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누가 비극을 만드는가
2017.09.07.
제드의 기분은 최악을 달렸다. 황궁에서 나온 뒤 그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애써 달래려 자신의 방 안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아이딘 백작은, 대체 왜!”
그가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것을 본 버나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포에르 백작부인은 이드리스 공작가 출신이고, 이들 모두가 황태자파라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게 대체 왜!”
버나드는 냉정하게 말했다.
“증거가 불충분하니까요.”
“증거?”
그가 차디찬 조소를 지었다.
“증거가 그렇게 중요했다면, 황태자를 그대로 두지 않았겠지.”
아이딘 백작령에서 루시펠라가 습격당했다. 제드가 그들을 추적해서 증거를 내밀었지만 아이딘 백작은 황태자를 처벌하지 않았다.
그는 백작을 애써 이해하려고 했다. 황태자는 지나치게 거물이었으며, 황제 역시 황태자에게 어느 정도 이상 처벌을 바라지 않을 것을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태자는커녕 칼리드 루이르크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지! 증거가 있어도 소용없었어.”
제드는 주먹을 꽉 쥐며 벽을 쾅 내려쳤다.
제드는 아이딘 백작이 루시펠라를 애정하지 않는다는 섣부르며 실례되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사람은 행동을 보고 판단하게 마련이다. 어떻게 이것을 보고 딸에 대한 애정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아이딘 백께 그렇게 말씀하지는 말아야 했습니다.”
황제의 알현실에서 모든 일이 끝나고 아이딘 백작과 제드는 함께 마차로 돌아갔다.
마차에 타기 전, 제드는 결국 참지 못하고 아이딘 백작에게 말했다.
“영애께 이걸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
“세상에는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다고 말씀하실 겁니까?”
그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제드는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말에 아이딘 백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제드의 말에 분노한 듯했다. 루시펠라와 똑같은 은청색 눈이 차갑게 빛났다.
“내 딸의 위험을 정치적 도구로 쓰지 마시오.”
권력의 중심부로 다가갈수록 가면을 쓰는 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것이 순진한 인물이라 생각했던 아이딘 백작도 포함될 줄이야. 그는 딸을 무조건적으로 챙길 줄 알았다.
하긴, 수도에 이렇게 오래 붙어 있으려면 이 정도 재주는 존재했어야 마땅했다.
제드는 이 남자를 쉽게 본 자신의 멍청함을 조소했다.
이 남자는, 어리숙한 남자가 아니다. 또한 이 남자는 생각보다 정치에 미쳐 있었다.
“영애가 고초를 당한 게 어떻게 정치적 도구가 될 수 있습니까, 아이딘 백.”
“지금의 행보를 보면 충분히 오해할 만한 일이라 생각하오만.”
제드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가라앉혔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 황태자를 공격하고, 포에르 백작을 공격한 것이 아이딘 백작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공격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제드는 아이딘 백작의 얼굴을 관찰했다. 아이딘 백작은 제드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처음, 그에게 도움을 청하던 유약한 얼굴이 아닌 메마른 인상. 그러면서도 그 두 눈에는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일종의 적개심.
자신이 무슨 실수라도 한 것인가? 제드는 자신의 태도를 점검했다. 그는 자신이 지나치게 흥분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감정을 추스르며 말했다.
“저는 영애를 이용하지 않습니다. 그러지도 않을 거고요.”
“그렇게 선대 공작과 약속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아이딘 백작이 조용히 대답했다.
“아버지 말입니까?”
“하인트 공의 부친께서 어떤 노선을 택했는지 내 모르는 바가 아니란 말이오.”
그에 제드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 아이딘 백작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 가스파르 하인트는 황태자가 다음 황위에 올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하인트 공작은 이오지프를 선택했다.
사람들 몰래 이오지프에게 검술을 가르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선대 공작이 살아 있을 시절 하인트 공작가는 엄밀히 말하자면 2황자파였다.
설마, 이것을 황태자파도 알고 있나? 제드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아이딘 백작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나뿐이니.”
제드는 아이딘 백작이 하는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황태자를 공격한 것, 그리고 포에르 백작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것, 모두 자신이 2황자파이기 때문에 황태자파를 공격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저는 아무런 의도도 없습니다. 설령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집니다. 영애와 관련된 일입니다.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됩니다.”
“증거도 없다고 하지 않소.”
“재판하면, 폐하의 허가 아래 수사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증거를 찾을 거라는 확신은 있는 것이오?”
그 말에 답답해진 제드가 소리쳤다.
“확신이 있어도, 어차피 조사할 마음이 없는 것 아닙니까!”
제드는 백작의 본질을 제대로 본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이상 백작과 대화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제드는 자신과 아이딘 백작 사이에 일어난 소란이 사람들 사이에 소문으로 퍼질 것을 알았다. 아이딘 백작의 마부와 버나드, 그리고 지나다니는 시종들이 이 모습을 목격했을 것이 자명했다. 그러나 한순간의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정작 사고를 당한 영애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가주인 아버지의 아래서만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게.
그리고 만약 그녀가 결혼하게 된다면, 이런 권한은 자신에게 넘어오겠지. 결국 루시펠라는 자기 자신을 위한 주장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가.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러다 그는 루시펠라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아버지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을 알면 어떤 행동을 보일까? 체념했을까? 아니면 분노할까? 아니면, 혼자서 울고 있을까.
백작은 아무런 인사 없이 마차를 타고 떠났다. 그는 한참 동안이나 아이딘 백작가의 마차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지금, 제드는 이를 으득 갈고 있었다. 차라리 빨리 결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사람에게 루시펠라를 맡겨두어도 되는 것일까?
“아이딘 백작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야. 차라리 결혼을 빨리 하는 게…….”
“몇 시간 전 황궁에서 아이딘 백작과 충돌이 있었다는 걸 아시고 하는 말씀이리라 믿습니다.”
버나드가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했다. 그러자 제드는 아차 싶었다.
결혼을 하려면 여러 절차가 필요했으며, 아이딘 백작의 도움도 만만치 않게 필요했다.
그저 이 결혼만을 놓고 봤을 때는 제드가 유리한 입장이었지만, 결혼을 애타게 원하는 쪽은 아이딘 가가 아니라 제드였다. 다시 결혼을 이야기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도 그 말을 한 건 후회하지는 않아.”
화를 내긴 했지만, 그는 그럴 만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훗날을 위해 참고, 견디고, 인내하고, 그러다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느니 화부터 내는 게 더 나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루시펠라 역시 그런 사람이 아니던가.
제드는 루시펠라를 보고 싶었다. 편지조차 잘 주고받지 않는 좀 삭막한 사이. 하지만 그럼에도 그 누구보다 진실된 사이였다.
***
“루시, 표정 좀 어떻게 잘 해보세요.”
“참아주기 힘들어.”
루시펠라가 속닥거렸다. 지금 그들은 수도의 유명한 극장에서 공연을 감상하고 있었다.
귀족들이 하는 일이 파티만 하고 하하호호, 웃는 것이 다인 줄 알았던 루시펠라에게 이 예술이란 영역은 가장 생소한 영역 중의 하나였다.
생존을 위해 언제나 투쟁하던 사람에게 예술이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자신과 가장 거리가 멀 거라고 생각했던 영역 안에 발을 들이자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그러나 그 세계는 생각보다 지루했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일종의 가극(歌劇)이었는데, 연인을 둔 여자를 마음에 품은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신분이 낮은 귀족인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은 소꿉친구였지만 남자의 사랑에 대한 자각이 늦게 이루어졌기에, 여자주인공은 고위 귀족 남성과 사랑을 했으며, 남자주인공은 그것을 보며 괴로워했다.
“말을 하라고, 말을. 왜 말 못 해? 당장 고백하란 말이야!”
현재 여자와 귀족 남성은 사랑에 빠져 서로 얼굴을 바라본 채 달콤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뒤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고뇌에 찬 표정으로 홀로 어두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런 간단한 말도 못 하고 뒤에서 숨어서 지켜보다니, 성격에 큰 결함이 있는 거 아니야? 그리고 뒤에서 왜 지켜봐, 음침하게?”
루시펠라가 사정없이 독설을 내뱉자 클로렌스의 옆에 있던 레인 영애가 루시펠라를 쳐다보더니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레인 영애, 차라리 대놓고 웃으세요.”
클로렌스가 차분하게 말하자 레인 영애가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막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그녀는 팔걸이에 팔을 올리면서 푸훕,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더니 기침을 했다. 그러나 분명 그 기침에 웃음이 섞여 있었다.
루시펠라는 팔짱을 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황금색 조명을 받으며 노래하고 있는 남녀, 그리고 혼자 어두운 곳에 서서 여자를 갈망하는 남자.
“정말 못 봐…….”
“루시, 이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공연 중 하나예요. 얌전히 보도록 하세요.”
클로렌스의 눈치에 루시펠라는 입을 꼭 다물며 가극을 보았다.
남자는 결국 여자에 대한 마음을 감당하지 못해 시름시름 앓게 된다. 그것을 본 루시펠라가 결국 참지 못하고 말을 내뱉었다.
“바보인가. 저렇게 비실비실한 남자를 누가 좋아해. 저 모자란 머리에 체력 단련은 안 들어 있나?”
클로렌스는 그에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루시펠라는 다시 극에 집중했다.
남자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 여자를 원망하기 시작한다.
‘내 곁엔 내가 더 오래 있었는데, 너는 왜 나를 바라보지 않는 거야.’
그는 절규하더니, 원망과 증오를 담은 불길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처음엔 작던 노랫소리가 점점 힘을 가지고 커진다.
“허, 뭐 저런 찌질이가 다 있지?”
“루시!”
또다시 루시펠라가 입을 열자, 레인 영애가 입을 막고 끅끅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왜 이런 걸 보러 와서 날 괴롭게 하는 건데. 루시펠라는 클로렌스가 원망스러웠다.
여자가 귀족과 결혼을 하려고 하자 남자는 결국 결심한다.
“드디어 고백인가?”
루시펠라는 이제 시원한 고백의 시간과 행복한 끝을 기대하며 극에 집중했다.
결혼식 전날, 남자주인공은 여자주인공과 어렸을 적 자주 놀았던 데이지 꽃밭에서 여자주인공을 부른다.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은 서로를 바라보며 추억에 대해 노래한다.
그리고 노래하는 여자에게 다가간 남자는 숨겼던 단도를 꺼내 그녀를 찌른다.
“야, 이……!”
루시펠라가 별안간 욕을 내뱉으려 하자 클로렌스가 필사적으로 루시펠라의 입을 막았다.
방금 루시펠라가 입에 담으려 했던 것은 레이디의 입에서 절대 나와서는 안 되는 욕이었다.
아주 작은 소란이 일어났고, 루시펠라는 결국 이를 악다문 채 극의 마지막을 보았다.
죽어가던 여자는 마지막으로 아리아를 부른다. 사실은 여자가 좋아했던 이는 바로 남자주인공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여자는 어렸을 적부터 그를 짝사랑해 왔으나, 그는 관심이 없어 보였기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귀족 남성과 결혼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 증거로, 어렸을 적 남자주인공이 지나가듯 선물한 작은 손거울을 여자주인공은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었다.
사실을 알게 된 남자는 여자를 안고 오열한다.
그리고 그곳을 찾아온 귀족 남성은 그 참혹한 장면을 보고 분개하여 남자주인공을 죽인다. 새하얀 꽃밭이 붉은 피로 물들며 극의 막이 내렸다.
루시펠라가 더 광분하지 않도록 클로렌스는 레인 영애를 두고 루시펠라를 이끌어 바깥으로 나왔다.
아직 배우들의 커튼콜이 끝나지 않아서인지 로비는 한산했다.
루시펠라는 입을 열어 욕을 하는 대신 눈빛만 살벌하게 빛냈다.
“별로였어요?”
클로렌스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루시펠라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최악이었어. 본래 가극이 이런 거라면 다신 보지 않을 거야.”
루시펠라의 말에 클로렌스가 뭐라 하던 찰나였다.
“가극이 꼭 이런 것만 있는 게 아니랍니다. 여자를 구하는 남자의 이야기. 신전에서 주최하는 태초의 별의 탄생과 아스트라의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 바람둥이 남자의 이야기. 아주 다양하답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이오지프가 그들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에 클로렌스의 표정이 굳었다. 이오지프는 언제나처럼 해맑은 표정이었다.
“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클로렌스가 치맛자락을 잡고 인사했다. 루시펠라도 그를 보더니 예를 올렸다.
“여긴 어쩐 일이신가요?”
“오늘 가극이 열린다기에 몰래 나왔습니다. 아까 영애의 감상평을 듣고 웃겨서 극에 집중할 수 있었어야죠. 겸사겸사 인사하러 나왔습니다.”
이오지프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이오지프의 태도에 루시펠라의 기분은 최저로 가라앉았다.
“이런, 극이 너무 비극적이라 기분이 안 좋은 모양이군요. 이해합니다. 저도 비극을 보면 기분이 안 좋아지거든요.”
이오지프는 이해심 넘치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루시펠라는 그 말에 따로 대답하지 않았다.
“때로는 슬픔 역시 유희로 소비되는 것도 나쁜 게 아니랍니다. 그런 아름다운 애증 또한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그게 비극인가요? 자신의 감정도 말하지 못하는 찌질한 남자가, 상대 남자에게는 손 하나 까딱 못 하고 가장 만만한 여자를 살해한 이야기지. 가문이나 나라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든 비극이잖아요.”
“루시.”
클로렌스가 주의를 주었으나, 루시펠라는 자신의 말을 수습할 생각이 없었다. 이오지프는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틀린 말은 아니군요. 하지만 영애, 남자 역시도 사실 사정이 있지 않을까요? 너무나 소중하면 겁쟁이가 되게 마련이니까요. 말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나요?”
“죽음이란 원망의 가장 강력한 의사 표현입니다. 극에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그렇지요.”
“겨우 원망을 표현하기 위해서 여자는 미래와 삶을 빼앗겼는데도요?”
루시펠라가 이오지프를 노려보며 말하자 이오지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루시펠라는 너무나 심하게 여자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있었다.
“그런 걸 보면 비극은 사실 개인이 만드는 비극이로군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인데 흥미롭네요. 한 수 배웠습니다.”
“어머, 이 부분에 대해 저도 생각해 보지 못했네요.”
클로렌스 역시 흥미로운 주제인 듯했다. 그들은 발걸음을 옮기며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로비 바깥으로 나오자 시원한 밤바람이 불어왔다. 그러자 루시펠라는 머릿속에 올라왔던 열이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겨우 가극이다. 가극이야. 그럼에도 그런 장면을 보자 화가 났던 것은 변함이 없었다.
워낙 연기가 실감 났기에 더더욱 불쾌감이 몸을 타고 흘렀다.
삶을 박탈당한 이가 품고 있는 억울함, 자신의 삶을 앗아간 이애 대한 증오.
그녀가 품고 있는 감정은 너무나 컸기에 오히려 루시펠라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더 잊으려 했다. 그것에 신경 쓰다가는 현실 생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자신을 죽인 상대를 원망 한 번 하지 않는 여자라. 동화도 아니고 그게 무슨 엿 같은 미담인가.
그러나 루시펠라 역시 알고 있었다. 칼리드가 그녀를 죽였을 때, 그녀는 정확히 분노가 아니라 배신감에 경악했었다.
그 불쾌한 가극 때문에 기분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어서 돌아가 쉬어야 할 듯했다.
구역질을 애써 참으며 그녀라 마차로 걸어갈 때였다.
“루시.”
루시펠라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응?”
루시펠라가 눈을 깜빡였다.
“이제야 이쪽을 보는군.”
루시펠라가 눈을 크게 떴다. 제드가 서 있었다.
#d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