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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법-83화 (83/173)

#83화 자각

2017.12.14.

“미친 거지. 정말로 미친 거야.”

루시펠라가 중얼거리며 베개에 얼굴을 비볐다.

“으으으으!”

루시펠라가 내는 이상한 소리에 하녀들이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가끔가다 아가씨가 이상해질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인 모양이었다.

“아가씨, 세수하기 싫으시면 아침 가져올게요.”

로이자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냐, 그냥 안 먹고 죽어버려야 해. 차라리 죽어도 싸.”

“아가씨, 정말 그러면 또 미쳤다는 안 좋은 소문이 돌 거예요.”

“사실인데 그게 뭔 대수야?”

루시펠라는 이번에 ‘흐어어’라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베개를 팡팡 두드렸다. 아무래도 정오가 지나야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날 모양이었다.

“혼자 있고 싶으니 다 나가 줄래?”

그녀가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럴게요.”

하녀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바깥으로 나갔다.

겨우 혼자 있게 된 루시펠라는 몸을 뒤집어 침대에 제대로 누웠다. 천장을 보며 그녀는 멍하니 생각했다.

이오지프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아니라고 입으로 말하는 건 쉬웠지만,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애 감정. 그걸 어떻게 그 사람에게 품는단 말인가? 자신이 절대 좋아해서는 안 될 사람이 있다면 바로 제더카이어 하인트였다.

약혼으로 맺어졌기에 그를 사랑할 수 있는 ‘이성’으로 보게 된 건가? 아니, 아니다.

루시펠라는 시원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그냥 그놈이 매력적이라 그런 것이었다.

우습지 않은가? 그놈이 자신의 동료들을 죽인 것을 알면서도, 남은 동료들과 반목하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은 이 녀석을 좋아하네 마네로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경은 제더카이어 하인트를 마음에 담아둔 거지?”

이오지프가 지적한 것은, 제드에게 단순히 ‘호감이 있다’로 표현한 게 아니다. 연애 감정을 가지고, 한층 더 농도 깊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졌다고 지적했다.

사랑.

그래, 에스텔 역시 사랑은 했었다. 어렸을 적, 도망가긴 했지만 자신을 돌봐준 어머니를 사랑했고, 칼리드를 사랑했고, 다른 이들을 사랑했으니까.

그러나 ‘연애 감정’이 중심이 된 사랑은 한 적이 없었다.

우선 에스텔에게 그런 쪽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남자들만 있는 전쟁터에서 여자라면 누구나 괜찮다고 생각하는 머리 빈 놈들이라 생각해서 시원하게 걷어 차줬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여자로서 기사가 된 에스텔이 남자를 사랑하게 되고, 맺어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는 너무나 자명했다.

결혼을 함과 동시에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또한 동료를 포함한 모든 이에게 ‘어쩔 수 없는 여자’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심지어 평민인 그녀가 기사가 된 이유는, 신분 상승을 위해서라는 소문이 돌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기사단장이 된 직후에 한 번 들었던 소리였기 때문이다.

하물며 누군가와 연애라도 벌였다간, 자신이 실력으로 일궈낸 성과를 남자의 도움을 받아서라고 의심받고 겨우 얻은 명예마저 잃어버리게 되었겠지.

겨우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연애 감정을 가짐으로써 그녀는 잃어야 할 게 너무나도 많았기에 그녀는 그 감정을 외면했으며, 그것을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어떠한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따라서 에스텔은 연애 쪽에 있어서 자신의 감정을 잘 다룰 수 있다고 자만했다.

“잘 다루긴 개뿔!”

루시펠라는 제드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녀석을 생각하자마자 가슴이 아릿하게 아파왔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붙는 건 ‘거짓말’이라는 단어였다.

사랑과 갈망.

칼리드도 자신에게 그런 감정을 품었다고 했다.

그러나 칼리드는 자신을, 사랑하던 에스텔 슈페르트를 죽였다.

그러나 루시펠라는 칼리드처럼 제드를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길 바랐다.

루시펠라가 아는 사랑이란 칼리드의 사랑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칼리드처럼 생각하지 않은 자신이 진짜 사랑에 빠진 것인가?

루시펠라는 칼리드의 감정이 상당히 비틀린 것임을 알면서도 크게 혼란에 빠졌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그녀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애써 정리하기 시작했다.

에스텔이었을 적, 그냥 그는 재수 없는 놈이었다. 죽일 놈이기도 했었고. 그러면서도 묘하게 자꾸 기억에 남아 거슬렸던 존재였다.

루시펠라였을 때 그놈은 약혼자가 되어서, 재수 없는 놈이 되었다. 이 재수 없는 놈은 재수 없는 짓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째서인지 그놈이 잘생겨 보였다. 잘생긴 인간이 또 고마운 행동을 하니 그게 좋았다. 그리고…….

“아악! 생각해 봤자 뭐 해.”

결국 떠오르는 건 제드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루시펠라는 복잡한 생각을 다 지워 버렸다. 그러곤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 녀석, 이제 얼마 후 얼샤로 출발할 거다. 이번에 간다면 가을에나 온다고 했지.

만약 그런 감정이 있더라도 그 기간 동안 지워 버리는 게 맞았다. 얼굴을 안 보면 쉽게 잊히겠지.

루시펠라는 혼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짧은 고민과 명쾌한 해결을 내렸다.

그러나 그런 결론을 내리면서도 어쩐지 입맛이 썼다.

약 이틀간 두문불출하던 루시펠라에게 황후에게서 초대장이 날아왔다. 내일 소소한 티 파티를 열 예정이니 부담 갖지 말고 참석해 달라는 초대장이었다.

황후가 초대한 것 자체가 부담인데 거절해 버릴까. 루시펠라는 그렇게 하려다 고개를 저었다.

만약 거기에 간다면, 혹시 제드를 볼 수 있지도 않을까? 분명 그도 황궁에 올 테니까…… 아니,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지?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곧 떠날 텐데? 이대로 얼굴도 안 볼 건가? 다시 얼굴을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질 수도 있다. 그 감정이 착각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루시펠라는 이번에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제드를 보는 것이다.

사실 제드를 보려면 그의 집에 가는 게 가장 정확한 방법이었으나, 루시펠라는 ‘우연히’ 그를 보는 게 더 중요했다.

그렇게 합리화를 다 마친 루시펠라는 승낙의 답장을 보냈다.

***

황후의 티 파티는 예상대로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은 소소한 모임이었다.

루시펠라가 슬쩍 주위를 돌아보니 연령대는 대부분 젊은 사람이었고, 클로렌스와 더불어 멜로즈 역시 초대받은 사람에 포함되어 있었다.

티 파티가 열리는 곳은 황궁의 정원이었다. 티 테이블은 황궁의 고목 아래 놓여 있어 그곳은 매우 시원했다.

“어서 와요.”

황후에게 다가가 인사하자 황후가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그녀를 맞이했다.

의례적인 인사처럼 보였으나, 황후는 분명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왜 황후가 그녀에게 친근감을 드러내는 것일까? 루시펠라는 그게 궁금해 클로렌스를 흘낏 보았다.

“어서 와서 앉아요, 루시.”

클로렌스가 웃으며 말했다. 루시펠라는 그에 기이함을 느꼈다.

무슨 일이 있나? 루시펠라는 클로렌스에게 걸어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지만, 그녀는 황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옆에 있음에도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졌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루시펠라는 클로렌스의 옆에 착석했다.

초대받은 사람이 모두 모이고 티 파티가 시작되었다.

“황궁에서 거한 지 서른 해가 넘어서는데 이런 자리를 마련한 적이 없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고자 불렀답니다.”

그 말은, 대외적으로 사교계의 수장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지 않았던 황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바로 자신의 아들인 이오지프를 지원하기 위해서.

분명 낯설 텐데도 황후는 익숙한 듯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루시펠라는 어째서인지 자신의 앞에 있는 여성을 보고 얼샤의 왕비, 이소타를 떠올렸다.

“아이딘 영애, 잘 지내셨나요?”

‘에스텔, 잘 있었어요?’

황후의 인사에 루시펠라는 눈을 깜빡였다.

여름이라서 그런 것일까? 분명 그늘에 있는데도 헛것을 보는 것 같았다.

“몸이 좋아 보이지 않아요.”

황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잠을 못 자서 그런가 봐요. 요새 날이 더워져서 잠을 자기가 힘드네요.”

이틀간 잠을 거의 못 잤던 것이 표가 난 모양이다. 그래도 나름 체력 단련은 열심히 하고 밥도 잘 먹었고 화장도 잘했는데 몸 상태를 눈치채다니, 황후는 참 세심한 사람이었다.

황후가 언급해 줌으로써 루시펠라는 황후에게 꽤나 중요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자신은 죽은 1황후와 친척 관계였고 아이딘 백작은 황태자를 지지하는데 이 친절의 의미는 뭐지?

“잠이 안 오신다면 카모마일 차를 드셔보세요. 향을 맡으면 잠이 잘 온답니다.”

“오늘 꼭 마셔볼게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루시펠라의 대답에 황후가 미소를 지었다.

“몸이 약하면, 하인트 공이 걱정할 거예요. 영애가 걱정했던 것처럼요.”

그에 루시펠라의 뺨이 화악 붉어졌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황후는 살짝 짓궂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건 의도된 질문인가, 아니면 그저 그녀를 놀리려고 말한 것일까.

루시펠라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슬며시 다른 사람을 바라보니 다른 사람들도 황후를 따라 미소 짓고 있었다.

“사냥 대회 때 정말 놀랐다니까요. 하인트 공이 걱정되어서 산을 올라가다니, 말을 잘 타는 줄은 알았지만, 그 길로 바로 산에 오를 줄은 몰랐다니까요.”

“맞아요.”

그들은 맞장구를 쳤다.

“정말 공작 각하와 사이가 좋은 모양이네요. 음, 그러고 보니 그날 특별한 일이 좀 많이 있었지요?”

“맞아요. 루이르크 공작 각하가 브로치를 바쳤죠.”

몇몇 사람은 호기심 반, 몇몇 사람은 못마땅함 반으로 루시펠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하네요. 루이르크 공작 각하와 아이딘 영애가 언제 그런 사이가 된 건가요?”

루시펠라는 그 말을 한 영애를 바라보았다. 제니아 영애였다. 그녀는 일부러 긁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저도 궁금하네요.”

멜로즈가 웃으며 물었다.

“제가 알기로도 루이르크 공작 각하가 영애에 대해 매우 잘 아시던 것 같던데, 언제 그렇게 친밀한 사이가 되었을까요?”

이들이 말하는 것에는 묘한 여운이 있었다.

루시펠라는 멜로즈가 말하는 ‘언제’가 진짜 루시펠라가 황태자와 교제했을 시기를 지적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루시펠라가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그만하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황후의 말에 사람들이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황후는 불쾌한 감정을 살짝 드러내고 있었다.

클로렌스가 입을 열었다.

“황후 폐하의 앞에서 무슨 저급한 말을 하시는 건가요?”

클로렌스는 멜로즈와 제니아를 비난하듯 바라보았다.

저런 걸 보면 자신에게 화난 것 같지는 않은데, 클로렌스는 오늘 왜 그러는 거지?

그때 황후가 말했다.

“내 앞에서는 두 번 다시 이런 저급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폐하, 저는 그러려는 게…….”

“제니아 루실 영애, 영애는 당시 아이딘 백작 영애가 단호하게 거절하셨다는 건 알고 계시겠지요?”

“아, 알고 있습니다.”

“포에르 부인, 부인께서 루이르크 공에 대해 무엇을 알고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내게 말해준다면 대단히 고맙겠군요.”

“자중하겠습니다, 폐하.”

황후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단호함이 실려 있었다.

제니아 영애는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멜로즈 역시 반성한다는 가식적인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루시펠라는 황후의 방식이 은근한 사교계의 방식보다는 다소 자신과 비슷한 직설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교계 특유의 우아한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이들은 허를 찔려 당황해하고 있었다.

“그럼, 조용히 차를 마셔볼까요?”

황후가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루시펠라는 차를 마시며 혀가 아리도록 다디단 간식을 집어 먹었다.

대화는 다채로운 것 같으면서도 단조로웠다. 서로의 약혼자, 남편에 대한 이야기, 영지의 정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유행하는 드레스와 장신구, 등등.

루시펠라는 적당히 대화에 끼어들며 눈을 굴려 제드가 혹 이곳을 우연히라도 지나가지 않을지 살펴보았다.

당연하겠지만, 이곳은 황후궁이었으며, 이런 곳에 기사들이 사사로이 드나들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왜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거지. 루시펠라는 자신을 탓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딘 영애, 영애는 언제 결혼하세요?”

루시펠라는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에 눈을 깜빡였다.

“그래요, 궁금해요!”

호기심에 눈을 빛내는 사람들을 보며 루시펠라는 이들이 악의적인 의도로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보면 약혼이란 결혼을 약속한 사이인데, 언제 결혼하지? 결혼하고 그들은 이혼하게 되는 건가?

예전에 이들 사이에 했던 말이 떠오르면서, 루시펠라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조만간 할 것 같아요.”

“아직 정확한 시기는 결정 나지 않은 건가요?”

“각하께서 워낙 바쁘시니까요. 이번 여름 내내 얼샤를 시찰하실 예정인가 봐요.”

루시펠라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얼샤의 잔당들은 왜 그렇게 설치는지 모르겠네요. 괜히 불안하게.”

“그러니까 말이에요.”

그녀들이 부채를 살랑이며 말했다.

“애초에 전쟁도 그들의 책임이 아니었나요? 참 뻔뻔도 하지.”

루시펠라는 그 말을 듣고 찻잔을 쥐며 차를 억지로 삼켰다. 몇 번을 들어도 유쾌하지 않은 말이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이소타 황녀 전하께서는…….”

“황녀 전하에 대해서는 말을 삼가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세르딘 영애.”

황후가 주의를 주자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때, 시녀 한 명이 다급히 다가와 황후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무슨 일이지?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황후를 향했다.

황후는 당황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닫았다. 루시펠라는 그와 동시에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다.

제드인가? 재빨리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서 있었다.

“이렇게 다들 모여 계셨군요.”

루시펠라는 표 나지 않게 얼굴을 찌푸렸다.

황태자가 웃으며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황태자가 루시펠라를 지나갈 때, 순간적으로 본 황태자의 표정은 어딘지 이상했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황태자가 황후의 옆에 서자 모두가 일어나서 인사했다.

그간 이 사람과 마주칠 일은 많았지만 어째서인지 황태자는 그녀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이 불편한 자리에 같이 있어야 한다니, 참 고역이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태자?”

황후의 물음에 테미르가 미소를 지었다.

“그냥, 여기에 많은 분이 모여 계시다고 들어서요. 그리운 얼굴들도, 제 사랑스러운 친척들도 말이지요.”

그는 서 있는 사람들을 한번 훑어보았다.

루시펠라는 그의 시선이 자신과 클로렌스에게 유독 오래 머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루시펠라가 슬쩍 클로렌스를 보니, 클로렌스의 표정 역시 경직되어 있었다.

“저도 참여할 수 있을까요?”

마치 클로렌스의 파티에 난입한 해럴드를 보는 것과 같았다. 아니, 그보다 분위기가 더 가라앉았다.

루시펠라는 황태자가 일부러 황후의 티 파티를 망치러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황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하녀에게 의자를 놓으라 지시한 뒤 자리에 앉았다.

“아, 모두 그렇게 일어서지 말고 앉으시지요.”

“…….”

사람들이 모두 황후의 눈치를 보았다. 황후가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자리에 앉으라고 말했을 텐데?”

황태자의 서늘한 어조에 멜로즈가 자리에 앉았다. 그러다 그녀는 자신만 자리에 앉은 것을 알고 눈치를 보았다. 황태자가 웃으며 말했다.

“로에르 영애, 자리에 앉지? 아, 제수라고 불러야 하나? 내가 영애를 제수라고 불러야 할 줄은 몰랐는데. 난 영애가 내 아내가 될 줄 알았거든. 황궁 생활은 참 재미있단 말이야.”

그는 킥킥 웃으며 자신의 앞에 내려진 차를 마셨다. 그러다가 그는 찻잔을 던졌다.

“너무 뜨겁잖아!”

찻잔은 차를 따르던 하녀에게로 날아갔다. 다행히 하녀는 피했지만, 찻잔은 정원의 바위에 부딪혀 깨졌다.

쨍그랑!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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