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사소한 다툼
2018.01.04.
“나는 하인트 공을 이해할 수 없군. 그 위험한 곳에 가겠다는 걸 수락한 건가?”
이렇게 싫은 소리를 들을 줄은 알고 있었다.
백작은 제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소파 너머로 그 시선이 제법 매서웠다.
“영애의 안전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제드는 혹시나 아이딘 백작이 공연한 걱정을 할까 염려되어 굳이 말을 덧붙였다.
아이딘 백작은 여전히 제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곤 별로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대답했다.
“그래, 공을 믿어보도록 하지.”
백작은 마지못한 듯 말했다. 제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허락이 생각보다 쉽게 내려졌다.
“한데 요사이 이오지프 전하 쪽으로 돌아섰다던데, 그게 사실인가?”
제드는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놀랐다.
루시펠라가 편지로 아이딘 백작이 허락했다는 소식을 전해줘서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간단히 넘겨도 되는 건가?
심지어 제드는 백작이 루시펠라에게만 표면적으로 허락을 내린 거였고, 실질적으로 어디든 못 가게 설득하라는 소리를 들을 각오까지 했다.
“그것은.”
“본디 이럴 생각이었나 보군. 하긴 예전부터 공작은 공작의 성향을 드러내 오고 있지 않았나.”
“아닙니다. 제가 그렇게 행동했던 건…….”
제드는 말끝을 흐렸다.
그날, 루시펠라가 당한 일에 대해 그가 말할 자격은 없기 때문이었다.
신관의 인장이 찍힌 침묵의 서약에 이름을 적은 것과 별개로 제드는 루시펠라의 비밀을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할 생각이 없었다.
따라서 그는 ‘루시펠라 때문에 가담했다’라는 간단한 암시조차 할 수 없었다. 만약 무엇 때문이냐고 묻는다면 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뭐, 피차 마찬가지겠지.”
백작이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그에 제드는 어차피 말했어도 자신이 본래부터 2황자파였다는 백작의 생각이 바뀌지 않았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무엇 때문일까.
제드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꼭 그는 제드에 대해 부정적인 쪽만 골몰하는 것 같았다.
“이번 얼샤 5공작령 순방이 끝나면, 영애와 결혼할 생각입니다.”
제드는 백작의 얼굴을 보며 이번 방문의 목적인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결혼?”
“돌아와서 정식으로 청혼하겠습니다. 이번 겨울에 결혼식을 올릴까 합니다.”
아이딘 백작의 표정이 굳었다. 제드는 의아했다.
왜 이렇게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거지?
제드는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아이딘 백작이 부정적인 감정을 품은 건 확실했다. 굳이 말로 정의하자면…….
제드는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에 고개를 저었다.
“그래, 언제까지 약혼 관계로만 있을 순 없겠지.”
그러나 백작은 이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드는 그에 안심했다. 하긴, 선대 하인트 공작과 같이 의논하여 약혼한 게 아이딘 백작이 아니던가.
아이딘 백작은 입을 열어 말했다.
“하지만 나도 조건을 하나 제시해야겠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이딘 백작은 지나치게 고자세였다. 기실 그것이 거슬렸으나, 제드는 결혼에서는 자신이 약자라는 것을 알았다.
“이번 순방이 끝나고 나서도 루시가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면 약혼에 대해 재고할 생각이라네.”
“…….”
순간적으로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방금 저 남자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약혼이란 게 그렇게 마음대로 파기하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것은 하인트 공작가에 대한 모독이었다. 제드는 화가 났지만 애써 그 화를 가라앉혔다.
“납득할 만한 대답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드의 낮게 가라앉은 음성에도 아이딘 백작의 눈빛엔 흔들림이 없었다.
“루시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 위해 그러는 거라네. 내가 너무나 경솔하게 약혼을 결정한 것 같군.”
“…….”
“제가 영애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아이딘 백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제드는 아이딘 백작의 말에 화가 났으나, 그 말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그는 ‘하인트 공작가를 무시하냐’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제드 역시도 루시펠라를 모르니 그녀의 마음을 몰랐다. 만약 ‘억지’ 결혼이라면 루시펠라에게도 불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곧 결혼할 사이.
이 얼마나 안전하며 안이한 울타리란 말인가.
그러나 제드는 어차피 그것에 만족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금제를 걸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래서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제드는 아이딘 백작을 향해 말했다. 딸의 행복은 그도 모르는 게 아닌가.
그는 상당히 분노했으나 약혼녀의 아버지이며, 아이딘 백작 역시도 상당한 자산가여서 자신에게 아쉬울 게 없다는 점을 떠올렸다.
백작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나온 제드는 백작의 방문 앞에서 애써 화를 삭였다.
무언가 질척이는 기분이었다. 저렇게 말을 바꾸려면 대체 왜 약혼을 하자고 한 것인지.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좀 전, 아이딘 백작으로부터 읽었던 감정은 이상하게도 ‘질투’라는 느낌이었다. 그의 감이 정확한 편이 아니지만.
제드는 그 기묘함에 다시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다 그는 이 집 안에 루시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쓴맛 다음에 단맛이라고, 루시펠라의 얼굴을 볼 생각을 하자 기분 나쁜 감정이 사라졌다.
그는 루시펠라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
“각하를 뵙습니다.”
마침 복도를 걸어오던 하녀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루시펠라가 가까이 두던 하녀였다.
“영애의 건강은 오늘도 괜찮은가?”
그의 물음에 하녀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몸은 건강하신데 오늘은 기분이 좀 많이 안 좋으신가 봐요.”
“또 왜?”
“로에르 후작저에 방금 다녀오셨는데 그러시네요. 정확한 이유는 저도 잘 몰라요. 하지만 각하를 보면 많이 좋아하실 거예요.”
기분이 나쁜데 자신을 보면 기분이 좋아질 거라고? 지금의 자신처럼?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드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
집으로 돌아온 루시펠라는 자신의 방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제드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머리가 아픈데 이번에는 클로렌스가 문제였다. 그녀는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친구와 싸운 것은 처음이었다.
에스텔이었을 적, 누군가가 자신에게 이렇게 화를 낸 적이 있었나?
사실을 말하자면, 엄청 많았다.
다만, 그녀와 거리가 가깝지 않은 이들이 냈던 화라는 것 정도였다. 대부분 에스텔이 신경도 쓰지 않은 자들.
물론 가까이에 둔 동료들과도 다투긴 했다. 그러나 굳이 말하자면, 어떠한 사안에 대한 ‘의견 대립’이었고, 그것 또한 상황이 해결되면 금세 풀렸다.
그런데 클로렌스가 화를 내자 루시펠라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우선 루시펠라는 오해를 만드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래서 클로렌스가 화를 냈을 당시 루시펠라는 있는 힘껏 자신을 변호했다.
“아니야, 그게 무슨 개소리야! 전하가 날 좋아한다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전하는 내가 제드를 설득해 주길 바라서 날 따라다녔을 뿐이라고!”
루시펠라는 클로렌스가 오해를 했다며 사과하고 다시 웃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클로렌스는 더 화를 냈다.
“그렇다면 그게 그렇게 둘만의 비밀처럼 숨길 거리였나요? 대체 저를 어떻게 봤길래! 제가 화를 내는 건 단순히 질투 때문만이 아니에요! 그 무신경함에 화가 나는 거라고요!”
“뭐가 무신경한데?”
“루시는 제가 아무 말이 없으니까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던 거잖아요. 제게 괜찮냐고 물어본 적 있어요? 전하에게 그런 식의 만남은 그만하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
“루시, 저는요, 전하께서 제게 어떤 마음을 품는지도 모르겠고, 따라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적어도,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게 참을 수밖에 없어요. 전하께서는 저와 거리를 두시는데 루시에게는 그런 것 같지 않아요. 그걸 본 내 심정이 어떨 것 같아요?”
“…….”
루시펠라는 자신의 사정을 설명할 수 없었다. 대신 자신의 무신경함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확실히 클로렌스가 기분 나쁠 만한 일이었다. 왜 이걸 빨리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클로렌스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
“루시, 그거 알아요? 그날, 제가 전하를 협박했어요. 제 말을 따라주지 않으면 전하와 밤을 보냈다고 퍼뜨리고 다닐 거라고. 그래서 마지못해 전하가 제 계획에 동참해 주신 거예요. 전하와 자연스럽게 친해졌던 루시와 저는 달라요.”
다시 클로렌스의 눈에 눈물이 맺혀 흘러내렸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오해라고 밝혀졌는데도 화를 내는 건 루시펠라의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았다. 다만 루시펠라가 확신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사실이었다.
클로렌스는 루시펠라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이오지프를 좋아하고 있었다.
“루시, 돌아가 주세요. 당분간 보지 말아요. 아니, 어차피 당분간 볼 수도 없겠군요.”
클로렌스의 단호한 말에 루시펠라는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 루시펠라는 이렇게 혼자서 고뇌하고 있었다.
역시 자신이 다 잘못한 거겠지?
클로렌스의 표정이 괜찮아 보여서 정말 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괜찮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단 한 번도 괜찮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그게 무신경함이었고, 클로렌스는 그거에 상처받은 것이다.
그러던 루시펠라는 문득 에스텔이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녀의 동료들은 어떤 고난을 감수하더라도 괜찮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말 괜찮다고 확신할 수 있었나? 그녀가 먼저 나서서 괜찮냐고 물어본 적이 있던가?
칼리드의 얼굴이 생각났다. 에스텔은 칼리드가 얼샤에서 어떤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 몰랐다.
과연 자신은 칼리드에 대해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했던가?
클로렌스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했던 것처럼, 에스텔의 주변 인물들은 괜찮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클로렌스의 일을 겪으니 루시펠라는 에스텔의 인간관계도 다시 짚어보게 되었다.
루시펠라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니야. 클로렌스는 레이디였고, 감정을 숨겨야 하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아니, 그랬었나?
클로렌스가 감정을 숨긴 건 레이디라서가 아니었다. 루시펠라를 친구로 생각해서, 그녀를 배려했기 때문이다.
“당분간 만나지 말자는 건,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라는 건가?”
루시펠라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게 영원히 이야기를 나누지 말자고 했던 거면 어떻게 하지?
루시펠라의 머릿속에는 얼샤에 다녀와서도 자신을 모른 척하는 클로렌스가 떠올랐다. 그러자 생각만 해도 삶이 끔찍해지는 것 같았다.
루시펠라는 클로렌스와 함께하는 순간이 즐거웠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젠 제드와 지내는 것보다 훨씬 편했다.
동성 친구를 사귄 적이 없던 그녀에게 클로렌스의 존재는 특별했다. 그녀는 루시펠라의 세상을 넓혀주었다.
‘레이디’의 법칙은 까다로웠지만, 클로렌스와 함께 배워 나가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 생각, 차분하고 섬세한 성품을 좋아했다.
그 좋은 친구를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루시펠라는 더 울적해졌다. 그러다 루시펠라는 울컥했다.
2황자를 좋아했으면 그걸 말해주면 될 게 아닌가! 왜 나한테 화를 내는 건데?! 나쁜 놈은 2황자 아닌가!
루시펠라는 그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자 더 화가 났다.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거야? 그런 건 내가 아니라 2황자 놈에게나 말해야지!”
루시펠라는 소리쳤다. 그러나 그 누구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이따금 방을 정리하던 하녀들이 루시펠라를 힐끔힐끔 쳐다볼 뿐이었다.
이걸 누구에게 상담하지? 역시 클로렌스에게…… 는 미쳤지! 클로렌스와 싸운 건데 클로렌스와 상담하다니 말이 돼?
에레네 부인, 에레네 부인에게 물어볼까? 그럼 해답을 알 수 있는 것일까?
‘아니,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알 필요도 없지. 내가 잘못했는데.’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얼마나 기분이 더러울까. 제드가 자신의 집에 놀러 왔는데 클로렌스와 이야기하며 놀면 자신이라도 기분이 나쁠 것이다.
어떻게 자신은 친구의 감정을 몰라줄 수 있었지?
그녀는 자신의 무신경함이 원망스러웠다.
“이런 게 절교라는 건가?”
루시펠라는 허탈감에 휩싸였다. 왜 자신은 이런 걸까. 조금 더 배려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그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루시펠라는 소파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은 채 들어오라고 대답했다.
문이 열리고 제드의 모습이 보였다. 루시펠라는 그에 눈을 크게 떴다.
문가에 선 제드는 루시펠라의 얼굴을 의아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루시펠라와 눈이 마주치자 입을 열었다.
“통보도 안 하고 찾아와서 미안하군. 아이딘 백작과 적어도 이야기는 나눠야 할 것 같아서 찾아왔어. 그리고 영애가 준비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지 알고 싶어서.”
“……아버지는 보고 왔어?”
“방금 뵙고 오는 길이야. 하녀들이 바쁜 모양이군. 누구도 내가 방문했다는 이야기를 안 해줬나?”
루시펠라는 말해줬나 생각했다. 하녀들은 지금 루시펠라의 갑작스러운 결정 때문에 바빴다. 옷을 새로 맞춰야 했고, 자신들의 짐도 챙겨야 했으니 말이다.
“무슨 일이 있나? 표정이 안 좋군.”
이상하게도 그 말이 위안처럼 귓가에 다가왔다. 아니, 정말로 그는 루시펠라를 염려해 주는 게 맞았다. 그 따스한 말에 루시펠라가 울컥했다.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영애, 지금 울고 있나?”
울음을 참으려는 사람에게 우냐라고 물어보면 더 울음이 나는 법이었다.
“으흡, 큭, 으흐흐흐흡!”
눈물을 애써 참으려는 루시펠라의 사투에 제드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가 서늘하게 물었다.
“누구지?”
***
이오지프는 얼굴을 찌푸리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방금까지 황후와 같이 식사를 하던 그는 황후에게 식사 내내 꾸지람 아닌 꾸지람을 들었다.
“로에르 영애와는 친해진 거니?”
이오지프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자 프리실다는 이오지프를 나무랐다.
혼자 있게 두지 말라고, 외롭게 두지 말라고, 언제나 함께 있어 신뢰를 주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은 남자는 언젠가 버림받을 거라고.
미소는 지었지만 어머니는 그에게 ‘형편없다’고 말한 것이나 같았다.
그는 억울했다. 그도 사실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방에 다다른 이오지프는 반대방향에서 제드가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이오지프의 얼굴이 일순 환하게 물들었다.
“이야∼ 제드! 어쩐 일이야, 이곳에 다 오다니!”
이오지프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제드에게 다가갔다. 그는 제드의 표정이 아주 살벌하다는 것을 알았다.
왠지 도망쳐야 할 것 같은데?
이오지프의 예리한 직감은 도망치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이오지프가 웃으며 발을 떼려 했지만, 제드가 그의 뒷덜미를 잡았다.
“전하!”
“전하!”
시종들과 호위기사가 놀라 그를 불렀다.
“주위를 물리는 게 좋을 텐데.”
제드의 으르렁거리는 듯한 말에 이오지프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설마 이렇게 화난 이유가, 루시펠라의 정체를 알아서 그런 건가?
“물러나도록 해.”
“하지만 전하.”
“어서!”
뒷덜미를 잡힌 채 명령을 내리는 건 참으로 초라한 모습이었다.
이건 아이딘 백작 영애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함이다. 절대 제드에게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오지프는 애써 자신에게 되뇌었다.
시종들이 무언가 제드에게 말하려는 듯했지만, 제드의 표정을 보더니 황급히 도망치듯 사라졌다.
아니, 저들의 주인은 난데?
이오지프가 그들에게 살짝 배신감을 느낄 찰나, 제드가 이오지프의 멱살을 잡아 방문 안으로 패대기쳤다.
황족의 위엄 따윈 제드의 분노 앞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자, 잠깐, 제드! 내 말을 들어봐.”
“유언으로 생각하고 들어는 주지.”
제드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며 미소 지었다. 그 웃음은 이오지프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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