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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법-86화 (86/173)

#86화 분노의 이유

2017.12.25.

“우리 이야기 좀 하지.”

“따라오지 마!”

루시펠라가 소리쳤다. 그러던 그녀는 제드에게 미칠 듯한 분노가 이는 것을 깨닫고 안심했다.

본디 이런 관계였다.

언제나 그에게 화를 내고, 그도 자신에게 화를 내는 이런 관계.

그래, 역시 저 남자를 좋아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이렇게 이유 없이 분노가 터지는 걸 보니. 그런 생각을 품었던 게 바보 같았다.

“영애.”

바로 옆을 따라잡자 루시펠라가 기겁해서 말했다

“아니, 따라오지 말라니까?”

루시펠라는 그가 자신을 따라잡으려 하자 더 빨리 걸었다.

또각또각, 정갈한 발걸음 소리는 어느새 복도 돌바닥을 부숴 버릴 듯 쾅쾅거리는 파괴적인 소리로 변한 지 오래였다.

제드 역시 보폭을 크게 넓히며 루시펠라를 따라 걸었다.

루시펠라는 뭐라 욕을 내뱉으려 입을 열었지만, 이내 입술을 꽉 깨물고 더 빨리 걸었다. 그러다가 결국 그녀가 뛰었다.

“루시펠라!”

“…….”

앞에서 걸어오던 시종들이 눈을 커다랗게 뜨며 그들을 쳐다보았다. 루시펠라는 그러거나 말거나 마차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대체 왜 이러는 거지, 루시!”

그냥 이쯤 되면 대화를 나누기 싫다는 걸로 알아듣고 포기할 법도 하건만, 제드는 참으로 끈질긴 사람이었다. 그는 아주 필사적인 모양이었다.

“이야기 좀 나누자고 하는데, 대체.”

제드의 목소리가 등 뒤로 들려왔으나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뛰던 도중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그가 따라오는 걸 포기했다고 생각한 루시펠라는 걸음을 늦췄다.

그때였다.

탁탁탁탁탁탁!

제드의 빠른 발소리가 들렸다.

“미친! 기사가 이러는 건 반칙이야!”

제드는 가볍게 루시펠라를 따라잡았다. 다리 길이가 다르니 애초에 도망을 가려야 갈 수도 없었다. 게다가 심지어 저 남자는 체력 좋고 신체 능력이 뛰어난 기사였다.

다행인 건 제드가 루시펠라의 앞을 막아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제드는 그녀를 저만치 앞서 가 그녀가 탈 마차 앞에 서 있었다.

이 약은 인간 같으니라고! 루시펠라는 제드를 노려보며 말했다.

“타.”

그녀는 제드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진 않았지만, 이상하게 그를 여기에 버려두고 떠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아, 어쩌자는 건지.

루시펠라는 자신도 갈피를 못 잡는 마음에 제드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오르면서도 투덜거렸다.

행여 루시펠라의 마음이 변할세라 제드가 재빨리 마차에 올랐다.

제드가 자신의 앞에 앉자 루시펠라는 그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창문 밖을 보았다.

그녀의 입은 고집스럽게 다물려 있었다.

“영애.”

“…….”

“왜 영애가 화를 내는 거지?”

“…….”

루시펠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대답하지 못한다는 게 옳았다. 왜냐하면 왜 화가 나는지 자신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혼란스러워서 자신이 화가 난 이유를 필사적으로 찾으며 아까 일을 떠올렸다.

방금 그는 자신을 비호했다.

황태자가 한 모욕에 분노하며, 황태자와 맞선 것이다.

그런데 왜 화가 난 거지? 진짜 왜 화가 난 걸까.

“좋아. 이렇게 혼자 말하니 참 미친놈 같군. 그래도 들어.”

제드 역시 루시펠라에게 화가 났는지 말투가 거칠어졌다.

“만약 그놈, 아니, 황태자가 그런 말을 할 줄 알았으면 그곳에 굳이 가지 않았을 거야.”

“…….”

“그곳에 내가 간 건 딱히 영애가 있다고 일부러 갔던 게 아니고, 진짜 우연……. 아니, 사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이미 그곳으로 온 이유가 우연이 아니었다는 걸 지레 찔려 털어놓고 있었으나 루시펠라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제드가 어떤 이유에서 왔는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뭘 그렇게 장황하게 설명해 대는 건지. 루시펠라는 제드의 말을 무시했다.

“지금 화가 난 이유가 내가 영애의 과거에 대해 함부로 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면, 미안해. 그렇지만 그런 걸 들었다고 해서 영애에 대한 평가가 바뀌진 않을 거야.”

그건 당연한 거고. 그걸 말이라고 하냐. 루시펠라는 목구멍까지 그 말이 튀어나오려고 했으나 꾹 삼켰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것에 화난 건 아닌 것 같군. 남은 생각해서 말했는데.”

제드의 목소리에 약간 힘이 빠진 것 같았다.

루시펠라의 과거는 에스텔의 과거가 아니다. 비록 그녀가 분노했을지언정 그건 사고였고, 제드가 그걸 일부러 들은 게 아니었으니 화가 나지는 않았다.

다시 제드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제드가 지금 추측한 이유는 루시펠라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지금 화가 난 이유가, 만약 내가 황태자와 맞섰기 때문에 그런 거라면, 마음에 두지 않아도 돼. 괜찮으니까 걱정은 그만해도 돼.”

지금 이놈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루시펠라는 드레스 자락을 꾹 쥐었다.

자신 때문에 그가 황태자와 맞섰기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난 거라고? 그러니까 이 분노가 ‘걱정’이라고?

그러나 마음은 마치 ‘정답’이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루시펠라는 창문 밖으로 향했던 시선을 돌려 제드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날 봐주는군.”

제드가 루시펠라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에 어째서인지 그녀는 울컥했다.

왜 저렇게 사람 좋은 표정으로 웃고 있단 말인가. 그래, 이래서 화가 났다. 지금 본인이 얼마나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지 알면서도, 지금 저런 태연한 표정을 짓는 게 화가 났다.

“수도의 정치판에 끼어드는 걸 싫어한 거 아니었어?”

루시펠라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에 제드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내가 영애에게 그런 말까지 했었나?”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잘 파악했군.”

그 속 편한 소리에 루시펠라가 얼굴을 찌푸리더니 소리쳤다.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러면 대체 왜 그 난리를 피운 건데! 들었잖아, 그 사람의 말은 내게 모욕이 되지 않아. 어떤 상처도 주지 않았단 말이야! 그런데 왜 나서서…….”

왜 나서서 적을 만드는 거야.

루시펠라는 그 말을 삼켰다. 그랬다. 루시펠라는 이 사람이 위험해지길 바라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대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생각해 왔던 것 같다. 특히나 그가 자신을 위해 위험에 처한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그러니 걱정은 그만하도록 해.”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내가 그러라고 2황자가 했던 말을 솔직하게 말했던 게 아니야. 나는, 그러니까, 나는…….”

마음 자체가 정리되지 않았는데 말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다.

하고 싶은 말보다는 표현하고 싶은 감정이 많았다. 그리고 그 감정은 대부분 분노였다. 그녀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왜냐고 물어본다면, 이젠 좀 알아줄 때가 되지 않았나?”

“뭐?”

루시펠라가 눈을 크게 떴다. 제드가 루시펠라의 손을 끌어가더니 그녀의 손등에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대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폭신하고 가벼운 감촉이 들었다. 그가 입을 맞췄다는 사실을 자각하자마자, 그의 입술이 닿은 손등에서부터 열이 확 퍼지는 것 같았다.

“루시.”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는 음성.

아까 황태자를 대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달콤한 목소리였다. 그에 심장이 두근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루시펠라의 눈동자가 떨렸다.

“내가 그대를 위해 나설 만큼, 그대가 내게 하찮은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루시펠라의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따스한 미소를 머금은 채 제드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견 칼리드의 눈빛과도 같은 그 두 눈에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설마.

루시펠라는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살짝 벌렸다.

그 눈빛은 한 가지를 말하고 있었다. 루시펠라는 고개를 저으며 그것을 부정하려 했다.

그 모습을 본 제드가 말했다.

“이제 그만 나를 바라봐 줄 때도 되지 않았나?”

꿈인가? 현실인가.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사람이, 이 남자가, 제더카이어 하인트가 자신을 바라봐 달라고 고백하고 있었다.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 영애가 나를 봐줬으면 좋겠어.”

“…….”

“그대를 사랑해.”

루시펠라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침묵 속 마차 바퀴가 구르는 소리만이 이들을 가득 채웠다.

방금 그가 내뱉은 말은 지나치게 직설적인 말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차마 못 알아들은 척 도망칠 수조차 없었다.

‘왜? 왜 하필이면 이때야? 왜?’

루시펠라는 입을 열어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만약 그 이전에 고백했으면, 그녀는 시원하게 그를 찼을 것이다. 조금 후회가 있겠지만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이후, 그가 얼샤를 시찰하고 돌아오면 그녀도 마음의 정리가 되어 있을 것이다.

한데 왜 하필 오늘, 그녀에게 고백한 것인가. 루시펠라는 진심으로 여신 아스트라에게 욕을 퍼부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만약 이 고백이 없었다면 그녀는 평생 자신의 마음을 정의 내리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회피하려 들었을 게 뻔했다.

그러나 이 고백으로 루시펠라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이성을 잃고 분노하며 자신을 위험에 기꺼이 내던지는 사람.

그녀는 그런 이 사람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남자를.

그의 고백 한마디에 세차게 뛰는 심장과 아릿한 마음과 기쁨이 공존하는 것을 보면 루시펠라는 입술을 깨물며, 뼈아픈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루시펠라의 어두워진 얼굴을 바라본 제드는 무언가 깨달은 것처럼 얼굴이 굳었다.

루시펠라도 제드도 마차가 멈출 때까지 단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

“미쳤지, 미친 거지.”

제드는 중얼거렸다. 진짜 미친 게 틀림없다.

버나드는 눈을 불안하게 굴렸다. 제드는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벽을 주먹으로 쿵, 내려쳤다.

그것이 분노의 주먹질이 아니라는 것을 버나드는 바로 눈치챘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제기랄, 입! 이놈의 입!”

“입이라면, 각하, 무슨 실언이라도…….”

“실언, 아주 크게 했지, 돌이킬 수 없는 실언!”

뭘까? 성격 더러운 이 사람이 진짜로 실언을 했다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실언을 한 것이다.

버나드의 얼굴이 덩달아 심각해졌다.

“각하, 대체 무슨…….”

“가만히나 있으면 절반이나 갔을 텐데, 이런 경솔한 짓을 벌이다니.”

대체 무슨 경솔한 짓을 했단 말인가.

“각하.”

“망각의 약 같은 건 없겠지?”

“누구에게 쓰시려고 그러는 겁니까.”

“내 약혼녀.”

그의 말에 버나드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말했다.

“아. 고백했다는 소리였습니까? 난 또.”

“제길!”

그가 대답 대신 화를 내는 것을 보며 버나드는 제드가 긍정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버나드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빌어먹게도 불공평한 세상이었다. 누군 일에 파묻혀 썩어가 이 청춘을 낭비하는데, 누구는 고백 가지고 저렇게 실언 운운할 정도면.

아니, 그런데 약혼녀에게 고백하는 게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저게 저렇게 괴로워할 일인가? 고백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설마 드디어 정신이 나간 건 아니겠지?!

그때였다.

“버나드.”

“네!”

버나드는 또다시 자신이 했던 생각에 놀라 딴청을 피웠다.

“이오지프에게 만나자고 해.”

“2황자 전하께요?”

“이번에는 공식적으로 만남을 가지자는 거야, 구실은 ‘만찬 초대’ 정로 하지. 얼샤에 가기 전에 이것부터 해결해야겠군.”

이오지프를 공식적으로 공작저에 초대한다고?

지금 황태자와 2황자의 대립 때문에 가뜩이나 예민한 상황인데. 이건 분명히 사람들 사이에 제드가 2황자파로 돌아섰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각하, 설마 이건…….”

“황태자에게 선전포고도 했겠다,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지.”

제드의 표정을 보고 버나드가 기겁해서 속으로 소리쳤다. 실언이라면 이쪽이 아닌가.

그 역시 제드가 얼마나 정치에 끼어드는 일에 대해 혐오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버나드는 어려서부터 제드와 함께해 왔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다른 이들보다 제드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제드는 수도의 정치판에 끼어들지 않고, 전쟁터에 나가기를 선택할 정도로 권력을 싫어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황태자에게 선전포고를 했다고?

그것만으로 얼마나 많은 위험부담을 지는 것인지를 모르는 것인가?

잘되면 권세를 누릴 수 있겠지만, 권세에 관심이 전무한 제드에게 하등 소용없는 일이었다.

만약 2황자가 아니라 황태자가 황제가 된다면, 하인트 공작가는 제드의 목숨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가문 역시 멸문될 것이 뻔했다.

황위 싸움이란 그런 것이었다. 현 황제가 즉위하기 직전, 형제들의 싸움에 수많은 가문이 멸문하였다.

이것이 잘못된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렇다면, 하인트 공작령은 물론 공작령과 연결된 모든 봉신 가문들에 피바람이 불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아이딘 영애의 고백을 가지고 후회하고 한숨을 내쉬고 있다고? 정말 자신의 주군이 미치기라도 한 것인가?

그때 제드가 벽에 발길질을 멈추더니 낮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이 시간 이후로 하인트 가는 2황자를 다음 황제로 추대할 것이며, 그에 원조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제드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에 버나드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그가 이 싸움이 얼마나 무겁고 위험한 싸움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버나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드는 자신이 이름을 기입했던 서약서에 위배되지 않을 정도로 간단히 말했다.

“감히 황태자가 내 약혼녀를 모욕하며 위협했다.”

제드의 표정은 어느새 굳어 있었다. 당황한 기색이 여실히 드러나던 버나드의 표정 역시 덩달아 굳었다.

“내 아내가, 하인트 공작가의 또 다른 주인이 될 사람을 말이다.”

제드의 두 눈에 이글거리는 살기가 타올랐다. 황궁에서 억눌렀던 감정을 감추지 않겠다는 듯, 그의 살기가 피어올랐다.

그것을 본 버나드는 고개를 숙이고 탄식했다. 역시, 짐작대로였다.

“이 이유가 타당하지 않은가?”

제드의 물음에 그가 고개를 들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요, 더할 나위 없습니다.”

가문의 명예는 그만큼이나 소중했다.

나라를 지탱하는 국민, 그리고 그 국민을 직접적으로 다스리는 것은 황족이 아니라 귀족들이다.

여신 아스트라의 후손으로서 정당한 계승권이 있었기에 귀족들은 황족을 섬기는 것이지, 황족의 노예로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얀스가르의 땅을 다스린 이며, 영주로서의 위상이 각 가문의 자부심이었다.

황제는 이 나라의 땅을 대신 지배하는 귀족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존중해 주었고, 그들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았다.

얀스가르는 이런 나라였다.

그들이 이번 황제에게 강한 존경을 표했던 것은 순전히 그의 능력과 카리스마 때문이었지, 황제에게 복종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하물며 황태자가 하인트 공작의 약혼녀, 훗날 하인트 공작부인이 될 이를 모욕하고 위협했다면, 그에 응당 대가를 치러야 했다.

제드가 짧게 말했지만, 버나드는 황태자가 어느 정도로 모욕을 했는지 듣지 않아도 잘 알 것 같았다.

‘많이 변하셨군.’

그간 황태자는 루시펠라를 수차례 건드렸다. 그러나 제드는 그것을 보아 넘겼다.

왜냐하면, 제드는 루시펠라 때문에 굳이 황태자와 적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그것이 어떠한 종류의 모욕과 위협인지는 몰라도, 제드는 적극적으로 루시펠라를 비호하고 황태자에 맞서기로 했다.

사랑 때문에 그렇게나 혐오하던 일에 뛰어들다니.

지나치게 비이성적이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동기였다.

참 자신의 상관이지만 멋있는 사람이지 않은가.

물론 아까 행동은 좀 멋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멋있는 사람이 맞았다.

결국 황태자는 그 오만함 때문에 하인트 공작가마저 적으로 돌렸다.

‘다음 황제는 2황자가 되겠군.’

버나드는 허리를 숙이며, 이오지프에게로의 연락과 더불어 봉신들에게 연통을 넣기 위해 방을 떠났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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