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오지 않는 그대
2017.09.18.
루시펠라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칼리드. 오랜만에 칼리드를 본다니, 루시펠라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루이르크 공작이 이런 연회에 오는 게 자주 있는 일이야?”
“저번 티 파티에서도 말했다시피 매우 드문 일이에요. 무슨 일 있으세요?”
클로렌스의 물음에 루시펠라가 고개를 저었다.
루시펠라를 관찰하던 클로렌스가 생각이 났는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 티 파티에서 살짝 언쟁이 있었군요. 보기 껄끄럽겠네요.”
보기 껄끄럽다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루시펠라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것을 본 클로렌스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루시, 따로 휴게실을 마련해 놓을 테니 연회가 열리고 적당히 빠지세요.”
“그래도 돼?”
클로렌스는 연회의 처음부터 끝까지 루시펠라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녀를 일부러 일찍 초대한 것이다. 도중에 자리를 뜨는 건 그녀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그럼요.”
그 흔쾌한 대답에 루시펠라는 그에 진심으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칼리드를 보는 것은 고통스러웠고, 언제나 잊고 있던 무력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차라리 그를 보지 않는 것이 더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
제드는 연미복을 입은 채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거울 안에 그의 모습이 비쳤다.
날카로운 칼라 깃, 은은한 광택이 어린 넥타이, 몸 선과 딱 맞아 떨어지는 옷의 맵시까지, 완벽한 차림이었다.
그는 자신의 머리가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살펴보며 손가락으로 살짝 머리를 쓸었다.
창밖을 보니 어느덧 해가 지평선과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타이를 매만지다 이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오늘 연회에서 루시펠라를 만날 수 있다.
그간 제드는 의도적으로 루시펠라와의 연락을 줄였다. 그는 자신의 낯선 감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 감정을 마냥 무방비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감정에는 어느 정도의 절제가 필요했고, 절제가 불가하다면 어느 정도 조절이 필요했다.
순간, 들었던 거짓말 같은 질투심에 그는 자신의 자제력이 완벽하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며칠간의 고민 끝에 그는 답을 내렸다.
마음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만약,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그대로 놓아버리며 시간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이전의 계약대로 이혼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소설에 나오는 영원한 순정을 가진 남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지 않나.
그저 자신이 처음 느낀 감정이기에 조절이 조금 어려운 것뿐이다. 제드는 그렇게 자신이 가진 마음을 과소평가했다.
제드는 다시 한 번 타이를 매만지며 말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군.”
전쟁터 안에서는 신경 쓸 수 없었지만, 그는 필요할 때면 다른 이보다 자신의 외양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남자는 꾸며도 되지 않아도 된다며 엉망으로 꾸민 귀족 남자들을 보고, 자기 외모 관리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은 루시펠라와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타인을 매료시키기 위해 그만큼 공을 들이는 것은 당연했다.
오늘은 무슨 대화를 나눌까. 이전에 선물해 주었던 말을 제대로 타고 있는지 물어볼까? 그럼 분명히 그 눈을 빛내며 이것저것 이야기하겠지.
가능하다면 춤을 추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설마 오늘도 발을 밟으려나. 그가 루시펠라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각하!”
그를 부르는 소리는 꼭 적의 기습을 알리는 것처럼 다급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버나드였다.
“무슨 일이지?”
“튀아드 지방에서 마물이 대량으로 발생했다고 합니다.”
“놀랄 것도 없군.”
제드가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튀아드는 하인트 공작령의 가장 서쪽에 있는 곳으로, 제드의 직속 봉신인 마일레 백작이 다스리는 땅이었다.
하인트 공작령은 마물이 나타날 시 대응 지침서가 존재했기에 공작이 굳이 영지에 없더라도 봉신들이 지침대로 해결하고 있었다.
“마일레 백작은 뭘 하고 있지?”
“그게, 나타난 마물이 상급 마물인지라 모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백작가의 일원들은 모두…….”
버나드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표정을 보니 죽었다는 말은 아니겠고, 튀었다는 말이겠군.”
제드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순간 그의 두 눈이 붉게 타올랐다. 버나드는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튀아드 지방은 초토화되었고 마물이 먹이를 찾아 알반 지방까지 남하한 모양입니다.”
제드는 어이가 없어 미소를 지었다.
마일레 백작이 겁이 많다는 것은 제드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필요할 때 땅과 영지민을 버리고 도망치다니. 절대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내려가 봐야겠군.”
사실 그대로 있어도 다른 봉신들이 있으므로 해결이 가능했다. 그러나 공작이 되고 처음 일어난 재난이었다. 또한 마일레 백작 일가에게 합당한 처벌이 필요했다.
“작위를 물려받은 지 얼마 안 됐다고 내가 우습게 보인 모양이야.”
그가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그에 버나드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차라리 대놓고 분노하는 게 더 나았다. 모든 이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제드는 신경질적으로 애써 제대로 맨 타이를 풀었다.
아무래도 오늘 연회는 가지 못할 성싶었다.
***
루시펠라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늦어도 너무 늦다. 왜 안 오는 거지?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를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은 분명 낯설었다.
제드는 루시펠라를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었고, 오히려 일찍 나왔다. 기마회 때도 먼저 와서 그녀를 기다리지 않았나?
오늘은 무슨 일이지?
이럴 거면 왜 자신에게 오늘 참석한다는 서신을 보낸단 말인가. 그녀가 속으로 투덜거릴 때였다.
“앞 좀 보시죠, 영애?”
레인 영애가 뾰족한 말투로 말했다. 그에 루시펠라가 그녀가 가리킨 쪽을 보니 클로렌스를 포함하여 모여 있는 로에르 가 사람들이 보였다.
“아, 고마워.”
루시펠라의 말에 레인 영애가 천만에요, 라고 작게 말했다.
로에르 후작은 완고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후작부인은 클로렌스와 똑 닮았으며, 나이에 비해 젊고 아름다운 외모와 더불어 우아한 사람이었다.
이미 인사를 나눈 사이였기에 루시펠라의 시선은 초면인 시온 쪽으로 향했다.
“멋있어.”
“엉?”
루시펠라가 그 소리가 들려온 옆을 보니, 레인 영애가 황홀한 표정으로 후작의 옆에 서 있는 시온 로에르를 쳐다보고 있었다.
루시펠라는 다시 시온 쪽을 바라보았다. 시온 로에르는 클로렌스 같은 아름다운 선보다는 완고해 보이는 아버지의 얼굴을 그대로 빼다 박은 훤칠한 키를 가진 준수한 청년이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인 영애, 시온 영식을 좋아하나요?”
루시펠라의 물음에 레인 영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엄연히 약혼녀가 있는 사람에게 실례예요! 그냥 잘생긴 사람을 보는 걸 좋아할 수도 있죠.”
옳은 말이었다. 잘생긴 사람이 나오면 좋아할 수도 있지. 루시펠라는 시온을 다시금 보았다.
멋있다니, 뭐가 멋있다고.
같은 무표정이라도 제드 쪽이 훨씬 더 근사해 보였다. 외모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몸 역시 호리호리한 편이었다. 제드에 비하면 저 시온 로에르는 풋내 나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루시펠라는 자신의 머릿속에 든 생각에 화들짝 놀랐다. 무슨 연유로 저 남자를 보며 제드와 비교한단 말인가. 저 남자에게 실례였다.
그녀는 심지어 자신이 제드를 칭찬했다는 것을 깨닫고 괴로운 신음 소리를 흘렸다. 그에 레인 영애가 루시펠라의 얼굴을 이상하다는 듯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제 아들 녀석을 축하해 주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로에르 후작이 연회를 열기 전 개회사를 말하기 시작했다. 루시펠라는 그것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연회장 입구를 보고 있었다.
결국 후작과 시온의 환영 인사가 끝날 때까지 제드는 오지 않았다. 심지어 칼리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당히 찝찝했다. 칼리드야 안 오면 좋았지만, 제드는 무슨 일로 오지 않는 건가.
루시펠라는 애써 심란한 마음을 다스렸다. 사람들이 서로 대화기 시작했다.
“아이딘 영애! 반가워요!”
살가운 인사에 루시펠라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로에르 가문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그녀에게도 향했기 때문이다. 루시펠라는 사람들이 자신에게도 관심을 가질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클로렌스의 말이, 이번 연회에 참여하면 그녀의 위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이런 것일까? 루시펠라는 담담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응시했다.
“공작 각하는 오늘 안 오셨나 봐요?”
“네, 좀 늦어질 것 같아요.”
루시펠라가 상냥하게 답했다. 제드 때문에 그녀에게 접근해 오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었다. 제드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걸 알면 그녀에게 관심이 사그라들겠지.
그러나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사람들이 더더욱 모여들었다. 이들은 제드보다는 루시펠라에게 더 관심이 많은지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심지어 이들은 자신이 왜 그동안 루시펠라와 친하게 지내지 못했는지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며 친분을 이어가기를 원했다.
왜 이렇게 자신에게 관심이 많지? 제드에 대해서 궁금한 게 아닌가? 이들의 관심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렇게 주목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기에 일일이 응대하기는 버거웠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레인 영애가 루시펠라의 팔을 이끌었다.
“후작 각하께 인사는 드려야 하지 않겠어요?”
루시펠라가 그에 반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레인 영애. 덕분에 살았어요.”
“인사는 기본이라고요. 아셨어요?”
그녀를 가르치듯 말했지만, 괜히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부끄러워해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전히 귀엽네. 루시펠라는 싱글싱글 웃으며 그녀를 따라갔다.
연회가 열리기 전, 후작부인에게는 따로 인사를 했기에 그녀는 후작과 오늘의 주인공인 시온 영식에게만 인사를 하면 되었다.
후작을 찾아가 보니 다행히 인사는 어느 정도 끝냈는지 그는 낯익은 얼굴과 대화 중이었다.
이드리스 공작. 멜로즈의 아버지이자 그녀의 친척이었다.
루시펠라가 다가가자 이드리스 공작과 그녀의 두 눈이 마주쳤다.
루시펠라의 눈이 커졌다. 왠지 모를 불쾌감이 엄습해 왔기 때문이다. 마치 멜로즈를 마주했던 것 같은 강한 부정적인 감정이 루시펠라의 온몸을 타고 흘렀다.
서늘한 눈동자가 그녀를 향했다. 루시펠라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았다.
처음 이드리스 공작을 볼 때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대체 왜 이러는 거지?
그러다 루시펠라는 이드리스 공작을 봤을 당시 기억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녀가 루시펠라의 기억을 되찾기 시작했던 것은, 이드리스 공작 다음 황태자를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그러고 보니 저 남자, 자신의 친척 조카가 앓아누웠는데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었다. 이드리스 공작은 루시펠라를 싫어하
고 있었다.
그녀가 이드리스 공작의 눈을 피하지 않자 그는 놀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얼굴을 더욱 싸늘하게 굳혔다.
“그럼 이만…….”
이드리스 공작은 루시펠라와 인사조차 나누고 싶지 않은지 이내 자리를 떠났다.
이드리스 공작은 명백하게 그녀를 외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적의라기보다는 얽히고 싶지 않다는 무시와 같았다. 그러나 루시펠라는 그와 달리 적대감과 더불어 멜로즈 때와 비슷한 증오가 넘쳐흘렀다.
‘또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루시펠라는 진짜 루시펠라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가끔 떠오르던 루시펠라의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멜로즈 때문에 싫어하는 건가?
루시펠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 루시펠라는 어느 정도 자신의 감정과 루시펠라의 감정을 구분할 줄 알았다.
감정을 재빠르게 털어낸 루시펠라는 치맛자락을 잡고 후작에게 인사를 올렸다.
후작은 이드리스 공작과는 달리 부드럽게 인사를 받아주었고, 루시펠라의 시선은 이내 오늘 연회의 주인공인 시온을 향했다.
“생일 축하드려요.”
그녀의 살가운 말에 시온 로에르가 루시펠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얼굴에 뭐 묻었나? 아니면 입술이라도 번졌나?
소위 말하는 레이디스러운 생각을 하며 루시펠라는 그와 눈을 마주 보았다.
“영애의 축하 인사는 처음 받아보는군.”
그거야 클로렌스와 친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초대도 못 받았으니까.
루시펠라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생긋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매년 받게 되실 거예요.”
그 말에 시온이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피식 웃었다. 아주 무뚝뚝한 사람은 아닌 모양이었다.
“오랜만이군, 레인 영애.”
“생일 축하드려요, 영식.”
레인 영애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아까까지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외모를 찬양했다는 사람의 태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담담했다.
역시 짝사랑이 아닌가 보다, 그럼 레인 영애는 따로 마음에 두는 사람이 있으려나? 그녀가 멋대로 머릿속에 소설을 쓰고 있을 때였다.
“후작께 인사드립니다.”
낯익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머리의 뿌리가 하나하나 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루시펠라가 고개를 들어 보니 멋들어진 연미복을 입은 칼리드가 서 있었다.
그의 물빛 머리카락은 여전히 곱슬거렸으며, 아름다운 자안은 꿍꿍이가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오랜만이오, 루이르크 공.”
후작은 반갑게 칼리드를 맞이했다. 루시펠라는 칼리드를 바라보며 은근슬쩍 얼굴을 찌푸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녀는 이대로 그를 피해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아이딘 영애.”
하지만 그것을 눈치챈 것인지 칼리드가 루시펠라를 보며 말했다.
뭐지? 순서대로라면 바로 앞에 있는 시온에게 축하 인사를 하는 게 먼저일 텐데? 왜 굳이 자신에게 인사를 먼저 하는 것인가.
“오랜만입니다, 루이르크 공작 각하.”
루시펠라가 담담한 표정으로 인사에 답했다. 새삼 멀쩡해 보이는 칼리드의 모습을 보자 그녀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저 인간은 자신과 다르게 저렇게 멀쩡한 얼굴로 서 있을 수 있을까.
칼리드가 무어라고 말하기 전에 루시펠라가 말했다.
“그럼 전 이만, 로에르 영애에게 가볼게요.”
루시펠라는 사교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눈인사를 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져나왔다. 그녀는 칼리드와 더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없었다.
이제 휴게실에 갈 시점인 모양이었다. 루시펠라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클로렌스를 찾았다.
그녀는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서 있었는데, 그녀의 앞에는 이오지프가 있었다.
또 2황자야?
“왜 안 나타나나 했다.”
저 찝찝한 놈. 루시펠라는 쯧,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요즘 들어 제드보다 더 자주 만나는 느낌이 드는 게, 관심 있다는 말 그대로 그녀를 쫓아다니는 것 같아 불쾌했다.
이오지프가 와 있다면 제드가 호위를 하는 게 아닐까? 루시펠라는 제드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온다더니 이 녀석, 대체 어디 있는 걸까.
칼리드와의 짜증 나는 대면 속, 루시펠라는 제드가 곁에 있어주었으면 했다.
적어도 저 녀석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대화를 할 때 제드가 옆에 있으면 이성이라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필요할 때 나타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 오늘은 나타나지 않는 걸까.
어느새 그 사람에게 익숙해져 버린 걸까.
뭐지? 아까부터 대체 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거지? 루시펠라는 자신이 꽤나 간절하게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술을 깨물었다.
기다리고 있다는 말은 즉, 그를 보고 싶어 한다는 소리가 아니던가.
루시펠라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누군가가 루시펠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제드?”
너무 늦었잖아! 루시펠라가 자신도 모르게 활짝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뒤에 서 있는 것은 칼리드였다.
왜 그가 다가온 거지? 루시펠라의 입가에 서려 있던 미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d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