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알 수 없는 매력
2017.08.31.
“영애, 괜찮으십니까?”
이들의 묘한 분위기는 포에르 백작의 말에 바로 깨졌다. 이에 루시펠라는 정신을 차렸다.
“저는 괜찮습니다.”
“말이 갑자기 흥분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민감한 말을 건드렸나 봅니다.”
어라? 이렇게 시치미를 떼고 자신에게 원인을 돌리는 건가?
루시펠라가 웃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말의 눈이 초록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고 당장에라도 말할 수 있었으나, 실뱀벌레는 ‘레이디’가 알 수 있는 마물이 아니었다.
딱 의심받기 좋은 얘기였다.
실뱀벌레는 기사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아는 하급마물 중 하나였다.
말이 몸을 담글 수 있을 만한 호수가 아니면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기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게요, 갑자기 호수로 뛰어가더라고요. 꼭 물을 마시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았어요.”
루시펠라가 그렇게 말하며 제드를 바라보았다. 제드는 그녀가 주는 실마리를 제대로 잡지 못한 듯했다.
아, 이 바보! 루시펠라는 답답해졌다. 아니, 모르는 게 당연한 건가? 생각해 보면 마물이 자주 출몰했던 얼샤와 달리 얀스가르는 이 벌레에 대해 모를지도 몰랐다. 심지어 얼샤에서도 모든 이가 다 아는 마물은 아니지 않았는가.
“아무래도 영애께서 고삐를 잘못 잡으신 것 같습니다.”
“그게 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서투른 건 사실이니까요.”
제드가 무엇이라고 말하려 하자 루시펠라가 웃으며 말을 끊었다.
클로렌스는 루시펠라에게 무조건 웃으라고 했다. 그렇게 자신이 무해하다는 표정을 짓는다면, 적도 빈틈을 드러낸다고 했다.
“그래도 놀랐어요. 제드에게 배운 대로 한쪽 고삐를 잡아당기니까 말이 방향을 틀더라고요!”
루시펠라가 일부러 해맑게 말하며 제드를 바라보자 제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영애는 언제나 승마 수업을 잘 따라왔지. 그래도 트라케너를 타는 건 아직 이른 모양이군.”
“그러네요. 이렇게 사고를 쳤으니 제드에게 미안할 따름이에요. 포에르 백작께도 미안할 따름이고요.”
루시펠라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자 포에르 백작은 안심했다.
아까 루시펠라가 꼭 말에 익숙한 것처럼 보였던 탓이다. 그렇게 기마에 능숙한 이라면 분명 무언가를 눈치챘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레이디가 무엇을 알겠나.
포에르 백작은 미소를 지었다.
루시펠라가 그 꿍꿍이가 있는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말했다.
“제드, 트라케너를 산다고 했죠?”
그 말을 들은 제드가 루시펠라의 두 눈을 보더니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래, 한번 타보고 결정한다고 했지. 트라케너는 어땠나?”
“아주 날쌨어요, 조금 겁은 났지만. 제드라면 잘 다룰 수 있을 것 같아요.”
“자, 잠깐, 영애!”
포에르 백작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루시펠라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트라케너를 구매해 주시는 건 고맙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말은 이상 행동을 저질렀던 말입니다. 다른 말을 데려가시는 게 어떨지요?”
“상관없어. 이 말로 하겠네. 대금은 바로 지불하지.”
포에르 백작의 얼굴이 표나지 않게 곤란함으로 물들었다.
그럴 만도 했다. 비록 루시펠라의 탓으로 돌리기는 했지만, 기승한 사람을 곤란에 빠뜨렸던 말이기에 하인트 공작이 굳이 이 말을 구매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확실히 빠르더군. 관리도 잘된 편이고. 바로 집으로 데려가겠어.”
“공작, 그러니까 지금 그 말은 아직 준비가…….”
“설마, 준비도 안 된 말에 영애를 태운 건 아니라고 믿고 싶네, 포에르 백작.”
제드의 음성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루시펠라는 속으로 웃고 싶은 것을 참았다. 고맙게도 제드는 루시펠라를 도와주고 있었다. 그에 포에르 백작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말이 흥분 상태일 테니…….”
“흥분 상태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할 수 있어.”
제드가 말에 다가가 말을 훑어보았다.
말은 여전히 콧김을 내뿜고 있었지만 안정되어 보였다.
“아니면 내가 이곳에서 말을 타서 준비가 되어 있는지 볼까?”
제드의 말에 포에르 백작은 생각에 잠겼다. 증거를 없애려면 일정 기간 동안 특정한 풀을 먹여야 했는데, 지금 여기서 계속 말을 팔지 않으려 하면 의심을 사게 된다.
호수에 가지 않는 이상 실뱀벌레가 날뛸 일은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저 말이 행여나 흥분해서 저 거만한 공작놈이 망신을 당한다면 그것도 나름 괜찮지 않겠는가?
실뱀벌레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고, 어차피 저 말은 고집불통에 골칫덩어리 같은 말이기에 그냥 처분할 생각이었다.
“좋습니다.”
포에르 백작이 미소를 지었다. 거래가 완료된 것이다.
제드와 백작의 말이 길어질 것 같기에 루시펠라는 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떠나 여성용 쉼터로 걸어갔다.
몸에 지나치게 힘을 준 탓인지 여기저기 얻어맞은 듯 몸이 얼얼했다. 그럼에도 루시펠라는 애써 당당하게 걸어갔다.
“루시, 괜찮아요?”
클로렌스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다가왔다. 왜 사고를 당한 건 루시펠라인데 클로렌스가 더 놀란 것 같은지. 심지어 그녀는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응, 괜찮아.”
루시펠라는 미소를 지었다. 클로렌스를 따라 몇몇 영애가 루시펠라에게 다가왔다.
뭐지? 대체 왜 이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까? 여러 시선이 날아와 루시펠라에게 꽂혔다. 자신이 무슨 결례가 되는 행동을 한 건가? 아까 남자들도 그렇고 왜 이러냔 말인가.
아! 머리카락이 우스꽝스럽게 헝클어졌나 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루시펠라는 손으로 머리를 정리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좀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멜로즈를 향해 다가갔다.
멜로즈는 충격을 받은 듯 얼어 있었다. 루시펠라가 눈을 똑바로 마주해 가자 멜로즈가 애써 눈을 마주하더니 말했다.
“안전할 줄 알았던 기마회에서 사고가 났군요.”
“그러게요. 하마터면 호수에 빠질 뻔했지 뭐예요. ‘그때’처럼 말이에요. 아, 부인께서는 그때 그 자리에 없었으니 모르시겠군요.”
그제야 루시펠라에게 집중되었던 시선이 의혹을 띠고 하나둘 멜로즈를 향하기 시작했다.
멜로즈가 그 일에 대해 공공연히 비웃고 다녔던 것은 모두 다 아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오늘의 기마회에서도 그녀가 호수에 투신했던 것을 비웃지 않았나.
기마회를 연 가문의 안주인은 멜로즈였고, 그녀가 준비한 말이 이상 증세를 보였으니, 루시펠라를 싫어하는 멜로즈라면 이런 함정은 충분히 꾸몄을 거라 생각할 법했다.
하지만 의자를 준비 안 하거나 차를 내주지 않는 유치한 방법이 아닌, 잘못하면 루시펠라가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 말, 말이에요.”
“그 말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어요. 나를 의심하는 건가요, 영애?”
멜로즈의 말에 루시펠라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제가 탔던 말이 훌륭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데 대체 왜 그렇게 말씀하시나요?”
그에 멜로즈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 버렸다.
“제드가 그 말이 문제가 없다며 구매했으니, 말에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이는 기사이고, 말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거든요.”
그 말에 멜로즈 영애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다가 이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설마, 말을 데려가는 것까진 생각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루시펠라는 멜로즈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꽤나 짜릿한 경험이었어요. 앞으로 이런 경험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네가 이제 이런 수작질을 부려도 소용없어.
루시펠라는 자신이 생각해도 꽤나 우아한 방법으로 그 말을 돌려 했다.
“참 긍정적이시군요, 영애.”
멜로즈가 농담을 들었다는 듯 미소 지었다.
이젠 루시펠라의 두 눈에도 멜로즈의 균열이 보였다. 이렇게 속을 긁어놨으니, 여기까지 하고 돌아갈까 생각하던 때였다.
침묵을 지키던 클로렌스가 멜로즈에게 말했다.
“부인, 부인께서 대기시켜 놓은 의원을 불러야 할 것 같은데요.”
“나는 괜찮…….”
무슨 의원씩이나!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루시펠라가 말하려고 했지만 클로렌스의 눈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드러내 놓고 매서운 눈빛은 아니었지만 조용히 하라는 그녀의 무언의 표시를 띠고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제드와는 다르게 클로렌스는 섬세하게 그녀의 몸을 걱정해 주고 있었다.
하여튼 귀엽다니까. 루시펠라는 괜히 기분이 좋아져 미소 지었다. 그러나 루시펠라의 마음과는 달리 클로렌스의 얼굴은 진지했다.
“백작부인께서 가장 먼저 말씀하셨던 게 아이딘 영애의 부상 여부나 사과가 아니라 책임 회피라니, 언제나 영애를 존경해 왔는데, 이번 일의 대처는 대단히 실망스럽군요.”
클로렌스의 말은 사교계의 화법답지 않게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비난을 담고 있었다.
사교계의 기본은 적을 만들지 않는 거라면서?
루시펠라가 클로렌스의 눈치를 보았으나, 그녀는 당당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그래? 다 끝난 줄 알았던 대치에 클로렌스가 불을 붙이니 루시펠라는 당황스러웠다.
“맞아요. 이러면 꼭 영애가 크게 다치길 바랐던 것 같잖아요?”
그때, 레인 남작 영애가 클로렌스를 거들며 입을 열었다. 루시펠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남작 영애가 결국 또 경솔하게 입을 놀렸다.
“경솔한 말은 삼가시죠, 레인 영애.”
클로렌스가 레인 남작 영애를 차갑게 바라보자, 레인 영애가 실수했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거 봐, 화내잖아. 그러나 시무룩한 표정일 줄 알았던 레인 영애의 표정이 태연한 것을 보고 루시펠라는 의아함을 느꼈다. 루시펠라는 그에 시선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까 루시펠라가 이야기를 꺼냈을 때와 달리 이제 여자들은 조금 더 노골적인 비난을 담아 멜로즈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시펠라는 레인 영애가 일부러 그런 말을 꺼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레인 영애가 한 말은 경솔한 말실수로 보였으나, 사람들이 얼핏 생각하고 있던 것을 혼자만의 의심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 준 것이다.
의심의 눈초리만 보내던 사람들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요한 나머지 멜로즈는 아까 자신을 지나치게 드러내 버렸다.
“죄송합니다, 백작부인. 아이딘 영애가 다친 게 너무 걱정되어 이성을 잃었어요.”
레인 영애가 태연한 표정으로 정중히 사과했다. 의원을 제때 부르지 않은 책임이 있기에 멜로즈는 레인 영애를 추궁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는 하인을 불러왔다.
클로렌스는 그에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신경 써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클로렌스는 참 치고 빠지는 시점을 정확하게 재단할 줄 알았다.
사람들의 시야에서 루시펠라가 빠져나가자, 멜로즈는 사람들의 시선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나 참! 기마회는 유서 깊은 모임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무시할 수 없는 가문의 백작가의 영애가 들으라는 듯 말했다.
“이러면 무서워서 어떻게 오겠나요?”
분명 작은 목소리였지만, 이 조용한 대치 상황에서 이들의 말은 또렷하게 들렸다. 그때 다른 이가 일어서더니 말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저는 이만 가봐야겠어요.”
“저도요.”
그와 동시에 몇몇 영애가 자리에서 일어나 귀가를 선언했다. 이들은 클로렌스와 친분이 있는 영애들이 아니었다.
주인이 모임을 파하기 전까지 모임을 빠져나가는 것은 대단한 결례는 아니었으나 단체로 빠져나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멜로즈가 자랑으로 삼던 기마회는 완전히 망한 것이었다.
루시펠라는 테이블 의자에 앉아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멜로즈를 바라보았다.
멜로즈가 독기 어린 표정으로 루시펠라를 쏘아보았다.
“그럼 저도 가봐야겠네요. 아무래도 이곳보다는 제집이 편할 것 같아서요.”
루시펠라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은 안전하지 못할 것 같으니, 자리를 떠나겠다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뒤따라 클로렌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쾌하고 시원한 복수는 아니지만, 적어도 저 사람의 수에 무력하게 당하지는 않았다.
‘이제 만족하니, 루시펠라?’
그녀는 자신의 육신에 대고 물었다. 마치 그것에 대답이라도 하듯 희열이 샘솟아 올랐다.
멜로즈는 자리를 떠난다는 귀족 영애들에게 허울뿐인 배웅을 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루시펠라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분명 기분은 나쁘지 않았으나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왜 지금까지 가만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멜로즈에게 대놓고 이러는 거지? 무슨 마법을 쓴 거야?”
루시펠라가 곁에 서 있던 클로렌스를 향해 물었다. 그녀가 피식 웃었다.
“루시는 저를 너무 과대평가해요.”
“대단한 사람을 대단하다 평가하는 게 왜 과대평가인 건데?”
루시펠라의 물음에 클로렌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루시는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군요.”
“그게 무슨 말이야?”
“마법은 제가 아니라 루시가 쓴 거죠.”
“뭐?”
“그거 알아요? 루시는 제 생각보다 더 매력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요.”
“뭐?”
“루시는 스스로의 매력에 대해 좀 더 자각할 필요가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지? 여기서 왜 자신의 매력이 나오느냔 말이다.
루시펠라는 클로렌스에게 더 물어보고 싶었으나, 클로렌스가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았기에 입을 다물었다.
“에스텔, 너는 네 매력에 대해 좀 더 자각할 필요가 있어.”
그 순간, 떠오르는 목소리에 루시펠라가 몸을 흠칫했다. 칼리드도 이전에 그렇게 말한 적이 있던 탓이었다.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매력이라…….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녀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일까. 언제쯤이면 그 녀석의 목을 칠 수 있는 것일까.
자신에게 주어진 또 다른 삶에 적응하고자 노력했다고 그녀는 감히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적응한답시고 이렇게 태만하게 있어도 되는 걸까.
잊고 있던 조급한 마음이 비집어 나오려는 것을 루시펠라는 억지로 눌렀다.
***
루시펠라는 제드와 함께 마차를 타고 귀가하고 있었다. 제드는 루시펠라가 다쳤을지도 모른다는 클로렌스의 말을 듣고 부득불 마차를 같이 탄 것이다.
그녀가 다쳤을지도 모른다고 말을 하는 클로렌스는 상냥하게 웃고 있었지만 기묘하게도 제드를 혼내는 것 같았다.
마차는 순조롭게 백작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까부터 루시펠라는 묘한 거북한 느낌에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까부터 제드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아야.”
결국 어색한 마음에 창가로 고개를 돌리던 루시펠라는 목에 통증이 일자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다쳤나? 어디?”
루시펠라가 눈을 크게 뜨며 제드를 바라보았다. 방금 저 태도는 뭐지. 지나치게 과했다.
“근육이 긴장됐다 풀어져서 이러나 봐. 걱정하지 마.”
루시펠라의 말에 제드는 그녀에게 뻗으려던 손을 거두었다. 휴, 아까와 같은 이상한 분위기는 사라졌다. 한결 편한 느낌에 루시펠라가 물었다.
“말이 나온 김에, 그 말은 어떻게 할 거야?”
루시펠라의 말에 제드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아는 온갖 검사를 받도록 해야지. 그리고 영애에게 위해를 가한 무언가가 나온다면, 그 대가를 받아낼 셈이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루시펠라는 이 사람이 의외로 이 일을 무겁게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루시펠라는 실뱀벌레에 대해 말할까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게 얀스가르에서도 출몰하는 벌레라면 제드는 그것을 찾아낼 것이다.
“조사는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하지. 그 부분은 내게 맡겨뒀으면 좋겠군.”
“그래도 되나? 이건 사실 내 일이고, 내가 문제 삼아야 할 부분인데.”
“영애가 어떻게 문제로 삼을 수 있지? 아이딘 백…….”
제드가 그렇게 말하며 입을 다물었다.
아, 아이딘 백작가가 포에르 가문과 같은 친 황태자파 가문이라서 그렇다는 말이구나. 루시펠라가 문제 삼기 애매한 부분이긴 했다.
“그래, 믿고 맡길게.”
아쉽게도 루시펠라는 이런 것을 조사할 능력이 없었다.
“고마워.”
루시펠라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아직도 이러한 종류의 조사를 스스로 하지 않고, 누군가 대신해 준다는 것은 생소했다. 제드가 그 인사를 듣더니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감사 인사는 포에르 백작을 가두던지 배상금을 배로 받아 부자가 될 때 하도록 해.”
루시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영애, 그전에 물을 말이 있어.”
“뭔데?”
“영애가 트라케너를 타겠다는 말을 나 외에 다른 누군가에게 한 적이 있었나?”
“응, 클로렌스에게 말했지.”
루시펠라는 그렇게 대답하며, 제드가 어떤 의도로 그 질문을 했는지 알아차렸다. 그는 클로렌스를 의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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