게 지었던 표정을 굳히며 단호하게 말했다.

루시펠라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긴, 무작정 우두머리를 만나게 해달라는 요구도 이상하긴 하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니카의 태도에 루시펠라는 서운함을 느꼈다.

“아무리 우리가 이렇게 배려해도 아가씨는 납치당한 입장이야. 이런 걸 요구하면 안 되지 않을까? 충고하는데, 본인의 입장을 자각해.”

“그렇게 이야기할 건 없잖아. 뭘 이야기 하고 싶은 건데요, 아가씨?”

오이겐이 부드럽게 물었다. 그러나 이미 루시펠라의 마음은 상한 지 오래였다. 납치해 놓고 입장 자각이라니, 너무 뻔뻔한 거 아닌가.

“이야기하고 싶은 거야 많지.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를 납치한 그 옹졸함에 대해서 시작해 봐야 할 것 같은데.”

“할 말 없음.”

루시펠라가 날카롭게 말하자 아니카가 의자에 기대면서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자 오이겐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다음은요?”

“대체 날 가지고 뭐 할 건가. 그거라도 확실히 알아둬야 내가 궁금함이 가실 것 같아. 내 신변이 무사하다는 건 알겠는데, 온갖 나쁜 생각을 하고 틀어박혀 있고 싶지는 않아.”

“그건 넘어가자, 아가씨도 별로 기분 좋은 이야긴 아닐 것 같은데.”

“어차피 내가 살아 나가면 거래 조건이 뭔지 알 거잖아? 그런 거라면 미리 들었으면 좋겠어. 난 당사자잖아.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래, 그건 동료들과 이야기해 보고 말해줄게.”

그걸 본 오이겐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리고 또 뭘 물어보고 싶어요?”

오이겐의 말에 침대에서 일어난 루시펠라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납치범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오는 태도 때문인지 오이겐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왜 안 나왔는지 이야기해 주는 거?”

“‘그때’라니?”

“내가 편지를 보내고 그 도시에서 얼마나 기다렸는데. 아이릭을 찾느라고 꽤 힘들었다고.”

루시펠라는 이들에게 굳이 질질 끌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웬만하면 그 책임자로 추정되는 리엄을 만나고 싶었지만, 못 만난다면 어쩌겠는가. 여기서 밝혀야지.

‘아이릭’이라는 말에 그들의 표정이 굳었다.

“편지의 내용 기억해? ‘동지들이여, 별은 헤아릴 수 없다’라는 문구 말이야.”

“……!”

“왜, 그 문구를 해석이라도 해줘?”

아니카와 오이겐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그들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자 루시펠라가 입을 열었다.

“헤아릴 수 없는 별은 헤아릴 수 없는 전사의 영혼이다. 별의 이름을 받은 기사들이여, 검을 들어 싸우라. 우리도 그 별이 될 것이니.”

시토라 기사단의 신념을 입에 담은 루시펠라는 아니카와 오이겐을 바라보았다.

아니카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품속에서 단도를 꺼내 들었다.

오이겐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입을 꾹 다물고 루시펠라를 관찰했다.

“너, 너, 정체가 뭐야! 어떻게 우리를……!”

“이제 그 책임자를 부를 이유가 생긴 거지?”

그녀가 미소 지었다.

“그러니 당장 리엄 히르카와 발데르 하우젠을 불러와.”

***

책상에 앉아 있는 그의 어깨에 하얀 손이 얹어졌다. 제드는 미소 지으며 어깨에 올려진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보드라운 손. 제드는 그 손을 계속 어루만졌다.

“뭘 그렇게 생각해?”

낭랑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제드는 미소 지으며 글쎄, 라고 중얼거렸다.

그의 어깨에 그녀의 얼굴이 얹어지는 느낌이 들더니 어느새 그녀는 제드의 목을 끌어안고 있었다. 귀 뒤에서 바로 들리는 그녀의 숨결과 그녀 특유의 향기가 코끝에 느껴졌다.

“피곤하면 좀 자는 게 어때?”

“잘 수가 없어.”

“에이, 아무리 기사라도 체력에 한계가 있는 법이야.”

다정한 염려의 말, 제드는 눈을 깜빡이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잠을 잘 수 없어.”

“왜?”

“그러면 네가 사라질 테니까.”

“내가 왜 사라져?”

그녀의 밝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설마?

제드가 그녀의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그가 바랐던 환상은 깨지고 제드는 혼자 책상에 앉아 있었다. 불빛 하나 켜지지 않은 방 안에 들어오는 것은 푸르스름한 달빛뿐이었다.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온 바람에 목덜미가 서늘했다.

제드는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그녀는 없다.

그녀가 어떻게 웃는지, 어떤 목소리로 어떻게 제드에게 말을 걸었는지. 그녀의 체향, 온기, 그 부드러움 그 모든 게 너무나 선명히 기억에 남았다. 이렇게 환상 속에 빠져 조용히 미쳐 갈 만큼.

벌써 나흘이 흘렀다. 그녀에 대한 소식은 없다. 수색 역시 불가능했다. 키칼 공작이 나름 성의를 보이는 것 같으나,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왜 하필 그녀지? 왜 하필 그녀가 사라졌어야 했던 것일까? 다른 사람일 수도 있지 않았나? 왜 그 녀석들은 그 여리고 약한 사람을 데려가 버렸나? 대체 왜!

“이 빌어먹을 새끼들!”

그는 책상을 쾅 내려쳤다. 그 바람에 촛대와 책상에 있는 물건들이 쓰러졌다. 날카로운 쇠붙이가 내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제드는 지금 이 순간 그놈들을 죽여 버리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모두 다 죽여 버릴 것이다. 모두 다,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입니까!”

버나드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는 제드의 책상에 있는 것들이 떨어진 것을 알고, 알 만하다는 표정을 짓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각하.”

“아직도 아무 연락이 없나?”

제드의 목소리는 그 끝이 갈라져 있었다. 버나드는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납치된 후 제드는 거의 눈을 붙이지 않았다. 식사 역시 거의 하지 않았다. 그가 육체가 튼튼한 기사였기에 망정이지 일반인이었다면 벌써 쓰러졌을 것이다.

“각하, 잠시라도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내가 쉴 수 있지?!”

그가 버럭 소리를 치자 버나드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흉포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먼 허공을 노려보며 말했다.

“왜 인질이라는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는 줄 알겠군.”

그가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인질을 잡아 무언가를 요구하는 행위에 대해 별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만약 들어줄 수 있는 요구라면 들어주고 인질을 찾는 게 제일이지만, 만약 들어줄 수 없는 요구라면 인질을 포기하면 그만이었다.

이 인질을 잡는다는 행위는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행위였다. 분하게도, 제드는 인질이 잡혀 있다는 사실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에 대한 마음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미쳐 버릴 것 같다.

아니, 이미 미쳐 가고 있었다.

만약 이미 그녀가 죽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드의 귓가에 루시펠라의 웃음소리가 점점 사라져 갔다. 차라리 미치면 영원히 기억할 수 있을까?

그는 퀭한 눈으로 조용히 창 너머 달을 바라보았다.

***

루시펠라는 조용히 침대에 걸터앉은 채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호의적이었던 시선이 날카로운 경계로 바뀌어 있었다.

만약, 여기서 이들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는 분노한 이들에 의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래, 그 서신을 보낸 이가 아가씨라고? 설명을 해보도록 해.”

리엄이 다짜고짜 그녀를 보며 날카롭게 물었다.

“말 그대로야. 내가 아이릭을 찾았고, 그 서신을 보내달라고 했어.”

“왜지?”

“그쪽을 만나기 위해서.”

“아이릭을 만난 게 아가씨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아이릭은 아가씨의 얼굴을 본 적이 없는데 말이야.”

“일부러 얀스가르의 장신구를 대가로 지불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루시펠라의 물음에 리엄이 입을 다물었다. 그의 두 눈에 짙은 경계와 적의가 서렸다.

“내가 알기로 아가씨는 얀스가르에 처박혀 한 번도 바깥으로 나온 적이 없었어. 그런 아가씨가 우리 기사단과 무슨 접점이 있을까? 이 점은 어떻게 설명할 거지?”

리엄의 물음에 루시펠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 점은 어떻게 말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리엄은 그것을 보고 수상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가씨가 아이릭에 대한 걸 알았다는 것 자체가 매우 놀랍긴 하지만 아가씨에 대해서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아. 아가씨가 우연히 얀스가르의 사람이 이야기한 것을 엿듣고 장난질을 할 수도 있잖아? 상황이 상황이니 말이야.”

“잠깐, 리엄.”

발데르가 만류를 하듯 리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는 아까부터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루시펠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 그 주점에서 저 아가씨를 본 적 있어.”

“뭐?”

“거기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어.”

그에 리엄이 얼굴을 찌푸리더니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발데르, 자꾸 우리에게 숨기는 게 많아지는 것 같은데. 이 아가씨를 알고 있었고, 그곳에서 봤으면서 내게 말을 하지 않았다?”

“……몇 번을 말했지만 이 아가씰 납치하는 게 내키지 않아서였어. 그러나 판단을 수정해야겠군.”

발데르는 배신감을 느낀다는 표정으로 루시펠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대로 속아 넘어갔어. 마차 안에서 보였던 순진한 모습도 다 거짓이었다 이거지?”

발데르의 굳은 얼굴에 점점 적의가 서리기 시작했다.

“아가씨가 납득할 만한 대답을 해주는 게 좋을 거야. 어떻게 된 일인지, 편지로 말했던 마지막 동료가 어디 있는지 말이야. 만약 우리가 납득할 수 없는 장난질을 쳤다면, 그땐 기대해도 좋아.”

“야, 그렇게 협박하지 마. 보기 안 좋아.”

아니카가 그를 만류했지만 발데르에게서는 여전히 흉흉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에 사람들이 루시펠라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할까? 겁에 질려 떠는 모습으로 사실은 거짓말이었어요, 라고 말할까. 아니면 과장된 표정으로 거짓을 말할까?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기대감과 적대가 그녀를 향했다.

“하, 내가 그 개고생을 했는데, 알아도 아는 척을 안 했다고?”

그러나 돌아온 건 레이디답지 않은 거친 말이었다.

그에 사람들이 모두 눈을 크게 떴다. 특히나 발데르가 더욱 그랬다.

루시펠라는 짜증이 난 상황이었다. 그렇게 머리를 쓰고 많은 돈을 들여서 저놈들을 찾으려고 했는데, 저 새끼가 모른 척해서 그게 홀랑 실패로 돌아갔다는 뜻 아닌가?

“내가 거기에 돈을 얼마나 들였는데! 내 시간! 내 머리!”

그녀는 진심으로 억울해 보였다.

“잠깐, 아가씨. 지금 자신의 입장을 자각 못 하나 본데.”

아니카가 그녀를 만류하며 눈짓했다. 리엄과 발데르의 눈빛에 스산함이 돌고 있었다.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달으려고 할 때였다.

“아니카, 잠깐 가만히 있어봐.”

“……내 이름을 알고 있어?”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루시펠라의 앞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한 번도 없었다.

그때, 루시펠라가 발데르를 노려보며 말했다.

“예전부터 그랬지. 이상한 데서 소심한 놈이라 내가 공들여서 만들어놓은 걸 무너뜨리고는 했어. 너, 아직도 안 변했구나?”

“너……!”

발데르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니카가 만류했지만 발데르가 거칠게 그 팔을 뿌리쳤다.

그 힘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아니카의 몸이 휘청인 것을 오이겐이 잡아주었다.

그걸 본 루시펠라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 아니카한테 고백까지 해놓고선 그래도 되는 거냐? 네가 그래서 차인 거야, 이 멍청아.”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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