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첫날밤
2018.03.22.
“그냥 외로워서, 쓸쓸해서 그래.”
루시펠라의 대답에 제드는 정말 그녀가 자신을 유혹하려는 건가 생각했다.
살짝 몸을 떼고 보니 루시펠라는 네글리제 차림이었다. 얇고 헐렁한 잠옷은 무르익은 여체 특유의 숨길 수 없는 태가 났다.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 제드는 그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쉰 후 다시 그녀를 끌어안아 머리를 쓰다듬었다.
루시펠라는 제드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머릿속이 맑아졌다.
에스텔과 루시펠라가 혈연 관계였다는 사실은 생각해 보면 놀랍긴 했지만 이렇게 침체될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가장 놀라운 일은 그녀가 죽었다가 루시펠라의 육신으로 되살아난 게 아니던가.
그녀는 왜 자신이 서글픔을 느꼈는지 깨달았다.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의 인생에 대해 들어버렸고,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들어버렸다.
그 인생을 동정할 수밖에 없는 게 싫었고, 그 인생을 동정하며 우울해졌다.
가족이란 무얼까. 혈연이란 무엇이기에 어머니는 바네사 남작이 죽은 후 집을 뛰쳐나갔으며, 그 후 또 한 번 가족을 버린 것일까.
그녀는 루아나라는 가족이 있었는데, 에스텔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제드, 우리가 가족이 된다면 외로워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외롭고도 서글픈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고독에 그녀는 두려워졌다.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군.”
제드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루시펠라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느끼는 횟수는 적어지겠지.”
“…….”
“이렇게 방으로 달려오지 않아도 손만 뻗으면 닿을 정도로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을 테니까.”
그렇겠지. 눈을 감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눈을 떴을 때 이 사람과 함께할 수 있겠지. 그렇게 되면 외로움이란 자신과 관련되지 않는 아득히 먼 감정이 될지도 몰랐다.
루시펠라는 문득 불안함을 느끼며 말했다.
“눈을 뜨면 당신이 사라져 버리면 어떻게 하지? 그럼 더 외로울 텐데.”
“사라지지 않을 거야. 난 밤하늘의 별처럼 아침에 사라지진 않으니까.”
“그럼 내가 밤하늘의 별처럼 아침에 사라져 버리면 어떡하지?”
루시펠라의 육신에서 자신이 사라지면 어떻게 할까.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녀는 나약한 표정으로 제드를 바라보았다.
“놓치지 않을 테니 걱정 마.”
제드는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루시펠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 루시펠라는 안심했다.
이 사람이 붙잡아줄 것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루시펠라는 손을 뻗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얇디얇은 잠옷 사이의 보드라운 살결이 제드의 가슴팍에 밀착되었다.
“그럼, 증명해 줘.”
루시펠라가 제드를 바라보았다. 제드의 시선이 루시펠라의 촉촉하게 젖은 두 눈을 향했다. 물기를 머금은 두 눈이 반짝였다.
“루시.”
이젠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노골적인 유혹이었다. 제드는 만류하듯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녀는 그것이 들리지 않는 듯 말했다.
그때, 루시펠라가 입을 열었다.
“결혼하자.”
그 말에 제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루시, 지금 상태가.”
“나 지금 술에 취한 것도 아니고 정신이 나간 것도 아니야.”
“…….”
“제드가 날 사랑하듯 나도 제드를 사랑해. 그러니까 함께하자.”
제드는 루시펠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약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눈물로 젖은 눈, 절박하게 매달려 오는 손.
그러나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되며 허망한 울림이 아니었고,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녀가 또 어떤 일 때문에 그러는지는 모른다. 하나, 확실한 것은 그녀는 아프고 외로울 때마다 그를 찾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그 아픔이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 그는 루시펠라에게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환희하고 있었다.
그는 그런 자신의 졸렬함을 혐오했다.
그는 선택할 수 있었다. 이 상황에서 그녀를 다시 방으로 보내느냐, 아니면 그녀를 안느냐. 그것도 아니라면 다시 방으로 나가는 게 옳은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제드는 너무나 많이 억누르고 참아왔다. 그 노골적인 유혹을 밀어내고 싶지 않았기에 그는 구태여 물었다.
“진심이야?”
“사랑해.”
그의 최후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그 말 한마디에 그의 이성이 끊기고, 졸렬한 자신이 되는 쪽을 선택했다.
그는 루시펠라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혀가 벌려지고, 타액이 섞이는 입맞춤이 오갔다.
그는 루시펠라를 안아 들어 침대에 눕혔다.
새하얀 시트와 대비된 검은색 머리카락이 아름다웠다.
달빛에 서린 오뚝한 콧날도 그림처럼 우아한 검은 속눈썹도. 그 아래 자리한 별처럼 빛나는 은청색 눈동자도,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 어설픈 유혹을 덧그리는 붉은 입술도.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에, 어느새 그의 두 눈은 욕정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홀린 듯 입을 열었다.
“그래, 결혼하자. 결혼하자, 루시.”
제드는 가끔 이 사람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을 때가 있었다.
미소 짓는 모습, 그 눈짓과 접촉, 서로 주고받는 입맞춤으로 해소하려 해도 그는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았다.
제드는 그 갈망을 억제하려고 했다.
그는 어른이었고, 그녀보다 세상을 더 경험한 사람이었으므로 인내하며 자신의 거대한 마음으로 그녀를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이미 상처가 있는 사람이지 않은가.
하지만 오늘이야말로 제드는 더 이상 인내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이젠 더 이상 그 갈망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미쳐 버린 지 오래였다.
루시펠라는 이 남자가 이성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 눈을 마주하고 눈빛이 변해 버린 것을 본 그녀는 그것이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에스텔로서도 루시펠라로서도 처음 만났을 때, 저 남자의 이성이 저렇게 무너질 거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저 강철과 같은 남자를 자신이 이렇게 만들었다는데 어찌 만족스럽지 않겠는가.
그녀는 그의 손에 모든 것을 내맡겼다.
배로 말려 올라간 네글리제는 벗겨진 지 오래였다.
그의 목을 끌어안자 또다시 입맞춤이 내려왔다. 제대로 말리지 않은 그의 축축한 머리칼을 꼭 쥐며 자신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는 그의 손길을 느꼈다.
그의 손과 입이 몸의 구석구석에 닿을 때마다 제드는 그녀의 표정을 확인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가 입고 있는 얇은 셔츠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얇은 셔츠를 벗어 내렸다. 탄탄한 근육질의 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루시펠라의 하얀 목덜미를 깨물었다. 그러자 짧은 비명이 새어 나왔다.
그가 혀로 그 부분을 쓸자, 루시펠라가 간지러운 듯 몸을 움찔하며 달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가 만족스러워 그는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루시펠라는 그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달빛에 음영진 조각 같은 얼굴, 그리고 그녀에게 욕정 하는 눈동자는 어딘지 모르게 마력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얼굴에 진득이 집중할 수 없었다. 그가 하는 애정 어린 행위에 자신의 입에서 나는 낯선 소리가 나는 걸 눌러 참아야 했기 때문이다.
루시펠라는 참지 못하는 쾌감에 몸을 뒤틀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낯선 감각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흐릿한 눈으로 제드를 바라보자 제드가 느릿하게 말했다.
“언제나 그대를 이렇게 만들고 싶었지.”
그 시선에 오싹하며 몸이 떨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루시펠라는 그의 손길에 애타면서도 그게 못마땅했다.
그의 손짓 하나에 나만 반응만 하는 것 같지 않은가. 나는, 나는 그렇게 하면 안 돼?
손을 들어 그의 굴곡진 몸을 더듬었다. 그저 손길만으로도 자극적인 듯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루시, 천천히…….”
보드라운 손이 그의 몸을 미끄러져 내려가다 그 손이 갑자기 멈추었다.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보니 제드는 그것 보라는 듯 낮은 웃음을 지었다.
루시펠라가 멈칫하자 그는 다시 루시펠라의 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에 루시펠라의 육체는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새로운 경험, 생경한 느낌, 자신의 몸을 주체할 수 없는 짜릿한 감각. 그리고 그런 경험을 선사해 주는 사랑하는 자신의 사람.
모든 것을 벗고 나신이 되어 원초적 본능에 집중하는 것에 루시펠라는 새로움과 더불어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 두려움에도 그가 있다는 것에 그녀는 묘하게 안심하고 있었다.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루시.”
낮게 가라앉은 눈이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그는 눈으로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루시펠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몇 번 더 말해줘야 해?”
“…….”
“사랑해, 제드.”
모든 것을 깨닫고 견딜 수 없음에 제드를 찾는 순간, 그에 대한 사랑을 또다시 깊게 자각하는 순간, 그녀는 결혼이라는 걸 해도 이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 눈물 나게 다정하고 따스한 사람과는 평생을 같이하고 싶었다.
이 사람 곁이라면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제드가 느릿하게 몸을 움직였다.
“루시, 괜찮아, 진정해.”
제드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문 채 침대 시트를 꽉 쥐었다. 충분히 준비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루시펠라는 제드를 올려다보았다. 눈썹을 살짝 찌푸린 제드가 루시펠라와 눈을 마주했다.
온기에서 전해지는 애틋함, 서로 하나가 된 작은 고통, 그것을 달래기라도 하는 것인지 주체할 수 없는 애정을 표현하기라도 하는 것인지 그는 계속해서 입을 맞춰왔다.
창가에 스며든 달빛에 비친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또 사랑스러웠다.
루시펠라는 왜 이것을 ‘사랑을 나눈다’라고 표현하는지 깨달았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품는 열기를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되는 그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여 공유하는 두 사람만의 은밀한 시간.
루시펠라는 그 시간 동안 충만함과 기쁨, 세상의 모든 강렬한 감정들을 느끼며 그를 마음껏 사랑하고 또 사랑했다.
***
눈을 뜬 제드는 옆으로 누워 잠든 루시펠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밤새 계속되었던 행위로 그녀는 지친 것인지 정신없이 잠들어 있었다.
달이 지고 새벽별이 뜰 때까지 그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도 그런 그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였다.
어스름한 새벽빛에 그녀의 육신이 하얗게 빛났다. 그가 그동안 억눌러 왔던 욕망을 마음껏 표현하듯, 그녀의 몸에는 그가 그녀의 몸을 탐하며 새긴 붉은 흔적만이 가득했다.
그는 그것을 보며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미친 거지. 짐승새끼도 아니고, 너무 억눌러 왔더니 이렇게 터져 버렸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는 주저 없이 하루를 내어줄 것이다. 물론 그녀의 육체가 버텨주냐, 하루로 만족할 수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다음으로 집어치우고.
그는 잠든 루시펠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미소를 지었다.
행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쾌감으로 비롯된 기쁨보다, 드디어 마음을 나누었다는 기쁨이 더 컸다. 게다가 더 기뻤던 것은, 이제 결혼을 하게 되면 이렇게 계속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두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그는 손을 들어 루시펠라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밤새 이루어진 격렬한 행위로 그녀의 머리카락은 아직도 땀에 살짝 젖어 있었다.
어여쁘고 아름답고 또 사랑스럽다.
그가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루시펠라의 얼굴을 쓸었다. 말랑하고 부드러운 볼살을 꾹 누르자 루시펠라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그에 제드가 웃음을 눌러 참았다.
그의 손가락이 루시펠라의 입술에 내려앉았다. 몇 번이고 입을 맞춘 건지, 그녀의 새빨간 입술은 붉은 과실처럼 통통하게 부어 있었다. 그것이 꼭 깨물면 달콤한 과즙이 새어 나올 것 같기에 제드는 입맛을 다셨다.
자는 사람에게 입을 맞춘다면 진짜 쓰레기겠지.
뭐, 이젠 언제든지 기회는 있으니까.
제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느긋하게 미소 지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제드는 루시펠라를 힐끗 보며 몸을 일으켜 옷을 아무렇게나 걸쳐 입었다.
“각하, 이른 아침에 죄송합니다. 지금 아가씨께서 사라지셨…….”
하인이 제드의 옷차림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앞섶이 풀린 셔츠를 걸친 그의 옷은 묘한 구석이 있었다.
설마? 하인의 시선이 자연히 제드 너머로 향하려고 할 때, 그가 몸을 움직여 그 시야를 차단했다.
“나와 같이 있으니 쓸데없이 소란피우지 않았으면 좋겠군.”
“네, 알겠습니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 파악한 하인이 재빨리 나갔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루시펠라에게 다가가 옆에 다시 누웠다.
그녀는 여전히 쌕쌕거리며 잘도 자고 있었다. 이전에도 생각했지만 그녀의 자는 모습은 하나도 질리지 않았다.
그때, 그녀가 얼굴을 크게 찌푸렸다. 잠에서 깨려나? 흥미롭게 관찰하자 그녀가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지…… 쳤어.”
그 말을 들은 그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
지쳤다고? 자신이 그렇게 심했나?
“제발…….”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제드는 갑작스럽게 우는 것에 당황해 루시펠라의 몸 위에 손을 얹었다. 그는 루시펠라를 토닥이며 말했다.
“루시.”
자면서 흐느끼는 그녀는 제드의 손에도 쉽사리 잠에 깨어나지 않았다. 설마 악몽을 꾸고 있는 건가?
“루시.”
제드가 다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꼭 껴안자, 그녀의 손이 제드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그녀가 제드의 품에 파고들었다.
“루시, 괜찮아.”
그가 다시 루시펠라의 귀에 속삭이자 발작과도 같은 흐느낌이 멎었다. 그녀의 호흡이 편안해지며 제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대체 무슨 꿈을 꿨기에 그런 거지? 어제의 일이라기엔 꿈을 꾸는 그녀는 지나치게 서글퍼 보였다.
제드는 루시펠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그녀는 다시 곤히 잠든 것 같았다.
그는 그녀가 지칠 여러 가지 상황을 떠올렸다. 그러나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이 지나가는 악몽이길 바랄 뿐이었다.
해가 조금 더 높이 떠오르고, 창가에 들어오는 햇살이 밝아질 때 그녀가 눈썹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은청색 눈동자에 빛이 들어오고 그 눈동자가 제드를 오롯이 눈에 담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은 아침이야, 루시.”
“…….”
“아침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았지? 그대도, 나도 말이야.”
루시펠라는 멍한 시선으로 제드를 바라보다 이내 입꼬리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제드의 허리에 손을 휘감고,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자신의 품에 느껴지는 가느다란 숨소리에 제드는 피식 웃었다.
“루시, 어서 일어나야지. 너무 늦으면 사람들의 생각이 많아질 거야.”
“이미 저지른 거 더 생각하라고 해.”
루시펠라는 웅얼거리며 베개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무슨 악몽이라도 꿨나?”
“악몽?”
루시펠라는 눈을 크게 뜨며 되묻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뭔가 굉장히 기분 더러운 꿈을 꾼 것 같아.”
잠에서 막 깬 그녀의 말은 노골적인지라 레이디스럽지 않았으나 제드는 그저 그녀가 아주 더러운 꿈을 꾸었구나, 그대로 납득했다.
“무슨 꿈인데?”
“그게…….”
그녀가 눈썹을 모으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기억 안 나.”
꿈이 뭐가 중요하다고, 그도 꾸는 개꿈을 따지자면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루시펠라는 졸린 듯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더니 제드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에 제드 역시 같이 웃으며 물었다.
“왜?”
“그냥.”
“그냥 왜?”
집요한 물음에 루시펠라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좋아서.”
“좋았다고?”
“그래, 좋았고 좋아서.”
꼭 그렇게 입으로 들어야겠냐는 시선에 제드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루시펠라는 일부러 자신의 입가에 서린 미소를 지우려고 꽤나 노력했다. 정신을 차리면 차릴수록 간밤의 뜨거웠던 일이 생각이 났다.
자신은 부끄러움 같은 걸 잘 안 탄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얼굴을 보자 간밤의 일이 떠올라 얼굴이 빨개졌다. 그래서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일어나지.”
제드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눌러 있고 싶었으나, 정말 오후 늦게까지 늘어지게 잔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구설에 오르겠지.
루시펠라는 하품을 손으로 틀어막고 손에 힘을 줘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윽!”
루시펠라는 몸에 느껴지는 통증과 동시에 다시 쓰러져 누워 제드를 노려보았다. 제드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 이내 그녀가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눈치채곤 미소를 지었다.
“지금 웃겨?”
“영애가 아픈 건 상당히 유감이고 미안한 일인데…….”
“미안한 일인데?”
“그래도 내가 말했잖아. 제대로 일어설 수 없을 거라고.”
“…….”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왜, 아니, 왜 그쪽은 멀쩡한데 나는!”
그녀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제드는 그것을 보며 웃었다.
“구설에 오르는 건 번거롭지만 어쩔 수 없군.”
루시펠라는 얄미운 제드를 쳐다보았다.
“왜, 안아서 씻겨줄까?”
“아니!”
그녀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결국, 그녀는 정오가 지나서까지 제드의 침대에서 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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