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계약 이행
2017.10.26.
클로렌스는 침대에 누운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한숨을 쉬었다. 여전히 ‘그날’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클로렌스가 이오지프와 거래를 하기로 한 날, 질척한 입맞춤이 끝난 후 시선이 오고 갔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는 이들 특유의 열기 어린 시선.
그에 클로렌스는 자신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아까까지 눈물이 어렸던 눈 밑을 쓸더니 목덜미로 부드럽게 내려갔다.
겨우 손가락만 몸을 스쳤는데도, 몸이 흠칫하며 떨려왔다.
이오지프는 클로렌스를 안아 든 채 어딘가로 향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벌어진, 아니, 자신이 벌인 일로 빚은 결과가 아직도 와 닿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적어도 그는 테미르처럼 강압적이지도 않았고, 폭력적이지도 않다는 거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는 자신이 침실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오지프가 클로렌스를 내려두고 그녀의 허리 매듭을 풀어 드레스를 벗겨냈다. 그러자 그녀는 새하얀 속치마를 입은 아주 가벼운 모습이 되었다.
난생처음 이성에게 이런 모습을 보였기에 그녀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오지프는 담담한 표정으로 클로렌스를 응시하며 자신의 셔츠의 단추를 하나둘 풀기 시작했다. 진짜 지금, 이렇게, 그에게 안기는 것이다.
이오지프가 한쪽 손으로 어깨를 감싸고 클로렌스를 조심스럽게 침대 위로 눕혔다.
입을 맞추려는 것일까. 그녀가 기대감이 어린 눈으로 살짝 눈을 감자, 이오지프가 이마에 입을 맞췄다. 마치 깃털이 내려앉은 듯 부드러웠다.
“영애.”
귀에 나지막이 속삭이는 소리에 눈을 뜨자, 이오지프가 미소를 지은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열띤 시선, 단추가 없어 벌어진 셔츠 사이로 탄탄한 근육이 잡힌 그의 몸이 눈에 들어왔다.
이 얼마나 엄청난 짓을 저지르는 건지.
클로렌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클로렌스를 쳐다본 이오지프가 머리를 한 번 쓰다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까지 해두지.”
“……?”
클로렌스가 눈을 크게 뜨며 이오지프를 바라보았다.
이오지프는 조금 전과 다름없이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 미소가 어쩐지 씁쓸해 보였다.
왜? 설마 거절하는 건가?
“어찌 되었든, 영애는 바깥에 나가면 내게 안겼다고 하겠지?”
“…….”
클로렌스는 그에 심장이 쿵,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가 이 행위를 하려고 했던 이유는 자신이 협박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도 원치 않은 사람을 안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영애가 그린 계획에 맞추어주지.”
이오지프의 음성은 담담했다. 맞다. 이게 맞는 것이다. 굳이 실제로 ‘그런 짓’을 하지 않더라도 하는 척하는 것은 가능했다.
“나는 서재에서 책을 읽을 거야. 영애는 좀 쉬어둬. 뒤처리는 내가 알아서 하지.”
클로렌스가 무엇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이오지프는 바깥으로 나갔다.
질척한 키스, 부드러운 매너와는 상반된 차가운 태도였다.
그 후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이오지프는 단 한 번도 침실로 오지 않았다.
아침 일찍 클로렌스가 황궁을 나가자 시종들이 보고 경악했다. 그리고 그녀가 나온 곳이 2황자의 처소라는 것도. 이제 보고가 황제에게 가게 되리라.
마차를 탄 그녀의 심정은 복잡했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후작가에 도착하니 예상대로 아버지는 불편한 표정으로 그녀를 외면했으며, 어머니는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를 끌어안았다.
“클로렌스! 이해하렴. 아버지를 이해하고, 이 어머니를 이해해야 한다.”
역시나, 아버지는 알면서도 그녀를 황태자에게 바쳤던 모양이다. 하긴, 그녀가 돌아오지 않았는데 사람을 보내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멍했던 정신이 맑게 돌아왔다.
“어제, 2황자 전하와 밤을 보냈어요.”
“……클로렌스?”
아버지도, 어머니도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클로렌스는 차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더 이상 숨길 수 없었어요. 이오지프와 저는 연인 사이예요.”
그렇게 클로렌스는 자신의 운명에 신호탄을 던졌다.
주어진 삶에 순응하지 않으리라. 있는 힘껏 발버둥 칠 것이다. 나를 도울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었다. 가문이 자신을 이용한다면, 자신 역시 가문을 이용하리라.
그녀의 말에 후작은 이성을 잃고 그녀에게 분노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거의 사흘을 감금당해 있었다.
그녀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겨우 저택에 한정되어 있었고, 연락을 보내는 것도, 연락을 받는 것도 금지되었다.
가족에 대한 배신감도 배신감이었지만, 그날의 기억도 그녀의 우울감에 한몫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첫날밤에 소박맞은 신부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어째서인지 울적한 기분이 몰려들었다.
그녀가 잘못한 거다. 스스로를 이렇게 만들었다. 자신을 이용할 것이며, 협박하게 만들었다.
이오지프가 과연 자신을 도와줄까?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가씨, 식사하세요.”
시녀가 먹음직한 빵과 수프를 가져왔다. 갓 구워서 모락모락 김이 날 정도였으나, 클로렌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자신을 보려 하지도 않았고, 어머니 역시 자신을 보며 울었다. 시온 오라버니는 경멸 어린 눈으로 그녀를 쳐다본 후 어떤 말도 없었다.
무언의 비난, 심지어 그녀가 식사하는지 안 하는지도 관심이 없었다.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지. 클로렌스는 자조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무감각했다. 분명 루이르크 공작가에 열리는 파티에서 루시와 만나기로 했는데. 루시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까?
아니, 아무 소식이 없을 때는 아무 일도 없는 거라고 말했으니 걱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루시펠라가 자신의 집에 와서 혹여 괜한 화를 입지 않기를 바랐다. 분노에 찬 자신의 부모님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오지프에게서는 왜 연락이 없는 것일까? 아무리 연락이 금지되었어도 분명 몰래 연락을 받을 수단 정도는 있을 텐데. 혹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그녀의 마음속에 스리슬쩍 불안감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아가씨!”
그렇게 걱정에 잠겨 있을 때 다른 하녀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둘째 도련님이 도착하셨어요.”
그 말을 들은 그녀는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오늘은 운이 좋지 않을 모양이다. 기사단의 업무 때문에 출장을 가 있던 해럴드의 귀환이 거의 일주일 앞으로 당겨졌다.
이 살벌한 분위기에 해럴드까지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절망적이었다.
“클로렌스! 당장 방에서 나와!”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클로렌스는 자신을 찾는 해럴드의 분노에 찬 목소리를 들었다. 이미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클로렌스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가씨.”
나가지 말라는 하녀의 걱정 어린 부름에 클로렌스가 말했다.
“어차피 날 찾을 텐데, 여기서 행패를 부리면 내 방이 또 어지럽혀지잖아.”
그녀는 해럴드가 내는 화를 기꺼이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클로렌스는 의연한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해럴드는 복도에 서 있었다.
“너, 이 계집애가!”
해럴드는 분노 어린 고함을 지르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도망치지 않았기에 그녀는 순식간에 그에게 멱살을 잡혀 벽으로 밀쳐졌다.
“왜 오라버니가 화를 내는지 모르겠네요.”
클로렌스가 당당한 표정으로 말하자 해럴드가 이를 아득 갈며 말했다.
“이 계집년이, 내 앞길을 막아서다니!”
해럴드는 황실기사단에서 근무하면서 황제 친위대를 노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기사가 군공을 세우지 않고도 명예로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황제를 지키는 것이었다.
클로렌스가 황후가 된다면 그것은 아주 쉬운 일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황태자와 이렇게 틀어지고 황태자가 황제가 된다면 해럴드의 꿈은 날아간 것과 같았다.
“어떻게 몸을 함부로 굴려서!”
“오라버니도 마찬가지잖아요. 오라버니와 함께했던 영애가 몇 명이던가요? 그렇다면 오라버니도 몸을 함부로 굴린 게 아닌가요?”
그에 해럴드의 손바닥이 사정없이 클로렌스의 뺨을 때렸다. 고막이 터질 것 같은 파열음이 들리며 클로렌스가 쓰러졌다. 이전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저택 내에는 부모님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이 상황에도 나오지 않겠다는 것은, 해럴드의 폭행을 방관하겠다는 말과 똑같았다. 클로렌스는 이를 깨물며 말했다.
“제가 설령 몸을 함부로 굴렸더라도, 손을 함부로 휘두르는 게 더 추해요, 오라버니.”
“이, 이년이!”
클로렌스의 눈빛을 본 해럴드가 움찔했다. 그러다 그는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빼 들었다.
클로렌스는 그것을 보면서 더 이상 겁에 질려 떨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게 하찮을 뿐이었다. 클로렌스는 이 상황에 지쳐 있었다.
“어서 죽이세요!”
“뭐?”
“기사가 검으로 약자를 위협하는 게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지 아직도 모르시나 보군요! 기사 자격도 없는 이가 어떻게 친위대에 들어가겠나요? 제 핑계는 그만 대세요!”
“너, 너 이년이!”
그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그녀에게 성큼 다가왔다. 클로렌스는 그 두 눈에 어린 살기를 보았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무슨!”
그때, 해럴드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부터 이전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는데, 설마.
“루시?”
그녀가 중얼거리며 눈을 떴다. 루시펠라가 이 와중에 자신을 보러 와준 것일까?
그러나 자신이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장면이었다.
이오지프가 검을 든 해럴드의 팔을 잡고 있었다. 서로 멈춰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해럴드의 팔이 부르르 경련하는 것을 보아 이들은 말없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이오지프가 서늘한 표정으로 해럴드를 응시했다.
“경께서 여성에게 이렇게 사사로이 검을 휘두르실 줄은 몰랐습니다.”
꽈아아악.
이오지프가 해럴드의 팔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에 해럴드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진 것으로 보아 이 힘겨루기의 결과는 뻔했다.
클로렌스는 아직도 눈앞에 벌어진 장면이 얼떨떨했다.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왜 이 사람이 눈앞에 있지?
어안이 벙벙해 눈을 깜빡이자 이오지프가 해럴드의 팔을 놓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영애?”
클로렌스는 이오지프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이오지프의 시선이 그녀의 뺨에 자리했다. 그가 팔을 뻗어 그녀의 뺨을 쓸었다.
“전하,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연락이 안 돼서, 너무나 걱정되어서요.”
“…….”
다정한 말투, 진짜 연인인 것처럼 애정이 느껴지는 표정. 이오지프가 안도한 듯 클로렌스를 껴안았다.
“너무 늦었지요? 보고 싶었습니다, 영애.”
울컥, 어째서인지 눈물이 나왔다.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째서일까. 이 사람과 자신은 겨우 그 단 하루, 얄팍한 거래를 했을 뿐인데도 모든 게 잘될 거라는 안도가 들었다.
상황을 정리한 이오지프는 그녀를 다시 방으로 들여보낸 후 후작을 만나러 그의 방으로 향했다.
클로렌스는 뺨을 치료받은 후 방 안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찻잔 손잡이를 잡은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이오지프가 와주었다는 것이 안심되면서도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 감도 잡히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그와의 계약은 어떻게 된 것인가, 정말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그렇게 초조해하며 차 한 잔을 모두 비울 때쯤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전하께서 오셨어요.”
문밖에 서 있는 하녀의 목소리에 클로렌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서 들어오시라고 해.”
클로렌스의 말에 문이 열리더니 이오지프가 보였다. 그녀가 하녀들에게 눈짓하자 그들이 알아서 자리를 피했다. 이윽고 문이 닫혔다. 그는 나가는 하녀들을 보더니 말했다.
“굳이 하녀들을 물리지는 않아도 되는데.”
“거래에 관해서 이야기하려던 거 아니었나요?”
클로렌스의 물음에 이오지프가 ‘아아’라고 말하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뭘 생각했던 거지, 저 사람?
클로렌스가 얼굴을 찌푸리며 이오지프를 보니 이오지프는 다가와 클로렌스의 맞은편에 앉았다. 덕분에 서 있던 클로렌스 역시 그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되었나요?”
“로에르 후작은 역시 만만치 않은 사람이야.”
클로렌스가 차를 따라주러 손을 내밀었지만 이오지프가 손으로 막은 채 자신의 찻주전자에 찻물을 따랐다.
“무슨 말씀이세요?”
차를 마신 이오지프의 얼굴은 여전히 심각해 보였다.
무슨 일이 있나? 클로렌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마주한 이오지프가 피식 웃었다.
“내게 가능성을 보여달라고 하더군. 감히 황좌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을 시험해 보고 싶나 봐. 영애는 생각보다 꽤 사랑받고 있는 것 같은데.”
“저를 강제로 황태자 전하와 결혼시키는 게 사랑인 건가요?”
그녀의 냉소 어린 표정을 보고 그가 피식 웃었다.
“실례, 아버지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귀족의 자식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하지.”
이오지프의 말에 클로렌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오지프는 차를 들이켰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우리 계약은 이대로 실행된다는 건가요?”
“그래, 단시간에 증명하라는 게 좀 복잡하긴 하지만, 어떻게든 묘수를 내봐야지.”
그에 클로렌스의 얼굴이 흐려졌다. 아버지 역시 그냥 허락은 안 하실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조건을 내걸 줄은 몰랐다.
단시간에 어떻게 그 가능성을 보여준단 말인가. 이오지프가 그럴 능력이 있는 것일까?
이오지프를 보자,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버지가 내건 조건이 이루기 힘들다는 건가요? 얼굴이 심각해 보이시네요.”
그 말에 이오지프가 자신의 표정을 점검했다. 그는 자신의 표정 때문에 클로렌스가 불안해할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잠시 다른 생각을…….”
다른 생각? 지금 이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어디 있단 말인가?
클로렌스가 속으로 꽁알거리자 이오지프가 그 얼굴을 오해했는지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나도 별로 걱정은 안 하고 있으니까.”
이오지프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클로렌스는 아주 약간 안심이 되었다.
“로에르 후작가는 내게도 중요한 가문이니까.”
아주 당연한 말인데도 그 말을 듣자 클로렌스의 기분이 가라앉았다.
“뺨은 괜찮나?”
그 말에 클로렌스가 얼굴을 들었다. 그 걱정에 마음이 따스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보고…… 계셨어요?”
“이것도 사과해야겠군. 이런 모습은 보통 보여주기 싫어하니, 나서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어. 그래서 영애가 이렇게 다치게 되었지. 늦어서 미안해.”
“괜찮아요. 이해해요.”
그녀는 테이블 아래에 있는 치맛자락을 꼭 쥐었다. 이오지프가 자신을 구해준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아이딘 영애는 그렇지는 않았나 보더군.”
“……그걸 어떻게 아신 거죠?”
“아까 아이딘 영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나?”
이오지프가 찻잔의 손잡이에 손을 떼며 작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것도 기사도 정신이었던 건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클로렌스는 이오지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자신과의 대화에 루시펠라가 나오는 것인가. 게다가 자신과 대화할 때는 평온해 보였던 그가 방금 루시펠라를 언급할 때는 묘하게 곤두서 있는 것 같았다.
설마, 지금 그가 고민하고 있는 게 이것인가?
“영애, 아이딘 백작 영애가 언제부터 변했지?”
“네?”
갑자기 왜 루시펠라에 대한 화제로 변한 건가, 클로렌스가 얼굴을 찌푸렸다.
“대답해 줘.”
그는 아주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클로렌스는 마지못해 대답할 수 있었다.
“그거야, 호수에 빠지고 나서부터가 아닌가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
저 사람은 자신과 그, 둘 사이에 대해서 제대로 된 고민도 없단 말인가? 지금 여기서는 자신과 그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맞지 않나? 그에게는 이게 지나가는 화제 중 하나인 건가?
게다가 아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주제는 자그마치 해럴드에게 맞아서 부어버린 그녀의 뺨에 대한 것이었다.
클로렌스는 화가 났지만 꾹 참았다. 결국 이오지프가 다시 뺨이 괜찮냐고 물어봤지만, 그녀는 쌀쌀맞은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저쪽이 그렇게 나온다면, 자신 역시 똑같이 대하리라. 그녀의 마음이 식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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