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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법-42화 (42/173)

#42화 성공한 티파티

2017.07.24.

“그건 가장 어리석은 짓이었어요.”

클로렌스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루시펠라가 물었다.

“실제로 봤어?”

“역시 영애는 기억을 못 하시는군요.”

루시펠라는 그에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클로렌스는 똑똑히 기억했다. 호수 바로 앞에 위치한 첨탑, 그 끝에 루시펠라가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녀를 비롯한 모든 이가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내려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윽고 루시펠라는 위태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녀의 시선은 마지막까지도 황태자를 향해 있었다.

풍덩!

차가운 호수 속으로 그녀가 삼켜졌다. 클로렌스는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끔찍한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죽음 앞에서는 그 무엇도 소용이 없다고 했던가. 예쁘게 장식되었던 검은 머리가 풀어헤쳐지며 검은 수풀처럼 떠올랐다. 우아한 주름이 진 드레스의 치맛자락이 우스꽝스럽게 퍼졌다.

루시펠라는 레이디로서의 기품 따윈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곳에 있는 것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는 한 인간만이 있을 뿐. 그것은 클로렌스도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너무나 충격적인 모습에 그녀는 얼어 있었으나, 클로렌스는 이내 시종을 불러내 물에 빠진 그녀를 구해내도록 지시했다.

그 소동에 몇몇 이는 클로렌스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또 몇몇은 그것을 손가락질하면서 깔깔거리며 비웃었다.

그녀의 연인이라던 황태자가 가장 크게 웃었다. 심지어 루시펠라의 몸이 끌어 올려졌는데도 괜찮은지 확인해 보지도 않았다.

클로렌스는 황태자와 웃음을 터뜨리는 이들에게 커다란 불쾌감을 느꼈다. 끌어 올려진 루시펠라는 마치 죽은 것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루시펠라는 꽤나 필사적으로 황태자에게 구애했다. 모든 이들이 있는 곳에서 자신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그것이 그 차갑고 거만한 여자에게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었을지는 그녀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대가가 이런 비웃음이란 말인가? 루시펠라가 무엇을 잘못한 거지?

행실이 문란한 것? 문란한 것은 황태자도 똑같다. 아니, 오히려 루시펠라는 황태자 한 사람만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루시펠라만 비난을 받는단 말인가.

그녀가 한 행동은 그저 한 사람을 열렬히 사랑한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그 대가가 저 비웃음이라면 그건 너무도 가혹했다.

그녀는, 적어도 이런 취급을 당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클로렌스는 분노하는 자신의 마음에 이상함을 느꼈다.

그녀는 분명 루시펠라와 친한 관계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왜 그녀의 행보에 일일이 아쉬움을 느꼈던 것일까? 왜 모두가 루시펠라를 비난할 때 그녀는 루시펠라의 선택이 나름 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인상 깊은 첫 만남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도 그 얀스가르의 ‘샛별’에 매혹되어 버린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일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사교계의 가식에서 벗어난 그녀가, 모든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났던 그녀가 제멋대로 행동하더라도 그런 모습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랐다.

“저는 당신이 그렇게 되길 원하지 않았어요.”

침울한 표정으로 고백하는 그녀를 보고 루시펠라는 곤란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다 이내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이 알 수 없는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한참의 고민 후 루시펠라가 물었다.

“그렇다면 영애는 대체 내게 왜 시비를 걸었지?”

“시비를 걸었다니요, 제가요?”

“부정할 생각은 하지 마. 레인 남작 영애가 시비를 걸었던 게 영애의 탓이 아니라고 말할 생각이야?”

루시펠라는 자신의 직감을 신뢰했다. 클로렌스는 분명 레인 남작 영애에게 그녀를 몰아세우라고 시켰다. 한순간의 눈 마주침으로 알 수 있었다. 클로렌스 역시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그건, 당신에게 무도회장을 빠져나갈 명분을 주려고 그랬어요.”

루시펠라는 자살 소동 이후로 크게 앓아누웠다. 사람들은 그녀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제국의 명장(名將), 하인트 공작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병세는 이미 심각한 상태였으니 부고는 놀랄 소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른 소식에 경악했다.

공작이 죽기 전, 그 유명한 하인트 공자를 누군가와 약혼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약혼녀가 바로 루시펠라 아이딘, 황태자의 연인이라던 그녀였다.

클로렌스는 그 사실에 크게 놀랐지만 안도했다. 그녀의 미래는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가 조용히 잊히길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다행히 하인트 공자, 아니, 하인트 공작은 사교계에 자주 나타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런데 소문이 잠잠해지길 기다려야 할 루시펠라가 왜 가을 연회에 나타난 것인지. 루시펠라를 예상보다 일찍 마주한 클로렌스는 그때 진심으로 당황했다.

아무리 멍청해도 루시펠라가 이곳에 제 발로 나왔을 리는 없다. 최근 큰 사고도 당했다고 했는데 딸을 사랑한다는 아이딘 백작부터가 막았을 것이다.

분명 억지로 나온 것일 터였다. 어쩌면 황태자의 짓일지도 모른다. 황궁 호수에서 본 그 남자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현재 멜로즈는 포에르 백작과 혼인을 해 포에르 백작가의 영지가 있는 북부에 올라가 있었다.

멜로즈가 부재했지만, 완전히 황태자에게 버림받은 루시펠라를 멜로즈를 따르는 영애들이 노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다 그녀를 비난했고, 그런 여론이 식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때 그대로 두었다간 분명 루시펠라는 커다란 망신을 당했을 것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클로렌스는 대놓고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차라리 면전에서 대놓고 수치라도 주면 울면서 뛰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인 영애는 클로렌스를 열렬히 따르는 사람 중 하나였고, 지시를 내리기는 쉬웠다.

그러나 변수가 하나 있었으니, 그게 루시펠라였다. 보통 괴롭힘을 당하면 멜로즈를 노려보며 도망쳤던 그녀가, 처음으로 제대로 반박다운 반박을 한 것이다.

게다가 루시펠라 쪽에서 처음으로 그녀와 눈이 제대로 마주했다. 마치 클로렌스가 계획한 행동인 것을 알아차린 것처럼.

그때 그 눈을 본 클로렌스는 왠지 모를 희열을 느꼈다.

“정말, 레이디들의 방식은 알다가도 모르겠네.”

그 말을 듣고 루시펠라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말이었다. 수치를 줘 쫓아내는 게 어떻게 그녀를 위한 일인가. 클로렌스는 가을 연회 때 루시펠라와 처음으로 제대로 눈을 마주쳤다고 했다. 그게 그렇게 기억할 정도로 특별한 일인가?

“그렇다면 티파티는 왜 초대한 거야?”

루시펠라의 물음에 클로렌스가 말하기 싫은 듯 얼굴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다가 이내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때, 눈이 마주쳤을 때 단 한 가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 떠올랐어요.”

“그게 뭔데?”

클로렌스가 루시펠라와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에 루시펠라는 클로렌스가 아직 열여덟 살의 여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클로렌스는 볼을 빨갛게 물든 채 수줍은 표정으로 말했다.

“영애를 제 사람으로 만드는 거.”

“엉?”

다소 멍청해 보이는 대답이었으나, 루시펠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루시펠라가 바랐던 일을 클로렌스 쪽에서 먼저 바랐던 일이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놀라지 않겠는가.

뭐 이런 일이 다 있지.

그때, 클로렌스가 웅얼거리듯 말했다.

“수도로 올라온 건 도망치지 않겠다는 말이잖아요? 이곳의 레이디로서 사교활동을 계속하겠다고. 그래서 이번엔 저도 도와주려고 했어요. 왜냐면 저도 이제 사교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사람 중 하나거든요.”

스스로가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자부심에 루시펠라는 내심 감탄했다.

더욱 감탄한 것은, 그녀가 자신에 대해 그렇게 자랑 어린 설명을 하는데도 그게 자랑이 아니라 당연하게 느껴졌던 것에 있었다.

“티파티 때도 당신에게 제가 어떤 영향력을 지닌 사람인지 정도는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걸 보여주려고 했어요. 하지만 모든 게 다 망해 버렸네요.”

클로렌스는 씁쓸하게 웃었다.

“제가 가진 건 오라버니의 말 한마디에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걸 간과한 모양이에요.”

클로렌스의 말에 루시펠라는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 역시 그것을 느꼈던 것이다.

티파티에 주인이었던 클로렌스는, 해럴드 경의 난입에 너무나도 쉽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이런 추한 모습까지 보여주다니. 오늘은 최악이로군요.”

클로렌스는 울컥했는지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이번에는 짜증 섞인 울음이 아니었다.

루시펠라는 그것을 바라보다 침착하게 물었다.

“그러니까 대체 왜 나한테 그러는 건데? 이해가 가지 않아.”

마치 꼭 짝사랑 같지 않은가?

왜 클로렌스는 그렇게 루시펠라의 관심을 원하고,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일까.

“영애의 말을 들어보면 난 인간관계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입지가 없잖아. 날 가까이해서 손해를 볼지언정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없단 말이야. 날 대체 왜?”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모르니까 더 물어보지 마세요. 아 참, 제가 뭐 영애를 짝사랑한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니 오해 말아요!”

클로렌스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하자 루시펠라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에 잠기다 이내 어떤 감정인지 깨달았다.

애정이라기엔 미묘하고, 재수가 없고 싫었지만 눈길이 가던 사람. 자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지 않았는가.

“하인트 공자, 그놈 다시 만나면 꼭 내 눈앞에 끌고 와!”

“그 흑사자 놈을 어떻게 데려오냐?”

“이번엔 기필코 찍어 누를 거야, 그 녀석!”

“단장, 그만 좀 해라. 누가 보면 사랑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맞아. 에스텔, 요새 그놈 이야기만 하는 거 알고 있어?”

에스텔이었을 적, 제드와 만난 후로 그 ‘하인트’라는 성을 들으면 이를 갈았다.

처음 만난 그는 무례했고, 그녀의 자존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루시펠라는 그때 처음 만났던 제드를 잊을 수가 없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끌림이 있을 수도 있는 거지. 그렇게 고민하지 마.”

다시 검을 맞대고 싶었고, 제대로 그 면상을 일그러뜨리고 싶었다. 그것이 승부욕이라기엔 지나치게 집요했다. 그렇다고 복수심이라기엔, 그 정도로 농도 짙은 부정적 감정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에스텔 슈페르트는 그 인간에게 끌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좋고 싫음의 두 가지로만 나뉘지는 않는다. 싫은데도 끌리는 사람은 분명 존재했다. 그게 클로렌스에게는 루시펠라였던 모양이다.

“지금 영애를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꼭 남처럼 말하지 말아주실래요?”

클로렌스가 발끈하자 루시펠라가 멋쩍게 웃었다.

이제 보니 클로렌스는 아름답고 또 귀엽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자신이 알게 모르게 클로렌스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클로렌스는 포기하지 않고 그녀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그러곤 해럴드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했지.

루시펠라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클로렌스가 이렇게 말을 하는 게 뭔가를 노리고 계산된 행동인지 아닌지를. 그러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에스텔은 사람을 의심하지 않는다. 비록 배신당했지만 그녀는 사람을 계속 믿고 싶었다.

“나 사실은 기억을 잃었어.”

돌연 나온 말에 클로렌스의 벌꿀색 눈이 커졌다.

루시펠라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죽어버린 루시펠라에게 미안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루시펠라로 살아가야 했다. 그녀는 어느 정도는 진실될 필요가 있었다.

“기억을, 잃다니요? 설마 그 사고로?”

“그래.”

“세상에!”

“그러니까 기억이 통째로 사라진 건 아닌데, 전부 다 기억나는 건 아니야. 잘 모르겠어, 나도.”

더 캐물을까 봐 루시펠라는 대충 얼버무리며 말했다.

“영애가 사실을 이야기해 주니까 나도 사실을 이야기하는 거야, 예법도, 얀스가르가 돌아가는 상황도 대부분 잊어버렸어. 아주 조금밖에 기억나지 않아.”

클로렌스는 루시펠라의 얼굴을 보며 멍하게 중얼거렸다.

“어쩐지 말투가 이상해졌더라…….”

맞다, 말투!

루시펠라는 자신의 말투가 또다시 에스텔로 돌아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서 제가 가끔 이런 말투를 쓴답니다. 실례했어요, 영애.”

긴장이 풀려 버리면 이런 말투가 나와 버린다. 루시펠라가 애써 수습하려 했지만 클로렌스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역시 사람이 달라진 것 같네요, 영애. 꼭 다른 사람 같아요.”

“…….”

확실히 이 사람은 예리하다. 클로렌스와 루시펠라의 접점이 거의 없었음에도 클로렌스는 그녀가 달라졌다는 것을 인지했다.

“하지만 아까처럼 스스럼없이 말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영애가 그런 말투를 쓰니 뭔가 징그럽네요.”

클로렌스가 미소를 지으며 루시펠라를 바라보자, 루시펠라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영애, 나는 이전의 행동이 어리석었다는 건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앞으로 하지 않을 생각이야.”

“왜 갑자기 그렇게 생각하신 건데요? 기억을 잃어버렸어도 사람이 바뀌는 건 쉽지 않을 텐데요. 게다가 기억을 전부 다 잃어버린 건 아니잖아요.”

클로렌스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사람이 행동이 변하려면 무슨 계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을 납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루시펠라는 고민하다가 어느 정도는 솔직해지기로 했다.

“영애, 나는 한 가지 목표가 있어.”

“무슨 목표요?”

클로렌스의 물음에 루시펠라는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칼리드에 대한 건 그녀만이 알아야 하는 문제였다. 이 부분까지는 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최대한 자신의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며 말했다.

“사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몰라. 그래서 일단 내가 레이디로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고 판단했어. 그래서 영애와도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지.”

“…….”

“역시 이용하는 것 같아 좀 그런가? 사실 그것 때문에 가까워지려는 의도부터가 불순했다고 생각해. 영애는 내게 호의로 그랬던 거잖아.”

루시펠라가 어색하게 웃었다. 마냥 이용하기 위해 접근하는 것은 에스텔의 방식이 아니었다. 역시 그녀는 인위적인 친분을 만들 수 없었다. 이런 방식은 자신이 용납하지 못했다.

“이게 내 진심이야. 영애가 실망해서 날 멀리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그 말을 들은 클로렌스가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숙여 손으로 입을 막았다.

솔직함을 가장한 무례함이 도를 지나친 건가? 루시펠라가 걱정할 때였다. 클로렌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뭐예요, 그게! 제가 티파티 때부터 항상 보여 드리려 했던 거잖아요. 제 필요성 말이에요!”

그 말에 루시펠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클로렌스는 계속해서 말했다.

“저는 영애와 친구가 되고 싶었고, 제가 얼마나 유용한 사람인지 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티파티를 열었고, 영애는 제 필요성을 인지했죠. 한데 그게 뭐가 문제인 건가요.”

“어…….”

“세상에나! 그런 거라면 제 티파티는 성공한 모양이네요.”

클로렌스는 여전히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클로렌스가 미소 짓는 얼굴은 무척 아름다웠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전인데 어떻게 성격과 마음에 대해 판단할 수 있나요? 정보를 많이 아는 것도 제 매력 중 하나랍니다. 제 매력을 알아주다니 기쁘네요, 영애.”

과연 시원한 대답이었다. 만약 에스텔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면, 이런 사람이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루시펠라는 문득 어쩌면 자신이 여자라는 성별을 하나의 특성으로 규정하고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시토라 기사단원 중 유일한 여자인 아니카와 가까웠던 이유는 그녀가 같은 기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레스를 입은 사람도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이전, 진짜 루시펠라가 했던 행동 때문이었다. 진짜 루시펠라가 해럴드에게서 클로렌스를 구해준 것이 호의에서 기인한 건지, 정말 해럴드에게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해럴드 경을 보고 묘하게 기분 나빠 했던 진짜 루시펠라의 감정을 떠올려 보자면, 아마도 정답이 나오지 않을까.

“나도 참, 배워야 할 게 많구나.”

루시펠라가 말하자 클로렌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영애는 원래 배워야 할 게 많잖아요.”

“윽.”

클로렌스 역시 에레네 부인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솔직한 면이 있는 모양이었다.

여하튼 루시펠라는 자신이 계획한 대로 친구를 얻을 수 있었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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