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이미 그리되었다
2017.08.28.
루시펠라는 심호흡을 하며 허리를 숙여 달리는 말에 몸을 밀착했다.
과연 신이 내린 말이라는 소리답게 말의 속도는 지나치게 빨랐다. 까딱하다가는 속도를 못 이기고 떨어질지도 몰랐다.
비명 소리를 뒤로한 채 달리던 루시펠라는 마장의 울타리가 눈앞에 보이자 허리를 펴고 다리에 힘을 꽉 주며 앞으로 다가올 충격에 대비했다.
예상대로 말이 땅을 박차고 높은 속도로 도약하며 울타리를 뛰어넘었다.
“꺄아아악!”
등 뒤에 비명 소리가 들렸다. 루시펠라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번에는 호수 근처에 위치한 여성용 마장의 울타리가 보였다.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이 말이 도약했기에 루시펠라는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어딘가에서 분노한 외침 소리와 같이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루시펠라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실뱀벌레의 조종을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말의 시야에서 ‘호수’를 제거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달리는 말에서 손을 뻗어 몸부림치는 말의 두 눈을 가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실뱀벌레는 계속 물로 향하게 말을 조종하니 이 마물이 원하는 대로 호수로 향하면서 말이 호수에서 시야를 돌리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바로 호수를 가로지르는 것.
말은 안대가 씌워져 있어 앞밖에 보지 못한다. 호숫가는 아까 보았던 대로 수심이 아주 깊지 않아서 살짝만 방향을 틀어 호수를 벗어난다면 말의 배가 물에 잠겨 실뱀벌레가 말의 배를 뚫고 나오진 못할 것이다.
허무맹랑한 계획이었으나, 이 트라케너는 살기 위해 조종에 저항했고 날랜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트라케너는 타는 이의 마음을 기가 막히게 잘 알아내는 말이라고 했다. 루시펠라는 자신의 마음이 닿길 간절히 바랐다.
‘절대 죽게 두지 않을게.’
루시펠라는 그것에 자신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때 말이 마지막 울타리를 넘었다. 또다시 허리가 뒤로 넘어갈 뻔했으나, 루시펠라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만약 그녀가 에스텔의 육신이었으면 자신의 몸 정도는 가볍게 지탱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이 사고가 유희였겠지.
루시펠라는 잃어버린 자신의 육체를 떠올리며 아쉬움을 느꼈다.
말이 다시 땅을 박찰 때, 결국 속도를 못 이기고 헐렁해진 머리끈이 풀리며 루시펠라의 머리가 아무렇게나 휘날렸다.
루시펠라의 두 눈에 호수가 가까워지자 그녀는 굽혔던 허리를 세우고 고삐를 꾹 잡았다. 그와 동시에 말이 호수로 뛰어들었다.
첨벙, 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크게 일었다. 말이 향하는 곳은 예상대로 수심이 깊어 보이는 호수 중앙이었다.
그것을 본 루시펠라는 말의 방향을 틀기 위해 젖 먹던 힘을 다해서 왼쪽 고삐를 힘차게 당겼다. 그러나 말은 여전히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제발!’
순식간에 말의 허벅지까지 물에 잠겼다.
루시펠라는 계속해서 고삐를 잡아당겼다. 어찌나 세게 쥐고 당겼는지 고삐의 줄에 마찰된 손바닥이 화상을 입은 듯 화끈거렸다.
말의 단단한 몸은 이대로 방향을 바꾸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결국 호수에 꼴사납게 빠지는 건가, 라고 생각할 때, 말이 조금씩 방향을 틀었다.
몇 번의 몸부림이 있었지만, 말이 물을 가르고 호수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실뱀벌레가 다시 신호를 보내도 말의 눈은 이미 돌려졌기에 다시 호수 안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말은 빠른 속도로 호수를 벗어나고 있었다.
결국 호수에 들어가려던 실뱀벌레의 조종보다는 살고 싶은 말의 본능이 이긴 것이다.
루시펠라는 활짝 웃으며 고삐를 당겨 말의 속도를 천천히 늦췄다.
호수 밖으로 나오자 그제야 말의 눈동자 색이 다시 본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식은땀이 흘러 앞머리가 달라붙었으나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루시펠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이내 해냈다는 고양감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고생했어.’
루시펠라는 말을 보았다. 말 역시 자신이 죽을 뻔한 것을 알았는지 흥분한 듯 투레질을 하며 발걸음이 빨라졌지만, 등 위에 탄 루시펠라를 떨쳐 내지는 않았다.
루시펠라는 말을 곧장 몰았다. 이미 호숫가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놀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게 서서 루시펠라를 바라볼 뿐이었다.
뭐지? 이 인간들이 단체로 실성했나? 갑자기 왜 저러지?
꼭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그들의 표정에 루시펠라가 말을 멈춰 세우며 눈살을 찌푸렸다.
“루시펠라.”
루시펠라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제드가 서 있었다.
루시펠라는 그를 보며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언제나 단정한 그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루시펠라는 웃음을 꾹 눌러 참고 미소로 대신했다.
한데 자세히 보니 제드의 얼굴은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 사고를 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겨서 그런 거구나.
루시펠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이건 그녀의 의사가 아니었다. 루시펠라는 억울했다.
그렇게 억울함을 항변하고 싶었던 루시펠라의 두 눈이 일순 크게 떠졌다.
아니, 그는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깊게 가라앉은 듯한 적갈색 눈동자에 담긴 것은 분명 분노의 열기가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낯간지럽고 부끄러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루시펠라는 그 시선을 피하고 싶었으나 어째서인지 그의 눈에 시선이 자꾸 갔다.
그가 루시펠라에게 손을 뻗었다. 내려오라는 말이었다.
루시펠라는 한 손으론 그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그의 어깨에 올려 몸을 지탱하고 말에서 내려갔다.
높은 곳에서 제드의 손을 잡고 내려오자 자연스럽게 무게중심이 손을 지탱해 준 제드에게 쏠렸고, 그녀는 제드에게 몸을 기댔다.
잠시 후 땅을 딛고 중심을 잡은 루시펠라가 몸을 떼려 하자 제드는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감고는, 그대로 그녀를 안았다.
“무슨!”
루시펠라가 몸을 떼려 했지만, 문득 제드의 어깨 너머로 본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들을 바라본다는 것을 알았다. 약혼 관계에서 이런 걱정하는 모습은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지금 자신의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발은 물에 젖어 축축할 텐데 괜찮은 건가?
살짝 고개를 올려 빼꼼 그의 얼굴을 바라보니 제드가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야.”
그 말에 아무리 둔했던 루시펠라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냉소적으로 생각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연기한 게 아니었다. 이 사람은 진짜로 자신을 걱정했던 거다.
제드의 몸은 단단하게 루시펠라를 지탱하고 있었고, 그녀의 붉게 달아오른 두 뺨은 그의 가슴팍에 닿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을 가득 채우는 듯, 그러나 꽉 죄는 듯한.
이 사람이 자신을 걱정했다는 게 그렇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걱정한 건 고맙다. 한데 그 사실에 솟구치는 이 연유 모를 감정은 무엇인가. 익숙하지 않고 낯선 기분에 기분이 나빴다.
루시펠라는 그런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 역설적이게도 고개를 숙여 그의 품에 더 파고들었다.
제드가 루시펠라의 손을 놓더니 흐트러진 그녀의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그 조심스러운 손길에 그녀는 안정감을 느꼈다.
분명 이전이었으면 이 남자와 닿는 것도 끔찍하다고 생각하며, 당장에라도 떨어졌을 텐데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그때였다.
루시펠라는 어딘지 익숙한 시선을 느끼곤 고개를 돌렸다. 이 느낌은 뭐지? 그러나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사람들은 귀족 남자들뿐이었다.
“무슨 일이지?”
“아니.”
제드의 물음에 루시펠라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분명 예민해져서 착각한 탓이리라. 루시펠라는 제드에게 작게 고맙다고 말한 뒤 몸을 떼어났다.
***
“영애는 대체 어디서 말을 배웠답니까?”
“공작 각하에게 배웠다고 합니다.”
루시펠라가 사고를 당하기 바로 직전까지도 제드는 이오지프에게 입을 닥치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참고 있었다. 저놈은 왜 대체 여기까지 따라와서 자신을 괴롭힌단 말인가.
“이거 보세요, 하인트 공의 시선이 영애에게서 떨어질 줄 모릅니다!”
“약혼녀니 당연하겠지요.”
포에르 백작과 이오지프가 주고받는 말에 그는 자신의 집중을 방해하는 이들의 엉덩이를 걷어차 네 일에나 신경 쓰라고 쫓아내고 싶었다.
“참 로맨스 소설다운 모습이 아닙니까.”
무시하자. 제드는 말을 탄 채 걸어가는 루시펠라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역시 루시펠라는 기마에 능숙한 모양이었다. 보통 고삐를 짧게 쥐는 초보자와 달리, 말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느슨하게 쥐는 게 그러했다.
“아아, 아름다운 연인의 모습입니다. 저도 부황께 청해서 약혼녀를……!”
제드는 꿋꿋이 루시펠라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남성용 마장은 세로로 길어 쉼터에 있을 때는 그녀가 방향을 돌려 이곳에 오기까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말을 같이 타면 분명 아름다운 모습일 텐데 말입니다.”
안 보이는 새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레이디가 다루기엔 지나치게 거친 말이 아닐까? 제드가 슬쩍 걱정스럽게 쳐다볼 때 멀리서 루시펠라가 말을 몰아오고 있었다.
다행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닌 모양이라 생각하던 그때, 말이 갑자기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제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에 이오지프와 포에르 백작의 시선이 동시에 그것에 닿았다. 루시펠라를 털어버리려는 듯 날뛰는 말은 도저히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제드는 루시펠라 쪽으로 뛰어갔다. 어서 말을 진정시켜야 했다. 한시가 급했다, 저대로 가다가는 분명 낙마할 것이다.
그러나 제드가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루시펠라는 채찍을 내려쳐 말을 달리게 했다.
“미친!”
그는 욕설을 내뱉었다. 너무 놀라 루시펠라의 판단력이 흐려진 게 틀림없다.
심상치 않은 사태에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기립했다. 루시펠라는 아주 빠른 속도로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저게 무슨!”
“말이 왜 저런단 말인가!”
그가 달려가려고 할 때 이오지프가 그의 팔을 잡았다.
“지금 달려가면 저 속력으로 달려오는 말에 치이고 말 겁니다!”
제기랄, 제드가 이를 갈았다. 자신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자신밖에 도와줄 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오지프가 그를 잡는 손의 힘이 꽤나 강했기에 그는 이오지프와 실랑이를 해야 했다.
그때, 루시펠라가 탄 말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루시펠라가 향한 곳은 호수였다.
마장의 울타리가 말을 진정시키지 않을까? 아니, 저 속도라면 말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울타리를 뛰어넘을 것이다.
제기랄, 이러다가 호수에 또 빠지게 생겼다. 잠깐만, 호수에 또 빠진다고? 우연치고는 기막힌 우연이었다.
“루시펠라!”
말이 마장을 막은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었다. 위태위태해 보이는 그 모습에 제드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분노가 터져 나왔다.
만약 그녀가 다친다면, 그녀가 죽는다면,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백작가의 씨를 마르게 할 생각이었다.
“꺄아아악!”
사람들이 이 끔찍한 사고를 깨닫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울타리를 넘었을 때, 루시펠라의 몸이 위태롭게 휘청였다.
저렇게 덩치가 거대한 말, 게다가 높이 도약하는 말에서 떨어진다면 건장한 남성 역시도 뼈가 부러지고 심할 때는 죽고야 만다. 루시펠라가 떨어진다면 그 여린 몸이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말을 멈춰야지 왜 말을 빠르게 몰아서는!
이러면 다가가서 제어해 줄 수도 없지 않은가.
“호수에 빠질 때 바로 들어가 구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이오지프가 조용히 속삭였다. 제드는 그에 이를 악물고 뛰어가 아무거나 눈에 보이는 말에 올라타 뒤쫓아갔다.
그렇게 그녀의 뒤를 따라가는 순간, 그녀가 말과 함께 호수로 뛰어들었다.
이상하게도 루시펠라의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에 기이함을 느끼던 찰나, 루시펠라가 고삐를 잡아당겼다. 그러곤 얼마 후 말이 방향을 바꿔 호수 바깥으로 향했다.
“세상에…….”
제드를 따라 호숫가에 다다른 귀족들이 얼이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제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믿을 수 없었다.
저렇게 빠른 속도로 달리는 힘 좋은 말을 루시펠라가 제어한 것이다. 그렇다면 루시펠라는 일부러 말을 호수까지 달리게 한 건가.
이것은 천부적인 재능인가? 아니면 그동안 숨겨왔던 그녀의 노력의 결과인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녀의 자의대로 했든 아니든 간에 지금 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구해냈다는 것이었다.
루시펠라가 점점 말의 속력을 늦추자, 그녀의 모습이 더욱더 또렷하게 잘 보였다. 그는 잠시 숨을 쉴 수 없었다.
말이 힘차게 발을 내디딜 때마다 사방에서 물보라가 튀어 올라 햇빛에 다이아몬드처럼 부서져 내려 반짝거렸다. 그 안에서 루시펠라는 곧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기다란 검은 머리카락이 새파란 하늘에 대비되어 흩날렸다.
이것은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 치장하고 세공한 흉내 낸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그냥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을 아는 사람이 으레 느낄 수 있는 근본적인 아름다움이었다.
그 증거로, 남녀 성별을 막론하고 모두 그녀의 모습에 넋을 잃고 있지 않은가.
“이…… 이슈타르.”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제드는 그 이슈타르라는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스트라의 첫 번째 자식, 새벽별이자 전쟁의 여신이라던 이슈타르. 분명 가녀린 레이디에게 그 별명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루시펠라의 얼굴은 여유롭게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 두 눈은 생기로 반짝이고 있었다.
‘보고 반하지나 마.’
루시펠라는 제드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제드는 루시펠라가 애초에 말을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말은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
왜냐하면, 이미 그리되었기 때문이다.
무엇에 반한 건가. 그녀의 어떤 점에 반한 건가.
생각해 내고 싶지만 이 순간 그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감정에 또렷한 이유가 없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지 않은가? 이전, 그가 어떤 기사, 에스텔에게 호감을 품었던 것처럼.
이제 이 명확한 감정을 정의 내릴 때가 되었다.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루시펠라에게 매료되어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짜릿함을 느꼈다.
그녀는 어찌 되었건 그녀에게 가해졌던 음모를 자신의 방식으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당당하게 벗어났다. 지금 그녀는 알고 있는 것인가.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호수에서 보여주었던 모두를 매료시키는 모습이 신기루가 아니었다는 듯,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모든 이의 시선이 루시펠라에게 향해 있었다. 그녀 옆에 있는 이들이 루시펠라에게 다가가려 발을 떼자 그는 재빨리 말에서 내려 그쪽으로 다가갔다.
“루시펠라.”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비록 허울뿐인 약혼이었지만 그녀의 옆에 설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은 자신이었다.
루시펠라의 시선이 그를 향하자 그는 다시 한 번 짜릿함을 느꼈다.
그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아주 익숙한 듯 그녀가 손을 맞잡아왔다. 이전에도 그것을 느꼈으나, 다시금 이것을 깨닫자 그는 환희하고 있었다.
그는 허리를 감싸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에 루시펠라가 당황한 듯 몸을 떼려 했으나, 이내 다시 몸을 기댔다.
“다행이야.”
그녀에게 어떻게 들릴지는 몰라도 그것은 진심이었다.
한순간, 그는 이 작은 존재가 사라져 버릴까 봐 머리가 하얗게 되었고, 이성을 잃고 분노했다. 이 사람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자 품었던 분노는 차갑게 가라앉고, 안도가 찾아왔다.
루시펠라가 고개를 들어 제드의 눈을 마주 보았다.
알 수 없는 표정, 관찰하는 듯한 얼굴, 아까의 사고 때문인지 상기되어 있는 붉은 두 뺨이 보였다.
그녀를 이렇게 안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맹수가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듯, 제드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던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느꼈던 그 맹렬한 끌림을 이들이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다. 제드의 시선이 그들에게 머물자 그들이 화들짝 정신을 차린 듯 그 시선을 피했다.
자신의 사람이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d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