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귀엽지 않아
2018.04.02.
“이제 언제 다시 아가씨의 머리를 빗겨줄 수 있을지.”
쟈넷은 아침부터 눈물 바람이었다. 그녀는 루시펠라의 머리카락을 정성스럽게 빗질하며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루시펠라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주름이 자글한 그녀의 얼굴에는 슬픔이 녹아 있었다.
오늘은 루시펠라가 떠나는 날이었다.
처음에 올 때는 이곳에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그저 지나갈 장소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에스텔과 루시펠라 사이에 숨겨진 비밀을 알자 이곳은 그녀에게도 소중한 곳이 되었다. 이제 그녀는 어머니의 고향과 작별해야 했다.
그러자 문득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쟈넷.”
“네, 아가씨.”
“그 젤다라는 사람도 딸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잖아.”
머리를 빗던 쟈넷의 손이 멈칫했다.
“네.”
“만약, 그 딸이 진짜 있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이것은 그냥 가정이었다. 에스텔이 만약 살아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가정.
쟈넷은 루시펠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의아해하는 것 같다가 이내 아가씨의 관심이라고 생각하는 듯 대답했다.
“글쎄요, 아마 그리 잘 살지는 못했을 거예요. 젤다가 살던 곳이 그다지 질이 좋은 거리는 아니었거든요.”
“그렇지?”
“만약 백작님께서 조금 더 이 땅을 매입하고, 루아나 아가씨가 좀 더 오래 살고, 젤다의 딸이 정말 있었다면, 그 아이는 나중에라도 레이디로 살았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래.”
레이디라니, 루시펠라가 아닌 에스텔도 레이디로 살 기회가 있었다니, 참 재미있었다.
“분명 아가씨를 닮아 사랑스러우셨겠지요.”
내가? 루시펠라를 닮아 사랑스러워?
“사랑스럽다니, 절대…….”
“네?”
“아니야, 아무것도.”
루시펠라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괜히 물어봤다. 하긴, 사람들은 보통 여자아이를 떠올리면 에스텔 같은 사람이 아니라 루시펠라 같은 이를 떠올렸다. 자신 같은 사람은 상상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사람일까.
그때 젤다가 웃으며 말했다.
“어쩌면 아가씨와 함께 지내게 되었을 수도 있었겠네요.”
“그런가?”
루시펠라와 에스텔.
이 둘이 다정하게 지낼 수 있었을까? 루시펠라는 그 모습을 상상했다.
드레스를 입은 에스텔과 어린 루시펠라가 사촌으로 만나서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
루시펠라의 예전 성격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은 루시펠라를 싫어했을 것 같은데. 건방지고 멍청한 레이디라고 분명 욕했을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에스텔이 과연 이 남작가에서 레이디로 사는 삶을 선택했을까?
아니, 절대 그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만약 얼샤가 여전히 건재하고, 그녀의 태생이 밝혀졌어도 루시펠라는 레이디의 삶이 아닌 기사의 삶을 택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삶은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니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루아나 아가씨도, 젤다도 심지가 굳은 데가 있으니, 어쩌면 그 아이도 그 아이 나름의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지요.”
루시펠라는 눈을 크게 뜬 채 거울 너머 쟈넷을 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가슴이 따스해졌다.
그녀는 에스텔의 존재도 모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에스텔의 삶과 선택이 보통 사람들과 다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주고 있었다.
“그 젤다라는 사람도 심지가 굳었어?”
“그럼요.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부터 루아나 아가씨처럼 그 아이도 고집쟁이였는데 그땐 왜 그걸 몰랐을까요.”
“그렇구나.”
“다들 성격이 비슷한 것 같아요. 아가씨도 루아나 아가씨와 성격이 똑같아요.”
“그래?”
루아나를 닮았다는 것은, 그녀의 어머니와 성격이 닮았다는 말과 똑같았다. 쟈넷이 그렇게 본다면 자신은 어머니와 성격이 똑같은 거겠지. 별로 말은 섞지 않았지만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자, 아가씨. 다 되었어요.”
“응.”
루시펠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거울에 비춰보았다.
정성 들여 머리를 매만진 듯, 땋아서 반 묶음으로 한 머리에는 예쁜 비단 리본이 매여 있었다.
“엄청 마음에 들어.”
이것은 쟈넷이 보여주는 마음이었다. 딸과 같은 아가씨를 위해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은 머리를 예쁘게 만들어주는 것 이외에는 없었을 것이다.
루시펠라는 확신할 수 있었다.
만약 에스텔이 그녀를 만났더라도 쟈넷은 루아나를 대하듯, 아니, 그녀보다 더 에스텔을 살뜰하게 아꼈을지도 모른다.
“이곳에 오길 잘했어.”
루시펠라가 진심으로 말하자 쟈넷의 주름진 눈가에 따스한 미소가 서렸다.
“정말 다행이네요. 아가씨가 이곳에 와주셔서 저 역시 정말 기뻤답니다.”
에스텔이 평생 알지 못했던 것을 루시펠라가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이곳이 분명 그리워질 거야.”
루시펠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이었다. 루시펠라는 아이딘 백작령보다 이곳을 더 그리워할 것이었다.
“얀스가르에서도 건강하셔야 해요.”
“응.”
“예전 호수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제 그런 짓 안 해.”
“그리고 잘 드셔야 해요.”
“보면 알잖아. 나 엄청 잘 먹어.”
“하녀들에게 너무 격의 없이 행동하시면 안 돼요. 물론 다 좋은 아이들이지만 너무 풀어주면 아가씨를 우습게 볼 거예요.”
“응, 알았어, 그렇게 할게.”
이게 가족의 걱정인 걸까? 루시펠라는 자신의 생활에 간섭하는 그녀의 잔소리가 싫지 않았다.
“그리고 잠은 제대로 주무셔야 해요.”
“응, 잘 잘게.”
그렇게 대답하다가 루시펠라는 눈을 크게 뜬 채로 쟈넷을 보았다.
쟈넷은 엄한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방금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은 루시펠라의 두 뺨이 붉게 물들었다.
“사랑하면 응당 당연한 일이고 창피한 일도 아니에요. 그래도 밥도 못 드시고 하루 종일 주무시는 건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겁니다. 몸이 점점 말라가시잖아요.”
“어…….”
요새 루시펠라는 거의 아침을 못 먹고 정오를 넘어서까지 늘어지게 자긴 했다. 역시 그런 생활은 잘못된 거겠지. 루시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 각하께 감히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공작 각하와 아가씨의 사이를 봐서 제가 참는 거예요.”
콧김을 뿜으며 허리에 손을 얹은 쟈넷은 어쩐지 그녀에게 꾸지람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또…….”
“또?”
또 무엇을 꾸중하려는 걸까. 루시펠라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였다.
“공작 각하께서 정말 아가씨를 사랑해 주시는 것 같아 그건 다행이네요.”
“…….”
루시펠라는 고개를 들어 쟈넷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눈엔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며칠간 봐왔습니다. 항상 아가씨를 보고 계시더군요.”
“…….”
“저는 참으로 안심했답니다. 루아나 아가씨도, 아가씨도 이렇게나 큰 사랑을 받고 계시니까요.”
“…….”
“루아나 아가씨도 이 모습을 보시면 정말 기뻐하셨을 텐데, 그렇게 돌아가셔서는…….”
그녀가 눈물을 훔쳤다. 루시펠라는 문득 아이딘 백작을 떠올렸다.
루아나를 지극히 사랑해서, 그녀가 어린 시절 살던 도시까지 이렇게 사들였던 그 남자의 모습이.
그런 남자가 루시펠라에겐 왜 그렇게 대한 것일까. 루시펠라는 씁쓸함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곧 있으면 듣게 되겠지.
루시펠라는 머뭇거리다가 팔을 벌려 그녀를 껴안았다.
눈물을 훔치고 있던 쟈넷이 놀라는 듯하더니 그녀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이상하게도 잊어버렸던 포근함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나중에, 꼭 다시 올게.”
“그래요.”
“그러니까 쟈넷도 몸 건강히 잘 지냈으면 좋겠어.”
그들은 한참 동안 포옹하고 있었다.
출발하는 마차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루시펠라는 멀어지는 저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까부터 제드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루시.”
“응.”
루시펠라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쓸쓸함이 자리해 있었다.
“여기에 꽤나 정이 들었나 보군.”
“당연하지, 어머니의 도시니까.”
루시펠라의 말에 제드가 미소 지었다.
제드는 어쩐지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초반에 루시펠라는 이곳에 오는 것에 별로 감흥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역시 이전에 들었던 위화감은 기우였던 것 같다.
“나중에 다시 한 번 방문하도록 하지.”
“진짜?”
루시펠라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리고 결혼식 때 초대도 하고.”
“그건 생각도 못 했네. 그러자.”
루시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루시펠라의 시선이 다시 저택으로 향했다. 두 눈에 담긴 쓸쓸함에 제드는 무언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
“어서 오시오.”
두 팔 벌려 과장되게 환영하는 남자의 얼굴을 보며 루시펠라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해야만 했다. 혐오감을 억누르는 것은 상당히 힘들었다.
‘이 인간이 왜 아직도 살아 있지?’
국왕 밑에서 알랑거리던 귀족 중 한 명이 이놈이었다. 가장 악랄하고 질이 나쁜 놈이었다. 장점이 있다면 그래도 최후까지는 국왕 편에 붙어 있었다는 것 정도였다.
따라서 루시펠라는 지금 키칼 공작령은 그녀가 아는 공작 본인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 작위가 넘어갔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마지막까지 국왕파에 가담했던 그가 살아남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 있었던 걸 보면, 이놈도 얀스가르에 비밀 지원을 해주었던 놈 중 하나였나 보다.
그런 결론을 내리자 루시펠라는 더더욱 표정 관리가 힘들었다. 그녀는 당장 이 도시를 지나쳐 버리고 싶었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루시펠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제드와 악수를 하던 그가 별안간 루시펠라에게로 걸어왔다.
“만나서 반갑소, 아이딘 영애. 소문대로 정말 아름답군.”
으윽, 최악이다. 이놈은 심지어 여색도 밝혔다. 루시펠라는 자신을 훑어보는 시선에 혐오감을 느꼈다. 위아래로 훑어보는 게 노골적으로 희롱하는 듯 불쾌했다.
키칼 공작이 손을 내밀었다. 이미 제드와 한 번 악수를 한 손임에도 루시펠라는 그 손을 잡기 싫었다.
‘으으, 찝찝해.’
그녀는 그 마음을 억누르고 조심스럽게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공작이 손을 꽉 잡아왔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루시펠라의 손등을 슬쩍 쓸었다.
루시펠라는 하마터면 손을 뿌리칠 뻔했다. 이 손길은 뭐지? 그녀가 화를 내야 하나 고민할 때였다.
“내 약혼자는 지금 몸이 매우 피곤한 상태니 인사는 이쯤 해도 되겠소?”
제드가 루시펠라의 어깨를 잡고 그녀를 공작에게서 떼어냈다. 조금 무례하다시피 한 말이었지만, 루시펠라에겐 이 남자가 더 무례했다.
손을 잡으면 잡았지 왜 그렇게 매만져? 그녀는 키칼 공작의 눈빛에 소름 끼쳤다.
예전 에스텔은 저놈을 죽여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영지민을 대하는 태도, 특히 여자를 대하는 태도가 질이 너무나 나빴기 때문이다.
참고로 키칼 공작은 에스텔을 저런 눈빛으로 보다가 그녀가 경고차 키칼 공작의 기사를 대련이라는 명목으로 피떡이 되게 만들자 그런 눈빛을 거두었다.
그러나 지금 루시펠라가 되어 이 눈빛을 다시 보게 되다니. 심지어 그녀는 제드가 아니면 자신을 방어할 수단 자체가 없었다. 정말이지 짜증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제가 실례를 했소. 아름다운 레이디를 보면 시선을 빼앗겨서…….”
“얼샤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얀스가르식으로는 레이디들의 손을 잡는 건 예의가 아니오. 이 나라가 이제 얼샤가 아니라 얀스가르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군.”
제드의 말은 다소 날카롭고 서늘하게 들렸다.
“내가 결례를 한 것 같군. 명심하겠소.”
그렇게 대답하는 키칼 공작의 시선에는 미미한 불쾌함이 드러나 있었다.
제드의 두 눈이 키칼 공작을 바라보자 그는 화들짝 놀라 시선을 피했다. 그것을 본 루시펠라는 한심하다는 듯 키칼 공작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사람을 가려서 행동해야지.
그때, 제드가 루시펠라의 손을 잡아왔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제드의 시선에 루시펠라가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치밀어 올랐던 짜증은 가라앉은 지 오래였다.
루시펠라가 안내된 방은 지나치게 화려했다.
공작의 이 품위 없고 천박한 취향은 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전히 영지민을 쥐어짜서 생활하는 건가? 얀스가르의 황제는 이걸 두고 보고 있나? 왠지 모르게 답답해 혀를 찰 때였다.
“끔찍한 인간이군.”
제드가 말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목소리에 루시펠라가 눈을 크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 인간하고 별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아서 돌아왔어. 문이 열려 있더군. 앞으로 문단속은 잘 하도록 해.”
제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눈빛을 서늘하게 가라앉히며 말했다.
“감히 나를 앞에 두고 그런 짓을 하다니.”
제드는 루시펠라에게 다가와 자신의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손을 닦아주었다. 그것을 보고 루시펠라는 피식 웃었다.
“왜?”
“아니, 나도 더럽다고 느꼈거든. 똑같은 생각 했네.”
그녀의 말에 제드는 인상을 쓰는 와중에도 피식 웃었다.
“그리고 제드, 당신 손부터 닦아야지. 악수는 당신이 먼저 했잖아.”
그 지적에 제드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루시펠라가 손수건을 쥐고는 그의 손을 잡아들었다.
그는 물끄러미 루시펠라가 자신의 손을 닦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좀 짜증 나는군.”
“……?”
“눈 아프게 화려한 방도 그렇고 말이야.”
“맞아. 너무 화려해서 눈 아파.”
“그리고 그대를 바라보는 눈도 음험해서 짜증 나.”
“맞아, 내가 봐도 그 시선은 더러웠어.”
“아름다운 레이디를 보면 시선을 빼앗긴다고? 딱 봐도 레이디가 아니라 아름다운 여자만 보면 정신을 잃어버리는 놈인 것 같은데 말이야.”
“맞아, 내가 봐도 그래. 그렇다니까?”
루시펠라의 대꾸를 듣던 제드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짜증을 한결 누그러뜨린 표정으로 물었다.
“아까부터 그 대꾸는 뭐지?”
“그야 나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동의를 했을 뿐이야.”
그녀는 왜 제드가 짜증이 나 있는지 이해했다. 제드가 이 일을 문제 삼기엔 사안이 다소 약했다.
현재 얀스가르의 기사들과 함께하고 있지만 이곳은 엄연히 키칼 공작의 성이었고, 제드는 되도록 충돌을 피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결국 그는 이 상황을 시원스럽게 해결해 주지 못하는 미안함에 더 짜증이 난 것이었다.
“…….”
“나는 어린애가 아니라는 걸 말하지.”
제드의 못마땅한 표정에 루시펠라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웃기잖아. 겨우 악수 한 번에 눈빛 한 번 이상했다고 그렇게 화를 내다니.”
“루시, 그댄 그런 놈들을 몰라. 그건 아주 더러운 눈빛이었어.”
“아니야, 잘 알아.”
에스텔이 루시펠라로 변하면서 제일 체감했던 것은 사람의 시선이었다. 에스텔일 때 눈도 못 마주쳤던 남자들이 루시펠라에게는 종종 그런 시선을 던지고는 했다.
물론, 루시펠라는 그런 시선을 던지는 남자들의 눈을 똑바로 마주해 그들이 알아서 눈을 피하게 만들고는 했다.
“제드, 그거 알아?”
루시펠라의 물음에 제드가 뭐냐는 듯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진짜 화내는 거 귀여워. 짜증 내는 것도 귀엽고.”
“…….”
그녀의 말에 제드는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표정을 했다.
“진짜 까만 고양이 같아.”
“…….”
그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대체 내게 귀엽다니, 내가 그대에게 쓰지도 않는 표현을…….”
“미안, 기분 나빴어?”
루시펠라는 그럼에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제드는 지금 기분 나쁘다는 것을 드러내는 모습마저 루시펠라에게 귀여워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웃는 얼굴에 화를 낼 수도 없고, 화를 내면 또 그게 귀엽다고 여길 게 뻔하니 제드는 툴툴거리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러니저러니 해도 루시펠라는 웃는 모습이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루시펠라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여기서 내가 귀엽지 않다는 걸 보여줄까?”
“…….”
“그대의 남편은 고양이가 아니라는 걸 잘 알 텐데.”
그 말에 그녀의 웃음이 뚝 멈추었다. 그것을 본 제드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얀스가르에 돌아가면, 내가 왜 귀엽지 않은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최선을 다해 설명해 주도록 하지.”
“아니, 그냥 귀엽다고 말한 것뿐인데, 그게…….”
“나는 그대에게 귀엽고 싶지 않아. 정말 지금 증명하길 원해?”
루시펠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제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얀스가르에서, 기대해도 좋아.”
제드가 속삭이며 루시펠라의 귀를 깨물었다. 그녀는 윽, 하는 신음 소리와 함께 불만스러운 눈으로 제드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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