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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법-59화 (59/173)

#59화 도움 요청

2017.09.21.

루시펠라의 표정과 마찬가지로 칼리드의 표정이 굳었다. 막상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어 불러 세운 이는 그였음에도 그는 묘하게 매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원래 이 녀석이 이런 인상이었나? 무언의 시선이 오갈 때 서서히 칼리드의 얼굴이 부드러운 미소를 띠었다.

“무슨 일이시죠, 각하?”

루시펠라 역시 마주 보며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아까와는 사뭇 다르게 얼굴에 가면을 씌운 채 그들은 또다시 시선을 교환했다.

“영애에게 할 말이 있어서요.”

루시펠라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떤 말씀이요?”

“저번에 영애와 이곳에서 의견 다툼이 있었지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루시펠라는 계속 말을 해보라는 듯 칼리드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그렇게 헤어졌으니 서로 얼굴을 보기 불편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그럴 필요 없다고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

“아까도 분명 저를 피하지 않으셨습니까.”

칼리드의 어조는 분명 사교적이었다.

그러나 저번 티 파티의 일을 언급하자 그녀의 기분이 급격히 가라앉았다.

아직도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머릿속에 똑똑히 남아 있었다. 그 말을 떠올리자 루시펠라는 칼리드에게 욕을 퍼붓고 싶었다.

그때는 말문이 막혀서 말을 못 했다. 그러나 자신이 이 화제에 대해 언급한다면 수상해 보일 것을 알기에 그녀는 말을 돌렸다.

“제가 그렇게 각하를 모욕했는데 각하는 괜찮으신 건가요?”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그토록 크신 분인데, 제가 어떻게 화를 내겠습니까?”

루시펠라도, 제드도 그를 인간 이하처럼 취급했다. 그때 분명 그는 기분이 나빠 보였다. 그런데 칼리드는 지금 루시펠라에게 지나치게 사교적이었다.

대체 왜 그는 지금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루시펠라는 속으로 의문을 던졌다.

예전 에스텔과 함께했던 칼리드는 상냥하게 웃었지만 그만큼 자긍심도 강했던 사람이었다.

루시펠라의 머릿속에 아이딘 백작령에서의 칼리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명예를 비웃었다. 그래서 지금 루시펠라에게도 아부를 하는 것일까?

그렇지만 이건 너무 비굴한 거잖아.

이미 그가 변절했음을 안다. 그런데도 루시펠라는 새삼 그에게 다시 한 번 실망했다.

루시펠라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진짜 루시펠라로서 그녀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생각했다.

사교계의 제1원칙은 구태여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더욱 깊숙이 숨기며 미소로 무장하라.

클로렌스와 에레네 부인이 해준 말을 스스로에게 되뇌며 루시펠라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받아들여 주신다니 정말 다정하신 분이시군요.”

그녀는 자신의 인내심에 경의를 표했다. 그렇게 말하며 막상 칼리드를 보니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왜 그러는 거지?

루시펠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그는 되려 자신이 더 놀란 것 같았다.

“각하?”

루시펠라의 물음에 칼리드가 정신을 차리고 미소 지었다.

“다정하긴요. 틀린 말이 아니기에 그랬던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저번의 불미스러운 대화에 대해 서로 잊었다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루시펠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펠라는 이 대화를 나누기가 더욱 힘겨워졌다.

“각하. 제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서, 이만 가봐도 될까요?”

루시펠라가 정중하게 말했다. 그에 칼리드가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영애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저는 영애와 친밀한 사이가 되고 싶습니다. 설마 지금도 절 피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왜 자꾸 질척대? 루시펠라의 얼굴이 찌푸려질 때였다.

“영애! 오랜만입니다.”

달갑지 않은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클로렌스와 같이 다가온 이오지프가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황자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황자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루시펠라와 칼리드가 인사하자 이오지프가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이오지프는 스리슬쩍 루시펠라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게 꼭 ‘나 잘했지?’라고 묻는 것 같았다.

일부러 자신에게 다가온 건가? 루시펠라가 저 알 수 없는 인간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클로렌스가 다가와 칼리드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루이르크 공은 이런 곳에 잘 안 나오시더니, 요새는 자주 나오시는군요.”

이오지프가 나긋하게 묻자 칼리드가 말했다.

“전하야말로 자주 나오시는 모양이더군요. 황태자 전하가 아무래도 움직일 수 없다 보니 다행입니다.”

칼리드는 분명 대화에 무언가 암시를 주고 있었다. 황태자가 움직일 수 없는 틈을 타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이오지프에게 지켜보고 있다고 암시를 주고 있는 것이다.

“저는 그저 책 속의 장면을 실제로 보러 다니는 것뿐인데요. 아, 오늘은 후작 영애의 초대를 받고 왔습니다.”

이오지프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때 저들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클로렌스가 입을 열었다.

“루시, 오늘은 좀 피곤하다고 했죠? 쉬고 있지 않을래요?”

클로렌스가 얼른 고개를 돌려 루시펠라에게 말했다. 껄끄러운 인물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아까 말했던 대로 마련해 두었던 휴게실에 루시펠라를 피신시켜 줄 모양이었다.

“영애, 몸이 안 좋은 모양입니다.”

이오지프가 루시펠라의 곁에 다가서며 칼리드와 그녀의 사이를 벌려놓았다. 루시펠라는 이오지프가 왜 이런 행동을 벌이는지 궁금했다. 그때, 이오지프가 눈을 마주해 왔다.

“하인트 공은 오늘 오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럼 제가 휴게실까지 데려다 드려도 될까요?”

“전하.”

그때, 클로렌스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그녀는 찝찝한 표정으로 루시펠라를 잡아 세우려고 했다.

루시펠라는 어찌할까 하다가 칼리드에게서 벗어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 고개를 저었다.

칼리드와 같이 있으면 자신이 어떻게 변할지 자신도 알 수 없으니, 그로부터 떨어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아, 휴게실은 알고 있습니다. 저도 저번에 온 적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인간이 아까부터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눈짓하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고 싶지는 않았지만 대화를 한번 해주어야 이오지프가 그녀에게 향한 집착을 거둘 것 같았다.

“갈까요?”

내민 손을 그녀가 마주 잡자 이오지프가 싱글싱글 웃었다. 루시펠라는 칼리드를 힐끔 쳐다보았다.

칼리드는 웃고 있었으나, 의외로 루시펠라에게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대신 클로렌스의 미묘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 미묘한 분위기를 뒤로한 채 루시펠라는 이오지프의 손에 끌려 발걸음을 떼었다.

연회장을 나가 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음악 소리가 멀어지자 복도는 놀랍도록 적막했다.

사용인들은 모두 연회장에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제나 수다스러운 이오지프는 복도를 걷는 동안 침묵을 지켰다.

“여기가 휴게실이군요.”

그는 정말로 길을 기억하고 있는지 루시펠라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 조용한 휴게실의 소파에 앉은 루시펠라는 이오지프를 힐끔 바라보았다. 이오지프는 복도를 한번 둘러보더니 문을 닫고 루시펠라에게 다가왔다.

“할 말이 있지 않나요? 아까부터 그런 것 같던데.”

루시펠라는 소파에 편하게 기대며 물었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듯 이오지프 특유의 순진한 표정이 변하고, 그의 얼굴이 진지함으로 물들었다. 아주 짧은 침묵 후 그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나는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아. 그 점을 미리 말하지, 영애.”

언제나 존대를 했던 말투는 사라졌다. 루시펠라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렇지만 증거가 없어도 때로는 확신이 서는 법이 있거든. 바로 지금처럼 말이야. 가끔 직감에 도박을 거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해.”

“도박이요?”

이오지프는 대답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사실 아직도 실마리는 제대로 잡히지 않았지만, 영애가 가진 위화감을 그냥 넘기기는 힘들어서 말이야.”

그에 루시펠라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상하다니? 자신의 행동이 그렇게 위화감이 넘쳤나? 솔직히 많이 넘치긴 했지.

“나는 형님과 영애가 사귀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영애를 가까이에서는 아니지만 멀리서 봐왔지. 내가 알던 영애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어. 거기서부터 수상하더군.”

루시펠라는 이오지프의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영애는 칼리드 루이르크를 적대시했어. 내가 조사한 바로는 루이르크 공과 영애의 접점은 없었어.”

이오지프가 그 점을 눈치챘을 거라고 예상했기에 루시펠라는 말을 듣고도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심장만은 두근거리며 쉴 새 없이 뛰기 시작했다. 그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니 무언가 중요한 걸 눈치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샤에 친화적이었지. 서점에서 영애가 얼샤 왕국에 대해 읽고 있던 걸 기억하고 있어.”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전하?”

“에스텔 슈페르트 말이야.”

그에 루시펠라의 심장박동이 더욱 커졌다.

“어째서인지 에스텔 슈페르트와 연관이 되어 있는 것 같더군.”

루시펠라는 침착하려고 애썼다. 설마, 들킨 건 아니겠지? 하지만 저 인간과 에스텔, 그러니까 자신은 한 번도 접점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에스텔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지.

설마, 기마를 갑자기 할 수 있어서인가? 아니면 저 녀석이 책벌레인 척 연기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려서 그런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에스텔이라고 알아차릴 수 있단 말인가? 불가능했다.

루시펠라가 긴장하며 이오지프를 보니 이오지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날 속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영애는 얼샤의 독립을 바라던 게 아닌가.”

“……?”

뭐지, 아주 정확하게 사실을 짚었는데 엄청 잘못 짚은 듯한 이 기분은?

“바로 영애의 어머니가 얼샤 출신이니까.”

뭐야, 그랬어?!

루시펠라는 자신도 몰랐던 사실에 눈을 깜빡거렸다. 이오지프는 정보와 정보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오류를 믿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지금 그렇게 비춰지는 건가?

“어머니가…….”

“루아나 바네사. 얼샤의 몰락 귀족 출신이지.”

그런데 얼샤에 있던 사람이 왜 이곳에 와서 아이딘 백작부인이 되었지?

진짜 루시펠라의 어머니의 일이기에 궁금해도 물어볼 수 없었지만 이오지프는 신나게 떠벌거리며 그녀가 알고 싶던 정보까지도 말해주었다.

저 인간이 수다쟁이라는 건 가면이 아니라 어느 정도 내재된 특성인 모양이었다.

“바네사 남작가가 빚을 갚지 못해 사실상 몰락하자 영애의 어머니는 얼샤의 왕궁에서 일하다 영애의 외증조부인 클레인 남작가에 와서 아이딘 백작과 결혼했지.”

그랬구나, 루시펠라의 어머니가 얼샤 출신이었구나.

그렇다면 루시펠라의 외조모인 바네사 남작부인은 어떻게 얀스가르에서 얼샤까지 올 수 있었나. 끝도 없는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으나 루시펠라는 우선은 이오지프의 말에 집중했다.

루시펠라의 표정이 처음 듣는 정보에 대한 놀라움과 분석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이오지프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아이딘 백작가에서 2년 전 대량으로 자금이 빠져나간 기록이 있어. 대체 백작가에 그만한 자금이 있던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그 자금이 얼샤로 흘러갔더군. 얼샤 독립자금을 지원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랬어? 루시펠라의 의아한 표정과는 다르게 이오지프는 자신만만했다.

이슈타르라는 단어와 함께 루시펠라와 에스텔이 떠올랐을 때 그는 루시펠라가 농담조로 이야기하는 것과 달리 에스텔이라는 인물에 광적으로 매료된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루아나 아이딘이 얼샤 출신이라는 걸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루시펠라는 단순히 에스텔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어머니의 모국인 얼샤에 대해 다른 감정이 있는 게 아니었을까.

귀족 중에서도 점령국들에 대한 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런 가정에서 몇 가지 더 세밀하게 조사를 하자 아이딘 백작에 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독립자금을 지원했다니…….”

루시펠라는 그 말을 듣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자신과 관련된 정보인데 무척이나 새로웠다. 진짜 루시펠라도 몰랐던 정보인 것 같은데.

자신의 영지가 그다지 부유하지 않은 걸로 아는데, 그렇게 빠져나갈 대량의 돈이라도 있었던 건가? 그 돈 출처가 정말로 백작령이 맞나? 루시펠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영애는 정말로 에스텔 슈페르트를 동경해 왔던 거야. 그래서 얼샤를 배신한 칼리드 루이르크를 미워하고, 얼샤에 관심이 많은 거겠지. 기마를 배운 것도, 검술을 쓰는 이의 손에 대해 파악한 것도 에스텔을 따라 하기 위함이 아닌가.”

그녀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했다. ‘아이딘 백작이 독립자금을 지원했다’라는 가정은 반역죄에 해당했다. 이 부분은 부정할 필요가 있었다.

“자금이 왜 얼샤에 흘러들어 갔는지, 이 부분은 아버지에게 직접 물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전하. 저는 정말 모르는 일이에요.”

루시펠라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오지프는 웃으며 말했다.

“역시나 예상대로군.”

아니, 네가 틀렸다니까. 아이딘 백작이 얼샤 독립자금을 지원해 준다는 게 더 개소리로 느껴진 이유는, 반역죄가 확실한 일을 조사만 하면 드러날 정도로 허술하게 아이딘 백작이 처리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루시펠라가 아는 아이딘 백작은 소심했고, 그럴 배포가 없는 사람이었다.

“영애에 대해 드러내려면 나에 대해서도 드러내야 공평하겠지.”

그러나 이오지프는 그것을 다르게 해석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는데. 일단 비밀의 내용 자체가 틀렸고, 심지어 안 궁금했다.

이오지프가 거하게 멍청한 추론을 내린 것을 본 루시펠라는 그에 대해 긴장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루시펠라의 얼굴을 바라보며 신중한 표정으로 그녀를 훑어보더니,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영애, 굳이 말하자면 나는 얼샤를 독립시키고 싶은 쪽이야.”

“……?”

뭐라고? 루시펠라는 눈을 크게 뜨며 이오지프를 바라보았다. 지금 황자가, 점령한 나라를 독립시키고 싶다고 말하는 것인가? 자신을 드러낸다니, 진짜로 자신의 사상을 드러내 버린 건가!

그가 가진 사상은 아버지인 현 황제와 정반대되는 사상이었다. 정복과 복속이 아니라 독립이라니.

“전하, 그건 반역이 아닌가요? 폐하가 이미 복속시킨 땅이에요.”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우습긴 하지만, 루시펠라는 자신의 입장에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이 황자가 정말로 도박과도 같은 행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영애, 제국은 그렇게 넓은 땅을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는 없어. 땅이 넓으면 중앙의 지배력은 약해지고, 이는 분명 얀스가르를 재앙으로 몰아넣을 거야.”

“…….”

“그렇게 나라를 삼키고 또 삼키고, 피를 흘리고. 중앙 황실에서 그것을 감시하다가 결국 얀스가르 본토의 지배력까지 상실해 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지금은 아바마마께서 건재하시지만, 다음은, 또 그 후세는 어떻게 될까?”

이오지프는 자조적으로 말하며 루시펠라가 앉던 소파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왜 이오지프는 이런 말을 솔직히 하는 것인가.

루시펠라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진지한 얼굴을 보니 이전과 같은 누군가를 떠보기 위한 거짓이 아닌 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온몸으로 부딪혀 오고 있었다.

“사실 황당한 생각을 하기도 했어. 영애의 어머니와 에스텔 슈페르트가 혈연관계가 아닐까 하는. 하지만 나이 차이가 심하게 나더군. 그런 건 아닌 모양이야.”

당연했다. 다른 건 몰라도 에스텔의 신원은 확실했다. 그녀는 뒷골목 출신이었으며, 루시펠라의 어머니와 어떠한 접점도 없었다.

“죽을 뻔한 이후 기억을 잃었다가 되찾았던 거 알고 있어. 영애는 얼샤뿐만이 아니라 형님에게도 유감이 많겠지. 그렇게 성격이 변할 정도니 말이야.”

성격이 달라진 것을 기억상실로 설명이 된다니 다행인 일이었지만, 루시펠라는 할 수만 있다면 집에 돌아가서 정보 단속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나는, 황좌를 손에 넣고 싶어.”

그의 두 눈이 진지하게 반짝였다. 루시펠라가 눈을 크게 뜨고 이오지프를 바라보았다. 그는 만나서 처음으로 가면을 벗어 던진 모습으로 루시펠라 앞에 마주 섰다. 그의 두 눈은 순수한 열망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저런 모습은 전혀 멋있어 보이지 않았다. 일단 추론을 잘못해도 너무나 잘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이었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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