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내가 잘못한 건가?
2018.03.05.
“왔어?”
클로렌스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오지프가 보던 책을 내려놓고 다가왔다.
클로렌스의 얼굴에 서린 미소를 본 그는 자신의 약혼녀에게 우아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이건 에스코트인가요?”
“말하자면 그렇지.”
이오지프가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면서 대답했다.
“문에서 소파까지요?”
그녀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냥, 손을 잡고 싶었어.”
그 말에 클로렌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오지프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만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그마저도 파티나 연회 때뿐이니, 이렇게 말고는 사심을 충족할 수가 없잖아.”
“사심이라뇨.”
클로렌스가 웃으며 그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같은 마음을 품은 건 사심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그에 이오지프가 눈을 크게 뜨더니 더 환하게 웃었다.
“내가 그댈 당해낼 순 없을 것 같군.”
연인들 특유의 따스한 시선이 오갔다.
이오지프는 잡은 손을 들어 클로렌스의 손등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그는 소파 위에 클로렌스를 앉히고 그 건너편에 앉았다. 그는 미리 준비되어 있던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클로렌스를 힐끗 보았다.
클로렌스가 차향을 맡더니 피식 웃으며 이오지프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차를 준비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어제 연회는 고생이 많았어.”
“전하야말로 고생이 많으시던데요. 꽤나 많은 사람이 전하께 다가가지 못해서 안달하더라고요.”
“이전처럼 기피되면 그게 더 큰일이겠지.”
이오지프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드리스 공작이 꽤나 초조한 모양인가 봐요. 황후 폐하의 생신 때 단 한 번도 그렇게 오래 있지 않았는데, 끝날 때까지 붙어 있다니 말이에요.”
“이전의 실수가 너무나 컸으니까.”
“실수가 아니죠. 사람을 산 채로 불에 태우다니요.”
클로렌스가 끔찍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올여름, 황제가 매년 파견하는 감찰대로부터 이드리스 공작의 악행을 보고하는 보고서가 올라왔다.
보고는 간단했다. 몇 년 전부터 세금을 조금이라도 늦게 내거나 공작 일가에게 반기를 들었던 이들에게는 온갖 끔찍한 형벌이 내려지고 있었다.
“내가 차기 황제 후보로 부각되는 이때 이 보고가 올라온 건, 감찰대 녀석들도 완벽한 부황의 수족이 아니었다는 말이겠지.”
클로렌스를 보며 따스하게 미소 짓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의 얼굴에는 은은한 분노가 맴돌았다.
“정복전쟁으로 부황께서는 착실히 권력을 잃어가고 있었던 거야.”
클로렌스는 굳은 표정으로 이오지프를 보고 있었다.
이오지프는 클로렌스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았다. 다만, 클로렌스는 이오지프가 왜 황위에 오르려는지 알 수 있었다.
저 사람은, 너무나 다정했다.
생존을 위해서, 어머니를 위해서,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게 때를 위해 몸을 낮추고 또 낮춰왔던 사람.
분명 그 길이 순탄하지 않았을 텐데, 클로렌스는 그가 존경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여웠다.
“다른 소식통을 들어보니, 이드리스 공작의 부의 원천도 다 떨어져 가는 모양이더군.”
“부의 원천이라면, 은이 다 떨어졌다는 건가요?”
“그런 것 같아. 최근 테로상단과 무슨 일에서인지 틀어지고 다른 곳과 거래를 하던데, 그곳 사람 중 몇이 내 사람이었거든. 이야기를 들어보니 은의 거래량이 줄어들었다고 해.”
클로렌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드리스 공작령은 거의 무한에 가까울 만큼 풍부한 은이 생산되는 곳이었다. 대륙의 은은 이드리스 공작가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뭐, 사실 반란을 목적으로 은을 비축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것 때문이라도 제드가 어서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이오지프가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걸 본 클로렌스가 말했다.
“반란은 아마 쉽게 일으키지 못할 거예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바반드 가문과 이드리스 가문이 틀어진 것 같거든요.”
“둘 사이가 틀어졌다고?”
“그렇게 절친하던 이드리스 공작부인과 바반드 백작부인의 사이가 이상했어요. 서로 대화는 안 나누면서도 자꾸 서로 눈치만 보는데, 아무래도 부인끼리 사이가 소원해진 것이 아니라 남편인 공작과 백작이 반목한 것 같아요.”
이오지프가 허탈한 듯 미소 지었다.
바반드 백작은 무가였고, 이드리스 공작가와 더불어 황태자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가문 중 하나였다. 이들의 사이가 나빠졌다면, 반란을 일으키는 건 무리였다.
“혹시 몰라서 이드리스 둘째 공자와 바반드 백작 영애의 혼약이 언제냐고 물어보니 두 분 다 머뭇거리시더라고요. 이 부분에 대해 바깥에 어떻게 말할지 합의하지 못할 정도로 두 가문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건 분명해요.”
클로렌스의 분석에 이오지프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서 그랬던 거군.”
황후의 생일 파티 때 이드리스 공작이 남아서 평소에는 거들떠보지 않던 무가 쪽 귀족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이유가 바반드 백작의 대용을 찾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드리스 공작은 문관 계열이었고, 전쟁과 관련한 지식이 거의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클로렌스의 말이 완벽하게 맞다는 보증은 없지만,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는 게 옳은 듯했다.
이오지프가 피식 웃었다.
“이래서 사교계는 무섭다니까.”
“전하께서 계시는 세계만 할까요?”
클로렌스가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오지프는 클로렌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영애, 아니, 클로렌스, 그대가 있어 참 든든해.”
레이디들은 가녀리고 연약한 모두 꽃과 같다고들 했다.
그러나 이 얼마나 안이한 생각이었는가. 그는 클로렌스를 보면 자신이 얼마나 편견에 휩싸였는지 깨닫고는 했다.
지켜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서로 함께해 나가는 동반자. 여자라고 반드시 기댈 수 없는 게 아니었다.
“제가 든든하기만 해요?”
그 말에 이오지프가 피식 웃었다. 그녀는 동반자이자 사랑스러운 연인이기도 했다. 어쩌다가 맺어졌지만, 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지.
클로렌스를 만나기 전, 이오지프에게 결혼은 거래였다.
따라서 그는 자신도, 자신의 아내도 그다지 행복하진 않으리라 생각했다.
로맨스 소설에서나 나오는 달콤한 사랑이 허황된 것임을 이오지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책 속의 세상보다 더욱더 다채로웠으며, 그가 예상하지 못한 많은 일이 일어나고는 했다.
바로 그녀의 존재처럼.
“그대도 참 짓궂군. 내가 그대를 어떻게 여기는지 알면서.”
묘한 열기가 있는 말에 클로렌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오지프의 옆으로 가 앉았다.
이오지프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이오지프의 눈동자에는 따스한 애정이 서려 있었다.
“알면서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이라잖아요.”
“불안해하는 건가?”
“아니요. 예전처럼 불안하진 않아요.”
“그러면?”
그녀가 분홍색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확인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지요. 그렇지 않나요, 전하?”
그 도발적인 말에 이오지프가 클로렌스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와 함께 그녀의 몸이 소파 위로 눕혀졌다.
이오지프가 그녀의 목에 입술을 맞추고 그의 손이 클로렌스의 허리춤에 묶인 리본의 매듭을 풀려고 할 때였다.
“아 참, 전하, 루시와 공작 각하께 따로 소식이 있나요?”
“…….”
이오지프가 불만 어린 표정으로 클로렌스를 바라보았다.
“모르지. 그쪽은 영애나 제드나 둔감하긴 이루 말할 데가 없으니까 말이야. 아마도 우리보다 훨씬 느려 터졌을걸.”
“설마 아직도 서로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요?”
“그거 꽤나 설득력 있는 말인데.”
이오지프가 중얼거렸다.
“하인트 공작 각하께서는 그렇게 완벽하신 분이 왜 루시 마음도 모르시는 건지.”
그 말에 이오지프가 눈을 가늘게 좁히며 진지하게 말했다.
“클로렌스, 이 상황에서는 그 바보 같은 이들을 생각하기보단 지금 여기 날 생각해 줬으면 좋겠는데.”
“네?”
“좀 질투가 나는군.”
질투가 난다고? 그러고 보니 이오지프는 살짝 기분이 나쁜 것 같았다.
‘자기는 그간 얼마나 잘해왔다고.’
물론 클로렌스는 그렇게 따지고 싶었지만, 상황상 따질 수가 없었다.
***
“루시.”
“괜찮아. 난 별로 화나지 않았어.”
“몇 번이고 사과하지.”
“날도 더운데 제드, 마차 밖을 나가는 게 어떨까? 괜히 더 더워지네.”
루시펠라가 상냥한 얼굴로 제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은 굴러가는 마차 안이었고, 루시펠라의 맞은편에 앉은 제드는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상하게 오늘 계속 덥네. 왜 더운 걸까?”
루시펠라가 손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당장 부채를 가져오지.”
“부채 가지고 되겠어? 더위의 원인이 여기 버젓이 있는데.”
분명 한여름인데도 루시펠라의 음성은 더없이 서늘했다.
제드는 할 말이 없었다. 지금 이들은 본래 향해야 할 곳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바로 라흐시 공작의 도시였다.
“그래, 공작령에서 연회를 연다고 해서, 그걸 간다고 수락하고 내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았지? 난 제…… 아니, 그쪽이 그렇게 연회를 좋아할 줄은 몰랐어.”
루시펠라가 화난 것은 제드에 이어 루시펠라까지 참여한다는 서신을 보내 버리고 그녀도 모르게 진로를 바꿨기 때문이다.
제드로선 그가 방문할 도시의 귀족이 연회에 참여한다는 소리를 듣고 별생각 없이 결정했지만, 이내 길이 그쪽이 아니라는 걸 기민하게 알아챈 루시펠라의 말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함으로써 이 비극은 시작되었다.
제드도 할 말은 있었다. 아니, 많았다.
다음 경유할 도시를 가려면 길이 험해 그녀가 고생할 게 뻔했기에, 더 편한 곳에서 최대한 빨리 쉬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수락한 것이었다.
하지만 루시펠라 입장에서는 꺼림칙한 라흐시 공작의 성에 가는 것은 물론이요, 덤으로 거기서 드레스를 입고 연회까지 참여하게 생겼으니 더욱 화가 날 판이었다.
“그래, 내가 이전에 지은 죄도 있고 ‘그쪽’이 세운 일정에 반대할 권한은 없긴 해. 난 어디까지나 떨거지니까.”
아까부터 루시펠라는 제드를 다시 ‘그쪽’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간신히 모든 호칭이 제드라는 애정 어린 호칭으로 바뀌었는데, 다시 그쪽으로 변했다.
이것은 너무나 뼈아픈 퇴보였다. 겨우 몇 걸음 앞으로 나갔는데. 겨우 이 실수 하나 때문에!
제드는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몇 번이고 사과했지만 루시펠라의 마음은 풀릴 줄 모르고, 더워 죽겠으니 마차에서 나가라는 소리만 하고 있었다.
“뭐 갖고 싶은 거라도 있나? 말만 해.”
“갖고 싶은 거? 지금 당장 혼자 있을 권리.”
루시펠라가 눈을 가늘게 뜨며 제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제드는 그것만은 들어줄 수 없었다.
“연회를 정말, 아주 많이 싫어하나 보군.”
“맞아. 나는 연회를 정말, 아주 많이 싫어해. 더군다나 그 공작도 아주 많이 싫어해.”
“질투하는 건가?”
그 와중에도 눈을 반짝이는 제드의 얼굴을 보며 루시펠라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파리를 쫓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에 제드가 상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가 불편할까 봐 그랬어.”
“연회에 참여하는 것보다 말에 타는 게 덜 불편했겠지.”
“앞으로는 그대에게 다 말하고 결정을 내리도록 하지.”
“…….”
“당연히 거기 가서도 그대가 불편함이 없도록 신경 쓸 거야.”
“…….”
“하인트 가에서 여는 연회도 최소한으로 줄이도록 하지.”
“엉?”
마지막 말은 좀 이상했다.
루시펠라가 제드를 보자, 제드야말로 의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린데?”
“말 그대로, 영애가 싫으면 하인트 공작가의 연회는 거의 없다는 소리야.”
“왜 내가 싫다고 하인트 공작가의 연회를 줄이는데?”
“나중에 안주인이 될 테니까.”
“…….”
루시펠라의 눈이 커졌다.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루시펠라의 표정을 보고 제드가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설마, 영애는 이 부분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은 건가?”
“…….”
“서로 마음이 통했고, 약혼한 사이면 이 정도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은데.”
묘하게, 아니, 명백하게 서운하다는 어투였다.
그녀도 사정은 있었다. 그녀로서는 여전히 얼샤를 보는 게 심란하기 그지없었고, 제드와 함께 있는 게 즐거우면서도 마음이 찝찝한 구석이 많았다.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느라 소모한 심력이 얼마나 많았는데, 거기다 결혼까지 끼얹느냔 말이다.
결혼.
루시펠라는 그 말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보았다. 지금 이 상태로 가면 제드와 결혼이다. 저 사람이 남편이 되는 것이다.
그를 좋아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와 연인이 되는 걸 받아들이는 것만 해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그와 함께하겠다고 생각했지만, 함께한다는 것과 ‘결혼’한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의미였다.
내가 누군가의 아내가 된다고? 에스텔 슈페르트가 제더카이어 하인트의 아내? 하인트 공작가의 안주인?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일이 또 있을까.
그가 남편이 되고 자신이 아내가 되어 함께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루시펠라의 표정을 본 제드의 얼굴이 굳었다.
“영애가 그렇게 내켜하지 않을 줄은 몰랐는데.”
“…….”
“부정하지 않는다는 거로군.”
제드의 어조가 냉소적으로 변했다. 루시펠라는 제드의 상처받은 얼굴을 보았다.
순식간에 경직된 분위기에 그녀가 움찔했다.
“혼자 있을 권리를 원한다고 했지? 들어주도록 하지.”
제드는 마차를 멈춰 세우더니 바깥으로 나갔다.
루시펠라는 졸지에 마차에 혼자 남게 되었다.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그가 나간 마차의 문을 바라보았다.
“내가 잘못한 건가?”
설령 생각해 본 적이 없더라도 그런 표를 내서는 안 되었다. 제드에겐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로 보였는데. 아니, 자신한테도 충분히 중요한 일이다.
“…….”
아까 제드가 이런 마음이었을까. 역시 사람은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법이다.
루시펠라는 그것을 깨달으며 심각하게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한편, 마차에서 내린 제드는 다시 말에 올랐다. 그는 루시펠라가 탄 마차를 한번 보더니 그대로 행렬의 선두에 섰다.
언제나 보기 힘들 정도로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던 제드의 표정이 평소의 표정으로 변하자 기사들이 서로 팔꿈치를 치며 제드를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제드는 앞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자신은 결혼을 위해 이 여행에 모든 걸 걸었는데, 정작 상대방은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니, 이렇게 허탈할 데가. 그래, 애초에 서로 품었던 마음의 무게가 다르다 이거지?
그가 속으로 온갖 험한 상상을 할 때였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버나드가 조심스럽게 제드 옆으로 말을 몰아와 물었다. 그는 씩씩거리며 버나드에게 말했다.
“보통 약혼한 사이에 결혼을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게 말이나 되나?”
“영애께서 그러셨습니까?”
제드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게 긍정의 답이라는 건 너무도 명확했다.
버나드가 고민하다가 되물었다.
“정말 아이딘 영애가 그러셨습니까?”
“그래.”
버나드 역시 이해가 안 간다는 어조였다.
그래, 자신이 이상한 것에 기분 나쁜 게 아니다. 이건 누구나 기분 나빠야 할 일이 맞았다. 누가 생각해도 그녀가 잘못한 부분이었다.
“청혼까지 했는데도 영애가 그랬습니까?”
“……!”
제드는 깨달았다.
청혼. 생각해 보니 제대로 된 청혼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제드의 표정을 본 버나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영애가 그랬냐고 물었는데 왜 본인이 충격받은 표정을 짓는단 말인가.
버나드는 또 이상한 질문이 날아올까, 다시 제드로 부터 알아서 떨어졌다.
제드는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역시, 청혼을 했어야 했다.
약혼을 한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필수적이지 않듯, 꼭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
게다가 처음 만났을 때 어땠는가 결혼하기 싫다. 해도 바로 이혼하자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제드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 반딧불이 숲에서 청혼까지 했어야 하는데, 그것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자신은 청혼도 안 한 채 결혼을 생각 안 했다고 투덜거리는 투덜이가 된 것이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그는 괴로운 표정으로 루시펠라의 마차를 보았다.
‘내가 잘못한 거겠지.’
#d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