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법-103화 (103/173)

#103화 과거 (3)

2018.02.22.

“뭐야, 또 여긴 어떤 일이야?”

라흐시 백작의 허가를 받아 제드는 감옥에 다시 발을 들일 수 있었다. 환영 인사 따윈 기대도 안 했지만 참 가관이었다.

그녀는 팔베개를 하고 옆으로 누운 채 발을 까딱거리며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까 기사라고 생각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여지없는 날건달의 모습이었다.

군기가 바짝 든 기사만 봐왔던 제드는 혀를 찼다.

참고로 제드는 단 한 번도 저런 자세로 자신을 맞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참 팔자 좋아 보이는군. 감옥에 갇히는 게 체질인가?”

“사실 한두 번 갇혀봤던 게 아니라서.”

그녀는 여전히 누운 채 제드를 뚫어져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왜 여기 온 거지? 떠나기 전에 위협이라도 될 것 같아 나를 죽이러 온 건가?”

“패자가 위협이 될 거라 생각하다니, 본인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는군.”

그에 에스텔이 튕겨 오르듯 자리에서 일어나 창살을 잡고 말했다.

“너와 대등하게 싸우다 패한 거야. 객관적인 평가가 그렇게 안 되냐, 이 까만 고양아?”

까만, 고양이…….

그 누구도 자신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그 멸칭에 제드의 머리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까만 고양이라……. 지금 누가 누구에게…….”

고양이 같은 눈을 가진 사람이 자신더러 고양이라고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흑사자라는 별명도 마음에 안 드는 판에 자신이 어딜 봐서 고양이인가. 이 여자가 제정신인가?

“지친 사람한테 이겼다고 그렇게 의기양양해하다니. 전장의 흑사자란 놈도 별거 없네. 그래, 재밌게 즐겨주라. 기뻐해도 좋아. 고양이가 재롱떠는 것처럼 귀엽네.”

에스텔이 삐뚜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것을 본 제드가 애써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너야말로 이슈타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군. 기껏 도망쳤던 곳이 연무장이라니, 오늘 저녁은 이슈타르가 수치스러워서 뜨지 않을 것 같지 않나? 자기 이름을 가진 기사가 그 짓을 했다니 그녀도 창피할 거야.”

에스텔은 분한 듯 이를 으득 갈며 제드를 쳐다보다, 이내 한숨을 쉬며 주저앉았다.

“그래, 떠들 테면 떠들어라. 정말 내 인생 최고의 바보짓으로 기록에 남겠군. 이쪽 기사들 입이 싸던데, 내가 이 짓거릴 했다는 거 아마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리겠지?”

“그놈들이라면 그러겠지.”

제드가 대답했다. 그에 에스텔이 피식, 쓴웃음을 지었다.

“탈출하다 적군이 모인 연무장에 잘못 들어가 죽은 기사라. 되게 멍청해 보인다.”

그녀가 기운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갑자기 분노를 터뜨리다 막상 풀죽은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적군 앞에서 그녀는 지나치게 솔직한 모습이었다. 제드는 그녀의 행동거지에 참신함을 느꼈다.

생각해 보니 웃기긴 했다. 하필 연무장으로 도망치다니, 어디 가서 이런 말을 하면 싸구려 농담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제드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그는 자신의 입에 오랜만에 미소가 서렸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창살 너머에 앉아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에스텔 역시 창살에 닿았던 손을 떼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채 다시 제대로 앉았다.

제드가 물었다.

“아까, 그놈들에게 지나치게 쉽게 잡혔던데, 일부러 잡힌 건가?”

“너 같으면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일부러 여기 잡히겠냐? 덫에 걸렸어. 정해진 길이 아니라면 덫에 걸리게 되는 구조라니, 지나치게 방심했단 말이지. 공작은 몰라도 아까 그 백작이라는 놈 보통이 아닌 것 같아.”

에스텔이 다시 이를 으득으득 갈며 말했다.

눈빛에 어린 살벌함에 제드는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생각해 보니 그때 잡혔던 그녀의 발목 하나에는 밧줄이 묶여 있었다. 아마 교묘하게 쳐진 함정에 걸려든 모양이었다. 라흐시 백작이 자신한다던 그 보안 중 하나겠지.

“아, 그런데 진짜 왜 온 거야? 내가 지금 이 질문을 지금 세 번째 하는 거 알아?”

제드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지금 자신이 에스텔과 ‘대화’라는 걸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사인 그가 적군과 나누는 대화는 극히 적었다. 아니, 오로지 검으로 말할 뿐.

버나드의 말대로 그는 창살을 사이에 두고 대화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에스텔의 호기심 어린 눈을 보고 제드가 대답했다.

“그쪽이 궁금하군.”

“뭐? 왜?”

“얼샤의 이슈타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기사단의 단장이라니 궁금한 건 당연할 텐데?”

에스텔이 그 말을 듣고 허,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참으로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는 표정이었다.

“내가 감옥 안에 있는 걸 감사해. 그런 말 하는 놈들 면상을 발로 다 후려갈겼거든.”

“그리고 여자가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처음이고. 행동거지가 영락없는 남자 같군.”

“내가 행동거지가 남자 같고 성별이 여자인 게 뭐가 어때서 그렇게 궁금하실까?”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지. 여자는 근력도 남자에 비해 떨어지고, 체력 역시 약하니까.”

“야!”

에스텔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여튼 이런 새끼가 더 짜증 난다니까. 너네 기사들은 평민도 선출한다면서. 그럼 스승을 구할 돈도 없고, 검을 살 돈도 없는 평민이 기사가 된 건 신기한 게 아니냐?”

“신기하긴 하지만 그리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그럼, 검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여자가, 우연히 좋은 가문의 후원을 받아 뛰어난 기사가 된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나? 뭐가 그렇게 신기한 건데?”

제드는 그에 반박하려 했지만, 그녀의 말을 곰곰이 떠올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돈 없는 평민이 기사가 된 것. 재능 있는 평민 여자가 지원을 받아 기사가 된 것.

생각해 보니 성별이 다르다는 것 빼고는 특별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검술이 강하다면 평민과 귀족이 상관없듯 남자와 여자가 뭐가 상관이 있겠는가.

“틀린 말은 아니로군.”

“그러니 날 구경거리로 여기지 말아주겠어? 상당히 불쾌해. 아까 여기 기사단 놈들도 단체로 구경하고 가서 기분 더럽단 말이야.”

“사과하지.”

제드가 말을 시원스럽게 내뱉자 에스텔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접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럼 구경 다 끝났으면, 어서 꺼져줄래? 보면 알겠지만 나 기분 안 좋거든?”

“아직 물어볼 게 남았는데.”

“뭔데?”

“너는 대체 왜 그렇게 싸우는 거지?”

“뭐?”

그녀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걸 왜 묻는 건데?”

“사람의 행동에는 목적이 있지. 그렇게 나라에 맹종하며 따르는 이유가 뭐지? 게다가 전쟁의 원인은 이쪽이 아니라 네 나라에 있지 않나?”

에스텔은 눈을 크게 뜨며 제드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서늘한 비웃음을 지었다.

“전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어? 이소타 왕비 전하의 일은 사고라고 말했는데 들어주지도 않았잖아.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전쟁을 일으킬 생각 아니었어?”

제드는 그 말에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역시 얀스가르의 국왕이 어차피 얼샤를 침공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제드가 반박하지 않자 에스텔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제드를 힐끔거리며 바라본 뒤, 입을 열었다.

“그러는 그쪽은?”

“뭐?”

“그쪽도 목적이 있을 거 아니야?”

막상 그녀에게서 질문이 되돌아오자 제드는 말문이 막혔다. 바로 대답할 수 없었던 탓이다.

자신의 아버지 외에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제드의 얼굴을 보며 에스텔이 물었다.

“그쪽, 사람 죽이는 거 좋아해?”

“아니.”

제드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예전, 이오지프와 함께 전장에 참전했을 때의 참혹한 기억이 떠오르고 있었다. 사람을 죽여야 한다면 죽이지만, 그것을 즐기지는 않았다.

“아니면 역시 그건가? 공을 세워서 권력을 획득하는 거?”

“내가 그 미친놈들과 똑같아 보이나?”

“아니면 바이두에 대한 충성심인가?”

제드는 대답할 수 없었다. 충성심은 더더욱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기사로서 검을 휘두르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에게 목적이 있었던 것인가?

에스텔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호박색 눈이 마치 제드의 심연 속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이내 그녀가 알겠다는 듯 코웃음 치며 말했다.

“너, 목적이 없구나? 그냥 되는대로 살아왔던 거네.”

제드는 그 말에 대답하려 입을 열었다. 그러나 에스텔이 더 빨랐다.

“네가 사람을 많이 죽이고 안 죽이고는 나랑 전혀 상관없어. 나도 똑같으니까. 그런데 아무 목적도 없는 새끼한테 얼샤의 기사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면 죽여 버리고 싶어.”

어느새 그녀의 얼굴에는 장난기도, 웃음기도 사라졌다. 그녀의 눈은 더없이 진지하며, 그를 꾸짖는 것 같았다.

“그러는 너는? 너는 얼마나 대단한 목적이 있기에 그렇게 잘난 듯 행동하는 거지?”

“나?”

어차피 그녀는 국왕에게 이용만 당하는 신세였다.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알기는 하나? 무엇을 안다고 저런 눈으로 자신을 보는가.

제드는 그녀의 입에서 나올 대답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녀가 한 대답은 그의 예상과는 달랐다.

“뭐긴 뭐야, 당연히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지.”

“……뭐?”

나라를 왜 지키냐고 물어보니, 나라를 지키는 게 이유라고? 제드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검을 쓸 수 있다면 그걸 마땅히 다른 이들을 위해 써야지 그걸 왜 썩혀? 날 발견하고 인정해 준 나라야. 그런 나라가 위험에 처하면 돕는 게 당연한 거잖아?”

설마, 그게 정말 이유라는 것인가? 나라가 그녀를 인정해 줬으니 보답을 해야 한다는 게?

거창한 신념을 기대했던 그로서는 다소 맥이 빠지는 대답이었다.

“나는 이 나라가 좋아. 내가 검을 쓰는 능력이 있다면, 내 검으로 이 나라와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

제드는 눈을 크게 뜬 채 그녀를 보았다.

참으로 어리숙하며 아이 같은 이유였다. 천진함이 도가 넘어 순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두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살육과 배반에 찌들어 삶의 목적을 상실한 제드와는 달랐다.

“나라 전체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은 더 늘어나게 되겠지. 난 끝까지 노력할 생각이야.”

“…….”

“그런데 너희가 내 나라를 망치고 있잖아.”

그녀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제드가 입을 열었다.

“항복을 한다면 더 이상 나라가 망쳐지지 않을지도 모르지. 네가 항복한다면 더 많은 사람이 다치지 않을 거야.”

제드의 말에 에스텔이 웃었다.

“나더러 항복하라고? 그냥 죽으라고 하지그래? 검을 든 기사가, 불의와 두려움에 항복하면 그게 기산가? 겁쟁이 고양이지.”

“정의로운 기사 그 자체로군. 기사의 귀감이야.”

“몰랐어? 내가 항상 내 동료들에게 말하고 다녀. 나는 죽어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되어 영원히 기억되고 싶거든.”

에스텔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드는 어이가 없었다.

죽어서도 별이 되고 싶다고? 죽으면 다 끝이었다. 그는 이 여자가 장난으로 말하는 건지 아닌지 궁금했다.

“좀 웃긴 별로 두고두고 기억되겠지만 적어도 배신자로 기억되진 않을 것 같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인생이었어.”

그녀가 으쓱했다. 그 미련 없는 태도는 지나치게 가벼워 현실감이 없었다.

“동료들이 구하러 오진 않을 것 같나?”

“글쎄.”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다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에 제드는 에스텔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여자치고는 탄탄한 근육이 잡혀 있었다. 얼핏 보면 소년처럼 보이지만 또 여자라는 것을 알고 보면 여자같아 보이긴 했다.

여자다. 틀림없는 여자다.

어떻게 보면 겨우 여자에게 목적이 없다며 훈계와 비웃음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녀의 단순한 모습이 기이하리만치 큰 울림을 주었다.

왜 이러는 거지? 제드는 알 수 없었다.

그때 창문에서 펑, 하는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그에 에스텔이 창문을 바라보았다.

설마,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제드와 에스텔이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파란색의 자그마한 폭죽 하나가 밤하늘에 예쁜 불꽃을 그린 채 사라지고 있었다.

“오늘 축제라도 해? 저 불꽃은 뭐야?”

에스텔이 그걸 보며 제드에게 묻자 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걸 나한테 묻는 건가? 지금 적국의 기사인 내게?”

“하긴 그러네.”

에스텔이 어깨를 으쓱했다.

화약 가게에서 오발 사고라도 난 모양이지. 아니면 라흐시 백작이 무슨 조치를 취할 것이다.

제드는 창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참 예뻤어. 파란색 불꽃이라 꽤 마음에 드네.”

에스텔이 웃으며 말했다.

별로 화려하지도 않은 불꽃인데 그게 뭐가 예쁘다고. 평민이라서 그런가, 참으로 소박했다.

제드는 에스텔의 소년과 같은 천진한 웃음에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제드는 그녀의 얼굴에 장난기 어린 보조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왜 쳐다봐?”

에스텔의 말에 제드가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죽는다는 사람치고는 참 태평해 보여서.”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잖아? 마지막까진 믿어볼래.”

기적이라고? 에스텔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그가 그것을 더 물어보려는 때였다.

“아, 맞다. 나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뭐?”

에스텔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먹을 것 좀 주라. 저쪽 기사들이 자꾸 먹을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치네.”

제드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에스텔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내게 먹을 것을 가져다 달라는 건가?”

“안 돼? 그럴 능력 없어?”

“안 되는 것과 싫은 건 구분하라고 충고하고 싶군. 어차피 죽을 인간에게 먹을 걸 줘서 뭐 하자는 거지? 식량 낭비라도 하라는 건가.”

그 말에 에스텔이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전장의 흑사자 좋아하시네, 이 쪼잔한 자식.”

“…….”

“솔직히 그쪽도 인정하지? 그쪽은 쪼잔한 고양이야, 고양이. 흑사자가 아니라 까만 고양이.”

에스텔의 조롱에 제드는 이를 으득 갈며 말했다.

“네가 갇혀 있다는 것에 감사해. 이 창살만 아니었어도 널 가만두진 않았을 테니까.”

“오, 나도 그거 말하려고 했는데. 이거 아니었으면 그 잘난 척하는 면상에 주먹을 날렸을 거거든.”

역설적이게도,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쇠창살은 이렇게나 기묘한 평화를 제공했다.

그러다 제드는 자신이 여자한테 저런 충동을 느꼈다는 것을 깨닫고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저 여자는 항상 그녀가 여자라는 걸 잊게 만들었다.

제드 인생에 저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오지프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제멋대로인 인간. 그러나 참으로 반짝이는 인간이었다.

제드는 그녀의 단순함이 이상하게도 부러웠다. 그것은 선망인가, 질투인가. 그도 정의 내릴 수 없었다.

***

“이슈타르와의 대화는 어땠습니까?”

“이슈타르는 무슨.”

제드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에 버나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말하고서도 커다란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2황자인 이오지프를 욕할 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하긴, 이슈타르라기보단 꼭 고양이 같더군요. 야생 고양이.”

“고양이…….”

제드의 얼굴이 와그작 구겨졌다.

방금 농담을 한 건데,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버나드의 동공이 흔들렸다.

“경, 내가 고양이 같나?”

“무슨 개소…… 아, 아니, 누가 그런 미친 소리를 합니까!”

버나드가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저 사람이 고양이라면 평범한 인간들은 다 쥐새끼라도 된다는 말인가?

제드는 버나드의 격렬한 반응에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

농담이었겠지? 게다가 자기가 고양이 같냐니, 무슨 그런 악취미적 발언을.

고양이와 제드를 가져다 붙이니 소름이 끼쳤다.

버나드는 애써 머릿속에 떠오른 그런 흉악한(?) 상상을 제거하려고 노력했다. 가끔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경은 에스텔 슈페르트가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각하께서 들어가 계셔도 그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아무리 공작가의 기사들이 어눌해도 저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설령 에스텔이 두꺼운 쇠창살을 뚫고 나오더라도, 탑과 성을 연결하는 곳에는 또 다른 잠금장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바깥에는 약 스물의 기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곳에 잠입한 게 에스텔 슈페르트뿐일까?”

“보아하니 남자들에 한해서는 신원 조사를 꽤나 철저히 한 모양이더군요. 아마 들어오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렇군.”

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우린 내일모레 준비된 보급품을 가지고 떠나면 됩니다. 라흐시 백작이 서둘러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라흐시 백작이 이번 일로 성과 비밀 보급소의 보안을 철저히 했다는 건 들어 알고 있었다.

물건을 옮기는 제드와 얀스가르의 기사단은 상단으로 위장하리라는 것도.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계획이었다.

이제, 이대로 떠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왜 또 왔어? 내가 탈출할까 봐 무섭나?”

에스텔이 웃으며 물었다. 그녀는 이번에는 아예 제대로 누운 상태에서 제드를 마주했다.

제드는 말없이 쇠창살 사이에 빵을 던졌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 들었다.

“오, 진짜 가져왔네. 고마워, 잘 먹을게.”

그녀는 빵을 한입 베어 먹었다. 그녀의 얼굴이 행복감으로 물들었다.

제드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독을 넣을 거라는 생각은 없는 건가? 너는 적국의 기사이며, 우리 군에 치명적인 피해를 줬어.”

“뭐,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아니야? 그래도 내가 엄청 신기해서 여기에 왔을 거 아니야? 여자가 검을 쓰니 신기하지? 뭔가 좀 특별해 보이지? 독이 든 빵을 주면 내가 재미없게 죽어버리잖아.”

“되는대로 지껄이지 마.”

대체, 저 사람의 머릿속은 뭐로 이루어졌을까?

그러면서도 짜증 나는 건 자신이 그 말에 부정할 수 없다는 거였다.

에스텔은 빵을 먹고 목이 막히는지 콜록대다가 제드가 내민 물을 마셨다.

“기적이 일어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군.”

“그런가?”

“이게 마지막 만찬일 수도 있어.”

“곧 죽을 사람이라며 이렇게 내게 먹을 걸 주다니, 꽤나 고마운데.”

그녀가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다 그녀는 얼굴에 표정을 지우고 쇠창살 근처로 다가와 노골적으로 제드를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그녀의 호박색 눈이 제드와 마주하고, 그의 육신을 훑었다.

제드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그녀의 눈을 마주했다. 그녀와 제드는 가까이에서 서로를 응시했다.

“그거 알아? 내가 여기서 만약 나가게 된다면 그땐 꼭 널 이길 거야.”

제드는 그 말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유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곧 죽을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럴 기회가 있다면 얼마든지.”

제드의 가라앉은 말에 에스텔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작별 인사일까, 생각하던 그때 에스텔이 말했다.

“이길 기회? 충분히 많지.”

그와 동시에 갑자기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감옥 안이 불빛으로 환하게 물들었다.

또 불꽃인가? 이번에는 좀 크군.

제드가 눈을 좁히며 그것을 바라볼 때, 그는 에스텔의 눈이 번뜩이는 것을 보았다.

좁은 창 너머 보이는 도시가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제드는 그 불꽃의 의미를 알고 표정이 굳었다.

“너…….”

“내가 제일 잘하는 게 방심한 놈들의 허를 찌르는 거거든.”

에스텔이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제드는 강한 진동을 느낌과 동시에 사람들의 고함 소리를 들었다.

적군이 기습한 것이었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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