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최악의 기사 (2)
2018.02.05.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방 안을 푸르게 비췄다.
칼리드는 테이블 위의 잔을 들어 포도주를 마셨다. 마치 그녀가 마지막으로 흘렸던 핏방울과 같은 색이었다. 칼리드는 잔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슈타르가 하늘에 반짝이고 있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그는 한참 동안이나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밝아오는 태양을 마주하며 그가 입을 열었다.
“에스텔.”
언제나 그는 혼자서 그녀에게 말을 건네고는 했다. 그녀의 죽음 이후로 그렇게.
“지금 정도면 알았으려나?”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알았지만, 유독 순수한 너는 알지 못했지.”
한 점의 더러움이 없는 기사. 검을 든 채 선두에 나서서 목숨을 바친다. 그 모습이 얼마나 찬란했는지, 그 쓰레기 같은 기사단원 모두가 그녀에게 매료되었다.
그러나 에스텔의 생은 끝났고, 진실을 알 시간이 다가왔다.
“너는 절망하겠지. 상처 입고 울겠지.”
절망하는 그녀의 곁에서 그녀의 눈물을 닦고, 입을 맞추고, 안아주고 싶었으나 애석하게도 그녀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네가 얼샤에서 모든 진실을 알게 되지는 않길 바라.”
그는 다시 한 번 목을 축이려 포도주를 들이켰다.
“마지막 진실을 말하는 건 내가 될 테니까.”
하지만 진실을 말하게 된다면, 그녀가 그걸 알게 된다면, 에스텔은 분명 자신을 이해해 줄 것이다.
어디서부터 기만의 시작이었는지 자신도, 그녀도 모른다.
그는 에스텔을 새벽의 이슈타르로 만들었다. 어두운 밤, 자신을 이끌어줄 단 하나의 길잡이로.
에스텔은 최후까지도 기사였다.
“에스텔.”
칼리드는 고개를 돌려 어느 지점을 바라보았다.
사람의 동그란 두개골이 하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가엾은 에스텔.”
그의 자안에서 눈물이 맺혀 떨어지기 시작했다.
***
“하인트 공!”
라흐시 공작의 목소리를 들은 루시펠라는 고개를 퍼뜩 들었다. 제드가 루시펠라와 라흐시 공작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루시펠라의 눈이 번쩍 떠졌다. 제드다. 제드였다. 루시펠라는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마치 길을 잃다 보호자를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그에 제드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왜?”
루시펠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정한 눈빛에 루시펠라는 진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언제나, 제드의 따스한 손은 그녀를 안심시켜 주었다.
“공작, 영애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나 보군.”
“아침에 우연히 만났어요.”
라흐시 공작이 대답했다. 제드가 루시펠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지?”
그녀가 입을 벌려 말하려 했다. 그러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제드가 그녀의 표정을 보더니 묻는 듯한 표정으로 라흐시 공작을 바라보았다. 그에 라흐시 공작이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별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그 여자 기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에요.”
“그 여자 기사?”
“에스텔 슈페르트요.”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칼로 베이는 것 같았다. 그녀의 입에서 그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기이한 희망이 생겨났다.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지금, 제드가 무엇이라고 반박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제드는 에스텔을 훌륭한 기사라고 생각하니까, 무언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기사에 대해서? 대체 왜?”
“영애께서 그 기사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계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현실을 알려줬을 뿐이에요.”
“현실?”
“얼샤의 이슈타르가, 사실 파비아누스의 고양이었다는 거 말이에요.”
그에 제드의 눈썹이 살짝 좁혀졌다. 루시펠라는 그가 그 말을 못마땅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께서도 잘 아시잖아요? 결국 그녀가 나라를 지킨다며 권력을 지켜왔던 거. 결국 그녀가 얼샤를 망하게 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 여자가 최악의 기사가 아니면 무엇이었을까요.”
이 상황은 티 파티 때와 똑같았다. 에스텔을 매도하는 칼리드에게 그는 어떻게 대했던가. 그는 칼리드를 경멸하며, 그녀를 훌륭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저 여자의 시각은 지나치게 편향적인 시각이다. 그게 사실일 리가 없다. 그녀가 잘못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간절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제드, 제발 아니라고 말해줘.
그때처럼 다시 내가 훌륭한 기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해줘.
그럼 그녀는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차마 입으로 말할 수는 없는 애원을 하며, 루시펠라는 그 팔을 더 꽉 잡았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간절히 바랐다.
제발, 내가 잘못 살았다고 말하지 말아줘.
그때 제드의 입술이 열렸다.
“틀린 말은 아니군.”
그 말을 듣자 루시펠라는 땅이 무너져 내린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았다.
그 말을 한 제드는 딱히 억지로 말을 하는 이의 표정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도 자신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 왔다는 소리였을까? 훌륭한 기사라고 생각한다면서. 그게 아니었던 거야?
“확실히, 그녀는 최악의 기사였지.”
그의 입에서 ‘최악의 기사’라는 말이 나왔다. 그것이 꼭 확인 사살과도 같았다.
“파비아누스 왕도, 아렌트 왕도 어리석은 자들이었으니 말이야.”
제드가 말을 덧붙였다. 그는 라흐시 공작이 이야기했던 것을 하나도 부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긍정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긍정과 더불어 그의 수긍은 루시펠라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저 여자가 한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제드는 라흐시 공작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으면 바로잡아 고칠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에스텔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건, 모두 이 사실이 거짓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또 무슨 이야기를 했냐면 칼리드 루이르크 공작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어떤 이야기였나면…….”
칼리드의 이야기를 하자 제드가 눈을 찌푸렸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나는 약혼녀를 방으로 데려다줘야 할 것 같군.”
제드의 시선은 어느덧 루시펠라를 향해 있었다. 라흐시 공작도 루시펠라의 안색이 창백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세상에, 제가 영애를 살피지 못했군요. 아까부터 조금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루시펠라는 그에 차마 아니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제드가 루시펠라의 손을 잡고 그녀를 저택 안으로 데려갔다.
꼭 꿈을 꾸는 듯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계단을 올라 복도를 걸을 때였다.
“라흐시 공작이 무슨 말을 한 거지?”
제드의 서늘한 음성이 들렸다. 그는 당장에라도 라흐시 공작이 무슨 행동을 했다면 되갚아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참으로 그는 든든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에스텔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던 걸까?
훌륭한 사람이지만 최악의 기사라고? 그는 어떤 쪽으로 생각하는 걸까?
루시펠라는 제드가 에스텔을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자신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애.”
그것은 루시펠라가 아닌, 그녀 안에 있는 ‘에스텔’이 사랑을 받길 원한다는 소리였다.
에스텔은 사랑받길 원했다. 껍데기인 루시펠라가 아니라 에스텔이.
그러나 그녀는 이 남자가 ‘루시펠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리석은 기사 에스텔이 아닌 레이디인 루시펠라를.
그것은 엄밀히 다른 욕구였다.
갑자기 깨달아 버린 엄청난 사실에 루시펠라는 맞잡은 그의 손을 놓았다.
“루시?”
“…….”
“무슨 일이야, 루시?”
그녀가 한 걸음 뒷걸음질 치자 그가 한 발짝 다가왔다.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뒤 다시 제드를 보았다. 이제야 그녀의 현실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루시!”
이름을 부르는 제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은 루시펠라가 아니었다.
***
“요청해도 전하는 들어주지 않을 거야. 그분은 그런 분이 아니니까.”
에스텔이 국왕에게 고하려 할 때면 칼리드는 항상 그녀를 만류했다.
이소타 전하의 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간언과 충고를 하려 했지만 기사단원들 역시 그녀를 항상 만류했다. 그들은 변화를 염려한 것이다.
“내가 전하께 말씀드릴게. 그게 더 모양새가 좋잖아.”
칼리드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평민에다 여자였으며, 그런 그녀가 기사가 된 것은 기적적인 일이었다.
기사단장이라도 평민이 국왕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아 보일 리가 없었다. 만약 말한다면 귀족, 그것도 공작인 칼리드가 말하는 게 더 나았다.
칼리드의 말이 설득력이 있기에 에스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가 진짜로 간언을 올렸는지 확인해 본 적이 있었던가?
에스텔이 단장이 되고 칼리드가 부단장이 되었다.
단장. 단장이라니!
그녀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그러나 그녀는 칼리드가 자신의 아래에 있다는 것을 단순히 무력의 우위로 생각했지, 그것이 어떤 배경에서 이루어진 건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칼리드가 괴로울 거라 생각해서 위로했다. 그러나 정작 가브라인 공작의 죽음에 대해 의심한 적이 있었나? 그렇게나 의문점이 많았는데, 그녀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지키기로 했다. 그래서 이소타 전하의 죽음에도 에스텔은 검을 들었다.
비록 국왕이 실수를 하긴 했지만, 그것은 사고였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얀스가르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게 먼저였다.
복잡한 정치 따위,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
그저 그 안에서 곧은 신념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렇듯, 남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는 단 한 번도 ‘괜찮냐’고 다른 이들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특히나 자신의 곁에 있던 칼리드에게.
기사단원들은 이런 점을 알고 있었을까? 자신들이 무슨 행동을 벌인 건 줄 알고 있었던 것일까? 나라를 지킨다는 게, 나라가 아니라 귀족들의 권력만 지켜주었다는 것임을 알고 있었을까?
맨 처음, 루시펠라가 택한 것은 도피와 부정이었다.
한 사람만의 시각으로 이루어진 평가다. 풍족해진 얼샤가 그 증거라고? 아니, 그저 이 도시뿐일 수도 있다. 그녀가 잘못 알았을 수도 있다.
저 라흐시 공작은 당시에는 무척이나 어린 레이디였다. 그런 그녀가 정치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하지만 제드는 그것을 긍정했다.
에스텔 슈페르트가 권력의 앞잡이이며 나라가 멸망하는 데 일조했다고 했다.
“에스텔, 짐 역시 백성들을 미소 짓게 하고 싶다.”
파비아누스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불가능하더구나.”
그는 귀족들을 호령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에스텔은 그들이 얼마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두 눈엔, 귀족들은 파비아누스를 괴롭히는 사람들로 보였다.
“짐에게는 너와 네 기사들뿐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워다오.”
파비아누스 국왕은 늘 그렇게 말해왔다.
“에스텔, 사람들을 모두 미소 짓게 하는 건 불가능해.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칼리드가 그렇게 말했다. 에스텔은 그래서 그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찢어질 듯한 가난. 에스텔은 그 안에서 성장해 왔다. 모든 이는 궁핍했고, 모든 이가 배가 고팠다.
사람들이 웃을 수 있는 세상, 배를 곯지 않아도 되는 세상. 배가 고파 사람들이 죽고, 추위에 얼어 죽지 않는 세상을 원했다.
그러나 그런 세상이 과연 존재하긴 한단 말인가. 그런 세상을 꿈꾸었지만, 그것을 실현시키는 건 꿈처럼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그녀는 자신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바뀌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나라를 지키려고 몸 바쳐 검을 휘두를 수는 있다. 그것이 에스텔이 선택한 길이었고.
하지만 그 길은 잘못된 것이었다. 지금의 풍족한 얼샤가 그 증거였다.
그녀는 자신 안의 에스텔에게 묻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싸워왔던 거지?
검을 잘 쓰고, 그런 자신의 재능을 가브라인 공작이 발견했다.
파비아누스 국왕은 그녀를 아껴 기사단 단장으로 삼았다. 그들을 위해 나라를 지킨다. 사람들이 웃는 세상을 위해서. 미력하나 자신의 힘을 보태려고 했다.
그 끝에, 죽음이 기다려 아스트라의 품에 안기더라도.
그런데 그게 잘못된 거라고? 자신의 행동이 저들을 더 불행하게 만들었던 거라고?
문을 닫고 들어온 루시펠라는 눈물을 꾹 참으려 이를 악물었다.
방 안엔 아무도 없었고, 그녀는 방문을 잠갔다.
어느새 해가 떴는지, 창의 커튼 사이로 서광이 비치고 있었다.
그녀는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며 울음을 삼켰다.
주위를 둘러본 그녀의 시선이 성의 창에 머물렀다. 그녀는 창으로 다가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커튼을 천천히 젖혔다.
성은 언덕 위에 있었고, 따라서 도시의 정경이 너무도 눈에 잘 들어왔다.
회색의 먼지가 자욱한 도시가 아닌 생기가 가득 찬 도시의 모습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도시가 잠에서 깨어나 사람들이 바깥으로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굳이 얼굴을 자세히 보지 않아도 그들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삶을 겨우 연명해 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아닌, 희망에 찬 표정.
다리에 힘이 풀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그렇게나 원했던 풍경인데 왜 자신의 신념은 이것과 반대되는 것이었을까.
왜 자신이 죽고, 신념이 짓밟혀서야 이들은 가장 커다란 행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나 노력했는데, 열심히 살아왔는데.
사람들의 불행을 방관하고, 권력의 앞잡이가 된 기사. 동료의 괴로움의 원인을 알려고 하지 않았던 기사. 레이디를 지키기로 맹세했음에도 이소타 황녀가 학대받은 것을 모르는 척하며 방관했던 기사.
그야말로 자신은 최악의 기사가 아니던가.
“에스텔은 검을 잡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전, 클로렌스의 티 파티에서 칼리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칼리드는 그것이 자신의 진심이라고 말했다.
칼리드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기사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꽉 다문 잇새로 흐느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에스텔 슈페르트는 잘못 살아왔던 것이다.
***
“저희 영지는 정경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나중에 에른 숲을 지나치실 텐데, 그곳의 수백 년 된 고목은 꼭 보고 가시는 게 좋습니다. 에른 숲의 특징을 말할 것 같으면…….”
도우비 남작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제드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얼샤에 도착하고 나서 약 2주 정도 루시펠라는 완전히 말수가 줄어버렸다.
건강이 염려되었지만 그녀는 식사를 거르지 않았고, 일정에도 군소리 없이 잘 따라왔다.
단지 말이 없는 것뿐이었다.
어떠한 설명도 없이 루시펠라는 변해 버렸다.
무슨 사정이 있을 것이며, 언젠가는 이야기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루시펠라가 입을 열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루시펠라는 하녀에게조차 입을 열지 않았다고 했다.
사용인들에게 침묵을 지키는 귀족. 사실 당연할지도 몰랐으나 잘 지켜지지 않는 것 중 하나였다.
제드의 집사조차 제드의 속마음을 파악했고, 어떤 일 때문에 그가 분노하고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속을 털어놓지 않은 채 그녀는 말라 시들어가는 것 같았다.
제드는 그 옆에 있으면서 그것이 답답했다. 그리고 초조했다.
마치 호숫가에서 나눴던 입맞춤의 흔적은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그녀의 변덕이 심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루시펠라가 자신을 외면하면 그대로 관계는 끝나는 것이다. 루시펠라는 무언가에 크게 충격을 받았고, 상심했다.
그러나 제드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제드는 답답함을 꾹 눌러 참았다. 인내, 인내뿐이다.
사정을 묻지 않고 기다려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 그녀가 도움을 청할 때 가장 먼저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제드는 자신 역시 지쳐 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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