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법-80화 (80/173)

#80화 말할 수 없었던 작별 인사

2017.12.04.

루시펠라는 발데르를 보았다. 그는 노골적으로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미약하지만 바르르 떨고 있었다. 루시펠라는 칼리드를 보고 이성을 잃었던 자신을 떠올렸다.

이 녀석이 그렇게 되면 큰일이다. 들키는 것도 모자라 칼리드, 그 새끼는 발데르의 목을 벨 것이다. 절대로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루시펠라는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마차 문을 열 테니까 밖에서 안 보이는 곳으로 이동해 줄래?”

그에 발데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펠라는 문을 열고 마차 밖으로 나갔다. 기사 한 명이 달려와 부축해 주려고 했지만, 그녀는 혹여 열린 틈으로 발데르를 발견하게 될까 봐 거절했다.

“무슨 일이죠?”

루시펠라의 물음에 말을 타고 있는 칼리드와 그녀의 두 눈이 마주쳤다. 그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별거 아닙니다. 반 얀스가르 세력 중 하나가 하인트 공작과 기사에게 위해를 끼치고 도주했다고 해서요.”

“그래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이렇게 면밀히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참 고생이 많으시네요. 그래서 그 사람이 누구죠? 리엄 히르카인가요?”

루시펠라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것은 눈치 빠른 칼리드가 의심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던지는 질문이었다.

칼리드가 생각하는 자신이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에게 하나라도 정보를 더 얻어내려고 해야 마땅했다.

“그런 인물은 아닌 모양입니다.”

“인물이 특정되지 않은 건가요?”

루시펠라의 싸늘한 말투에 2기사단의 기사들이 미묘한 표정을 하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루시펠라가 칼리드의 마음을 거절했다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퍼져 나간 지 오래였다.

“그렇다기보다는, 발데르 하우젠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역시 신원이 특정된 모양이었다. 루시펠라는 속으로 혀를 차며 칼리드를 노려보았다.

“실마리는 발견하셨습니까?”

“아니요, 아직.”

그녀의 심장이 안도로 느긋하게 뛰었다. 그녀가 무어라고 더 물어보려 할 때, 칼리드가 말했다.

“어제는 잘 들어가셨습니까?”

“네, 그이가 절 바래다줬어요.”

루시펠라의 대답에 칼리드의 표정이 변했다.

루시펠라가 제드에 대해 말한 건, 일부러였다. 그녀는 칼리드의 사적인 접근이 불쾌했다.

“영애는 참 단호하시군요. 그 점도 매력적이시지만.”

그녀가 얼굴을 찌푸렸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대화니 이만 끝내도록 하죠. 이대로 지나가면 되는 거죠?”

“물론입니다.”

칼리드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녀는 불안을 느꼈다. 칼리드가 부드럽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전에 마차 안을 수색해야 할 것 같군요.”

이 미친놈이 무언가 눈치챈 모양이다.

어떻게 하지? 이대로 가다간 발데르가 들킬지도 모른다.

루시펠라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다. 눈치 빠른 놈이라 여기서 방어적으로 나가면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음대로 하세요. 설마 제가 경의 업무를 방해하겠나요?”

칼리드의 눈짓에 기사들이 루시펠라의 마차로 다가왔다.

그들은 내키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유심히 본 루시펠라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래도 마지막으로 도박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일부러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지만 좀 짜증 나는 건 어쩔 수 없군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누가 봐도 관련 없는 레이디의 마차를 굳이 수색하고자 함은, 꼭 경의 권위로 괜히 트집을 잡아 저를 모욕이라도 주시겠다는 것처럼 느껴져서요. 굳이 말하자면 어제 일을 염두에 두고 계시는 것 같잖아요.”

“…….”

“황태자 전하나 다른 분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수색을 했나 보죠? 그랬다면 제가 기꺼이 받아들일게요.”

루시펠라의 차가운 말에 2기사단원들이 모두 굳은 표정을 했다.

루시펠라는 이들의 표정을 보고 다른 귀족들의 마차는 수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루시펠라는 피해자인 제드의 약혼녀였다. 그녀가 설마 범인을 숨기겠는가. 그렇게 의심한다는 것만으로도 루시펠라에 대한 모욕이 되었다.

“영애, 이건 그저 형식적인 절차입니다. 너무 불쾌해하지 마시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제 영역이에요.”

루시펠라가 이죽거리곤 마차에 다가온 기사들에게 말했다.

“경들, 어서 조사하세요.”

그녀가 비켜주려고 걸음을 옮길 때였다. 칼리드가 얼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아니, 수색은 하지 않겠습니다.”

“…….”

“생각해 보니 하인트 공작과 약혼까지 맺으실 분의 마차를 조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하인트 공작도 불쾌하게 생각하실 것 같고요.”

2기사단원들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인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칼리드는 피식 웃더니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영애에게 조금 감정적으로 굴었던 것 같습니다.”

칼리드의 사과에도 루시펠라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아시다니 되었습니다.”

루시펠라가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그녀는 모든 경멸을 끌어 담아 칼리드를 노려보고 말없이 마차에 올라탔다.

그에 마침 근처에 있던 2기사단의 기사 한 명이 그녀의 손을 잡아 지탱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짜증이 난 척하며 그것을 뿌리쳤다.

마차에 올라타자마자 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한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들키지 않고 넘어갔어.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몸을 밀착해 있는 발데르의 모습을 보았다. 발데르는 마차 문이 닫히고 출발하자마자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마차 안엔 기이한 침묵이 자리했다.

루시펠라는 발데르의 주먹 쥔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앞에서, 은은한 살기가 흘러나오는 것도 알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것을 모르는 척해야만 했다.

그 복수심이 어디서 기인한 줄 알고 있다. 그녀도 그랬으니까.

그녀는 당장에라도 괜찮다고, 잘 참았다고 그를 격려해 주고 싶었다. 그 가증스러운 목소리를 듣고 이성을 차리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루시펠라는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육신은 발데르의 동료인 에스텔이 아니라 루시펠라였기에.

아니, 저 녀석이라면 믿어주지 않을까? 육신이 바뀌어도, 자신을 알아볼지도 몰라.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가 아닌가.

“저기, 나…….”

“하인트 공작과 약혼하신 아가씨였군요. 귀한 분을 몰라 뵙습니다.”

서늘한 목소리가 꼭 찬물을 끼얹는 듯, 루시펠라는 흐려지던 이성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 목소리의 차가움에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루시펠라는 이 순간, 이 마차 안, 자신과 발데르와 단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새 두건을 벗은 그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 사이로 발데르의 두 눈에 이글거리는 안광이 보였다. 그에 온몸의 피가 싸악 식어 내렸다.

루시펠라는 이 순간 진정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아까 상점에서 그녀가 느꼈던 것은 단순한 위기의식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루시펠라 아이딘이었고, 하인트 공작의 약혼녀였다.

그리고 이 녀석이 제드에게 품은 감정은, 루시펠라가 제드에게 품었던 감정보다 더욱 엄청날 것이다.

자고 일어나니 모든 게 변해 있던 자신과는 달리, 이들은 3년 동안 원한을 곱씹고 또 곱씹었을 것이다. 그런 이가 제드의 약혼녀인 자신을 가만히 둘 리가 있겠는가.

루시펠라는 그 와중에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만약 죽는다면 두 번이나 부하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참 우스웠다.

루시펠라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녀는 애써 태연함을 가장했다.

당연하겠지만, 그녀는 죽기 싫었다.

여기서 그녀가 말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자신을 에스텔이라고 밝히는 것은 발데르의 의심을 사 죽음을 가속화시키는 행위였으며, 목숨을 구걸한다는 것 역시 발데르의 화를 돋울 것이다.

한참의 고민 끝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다행히 안 들켰다, 그렇지?”

루시펠라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레이디가 사교계에 가면을 쓰듯, 천진한 미소를.

어쩌면, 그 얼굴이 가증스럽다며 발데르가 분노를 터뜨리며 그녀를 죽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루시펠라는 이 녀석이 깨달았으면 했다.

최소한 루시펠라 아이딘이라는 인물은, 결국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인물 중 하나라는 것을. 만약 죽인다면 무고한 사람을 죽인다는 것임을.

“…….”

“아, 네가 물었지! 맞아, 하인트 공작 각하는 내 약혼자야. 그리고 그쪽이 주웠던 그 브로치, 그 사람이 내게 선물해 준 거랑 똑같은 모양이거든. 근데 그걸 잃어버렸어. 그게 알려지면 큰일 날까 봐 몰래 비슷한 걸 사려고 하는데 여기 때마침 맞는 게 있지 뭐야.”

“…….”

“솔직히 말하면, 네가 내 브로치를 훔쳐 갔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네가 이렇게 내 말을 잘 들으니 그건 아닌 것 같고. 나는 그냥 그걸 사려고 해. 돈은 넉넉히 줄 테니까 꼭, 꼭 비밀로 해줘야 해. 알았지?”

루시펠라는 입에 나오는 대로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수다스럽고, 철이 없으며, 타인을 잘 믿는 순진한 사람인 척. 그녀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 순간 발데르 앞에서 그녀는 에스텔 슈페르트가 아니라 사소한 실수에 전전긍긍하는 순진한 백작 영애, 루시펠라 아이딘이었다.

루시펠라가 조심스럽게 발데르를 바라보았다. 발데르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때, 마차가 돌부리에 걸렸는지 크게 덜컹했고, 루시펠라는 하마터면 머리를 마차의 천장에 찧을 뻔했다.

순식간에 발데르가 손을 들어 올려 그녀의 머리를 보호했다. 그에 루시펠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보자, 발데르가 웃으며 말했다.

“뭐야, 아가씨. 그런 사정이 있으셨던 모양이군요. 진작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순식간에 느껴졌던 살기가 사라졌다.

이 녀석, 루시펠라를 죽이지 않기로 한 거다. 루시펠라는 치미는 울음을 삼켰다. 아무리 고되게 살아왔어도, 이 녀석은 최소한 인간성을 버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루시펠라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큰일이지 않아? 나, 그걸 잃어버렸다는 걸 알고 너무 무서웠어.”

“정말 큰일 날 뻔하셨군요. 공작 각하께서 선물한 브로치를 잃어버렸다니.”

“맞아. 그걸 아버지께서 아셨다간 눈물 쏙 빠지게 혼이 날 거야. 게다가 그 사람, 기사라서 분명히 뭘 샀는지 알아낼 수도 있단 말이야. 이제야 내가 왜 기사들이랑 네가 못 만나게 했는지 이해가 가니?”

루시펠라가 호들갑스럽게 말하자 발데르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럴 만하지요. 이해합니다.”

발데르가 열심히 호응해 주었다. 루시펠라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아, 이제 어떻게 하지? 일단 너를 데려오긴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루시펠라는 일부러 그에게 계획이 있는지 떠보았다.

“사람이 없는 곳에 내려주시면 됩니다. 제가 갈 곳은 알아서 찾아갈 수 있거든요.”

발데르가 미소를 지었다. 그 여유로운 표정을 보니 믿을 만한 은신처는 있는 모양이었다. 물어보면 알려주진 않겠지.

루시펠라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녀는 마부를 시켜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라고 했다.

“참. 그전에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

“아까 저흴 검문하려 하셨던 분이 칼…… 아니, 루이르크 공작님이 맞는 거죠?”

“맞아, 잘 알고 있네?”

“먼발치에서 봤거든요.”

그녀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칼리드에 대해 알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되도록 칼리드에 대해 자세히 대답해 줄 생각이었다.

“그 새…… 아니, 그 남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칼리드에 대한 질문. 루시펠라는 이 순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

어떤 사람일까. 얀스가르의 레이디가 보는 칼리드는 어떤 사람인 것일까. 아주 어려운 질문이었다.

“얼굴만 잘생기고 실속 없는 사람?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 엄청 쪼잔한 사람.”

그에 발데르가 피식 웃었다.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

“딱 봐도 그렇게 보이잖아. 얼굴만 잘생겼다고 다가 아니라니까?”

그 말에 발데르는 재미있어하는 듯했다.

“아가씨들에게 인기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모양은 아니로군요.”

“좋아하는 사람이야 있겠지. 그런데 나는 싫어. 그런 남자가 제일 싫단 말이야.”

루시펠라가 조금 단호하다시피 딱 잘라 말하자, 발데르가 웃음을 흘렸다.

“아가씨와 제가 보는 눈이 비슷한 모양이군요. 제가 사실, 점에도 소질이 있는데 루이르크 공작님은 아가씨 생각이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그지? 그렇지?”

“그런 사람은 사람을 배신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곧 대가를 치르게 될 사람이니 가까이하지 마세요.”

가벼운 말투 뒤에 깔린 묵직한 경고에 루시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데르는 루시펠라가 무서워하는 듯하자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아가씨가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나?”

“역시 약혼자이신 하인트 공작님을 좋아하시는 겁니까?”

“내가? 그 사람을?”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전혀 아닌데?”

“약혼자가 아닙니까? 제가 알기로 그 공작님은 잘생긴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성격이 더러워서 싫어.”

그 단호한 말에 발데르가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웃으면 얼굴에 주름이 져서 겨우 한 화상 흉터 분장이 뜯어지지 않을까? 루시펠라는 걱정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타인으로서 동료와 만나 기껏 질문 받은 게 제더카이어 하인트를 좋아하냐니. 절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루시펠라는 어쩐지 속이 이상했다. 꼭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꼭 가슴에 무언가가 박힌 듯 찝찝했다.

“이제 보니 아가씨, 참 재미있는 분이시군요. 왠지 저랑 잘 맞을……. 아니, 아닙니다.”

“내가 재밌어?”

“아가씨에게 재미있다는 말은 실례인가요?”

말이 많아진 것을 보아 발데르는 그녀에 대해 적의를 상실한 것 같았다. 심지어 호감마저 품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아니, 그냥 듣기에 나쁘지 않아서. 그러고 보니, 과묵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너, 말이 되게 많네?”

루시펠라가 묻자 미소를 지었다.

“원랜 말이 없는 편이었습니다. 환경이 사람을 바꾸더라고요.”

“바꾸다니?”

“그냥, 살아가다 보니 여러 사람이 절 이렇게 바꿨습니다.”

발데르는 그 말을 하곤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루시펠라는 그 시선을 보고 울컥 치미는 감정을 억눌러야 했다.

귀족의 사생아였던 그는 칼리드만큼이나 처음에 말이 없었다. 그러나 모든 것에 무심해 보였던 칼리드와 달리, 그는 귀족의 자부심이 지나친 나머지 에스텔에게 반항했었다.

무리에 적응하지 못했던 저 인간이, 결국 수다스러운 남자가 되기까지 그 일련의 변화를 에스텔과 함께해 왔다.

발데르가 말한 여러 사람 중에는 분명 자신 역시 포함되어 있겠지.

그녀는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때, 발데르가 말했다.

“오, 여기라면 괜찮군요. 사람도 없고, 제가 가려는 곳과 적당히 가깝습니다.”

“벌써?”

루시펠라는 자신도 모르게 아쉬움을 담아 말했다. 안 되는데, 발데르가 이대로 가면, 어떻게 하지?

가지 마.

루시펠라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말을 삼켰다.

“걱정 마십시오. 아가씨의 그 어마어마한 비밀은 말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제가 아는데, 이것도 한 사흘 정도만 지속될 겁니다.”

물론 루시펠라도 수도 봉쇄령이 기껏해야 이틀 정도밖에 가지 않을 것을 알았다. 숨바꼭질만 잘하면 되는 것이다. 루시펠라가 발데르를 보니 그는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아가씨?”

“응, 아니, 아무것도…….”

루시펠라는 마차를 세웠다.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마차에서 내려서자, 말을 타고 호위하던 기사들이 멈춰 섰다.

루시펠라가 그들의 눈치를 보고 마차에 대고 말했다.

“어서 나와.”

“아, 아가씨!?”

옆에 있던 기사들이 마차에서 나오는 수상한 인물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마부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다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으로 루시펠라를 바라보자 그녀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수배된 사람이 아니니까 안심해. 내가 사정이 있어서 데려온 거야. 어디 새어 나가지 않게 해줘. 만약 내 명령을 어긴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그리 알아.”

루시펠라가 눈에 힘을 줘 경고하자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 역시도 루시펠라가 차마 그 문제의 수배된 당사자를 데려올 리가 없다고 생각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금화 주머니 좀 줄래? 이 사람한테서 뭘 좀 사야 하거든.”

그녀가 기사에게 부탁하자, 기사들이 노골적으로 안심한 듯했다.

저택의 아가씨가 무언가 은밀히 구매하려고 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마차에 태워 끌고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납득한 기사들은 루시펠라의 요청에 따라 주변에 사람들이 오는지 감시했다.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루시펠라가 금화 자루를 건네주며 말했다.

“아니요, 아가씨가 그걸 구매해 주셔서 저야말로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녀에게 제드가 준 브로치가 다시 전해졌다. 루시펠라는 그것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우리 서로 신세 진 걸로 하자.”

루시펠라의 말에 발데르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허리를 숙이더니 등을 돌려 걸어 나갔다.

루시펠라는 그에 꾹 참던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저택으로 데려가고 싶었지만, 데려갈 수 없었다. 신원 조회를 하게 되면 혹시라도 그가 붙잡힐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동료와 재회했음에도 그녀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만났는데, 다시 만났는데. 위로조차 할 수 없다. 살아 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저 마차 안에서 나눈 이야기가 전부였다.

차라리 그녀를 데려가 달라고 할까? 지금이라도 그러면 되지 않을까? 계속해서 충동이 들다가 사라졌다. 그는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아니, 설령 믿어준다고 해도 어떻게 될까.

이 녀석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데려갈 것이다.

발데르가 그녀를 데려가면, 그는 하인트 공작의 약혼녀를 납치한 것이 되어, 모든 이의 추격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죽게 되겠지.

그녀는 그래서 이 재회를 가슴에 묻어두기로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주먹을 바르르 떨고 있던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필사적으로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그녀는 차마 눈도 깜빡이지 못한 채 옛 동료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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