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법-112화 (112/173)

#112화 밤하늘의 별은 헤아릴 수 없다

2018.03.26.

“이번엔 따라가지 않을게.”

제드는 루시펠라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방금 자신이 들은 이야기가 진짜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래.”

다시 한 번 확인하려는 듯 묻는 말에도 루시펠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드는 미묘한 표정을 감추려고 노력해야만 했다.

“어차피 나중에 키칼 공작령에 갈 때 이쪽을 지나가지? 그때 날 데리러 오면 돼.”

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별안간 제드의 북쪽 순방을 따라가지 않고 이 도시에 머무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왜? 이전에도 잘 따라오지 않았는가. 피곤해하는 것 같긴 해도 딱히 힘들어하는 건 아닌 것 같았는데. 어딘가 불편했나?

그는 문득 자신의 이기심에 대해 반성했다.

“그래, 이렇게 날 따라다니는 건 아무래도 그대에게 좀 힘들겠지.”

루시펠라는 몸이 약했고, 그의 일정에 최대한 맞춰주었다. 그것 때문에 고생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쉬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묘한 서운함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래도 같이 있는 시간 동안 분명 행복해하지 않았나? 나랑 같이 있어서 싫은 건가? 아니면 자신이 그렇게 힘들게 했던 걸까.

그러나 표를 낼 수 없기에 그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말했다.

“그래, 이번에 푹 쉬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대신 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펠라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 묵는 며칠 동안 그는 그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맛보았다. 그러나 항상 행복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루시펠라와 떨어져야 할 때도 있을 테니까. 그녀는 혼자 있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일까?

그때였다. 루시펠라가 팔을 뻗어 그의 허리를 껴안았다.

그에 제드는 그녀의 허리에 손을 얹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루시펠라가 제드를 올려다보았다.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그는 루시펠라가 이곳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불안해 보였다는 것을 떠올렸다. 분명 어떤 이유가 있는 거겠지.

그러나 그는 그것을 추궁하기보다는 루시펠라의 눈 속에 담긴 자신에 대한 애정만 믿기로 했다. 서로 간 모든 것을 다 말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보고 싶을 거야.”

루시펠라의 말에 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름 정도 걸리는 시간, 제드는 그 기간이 매우 길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출발하는 날,

말에 오른 제드를 보며 루시펠라는 손을 흔들었다. 제드의 표정에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루시펠라는 그가 어떤 마음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지난밤, 그는 행동으로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보여주었으니까. 오늘 아침, 일어나기 싫다는 듯 제드는 그녀를 한참 동안 끌어안고 있었다.

그 행동에서 루시펠라에 대한 애정과 앞으로 보름간 헤어지게 되어 느끼는 서운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다녀오지.”

“응.”

작별 인사는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치게 했다.

그 짤막한 말을 끝으로, 그가 말을 타고 떠나갔다.

루시펠라는 그것을 바라보며 후,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떠나고 돌아오기까지 약 보름, 그 보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가 떠나자 마음 한구석이 시큰했다. 벌써 그가 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 마음을 억누르고 뒤를 돌아보았다.

“알토, 물어볼 게 있어.”

우선 그녀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

“이게 뭐라고?”

리엄은 눈썹을 찌푸리며 자신 앞에 내밀어진 것을 바라보았다. 발데르의 손에 들려 있는 건 편지였다.

“정보 상단에서 우리에게 전해달라고 한 거야.”

발데르가 대답했다.

“이게 전해졌다는 건, 그 상단에서 우리의 정보를 팔았단 말인가?”

“그건 아닌 것 같아. 그게, 정보를 전해준 사람이 정확히 아이릭 녀석을 지목했나 봐.”

“아이릭을?”

시토라 기사단 때부터 정보 상단원 중 아이릭은 그들과 긴밀한 교류가 있던 이였다.

그 관계를 아는 건 시토라 기사단일뿐일 텐데. 심지어 그 녀석은 돈은 밝히긴 했지만, 그래도 배신은 저지르지 않았던 이였다. 아직까지 그와 관계를 이어가며 그들이 무사할 수 있는 게 그 증거였다.

그렇다면 이걸 전해달라는 사람은 이미 아이릭과 시토라 기사단의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아이릭 녀석이 그래서 뭐라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젊은 여자였대. 보수로 어마어마한 보석을 줬다는데 그게 얀스가르식 장신구라고 해.”

“얀스가르?”

그가 얼굴을 찌푸렸다. 가만히 팔짱을 끼며 서 있던 아니카 역시 날카롭게 말했다.

“그럼 그놈들이 우릴 잡아들이려고 함정이라도 판 거 아니야?”

리엄 역시 동의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왔으니 읽어보는 게 어때?”

발데르의 말에 리엄이 편지의 봉인을 제거했다.

그것을 읽어 내리는 리엄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일인데?”

아니카가 리엄의 표정에 의아한 듯 그의 옆으로 다가가 편지를 훔쳐보았다.

그녀의 표정도 굳었다. 발데르 역시 리엄이 내민 편지를 받아보고 표정이 굳었다.

―당신들의 마지막 동료가 여기 이 땅 위에 남아 있다.

그 행방의 흔적을 알고 싶다면 찾아오라.

동지들이여, Ipsius autem rei est sitora.

편지 아래에는 장소와 시간이 표기되어 있었다. 일주일간 하루에 한 번 특정한 시간에 특정 장소에서 만나자는 약속이었다.

“아이릭 녀석이 편지를 그냥 준 게 아니었군.”

발데르가 중얼거렸다.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카가 그 문구를 보며 말했다. 마지막 문구가 없다면 그들은 이 편지를 싸그리 무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말은 마지막 말에 있었다.

―Ipsius autem rei est sitora.

별은 헤아릴 수 없다.

고대어로 이루어진 문장. 이것은 시토라 기사단 내에서 기사들끼리 서신을 주고받을 때 쓰던 문장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나서 시토라 기사단은 사실상 해체되었기에 이제 이 문장은 쓰지 않았다. 즉, 지금 이 시점에서 이 문장에 대해 아는 이는 기사단원뿐이라는 것이었다.

“젊은 여자라고?”

리엄이 묻자 발데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릭을 지목하고, 이 문장을 쓴 사람이 젊은 여자라는 걸까 아니면 그 여자는 심부름꾼이라는 걸까. 아이릭은 그 젊은 여자의 얼굴을 본 적이 없대?”

“서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나 봐. 다만 목소리는 예쁘고, 손은 고운 편이었고, 걸음걸이는 귀족 같았대. 그리고…….”

“그리고?”

“아이릭의 말에 따르면 말투가 묘하게, 단장을 닮았다는 거야.”

“뭐?”

아니카가 소리치며 서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리엄의 손에 들린 편지를 뺏어 들었다.

“아까부터 이상하다고 했어. 이거 단장이 쓴 것 같은데?”

“뭐?”

“글씨체가 묘하게 다른데 비슷해.”

아니카는 꽤나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리엄과 발데르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특히나 이 고대어로 이루어진 문장 말이야. 단장의 필체와 비슷해.”

그녀가 그 문장을 가리키자 리엄과 발데르가 심각하게 그 종이를 바라보았다. 아니카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이들을 보았다. 리엄이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야, 단장이 글도 쓸 줄 알았냐?”

“기억 안 나? 대부분이 다 욕뿐이잖아…….”

“아, 기억나는군. 내용만 봐도 단장이라는 걸 잘 알겠어서 굳이 필체를 볼 이유가 없었지.”

“맞아.”

아니카가 그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리하자면, 단장의 필체와 말투를 가진 젊은 여자가 시토라 기사단의 생존자를 안다고 찾아오라는 서신을 우리에게 보낸 건가?”

“…….”

“…….”

발데르의 정리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단장이 살아 있기라도 한다는 거야? 아니면 뭐 아스트라의 가호로 부활해서 우릴 만나려 한다고? 아, 우리 단장이라면 아스트라의 멱살을 잡아서라도 부활했겠다, 그치?”

그가 농담이라도 된다는 듯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에 리엄과 아니카가 그를 동시에 쳐다보았다. 발데르는 자신이 또 지나치게 나댔다고 생각하며 입을 다물었다. 리엄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꼭 그렇게 들리는군.”

“…….”

아니, 나는 그냥 한 말인데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다니…….

발데르는 무어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럼 어떻게 할 거야? 그곳으로 찾아갈 거야?”

“글쎄.”

리엄은 팔짱을 낀 채 생각했다.

“하인트 공작이 이곳에 있는 상황에서 움직이는 게 그리 현명한 행동은 아닌 것 같군.”

그때, 문이 벌컥 열리고 오이겐이 들어왔다. 그는 오자마자 소리쳤다.

“나 이야기를 들었어!”

“무슨 이야기?”

그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오이겐을 쳐다봤다.

“하인트 공작이 마지막으로 가는 곳이 키칼 공작령이래!”

“그건 지도만 봐도 나오지 않아? 라흐시 공작령이 출발지라면 마지막 목적지는 얀스가르와 가까운 키칼 공작령이겠지.”

아니카의 핀잔에 오이겐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보던 리엄이 달래듯 말했다.

“추측과 확실한 정보는 다르지, 잘했어, 오이겐.”

오이겐이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이 말도 들은 거겠지? 하인트 공작, 약혼녀랑 동행하고 있다는 거.”

“뭐, 약혼녀?”

발데르가 지나치게 움찔했지만, 모르는 정보를 접한 이들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머니가 얼샤 출신이라서 얼샤를 돌아보고 있다나 봐.”

이번 정보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알자 오이겐이 신이 나서 말했다.

“엄청 미인이래. 소문으로는 하인트 공작이 푹 빠졌다나 봐. 얀스가르에서도 엄청 유명하다는데?”

“허, 그놈이?”

“우습군.”

리엄과 아니카가 동시에 말했다.

그것에 발데르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더 놀라운 건, 칼리드 루이르크까지 그녀에게 빠졌다나 봐. 그러니까 삼각관계라는 거야. 대단한 여자지 않아?”

오이겐의 눈치 없는 말에 발데르가 혀를 찼다.

칼리드라는 말을 들은 리엄과 아니카의 표정이 서늘하게 굳었다.

“얼샤의 피가 흐르는 여자를 약혼녀를 둔 하인트 공작과 그 여자에게 구애하는 칼리드 루이르크? 참으로 걸작이군.”

리엄이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신랄하게 비꼬았다. 발데르 역시도 덩달아 얼굴을 찌푸리며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직도 떠오를 정도로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때 칼리드에 대한 살기를 억누르느라 보지 못했는데, 칼리드와 그녀가 관계가 있어 보이긴 했다. 오이겐이 가져온 소문이 거짓이 아니라는 건가?

“만약 그 여자를 데려오면, 칼리드와 제더카이어 하인트를 동시에 붙잡을 수 있다는 소리인가?”

리엄의 말에 발데르의 표정이 굳었다. 은근히 드러나는 살기에 아니카가 굳은 표정을 지었다.

발데르가 만류하듯 말했다.

“여자는 건드리지 않는다면서.”

발데르는 그때 짧은 순간 만났던 여자가 어째서인지 밉지 않았다.

하인트 공작의 약혼녀라고 분명 그녀를 죽이려고 했지만, 그녀의 순진함을 보고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런 여자를 이용한다고?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 여자는 건드려선 안 되지.”

리엄이 턱을 괴고 말했다. 발데르는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건드리지만 않으면 될 일이지.”

“리엄!”

발데르가 눈썹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아니카는 이들의 언쟁에 낮은 한숨을 토해냈다. 리엄이 책상을 쾅 내려치며 말했다.

“제더카이어 하인트, 그놈의 검 아래 죽은 녀석들을 생각해 봐.”

모든 이가 리엄을 탓할 수 없는 것은 그 이유였다. 최후까지 항전하겠다는 시토라 기사단의 단원들을 제더카이어 하인트는 자비 없이 모두 죽였다.

“…….”

“칼리드, 그 새끼의 검 아래 죽은 우리 단장을 생각해 보라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여자가 단장이라는 건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순수하며, 아름다웠고, 고강했던 사람.

그녀는 마지막까지도 같이 죽자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칼리드 루이르크가 에스텔을 죽이고 그 시신의 목을 잘랐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들은 그때까지도 그것을 믿지 못했다.

발 빠른 오이겐이 아니었으면 이들은 아마 죽었을 것이다.

자신들은 도망친 비겁자들이었다. 죽지 못한 자들이었다.

전우들의 시체 더미를 지나, 성에 걸린 에스텔의 목을 보고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는가.

절망하고, 분노하고, 증오하고, 그렇게 3년을 살아왔다.

숨 막히는 정적이 맴돌았다.

“그래서, 그 아가씨 이름이 뭐라고?”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함인지 아니카가 오이겐에게 물었다. 오이겐이 재빨리 대답했다.

“루, 루…… 뭐더라? 샛별과 관련된 이름이었는데.”

샛별이라고? 누가 봐도 이슈타르, 에스텔이 생각나는 이름이었다.

“루시펠라. 그래, 루시펠라 아이딘. 확실히 그 이름이었어.”

리엄이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루시펠라, 루시펠라 아이딘.”

그 이름을 중얼거리는 리엄을 본 발데르는 머리가 아팠다.

오이겐 녀석, 왜 갑자기 칼리드의 이야기를 꺼내서는. 평소에는 눈치가 그리 없지도 않은 놈인데 칼리드에 대해서는 일부러 눈치가 없이 행동하는 건가.

앞으로 일어날 일에 그는 머리가 다 아팠다.

***

“오늘도 여기서 구경하다 갈게요.”

루시펠라는 일부러 해맑게 말하며 다른 가게를 들렀다. 기사들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루시펠라는 일부러 보란 듯 더 환하게 웃었다.

역시 제드가 남긴 기사들이었다. 그녀에게 전적이 있어서인지 이들은 언제나 루시펠라를 따라왔기에 그녀는 이들을 따돌릴 재간이 없었다.

제드는 황태자나 다른 이들이 루시펠라를 노릴지도 모른다는 충분한 설명을 해주었다. 따라서 루시펠라 역시도 굳이 이들을 벗어날 생각을 하진 않았다.

루시펠라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부르그를 벗어나 거리가 멀지 않은 대도시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귀에 얹힐 정도로 따분하다고 노래를 불렀고, 따라서 그녀는 의심받지 않고 도시를 갈 수 있었다.

그녀는 대충 둘러대며 정보 길드를 들어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아이릭을 만나 동료들을 불렀다.

그 편지에 따로 무언가 적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했다.

만약 그녀가 살아 돌아왔다며 혹시라도 이들 사이에 있었던 은밀한 일을 편지에 적었다간 자칫하면 누군가가 정보를 유출했다며 서로 의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보 길드의 도움을 받는 것밖에 없었다.

행여나 불상사를 위해서 정보 길드는 지하 통로를 만들었고, 이는 다른 건물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녀는 매번 의심이 사지 않을 시간 동안 그들을 기다렸다.

그러나 예상대로 그들은 마지막 날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루시펠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지간히 경계심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경계심이 아닌 루시펠라의 작은 실수 때문이었다.

보통 그녀는 지하 통로에서 다른 건물로 가는 동안 후드를 썼다. 그러나 단 한 번, 들어오자마자 후드를 쓰는 것을 깜빡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루시펠라는 아주 빨리 후드를 썼지만, 이미 그녀의 얼굴은 그 자리에 있던 발데르의 눈에 보인 지 오래였다.

참고로 발데르는 그때 리엄과 함께 이곳에 와서 발신인을 찾고 있었다. 위험 부담이 컸지만 시토라 기사단의 생존자가 있다면 데려오는 게 마땅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막 들어오다 그녀를 발견한 발데르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왜 저 여자가 저기에 있지?”

“왜, 아는 사람이라도 있나?”

“아, 아니.”

발데르는 리엄을 바라보았다. 깊게 생각할 시간이 없다. 여기에 저 여자가 있으면 리엄도, 다른 이들도 모두 그녀를 가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저 여자가 다치지 않는다는 장담을 할 수 있는가. 어찌 되었건 결과적으로 발데르는 그녀 덕분에 살았다. 은혜를 입었는데 원수로 갚는 상황은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리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위험한 것 같아.”

“위험하다고?”

“아까 지나오는 길에 장신구 가게 앞에 기사들이 쭉 서 있더라고. 소속이 드러나진 않았는데 무언가 낌새가 심상찮아 보였어.”

발데르는 하인트 공작의 약혼녀가 자신들을 부를 장본인일 거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면 그의 기억 속에 루시펠라 아이딘은 철없고 순수한 여자였기 때문이다.

이 도시에 있는 이상 리엄과 그녀는 마주해서는 안 되었다.

리엄 역시 찝찝함을 느낀 것인지 발데르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그들이 고대하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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