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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법-75화 (75/173)

#75화 사냥대회

2017.11.16.

루시펠라의 옆에 서 있던 클로렌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서로 마주한 두 사람이 어색해 보였기 때문이다.

루시펠라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제드의 눈을 피했고, 제드 역시도 마지못해 온 느낌이었다.

그것을 눈치챈 사람들은 클로렌스 뿐만이 아니었는지 뒤에서 속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클로렌스가 그들에게 눈치를 주자, 모두 다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클로렌스는 일부러 자리를 비켜주었다.

“어머, 저기 2황자 전하예요!”

다른 레이디들과 이야기하던 클로렌스는 어떤 이의 외침에 고개를 들었다. 이오지프가 울타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본 것 중에 가장 화려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깃털이 달린 붉은 모자, 활동하기 편하게 한쪽으로 묶은 머리, 몸에 딱 맞춘 옷은 떡 벌어진 어깨와 함께 숨겨져 있던 건장한 체격을 드러내 주었다.

게다가 안경, 심지어 이오지프는 안경을 벗고 있었다. 그러자 안경에 가려져 있던 준수한 얼굴이 드러났다.

“세상에, 그 2황자 전하가 저런 모습일 줄이야.”

“그냥 책만 읽으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이오지프의 달라진 모습에 대부분의 사람이 모두 그를 보고 있었다.

“로에르 영애는 알고 계셨던 거죠?”

장난기 어린 목소리에 클로렌스는 억지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씁쓸했다.

그의 본래 모습, 자신만이 아는 그 모습이 다른 이에게 드러났다는 것에 거부감이 느껴졌다.

왜?

그녀는 느껴지는 감정에 혼란스러웠다. 황위 싸움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이상, 그는 자신을 드러내는 게 당연했다.

이오지프가 누군가를 찾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에 단정하게 하나로 묶어 내린 결 좋은 금발 머리가 반짝거리며 빛났다.

그 현실감 없는 모습에 클로렌스가 멍하게 서 있었다. 그러다 사람들 사이에 있던 이오지프와 클로렌스의 두 눈이 마주쳤다.

“클로렌스!”

이오지프가 환하게 웃으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마치 진짜 연인처럼, 다정하게.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분명히 그 모습은 위장된 모습이다. 그것이 가식임을 안다.

그럼에도 반갑게 자신을 부르는 그 모습에 심장이 두근거리며 뛰었다.

***

제드는 언제나처럼 멋들어진 옷을 입고 있었다. 그의 적갈색 눈과 시선이 마주하자 그녀는 눈을 피했다. 어쩐지 그 두 눈을 마주하기 어색했기 때문이다. 그에 제드가 한쪽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이 침묵이 상당히 어색했기에, 루시펠라는 품을 뒤적여 손수건을 꺼냈다.

새하얀 색의 손수건은 아무런 문양도 없었다.

제드는 그녀의 손에 어설프게 쥐여 있는 손수건을 보다가 이내 손을 뻗어 그것을 잡았다.

제드의 시선이 손수건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자 루시펠라는 그 와중에도 손수건에 문양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상당히 신경 쓰였다.

그녀의 자수 실력은 당연하게도 최악이었다.

에레네 부인이 최악이라며, 차라리 놓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이것이었다.

어차피 기사로 살아왔고, 자수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으며 그런 자신이 단 한 번도 부끄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막상 제드가 이것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상당히 신경 쓰였다. 그녀는 차마 제드와 눈을 마주칠 수 없어 고개를 돌린 채 간신히 말했다.

“그대가 가장 빛나는 영광을 손에 얻기를 기원합니다.”

루시펠라의 말에 제드가 손수건을 받아 자신의 앞주머니에 넣었다. 건네준 이와 받아 든 이의 손이 살짝 겹쳤다. 그에 루시펠라가 손을 움찔했다.

제드는 루시펠라를 바라보며 자신의 왼쪽 가슴에 달린 브로치를 떼 그녀의 손에 살짝 쥐여주었다.

본디 남자는 무릎을 꿇으며 수건이 있는 가슴에 손을 얹고 인사를 해야 하지만 제드의 인사는 달랐다.

제드는 브로치를 쥔 그녀의 손을 끌어당겨 허리를 숙이더니 손등에 입을 맞췄다.

그에 루시펠라가 놀라 다시 손을 움찔하던 그때, 그가 재빠르게 입술을 떼며 말했다.

“나의 영광을 그대에게.”

아주 짧은 인사였다.

루시펠라가 무어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는 휙 돌아서 가버렸다.

그 싸한 뒷모습에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들은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않았으며, 심지어 브로치와 손수건을 교환하는 의식은 지나치게 짧았기 때문이다.

루시펠라는 브로치를 쥔 손을 바라보았다. 파란 브로치가 반짝거리며 빛이 나고 있었다.

얼샤의 기사가 아니라 얀스가르의 레이디가 된 그녀는 사냥에 나가지 않고, 자신의 약혼자와 이런 의식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새파란 하늘, 선선한 아침 바람. 그리고 제더카이어 하인트가 쥐여준 새파란 브로치.

전생의 자신이라면 이 브로치를 받았을 때 어땠을까. 아마 당장 내팽개쳤겠지.

루시펠라는 그 브로치를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며 주머니에 넣었다.

“왜 착용하지 않으세요?”

클로렌스의 목소리에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자리를 피했던 클로렌스가 어느새 다시 돌아와 있었다.

이오지프와 만나고 온 모양인지, 그녀의 가슴 위에는 에메랄드 브로치가 반짝거리며 빛이 났다.

“그냥.”

루시펠라의 기운 없는 목소리에 클로렌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두 분 싸우셨어요?”

“싸워?”

우리가 싸우는 사이로 보이나. 루시펠라는 자신과 제드의 사이가 그런 ‘단순함’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싸운 건 아니야.”

루시펠라는 머릿속에 든 여러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 그저 범람하게 두었다.

그 복잡한 생각 중에 단 한 가지 결론을 내린 게 하나 있었다.

‘그와 이 이상 가까워지면 안 된다.’

그가 자신의 변덕을 이상하게 여길 것을 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수를 놓지 않은 손수건이나, 서먹한 그의 태도가 신경 쓰이는 걸 보면 마음이란 원래 이렇게도 복잡한 모양이었다.

조심히 다녀오라고 말이라도 할 걸 그랬나. 살짝 후회가 들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루시펠라는 제드가 말을 타고 사냥터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제드의 옆에는 언제나 그를 따르던 부관들과 더불어 하인들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

무거운 생각을 떨쳐 내기 위해 루시펠라는 클로렌스에게 말을 건넸다.

“2황자 전하는 어때?”

“그분이야, 완벽한 연인이죠.”

클로렌스의 목소리에 빈정거림이 묻어나자 루시펠라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곳에서는 언제나 온화한 클로렌스가 답지 않게 툴툴거리고 있었다. 그에 어떻게 된 일인지 캐물으려던 찰나였다.

“아이딘 영애.”

익숙한 음성이 들리며 루시펠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표정을 일그러뜨리지 않으려 노력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칼리드가 그녀를 불렀기 때문이다.

“오랜만입니다, 루이르크 공작 각하.”

클로렌스가 정중하게 인사를 했지만 루시펠라는 인사 따윈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싸늘한 눈빛이 그를 향했다.

그에 반해 칼리드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은 채 그녀의 시선을 받아넘겼다.

그 대비되는 표정에 클로렌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루시펠라와 그를 번갈아 보았다.

“무슨 일이신지요?”

루시펠라의 딱딱한 말투에 칼리드가 대답했다.

“하인트 공작에게 브로치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착용하지 않으시더군요.”

‘하인트 공작’이라는 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이오지프에 대해 떠들던 사람들의 시선이 루시펠라와 칼리드에게로 향했다.

“그래서요?”

루시펠라의 날카로운 어투에도 칼리드는 얼굴 하나 변하지 않고, 자신의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햇빛에 반짝이는 그것은 자수정 브로치였다.

“제 브로치를 착용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루시펠라 근처에 있던 이들의 수군거림이 커졌다. 심지어 몇몇 사람은 노골적으로 이들 근처로 다가왔다.

클로렌스마저도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눈을 크게 떴다.

브로치를 준다는 것은 상대를 연모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루시펠라는 제더카이어 하인트라는 약혼자가 있었다. 황태자와 2황자, 클로렌스 로에르의 스캔들에 이어 또 다른 스캔들이 일어난 것이다.

“아니요. 거절합니다.”

루시펠라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녀는 그와 엮이는 것조차 역겨웠다. 칼리드는 그것을 예상했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받아주시기라도 해주십시오.”

“싫습니다.”

“루시.”

옆에 있는 클로렌스가 속닥거리며 주의를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브로치라도 받는 것이 예의였다.

지금 그녀의 매몰찬 태도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품이 올바르지 못하다고 두고두고 입방아에 오를 것이 뻔했다. 그러나 루시펠라는 강경했다.

“저는 어떤 의미도, 여지도 두고 싶지 않습니다. 이게 저를 위해 각하께서 준비하셨다고 제가 꼭 받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

적당히 하고 꺼져.

루시펠라가 매서운 눈빛으로 칼리드를 바라보았다. 칼리드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영애를 위해 준비한 이 브로치를 영애께서 거부하시다니, 그렇다면 이 브로치는 쓸모가 없겠군요.”

한눈에 봐도 고가의 브로치였지만 칼리드는 개의치 않는 듯, 루시펠라의 발밑에 자수정 브로치를 놓더니 무릎을 꿇었다.

“그대에게 나의 영광을 바치겠습니다. 설령 그 영광을 받아주시지 않더라도.”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졸지에 두 사람의 구애를 받은 루시펠라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칼리드를 외면했다.

그러나 칼리드는 다른 모양이었다. 그는 루시펠라가 어떠한 종류의 대답이라도 할 것을 기다리는 듯, 그대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쓸데없는 이목을 끌 것 같았다. 아니, 이미 끌고 있었지만 그녀는 사람들 사이에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싶지는 않았다.

“루이르크 공!”

그때, 친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시펠라는 그 목소리에 얼굴을 찌푸리다가 이내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오지프가 안경을 벗었기 때문이다.

뭐지? 무슨 일이 있나?

“찾았습니다.”

“2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칼리드가 인사를 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시펠라는 드디어 불편한 상황에서 해방되었다.

“사냥에 대해서 조언을 듣고 싶어서요. 얼샤는 산이 많은 국가가 아닙니까. 좀 짧은 시간이겠지만 조언을 부탁합니다.”

2황자가 대놓고 이렇게 나오니 칼리드도 루시펠라 앞에서 고집을 피울 수 없었다.

“어서, 벌써 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오지프가 사냥터 입구를 가리키며 재촉했다. 그러던 중 이오지프의 시선이 루시펠라와 마주했다. 그는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이딘 백작 영애는 참 매혹적인 분인가 봅니다.”

루시펠라는 어째서인지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꼭 그가 자신을 도와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오지프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던 칼리드가 고개를 돌려 마지막으로 그녀의 두 눈을 응시했다.

어둡게 가라앉은 자색의 눈동자.

칼리드는 루시펠라를 보며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미쳤다고는 생각했는데 정말로 미친 모양이다. 그가 이렇게 행동을 벌일 정도면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발 앞에 놓인 자수정 브로치를 보았다. 그녀가 그것을 흘낏 보다 이내 몸을 돌려 그 자리에서 떠나려고 할 때였다.

“얼른 주우시지 않고 뭐 하세요?”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제니아 영애였다.

루시펠라는 어렵지 않게 그녀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칼리드 루이르크를 좋아하는 영애 중 하나였다.

클로렌스가 입을 열려고 했지만 루시펠라가 그녀를 막았다. 그녀는 짜증이 난 상태였고, 자신에게 온 도발을 유연하게 넘길 생각이 없었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루시펠라의 서늘한 물음에 제니아 영애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루시펠라의 시선이 모여 있는 사람들을 훑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비난의 시선으로 루시펠라를 보고 있었다.

“영애를 생각해서 브로치를 준 거잖아요. 그 성의를 무시하는 건 예의가 아니죠.”

“제 생각을 해서 주었다는 브로치를, 제가 왜 꼭 받아줘야 하는데요?”

“그거야 영애를 생각해서 준 거니까!”

“그러니까 왜요?”

대화가 반복되었다. 루시펠라가 왜냐고 물어보자 그녀가 씩씩거리며 대답하지 못했다.

“누군가 저를 생각하면 받아줘야 하는 건가요? 정말 궁금하군요.”

“누군가 당신을 생각하는 건 아주 고마운 일이에요. 그렇게 매정하게 대할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래요 당연히 누군가가 절 생각해 주고, 마음을 써주는 건 마땅히 감사해야 할 일이죠. 그렇지만 그게 고마운 일이기에, 제가 받기 싫은 걸 받아야 되는 건가요? 그렇다면 루이르크 공작 각하는 절 생각해 준 게 아니군요. 제가 받기 싫은 걸 억지로 강요한 게 되니까요.”

“강요라니, 어떻게 그런!”

“제가 원치 않는데, 강요가 아니면 그럼 무엇인가요?”

루시펠라는 칼리드의 행동에 상당히 짜증이 난 상태였고, 누군가와 가면을 쓰고 하하호호거리며 입씨름할 여력이 없었다. 그랬기에 말은 더더욱 날카롭게 나왔다.

“그냥, 성의를 받아줄 정도의 상냥함도 존재하지 않는 건가요? 레이디의 덕목인 ‘상냥함’이란 영애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 같군요!”

“상냥함이란 곧 배려 아닌가요? 제가 배려를 하는 게 왜 당연한 거죠? 그건 의무가 아닐 텐데요? 그리고 그걸 왜 영애께서 강조하시는지 정말 모르겠군요.”

그녀가 말꼬리를 잡자 제니아 영애가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서 끝낼까 했지만 루시펠라는 이미 기분이 상해 있었다.

“설령, 여기서 제가 브로치를 받았다고 치면 루이르크 공작이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요? 그러면 ‘루이르크 공작께 여지를 주다니, 정숙하지 못한 영애다’라는 소문이 돌겠군요. 그 말은, 제니아 영애의 말대로 했다가는, 레이디의 덕목인 ‘정숙함’을 못 지킨다는 소리네요.”

이번엔 제니아 영애가 정말 할 말이 없는 듯했다.

“아닌 건 아닌 거라고 딱 잘라 말해야죠. 저는 그게 배려라고 생각해요. 제 입장을 고려 안 하고 브로치를 주는 게 배려가 아니고요.”

루시펠라의 말투는 상냥했지만, 그 안에 있는 말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제니아 영애는 그 말에 입술을 깨물며 파들파들 떨었다.

“그렇다면 하인트 공작 각하가 준 브로치는 왜 착용하시지 않는 거죠? 그거야말로…….”

“그것은 영애가 상관할 일이 아닙니다. 저는 상냥함이란 덕목이 없으니 영애, 여기서 이만 끝내주시죠.”

루시펠라가 차갑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나지막한 경고에 제니아 영애는 결국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진부한 말싸움이 끝나고, 루시펠라와 클로렌스는 레이디들을 위해 마련된 천막으로 가 다른 귀부인들과 함께 티 타임을 가졌다.

티 타임을 주도하는 것은 황후였다.

루시펠라는 이 상황이 낯설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그녀가 알기로는 황후는 바깥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오지프가 황위 싸움에 나섰기 때문일까?

그녀는 적극적이었으며, 아주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었다. 따라서 사교계에서 목소리가 가장 영향력이 있다던 이드리스 공작부인은 상대적으로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루시펠라는 자신의 옆에 앉은 클로렌스의 시선을 느꼈다.

“왜?”

“궁금한 게 있어서요.”

“뭐가?”

“아까 2황자 전하, 아니, 이오지프 말이에요. 루시를 도와주려 한 거죠?”

“너도 그렇게 느꼈어?”

루시펠라는 자신의 감이 맞았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에 클로렌스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이오지프는 루시에게 관심이 많나 봐요.”

“당연하지. 내가 제드의 약혼녀인데. 왜, 무슨 일 있어?”

“아, 아니요.”

클로렌스는 뭘 더 물어보려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왜 그걸 물어보지? 루시펠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더 캐물으려 할 때 클로렌스가 물었다.

“루이르크 공작 각하와 무슨 일이 있나요?”

그에 루시펠라의 얼굴이 굳었다. 섬세한 클로렌스에게는 루시펠라의 표정 변화가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루시펠라는 더 설명해 줄 수 없어 입을 다물기로 했다. 클로렌스도 그것을 알았는지 눈을 굴리다가 말했다.

“루시, 아까 행동은…….”

“알아.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었어. 적을 만들면 안 된다, 사교계의 중요한 법칙을 어긴 거잖아.”

“아니, 잘했어요.”

“뭐?”

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클로렌스를 바라보았다.

“저였다면 브로치를 받아들이고 착용하지 않는 걸로 마음을 보였을 거예요. 그런데 루시처럼 단칼에 거절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마음을 내비치며 보이는 호의에 응답하라는 건, 어떻게 보면 마음을 강요하는 것도 되니까요. 그건 이미 배려가 아니잖아요?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어…….”

“다른 영애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예요. 루시, 제가 하는 행동이 모든 정답은 아니에요. 루시는 거기서 가장 루시다운 행동을 한 거예요. 그게 좋아 보였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루시펠라는 클로렌스의 긍정적인 평가에 두 뺨이 붉어졌다.

하여튼, 낯 뜨거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니까.

루시펠라가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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