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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법-45화 (45/173)

#45화 분노와 고뇌

2017.08.03.

“안 된다, 어떻게 그런 곳에 간다고 그러는 거니!”

나이 든 남자가 울상 짓는 것은 눈뜨고 봐주지 못할 정도로 꼴불견이었지만, 이제 루시펠라는 어느 정도 이 얼굴에 적응했다.

“승마복이라니! 승마복은 절대로 안 된다, 루시!”

보수적인 사람들은 승마복을 입는 여자들을 싫어한다더니, 백작이 그런 모양이었다.

루시펠라는 생각지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만약 백작이 허가하지 않으면 기마회에 참석할 수 없다. 루시펠라는 백작을 설득해야만 했다.

“게다가 승마는 위험해. 어떻게 승마를 하려고 그래! 말도 못 타지 않느냐!”

“탈 수 있어요, 아버지.”

루시펠라의 말에 백작의 얼굴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언제 승마를 배웠던 거냐, 루시. 딱히 가르친 적이 없었는데.”

백작의 두 눈에 혼란이 깃들었다. 이에 루시펠라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배운 게 아니었나? 지난번 영지에서 습격자들로부터 도망쳤을 때, 말을 몬 사람은 맷시가 아니라 루시펠라였다.

“저번에 습격자들에게 쫓겼을 때도 제가 말을 몰았잖아요!”

루시펠라는 일부러 뻔뻔한 표정으로 떠보듯 말했다.

“그거야 급한 상황이다 보니 그리된 거지. 언제까지 운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휴, 다행이다. 루시펠라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백작은 그저 루시펠라가 운이 좋아서 말을 잘 몰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공작 각하가 봐준다면 탈 수 있어요!”

그에 백작의 말문이 막힌 듯했다. 기사 중의 기사인 그가 봐준다는데, 어떻게 말을 타는 게 위험하겠는가.

“그래도 승마복은…….”

“제가 승마복이 입는 게 왜요? 남자들도 똑같이 입잖아요.”

백작은 끄응 하며 신음 소리를 흘렸다. 루시펠라의 말에 반박할 수 없는 듯했다. 한참 후에 그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하인트 공이 허락한 거니?”

그 물음에 루시펠라가 입을 쭉 내밀었다. 허락이라니. 참 자존심 상하는 말이었다.

“이제 받을 건데, 해줄 거예요.”

“…….”

백작은 루시펠라의 찡그린 얼굴을 조용히 응시했다. 루시펠라는 내키지 않는 표정을 하고 있었고 그 모습은 아이딘 백작의 눈에 여과 없이 들어왔다.

“루시, 공작께서 네게 잘 해주고 있는 거냐?”

그에 루시펠라가 고개를 들어 아이딘 백작을 바라보았다.

그것을 본 루시펠라는 어째서일까.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딸에 대한 순수한 걱정이라기엔 그의 표정이 미묘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에스텔의 직감이었다.

“잘해주고 있어요, 충분히.”

“……그렇구나.”

아이딘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묘한 느낌에 비해 수긍은 빨랐다. 루시펠라가 안심하려던 찰나였다.

“루시, 내게 숨기는 게 있지 않니?”

그 말에 그녀의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었다.

숨기는 거라니? 무엇을? 설마 무언가 눈치챘을까?

백작을 바라보니 백작은 진지한 표정으로 루시펠라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루시펠라의 표정을 읽고 있는 거다!

그녀는 애써 자신을 가다듬고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거 없어요.”

그에 백작은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뭐지? 백작은 분명 루시펠라를 떠봤다.

루시펠라는 백작이 왜 그 질문을 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 자신의 딸, 루시펠라의 육신에 다른 인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나?

“하인트 공이 널 데려간다면 내가 무슨 수로 막겠느냐. 다만, 무슨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이 아빠에게 말해다오.”

백작이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루시펠라의 머리를 쓸었다. 그 얼굴을 본 루시펠라는 안심했다. 백작은 적어도 루시펠라 자체를 의심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약속해 줄 거지?”

그 말에 루시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펠라는 머리 위에 느껴지는 따스한 손길에 얼굴이 풀어졌다.

아직도 이런 행위가 어색하긴 했지만, 진짜 루시펠라의 마음에 남아 있는 감정 때문일까. 큰 거부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언제까지나 좋은 아버지였으면 좋겠다.

사실 그의 딸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을 영영 모른 채 말이다.

루시펠라는 그것을 바라며 미소 지었다.

***

“……이게 뭐지?”

루시펠라는 답장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사자의 문양이 찍혀져 있는 편지는 분명 하인트 가문의 문장이었다.

힘주어 쓴 강한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 편지에는 고급스러운 향기가 났다. 겉보기에는 아주 완벽한 편지였다.

그러나 루시펠라가 ‘이게 뭐지?’라고 했던 이유는 편지의 내용 때문이었다.

―부탁하는 입장이라면 글 한 줄만 보내는 게 아니라, 직접 방문하는 성의를 보여야 하는 게 아닌가? 거절하고 싶군.

그녀는 이를 으득 갈았다.

‘와, 이 자식이…….’

어떻게 단어 하나, 글자 하나가 이렇게 얄미울 수가 있을까. 거절하면 거절하는 거지 ‘거절하고 싶군’이라는 애매한 말은 뭐지?!

루시펠라는 제드에 대해 조금이나마 가졌던 좋은 감정 따윈 탈탈 털어버렸다.

“공작 각하께서 뭐라고 하세요?”

로이자의 순진한 물음에 루시펠라가 이를 빠득 갈며 말했다.

“직접 찾아와서 비굴하게 부탁하라는데?”

편지에 그렇게까지 심한 말로 쓰여 있지 않았지만, 루시펠라의 두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로이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가 보고 싶으신가 봐요.”

그 말을 듣자 루시펠라의 화가 폭발했다.

“미친 소리 하지 마. 어떻게 생각하면 이 문장에 그렇게 긍정적이 될 수 있는 건데?!”

이놈은 그냥 고분고분한 꼴을 보고 싶어서 그런 거다!

루시펠라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 이놈이 그럼 그렇지. 마냥 다정하고 친절한 놈은 아니었던 것이다.

루시펠라는 욕을 입에 담으려다가 초인적인 인내로 억눌렀다.

앞으로 혼잣말로 욕도 하지 말라는 클로렌스와 에레네 부인의 지엄한 가르침이 있었던 탓이다. 대신 그녀는 편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편지가 살짝 구겨졌다.

‘그냥 포기할까?’

하지만 기마회에 있는 게 다른 말도 아니고 무려 트라케너였다.

루시펠라는 입술을 깨물며 테이블에 팔을 괴었다.

에스텔은 얼샤에서 딱 한 번 트라케너를 본 적이 있었다.

현 얀스가르의 황제가 마지막 국왕 아렌트에게 화친의 의미로 선물한 말이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털, 그림처럼 휘날리는 갈기, 온몸이 근육으로 짜인 조각상 같은 완벽한 몸.

신이 내린 말이라는 이름값을 하는 말이었다. 왕자의 말을 타보겠다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기에 그 당시 에스텔은 그것을 보고 침만 꿀꺽 삼켰다.

‘만져 보기라도 하고 싶은데.’

얼마나 날랠까? 등에 타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길들이기는 힘들지만 막상 길들이면 엄청 똑똑하다고 했다. 다른 말보다 월등히 커다란 덩치 때문에 그 말을 타면 시야가 달라진다고 했는데 뭐가 다른지도 궁금했다.

‘그렇다고 저 재수 없는 놈의 비위에 맞춰줘?’

루시펠라는 끙, 고민했다.

“저, 아가씨. 따로 답장을 쓰실 건가요?”

아까부터 루시펠라의 분노를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었던 배달부가 조심스럽게 루시펠라에게 물었다. 루시펠라의 시선이 손에 쥐여진 편지에 향했다. 다시 분노가 화르륵 타올랐다.

“아니.”

루시펠라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안 가! 더러워서 안 가.”

루시펠라는 흥, 하며 편지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후 고개를 돌려 버렸다.

***

“각하?”

제드는 턱을 괸 채 창문 밖을 보았다.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못마땅한 기색에 버나드는 오늘 하루도 힘겨운 하루가 될 것을 알았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오늘도 답장이 없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봄은 다가왔고, 기마회까지는 채 열흘도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참석 여부에 대해 답장하지 않고 조용히 그녀를 기다렸다.

“그래, ‘더럽게도’ 가기 싫은 모양이군.”

그러면서도 제드는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버나드는 그가 또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치는 것을 발견했다. 초조할 때 나오는 제드의 버릇이었다.

“다시 한 번 묻지. 그때 편지를 받았을 때 아이딘 백작 영애는 분명 ‘더러워서 안 가겠다’고 했다지?”

그걸 지금까지 대체 몇 번째 물어보는 건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도 버나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드가 보냈던 편지에 배달부는 빈손으로 왔다.

그에 분개한 제드가 배달부에게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낱낱이 전해달라고 하니, 배달부는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모든 것을 전했다.

배달부의 말에 따르면 아이딘 백작 영애께서는 그 편지를 읽자마자 화를 벌컥 내며 ‘더러워서 안 가겠다!’라고 소리쳤다고 했다.

그때 그 소리를 들은 제드의 얼굴이 흉흉하게 일그러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날 제드의 분노에 공작가에 비상이 걸렸던 것을 떠올리며 버나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톡톡, 제드의 손가락이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느릿해지더니 이내 멎었다. 그러곤 그가 옅은 한숨과 함께 조용히 중얼거렸다.

“내가 대체 왜 그랬지?”

“네?”

버나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인간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또 짜증을 내리라 생각했었는데 그는 지금 후회하고 있었다.

“버나드, 그 편지가 ‘더럽게도’ 가기 싫게 할 만한 문구였나?”

‘더러워서 안 간다’는 소리를 듣고 언제나 분노에 힘이 들어갔던 목소리에 힘이 쭉 빠져 있었다.

“아니, 그게…….”

버나드는 우수에 찬 제드의 얼굴을 보며 그의 진정한 맨 얼굴을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의 진심은 분노가 아니라 후회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중요한 건, 버나드는 상관의 진심이라던가, 상관의 ‘진정한 맨 얼굴’ 따윈 별로 알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는 것에 있었다.

“휴.”

이번에는 제드가 한숨을 쉬자 버나드는 방금 깨달은 사실에 경악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주군은 그 ‘더럽다’는 말에 그동안 분개했던 게 아니고, 아이딘 영애의 외면에 상처를 받아 미쳐 날뛰고 있었던 것인가.

진짜 저 인간이 미친 것 같았다. 그래도 그동안 이성 관계에서는 깔끔하지 않았나.

버나드는 이제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한편, 버나드와는 달리 제드의 머릿속은 번민으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포에르 가문에서 기마회가 열리는데, 데려가 줄 수 있어?

연락 한 번 없다가 오랜만에 온 것이 저 부탁이었다. 얼굴이라도 보고 부탁을 했으면 분명히 그는 흔쾌히 수락했을 것이다. 그런데 온 것이 저 한 줄, 딱 저 한 줄뿐이었다.

그 순간, 그는 루시펠라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우선 제드는 자신이 루시펠라에게 다른 이들보다 특별하다는 것을 시원스럽게 인정한 상태였다.

그러나 루시펠라가 제드를 특별하게 여기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싫은 사람’에서 그냥 ‘사람’ 정도로 변했다는 거겠지.

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처럼 갑작스럽게 서로 약혼 관계가 되었으니 그런 감정을 품는 것은 이해했으나, 이 정도면 심한 것이 아닌가.

루시펠라는 자신에게 지나치게 담백했다. 심지어 자신에게 매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는 자신의 외모와 지위 그 모든 게 사람들에게 강한 매력으로 다가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항상 그녀에게 먼저 다가가거나 그녀를 찾은 것은 전부 자기 자신이었다. 그녀가 스스로 자진해서 그에게 다가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제드는 그 관계에 회의를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매력을 되돌아보며 검열하는 스스로에게도. 심지어 루시펠라는 그가 당연히 허락해 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 그 문구를 본 순간 폭발했다. 한순간의 분노와 비틀림을 참지 못하고 했던 행동이 이런 결과를 빚은 것이다.

상처가 많은 사람이니 배려해 주겠다고 생각해 놓고서 그녀가 처음으로 한 부탁을 제드는 시원하게 걷어차 버렸다.

이게 그녀 쪽에서 먼저 다가와 준 것이었음에도.

제드는 자신이 유치하게 굴었다는 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포용력을 지닌 사람이었으며, 여유를 가졌어야 했다.

자신은 스물일곱, 루시펠라는 스무 살이었다. 따지고 보면 나이도 어린 약혼녀에게 지금 무슨 감정적인 짓인가.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심지어, 지금의 루시펠라는 겨우 친구라는 게 생겨서 사람과 소통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상태였다. 사교 활동을 도와줘도 모자랄 판이었다.

자신이 쓴 서신의 마지막 문장이 아직도 머릿속을 괴롭혔다. 거절하면 거절했지, 거절하고 싶다는 것은 뭐란 말인가. 애도 그렇게 써서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자신이라도 ‘더러워서 안 간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제드는 자신이 썼던 편지를 생각하며 루시펠라의 마음을 이해해 버렸다.

자신이 한 행동을 거의 후회한 적이 없던 제드였으나, 그는 요사이 후회라는 것을 많이 하고 있었다.

“내가 왜…….”

만약 그때 루시펠라의 요청을 들어줬다면 지금쯤 루시펠라와 자신은 승마복을 보러 번화가에 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녀와 만날 구실이 몇 번은 더 생겼을 것이며, 그가 가진 감정에 대한 찝찝함과 회의감도 어느 정도 사라질 터였다.

아니다. 그녀가 처음으로 편지를 보냈다면 어지간히 가고 싶었다는 뜻인데 지금이라도 편지를 보내면 되지 않나.

그러기엔 늦었다. 게다가 그것을 수습하면 자신은 더 이상한 사람이 될 게 뻔했다.

“빌어먹을.”

누군가의 관심을 원한 적은 어렸을 적 부모님을 제외하고 없었다.

부모님의 진실을 깨달은 이후, 그는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은 기대하지도 않았으며, 여자를 사귀었을 때도 그것을 바라지는 않았고, 사귀었던 여자가 바람을 피워도 그것에 기분이 더러웠을지언정 상처는 받지 않았다.

그런데 왜 루시펠라는 예외인가. 똑같이 기분이 더러운데, 이 무심함에 상처라도 입은 것 같았다.

대체 그녀가 무슨 장점이 있지? 성격이 좀 특이하지만 시원스러우며,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얼굴을 지녔지만, 특히 눈이 마치 별처럼 예쁘고, 웃을 때 아름다운 것 빼고는 별거 없는 사람인데 말이다.

같은 수도임에도 그녀를 못 본 지 꽤 되었다. 게다가 앞으로 만나기도 요원해질지도 모른다. 루시펠라의 입장에서 제드는 더러운 남자였으니까.

사실 루시펠라가 제드가 더러워서 안 간다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는 자신이 했던 행동을 지나치게 후회하여 극단적으로 생각하게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어.”

그는 힘없이 말했다. 여기서 그 잘못을 수습하려다가는 감정이 왔다 갔다 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게 뻔했다. 마음은 쓰지만 어쩌겠는가,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그는 자신의 감정 변화를 애써 갈무리했다.

그렇게 후회하면서 그는 자신의 널뛰는 감정에 대해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난 상태였다. 루시펠라는 특별했고, 이런 상황이 소위 말하는 어떤 감정인지 역시 생각은 해보았다.

그럼에도 제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감정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이 느껴졌던 탓이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이 감정에 대해 정의 내리기보다는 루시펠라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집중하기로 했다.

지금 그가 해야 할 것은 기마회 참석 여부를 오늘 보내느냐 보내지 않느냐인 것이다.

이러한 커다란 모임에는 통상 열흘 전에 참석 여부를 답변하는 것이 예의였다.

그러나 깃펜을 들어 편지를 쓰기엔 아직도 망설여졌다는 게 문제였다.

역시, 루시펠라를 찾아가서 같이 가자고 말하는 게 좋을까?

그는 자신의 옆에 있는 버나드에게 이 감정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싶었으나, 생각해 보니 버나드는 노총각이었다. 절대 도움이 될 인간은 아니었다.

자신의 주변에는 왜 이런 사람밖에 없는지, 제드는 얼굴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결론은 내려졌다.

우선, 포에르 백작에게 불참하겠다는 서신을 보내는 것이 먼저였다.

제드 역시 포에르 가문의 기마회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거기 참석한다면 그는 자신이 놓쳐 버린 기회와 자신 안에 있던 찌질함을 다시 곱씹게 될 것 같았다.

그가 펜을 들어 종이에 글씨를 쓰려고 할 때였다.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인은 조금 급하게 뛰어왔는지 단정한 머리칼이 흐트러져 있었다.

“무슨 일이지?”

버나드의 물음에 하인이 다급하게 대답했다.

“각하, 아이딘 백작 영애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제드는 자신도 모르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가 들었던 펜은 종이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졌고, 펜촉에서 떨어지는 잉크는 종이에 서서히 번져 가고 있었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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