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인식과 견제
2017.11.23.
좀 웃을 때 웃겠다고 말하고 웃으면 안 되나. 루시펠라가 제드의 얼굴을 보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녀의 두 뺨이 붉게 물들었으나, 불행하게도 제드는 루시펠라가 등산 때문에 얼굴이 달아올랐다고 생각했다.
제드는 빙그레 웃으며 루시펠라의 모습을 훑었다.
“그런데 브로치는 왜 착용하지 않은 거지?”
“응?”
브로치. 그냥 그땐 차고 싶지 않았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제드의 얼굴이 어쩐지 서운해 보였기 때문이다.
루시펠라의 머리가 변명이란 걸 하기 위해 팽글팽글 돌아갔다.
“그냥, 소중히 아끼고 있으려고!”
루시펠라는 결국 가장 간단하고 방금 지어낸 표가 나는 대답을 했다. 그에 제드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자, 봐, 여기…….”
루시펠라가 드레스의 리본에 매달린 작은 주머니에 손을 넣을 때였다.
없었다.
“…….”
“어, 어디 갔지?”
세상에, 이렇게 미친 짓을 벌이다니. 루시펠라의 입술이 떨렸다.
더 미친 짓은 지금까지 잃어버린 것도 모르고 있다가, 분실을 자각하는 과정까지 실시간으로 제드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
제드는 빙그레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루시펠라를 보고 있었다.
그게 더 무서웠다. 미친, 대체 어디서 그걸 잃어버려서! 어디다 떨어뜨린 거지? 말을 탈 때? 아니면 어디? 역시 계곡인가?
“미안해. 지금 당장……!”
“진정해, 영애.”
루시펠라가 일어나려고 할 때 제드가 루시펠라를 잡아 앉혔다.
그녀는 미안해서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비싼 물건인데, 심지어 달지도 않다가 잃어버린 꼴이니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그녀도 양심이란 있었다.
“그깟 브로치는 얼마든지 사주지.”
그게 그깟 브로치라고 할 가격은 아닌 것 같았는데.
그녀가 제드를 바라보자, 제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화 안 나?”
“기분이 좋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별로 놀랍지는 않아서 말이야.”
왜 놀랍지 않다는 거지? 루시펠라는 그에 기분이 나빠졌다. 평소 자신이 덜렁이라도 된다는 건가? 그러다가 루시펠라는 그렇게 말해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덜렁이뿐만이 아니라 모자란 멍청이였다. 루시펠라가 자책하는 표정을 지켜본 제드가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영광을 바치기는 글렀으니, 그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지.”
“그게 무슨 말이야?”
“브로치 말이야. 영광을 바치겠다는 맹세의 증표니 말이야. 미안하게도, 영애에게 오늘 바칠 영광은 단 하나도 없군.”
루시펠라는 기사들을 보았다. 제더카이어 하인트가 사냥감을 하나도 못 잡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기하네.”
“왜?”
“아니, 의외로 남을 위로하는 데 뛰어난 것 같아서.”
“위로라니?”
“마음이 편해졌거든.”
정말이었다. 아까까지 그녀를 자극하던 죄책감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것을 본 제드가 얼굴을 찡그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다가 그는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그래도 잃어버린 대가는 치러야지?”
“어?”
“생각해 보니 마음이 편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영애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계속 생각해야만 할 것 같군.”
부드러운 말은 거절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루시펠라는 새삼 그 말이 진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잘못한 건 사실이니 루시펠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좋아. 대가. 내가 뭘 치르면 되지?”
제드는 그에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다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건 차차 생각해 보도록 하지.”
그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설마 광장 한복판에서 이상한 춤을 추라던가 아니면 그날 하루 일일 시종으로 쓴다던가 하는 건 아니겠지?
기사단원들이 자주 치던 장난을 떠올리며 루시펠라의 얼굴이 찝찝함으로 물들었다.
“잘못은 잘못이고 다른 건 말해야지.”
“어?”
“내가 다쳤다는 소리를 듣고 험한 길을 이렇게 달려와 줘서 고맙군.”
“…….”
“그래도 다시는 그런 짓은 하지 마.”
루시펠라는 제드에게 뭐라고 항의하고 싶었다. 다시는 하지 말라면서 저렇게 기뻐하는 표정을 지으면 다음에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만약 활을 쐈던 이가 암살자였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래도 그쪽이 알아서 했겠지.”
그에 제드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다가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때였다.
“주군, 제발. 그 대화 좀 저리 가서 하면 안 되겠습니까?”
버나드가 낑낑거리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드와 루시펠라가 동시에 그쪽을 바라보았다. 이미 버나드의 치료는 끝났고, 의원은 제드를 치료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들은 흠흠 헛기침을 하며 등을 돌린 채 서 있었고, 하인은 귀를 막고 있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버나드만 이들의 대화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참고로 버나드는 죽을 맛이었다. 정작 가장 심하게 다친 건 자신인데도 유난은 저들이 떨고 있었다.
“이 대화가 좀 이상한 대화인가?”
“그러게. 아파서 지나치게 예민한 모양이군.”
제드의 물음에 루시펠라가 맞장구쳤다. 뻔뻔스러운 두 남녀의 작태에 버나드는 더욱 아픈 듯 낑낑거렸다. 정말 억울해서라도 연애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이윽고 의원이 처방한 약초 덕에 버나드가 안정적으로 말에 탈 수 있게 되자, 이들은 모두 산에 내려가기로 했다.
제드는 루시펠라를 굳이 자신의 앞에 태웠다. 혹, 그녀가 말에서 떨어질까 봐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루시펠라는 말을 혼자 탈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말을 탈 수 있음에도 실수로 낙마한 사례가 바로 옆에 있었으므로 그는 단호했다.
다시 루시펠라를 두 팔에 안아 가두고, 그는 또다시 미소를 지었다.
아까까지 느끼던 무기력함과 분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싱그러움이 가득 넘쳐 났다.
버나드가 부상을 입을 당시, 그는 메튼 남작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관대하게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는 부상당했을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부상당해 움직일 수 없는 버나드 곁에 머무르기를 선택하며 실질적으로 우승하기를 포기했다.
생각해 보면 어차피 테미르와 이오지프의 싸움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어쩐지 허탈했다.
게다가, 설령 이겨봤자 뭐 하겠는가. 정작 영광을 바칠 이는 또 무엇 때문인지 서먹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제드는 자신에게 루시펠라에게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또 루시펠라에게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 고민했다.
결국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제대로 모르고, 그녀는 또 설명하지 않고, 그는 혼자서 또 추측한다. 그와 그녀의 관계는 이러한 행동의 반복이었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비밀이라는 말 그대로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이딘 백작과 그녀의 관계, 칼리드 루이르크와 그녀의 관계.
그녀는 항상 그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제드는 특히나 칼리드와 루시펠라의 관계가 거슬렸다. 칼리드 자신이 루시펠라에게 관심을 표현하기도 했었고, 루시펠라를 보는 칼리드의 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제드는 일부러 그들의 관계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녀를 배려해 주고자 하는 것도 있었지만, 이 인내를 가져야만 그녀의 곁에 머물 수 있다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시펠라의 태도는 여전히 모호했다.
기껏 들떠서 서둘러 수도에 도착했던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래서 그는 지치기 시작했다.
버나드 곁에 걸터앉은 채 그는 그녀에 대해 여러 생각을 했다.
한데 그렇게 심란한 표정을 지을 때 루시펠라가 나타났다. 마치 그의 여러 생각이 아니라 그녀의 행동이 답이라는 것처럼.
“다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또 처음이군.”
“뭐?”
“아니, 아무것도.”
그는 아까의 대화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아마 그 말을 들었다면 분명 화를 냈겠지. 그래도 그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는 자신이 다쳤다는 소리에 무작정 달려온 루시펠라의 무모함이 걱정스러웠지만, 그는 기뻐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마 그의 부모조차 이런 행동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그를 유혹하기 위해 이렇게 행동하는 거라면 그녀는 성공했다.
“루시.”
“왜?”
“아니, 아무것도.”
이름을 불러도 그녀는 그것에 별 감흥이 없었다.
그는 그녀가 제드라고 불러주는 것이 특별하다. 그러나 제드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루시펠라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이 불공평함에 그는 애가 탔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대는 이름의 특별함을 알까.
시간이 문제인 것일까, 아니면 사람의 문제인 것일까, 아니면 호칭이 문제인 것일까. 알 수 없었다.
산에 내려가는 시간은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말을 멈춘 제드는 루시펠라를 지탱해 줄 생각으로 먼저 말에서 내리려고 했다.
“아니, 그러면 안 되지! 팔에 힘이 들어가잖아.”
제드가 말리기도 전에 루시펠라가 훌쩍, 가볍게 말에서 내려왔다. 드레스 차림임에도 참으로 가벼운 움직임이었다.
“자, 내 손 잡고 내려와.”
“…….”
제드는 루시펠라가 뻗은 손을 보았다.
자신이 지탱하기엔 턱없이 작은 손. 기사가 레이디의 손을 잡고 내린다니, 그 반대도 아니고 이 얼마나 우스운 광경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것은 루시펠라의 순수한 호의로 이루어진 배려였다.
그렇다면 그 호의는 받아야지.
어차피 단 한 마리도 사냥을 못 한 시점에서 이미 그의 체면은 상한 지 오래였다.
제드는 다치지 않은 손으로 루시펠라의 손을 꽉 잡은 채 말에서 내렸다.
혹 너무 힘을 실어 그녀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그녀는 든든하게 그를 지탱했다.
“많이 아파? 부축해 줄까?”
그녀의 걱정스러운 말에 제드가 피식 웃었다. 그는 잡고 있던 루시펠라의 손을 꽉 잡은 채 몸에 기댔다.
“지금은 손을 잡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군.”
“뭐, 뭐?”
“모르는 것 같은데 손을 잡는 것도 상당히 의지가 돼.”
“그랬나? 오히려 몸의 중심이 기울지 않나?”
루시펠라가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따스한 손의 온기가 닿자 어깨의 고통과 더불어 그를 괴롭혔던 생각이 사라졌다.
그녀가 브로치를 잃어버려도 어떤가, 비밀을 가져도 어떤가.
그녀가 브로치를 잃어버렸다면 자신이 다시 사주면 되고, 비밀이 있다면 비밀을 말할 때까지 인내하면 될 일이었다. 너무 초조해하지 말자. 그녀는 계속해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어느새 사냥 대회가 끝나가는 모양인지 하산한 사람들이 몇 보였다.
그는 그 무리 안에 있는 칼리드 루이르크에게 시선이 갔다.
‘벌써 사냥을 끝마친 건가? 하긴, 어차피 황태자에게 다 바치느라 노력할 필요도 없겠군.’
제드와 루시펠라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뭐지? 또 무슨 일이 있었나?
그가 루시펠라와 손을 잡는 게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닐진대 지나치게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그때, 그 수군거림을 들은 것인지 칼리드가 몸을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루시펠라와 그가 잡은 손에 닿았다.
그러자 칼리드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제드는 칼리드와 자수정 브로치에 대해 듣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칼리드의 공개적인 ‘도전’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제드의 머릿속에 든 것은 본능과도 같은 감각이었다.
이놈은, 감히 자신의 곁에 서 있는 이를 탐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았다.
저놈을 찍어 누른다. 감히 자신의 사람을 노리는 그로부터 완전한 승리를 거머쥐어야 했다.
자신의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의 곁에서 영원히 함께할 사람이다.
제드는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로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칼리드의 두 눈에서 빛이 번뜩였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동자에는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이 넘실거렸다.
애써 갈무리하는 소유욕, 갈망, 그것이 충족되지 못할 때 일어나는 광기.
제드는 칼리드가 품은 감정의 편린을 눈치챘다.
하지만 루시펠라는 그 시선을 알아채지 못하고 여전히 손을 잡는 게 왜 기대는 게 되는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녀를 마음에 두는 모든 이를 합친 것보다 위험한 놈이 저놈이었다.
그러나 제드는 단 한 번도 저 남자가 겁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최소한 그는 저 남자보다 나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
“대, 대체 넌 뭐 하는 놈이지?”
헉헉거리며 기사 둘은 자신이 놓친 청년을 쫓고 있었다. 그러나 청년은 산속의 빽빽한 나무가 장애물이 되지 않는 듯했다.
비록 실수라지만 공작을 활로 쏜 놈이다. 이놈을 놓쳤다간 공작이 경을 치리라. 기사들은 상당히 필사적이었다.
“충고하는데, 그 갑옷은 벗고 날 쫓는 게 어때?”
청년은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러나 기사들은 살기 어린 시선만 보낼 뿐이었다.
청년은 기사들이 충고를 따르지 않자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 얀스가르 놈들이란……. 대체 어떻게 얼샤를 손에 넣었는지 알 수 없다니까.”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고 추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과연 이름만 하인트 공작가의 기사들이 아니었는지 이들은 꽤나 잘 따라오고 있었다.
“헉헉! 넌 누구냐!”
“누구긴. 활 잘못 쏴서 인생 종치게 된 불쌍한 하인이지.”
청년은 조롱의 미소를 보냈다. 그러면서 뒷걸음질 쳤다.
상대적으로 무거운 갑옷을 입은 기사들의 발이 느려졌다. 그러나 기사들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청년이 뒷걸음질 치며 향한 곳은 절벽이었기 때문이다.
“어서 이리 오는 게 좋을 거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기사들이 소리쳤다. 쥐새끼같이 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빠져나갔지만, 결국 막다른 길이었다.
기사들이 지친 만큼 저 녀석도 지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청년의 몸도 땀에 범벅이 되었지 않은가. 결국 쫓기다 지친 저놈이 절벽으로 도망친다는 멍청한 짓을 벌인 것이다.
“마지막 기회? 형씨들, 마지막 기회는 이쪽이 준 것 같은데.”
그가 피식 웃었다.
“내가 이렇게 묶였던 줄을 풀었다면 적어도 내게 날붙이가 있었을 거라는 예상은 했어야지.”
청년이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는 이 원거리에 단검을 날릴 생각이 분명했다. 기사들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래서 갑옷을 벗으라고 했던 거냐?”
그러나 자랑스러운 하인트 공작가의 기사들은 갑옷을 장착한 채였다.
활과 같은 원거리 무기도 없는데 갑옷이 없는 부분으로 검을 날린다고?
제아무리 사냥꾼이라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사들은 청년의 마지막 허세를 보며 비웃으려고 할 때였다.
휙!
기사 한 명의 머리에 단도가 정확하게 날아와 박혔다. 그에 나머지 기사 한 명이 경악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기회, 줬다니까.”
그가 속삭이며 나머지 단검 하나를 손에 쥐었다.
하지만 기사는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고 도망치기는커녕 검을 고쳐 잡았다. 기사가 이를 악물고 물었다.
“정체가 뭐냐.”
“이야, 역시 하인트 공작가의 기사들이야. 도망치지 않네?”
“정체가 뭐냐고 물었다.”
청년은 증오에 불타는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나도 당신네와 같은 기사라고나 할까. 하인은 임시직이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최소한 마지막까지 싸우다 아스트라의 품에 안기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는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보았다. 그에 기사는 슬며시 걸음을 옮겼다. 청년이 고개를 내리며 말했다.
“내 이름은 발데르 하우젠.”
“너, 설마!”
“얼샤의 마지막 기사단, 시토라의 기사.”
그 말에 일그러지는 기사의 얼굴을 본 청년이 말했다.
“너네 단장의 심장에 내 화살이 명중했으면 좋았을 텐데.”
기사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사정거리 안에 청년이 자리 잡았다. 이제 발을 내디디고 검만 휘두르면 저놈의 목을 가져갈 수 있었다. 기사가 기합을 내지르며 발을 뗄 때였다.
발데르의 손에서 뻗어 나온 검이 남자의 이마에 적중했다.
기사는 검을 든 채 고꾸라져 데굴데굴 굴렀다. 기사의 시체를 본 발데르가 투덜거렸다.
“말 좀 들어라. 그 갑옷째 이런 데 올라오려면 한걸음 느려진다니까.”
두 기사가 죽은 것을 확인한 발데르는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슈타르여, 영원하라. 보고 있어, 단장?”
그러나 하늘은 대답이 없었다. 단장, 에스텔은 잘했다고 해줄까? 아니면 또 폼 잡을 시간이 있으면 도망이나 가라고 할까.
아니카 녀석이 무슨 생각으로 제1목표인 칼리드 가브라인이 아니라 제더카이어 하인트를 노리라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노력은 했다.
그 무능한 놈의 하인으로 살기가 얼마나 힘들었던가.
그는 기사들의 시체를 지나쳤다. 빨리 일행과 합류해서 그린힐을 벗어나야만 했다.
그때였다.
그가 지나가려던 계곡의 돌 틈에 무언가가 반짝였다.
“뭐지?”
너무나 반짝거려 지나친 존재감을 뽐내는 그것을 차마 지나칠 수 없었던 발데르는 그 반짝이는 것에 손을 내밀었다.
“우와, 대박! 단장! 설마 이거 우리한테 주는 거야? 통도 크네! 고마워, 단장!”
발데르가 하늘을 보며 소리쳤다. 그 손에는 사파이어 브로치가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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