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레이디의 질투
2017.07.17.
“아, 아가씨, 다시 응접실로…….”
하녀가 루시펠라에게 다시 돌아가자는 듯 말했다. 루시펠라가 입술을 깨물다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금 네가 불러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이 저택의 아가씨인 것 같은데.”
“그건…….”
루시펠라는 하녀가 이 상황에 대한 놀라움과 두려움보다는 루시펠라에게 들켰다는 당혹감이 더 우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빈번하게 벌어지는 일이라는 얘기였다.
그걸 깨닫자 기분이 참 더러워졌다.
“오라버니, 그만!”
그와 동시에 또 무언가 던져지는 쾅 소리가 났다.
결국 루시펠라는 참다못해 계단을 올라갔다. 하녀가 만류했지만 그녀가 한 번 노려보자 하녀는 차마 루시펠라를 말리지 못했다.
“놔! 그 계집 면상은 직접 봐줘야지! 내가 그 빌어먹을 하인트 공작 때문에…….”
계단을 올라가자 연결된 복도에 서 있는 해럴드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주변에 자리한 초상화 액자나 화병 같은 장식물이 처참하게 깨진 모습도.
해럴드의 너머에 있는 클로렌스의 모습이 보였다.
“가문만 번드르르한 자식이!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나한테, 어?!”
그가 넘어진 액자 조각을 발로 쾅, 찼다. 그에 클로렌스가 크게 움찔했다. 그러나 고개를 들고 말했다.
“오라버니, 아이딘 영애는 제가 초대했어요!”
“그러니까 그 얼굴 좀 보겠다는데 뭘 그렇게 까다롭게 굴어, 어?!”
“오라버니의 말을 믿을 수 없어서 그래요. 지금 오라버니는 이성적인 상태가 아니잖아요!”
“오냐, 그래, 내가 설령 그 여자를 침대에 데려가도 그 계집이 뭘 어떻게 할 수 있지? 그 잘난 약혼자랑 잘 지내고 싶으면 알아서 닥쳐야 할 텐데?”
“멍청한 소리 그만해요!”
짝!
파열음이 나며 클로렌스가 뒤로 나가떨어졌다.
“클로렌스. 오늘 내가 너를 훈육해야겠구나. 언제부터 오라버니에게 거역하게 된 거냐, 어?!”
해럴드가 허리춤에 있는 검을 검집째로 빼 들었다.
“오라버니!”
클로렌스가 앉은 채로 몸을 뒤로 움직였다. 그녀의 두 눈은 겁에 질려 있었다.
클로렌스는 해럴드가 검을 들고 다가오는 것을 보고도 차마 도망칠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몸을 바들바들 떨 뿐이었다. 그것을 본 루시펠라는 기가 차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 여기는 하나같이 다들…….”
그녀가 중얼거리며 해럴드의 뒤로 다가갔다. 하지만 해럴드는 등 뒤로 다가온 루시펠라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무리 조용히 걸었다고 해도 기사가 뒤로 접근한 그녀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한다는 건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루시펠라는 어찌 되었든 기척을 죽이는 데 특화된 기사가 아니라 레이디였다.
그녀는 해럴드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는 자신감 있게 두 다리를 쫙 벌리고 서 있었다.
참 좋은 자세였다. 발로 차기에 좋은 자세라는 말이었다.
루시펠라는 우아하게 치마를 걷었다. 그러곤 드러난 가늘고 어여쁜 다리를 남자의 다리 사이에서 무자비하게 휘둘렀다.
“악!”
후작가의 복도에 처절한 비명 소리가 퍼졌다.
남자가 급소를 맞으면 어떻다고 했지? 하늘이 노래지는 느낌이 들며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진다고 했었나. 뭐, 알게 뭔가. 아프라고 한 거다. 제 여동생은 이것보다 수십 배는 더 아팠을 거다.
“따흐흐흐흐흑!”
이상한 비명 소리를 내며 바닥을 뒹구는 해럴드를 내려다보며 루시펠라가 차갑게 말했다.
“나라를 지키라고 검을 줬는데 그 검으로 여동생을 때리는 데 쓰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는데.”
그러다 그녀는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일로 분란이 발생한다면 곤란했다.
몸이 먼저 나가 미처 생각 못 했지만, 생각해 보면 티파티 때 영애들이 그를 딱히 멀리하거나 두려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저놈의 쓰레기 같은 성격은 저놈이나 가문에서 필사적으로 숨겼음이 분명했다.
“가문 대 가문의 문제로 발전시키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해럴드 경. 방금 경이 하신 말씀을 제가 똑똑히 들었거든요. 그 잘난 제 약혼자랑 잘 지내고 싶으면 알아서 닥치실 거죠?”
적어도 이놈은 황태자처럼 미친 보복은 하지 않겠지. 뭐, 순순히 당해줄 그녀도 아니었지만.
“본인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움을 자각하시기를, 해럴드 경.”
루시펠라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해럴드가 그녀를 노려보았지만, 루시펠라가 치마를 살짝 걷고 다리를 올리자 갑자기 공손함이 샘솟았는지 그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그곳에 대었다.
괴롭든 말든 알게 뭔가. 그녀가 했던 말을 알아들었으면 됐지.
그녀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클로렌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클로렌스는 아직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고 있는 듯했다.
“괜찮아? 일어날 수 있지?”
“네? 네.”
루시펠라는 자신의 말투가 바뀌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클로렌스가 눈을 크게 뜨며 루시펠라가 내민 손과 루시펠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 아가씨!”
사용인들이 그제야 클로렌스에게 다가오려 하자 루시펠라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영애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쪽들은 거기 있는 저 도련님이나 치우지 그래?”
“…….”
그녀의 말에 사용인들이 모두 쓰러진 해럴드를 부축했다.
그때, 클로렌스가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가…….”
“구실을 못 할 정도로 세게 차진 않았어.”
루시펠라는 나름 최선을 다해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러자 클로렌스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클로렌스가 손을 잡을지 말지 망설이자 답답한 루시펠라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 너머, 클로렌스가 아직도 덜덜 떠는 게 느껴졌다. 루시펠라는 한숨을 쉬었다.
클로렌스도 다행히 순순히 몸을 일으켜 주었다.
루시펠라는 자신들이 있을 적당한 장소를 생각했으나, 이곳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방은 응접실밖에 없기에 결국 거기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진정에 도움이 되는 차를 준비해 와.”
응접실 안으로 하녀들이 따라 들어오자 루시펠라가 명령을 내렸다. 하녀들은 머뭇거렸다.
“이 아가씨에게 내가 위해를 가할 거라고 생각해서 이러는 건가?”
그 말에 하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깥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 응접실에는 둘만이 남았다. 그러자 정적이 찾아왔다.
루시펠라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클로렌스 로에르와 대화를 나누고 가까워지고 싶다는 계획은 처음부터 순조롭게 망해가고 있었다.
“괜찮아요, 영애?”
루시펠라가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클로렌스는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루시펠라는 당황했다.
우나? 울면 어떡하지. 그녀는 우는 사람에게 약했다.
그녀는 고민 끝에 클로렌스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당황한 루시펠라에겐 레이디들 사이의 예의 따윈 없었다.
“치워요!”
루시펠라의 손길에 클로렌스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녀의 얼굴은 뺨을 맞은 부위뿐만이 아니라 전체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름다운 벌꿀 색 눈동자엔 분노가 깃들었다.
“차라리 다른 영애들처럼 못 본 척하다가 소문이라도 내시지 그랬어요?”
루시펠라는 자신이 소문을 내고 싶어도 진짜 루시펠라의 인간관계가 이미 파탄 났기에 딱히 그럴 방법이 없다는 걸 지적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왜 거기서 끼어들어요? 지금 내가 수치스러워하는 걸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죠?”
클로렌스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영애의 오라버니가 그런 놈인데 왜 영애가 수치스러워해야 하는 건데.”
루시펠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하자 클로렌스가 눈을 크게 뜨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아, 정말, 너무 최악이야.”
클로렌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숙였다.
뭐야, 이번에는 진짜로 우는 건가.
루시펠라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클로렌스가 도저히 이해 가지 않았다.
속내를 알 수 없었던 로에르 후작 영애의 가면이 벗겨지는 건 좋은데, 진상이 드러난 클로렌스는 꼭 단단히 골이 난 아이 같아 대하기가 어려웠다.
“영애, 저는 어디도 말하지 않을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
“누가 그걸 걱정한대요? 난 당신이 거기 있던 게 싫은 거라고요!”
클로렌스가 얼굴에서 손을 떼고는 빼액, 소리쳤다.
그래, 이 여자도 루시펠라가 말할 친구도 없다는 것 정도는 알았겠지.
루시펠라는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끔찍해.”
클로렌스는 여전히 무언가 단단히 골이 난 듯 다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루시펠라는 결국 대놓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잘못한 거야?”
“…….”
클로렌스는 루시펠라의 말을 무시했다.
“내가 잘못한 거냐고.”
루시펠라가 목소리를 키워서 물었지만, 클로렌스는 짜증스럽게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개를 더욱 숙일 뿐이었다. 대답을 안 하겠다는 뜻이다.
그에 루시펠라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 루시펠라도 자신이 잘못한 게 없다는 것 정도는 안다. 여동생에게 폭력을 쓰는 남자에게 나약한 여자의 몸으로 응징할 수 있는 수단이 얼마나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기사가 검을 그릇되게 쓰는 것을 잠자코 보란 말인가?
게다가 해럴드는 루시펠라에게도 위해를 가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영애, 지금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내게 화를 내는 거야?”
“…….”
“내가 해럴드 경을 응징했던 건 영애가 혹 심한 일을 당할까 봐 그래서였어. 그게 잘못인 거야?”
그에 클로렌스가 다시 손을 내리고 루시펠라와 얼굴을 마주했다. 루시펠라는 억울했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잖아. 그렇다면 사용인들도 이걸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었다는 거 아니야? 나 말고 거기서 누가 나서냔 말이야.”
“…….”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났던 거잖아.”
그에 클로렌스의 얼굴에 다시 분노가 감돌았다.
“영애, 저는 영애가 정말 싫은 거 알아요?”
“……뭐?”
와, 이렇게 대놓고 싫다고 말하네. 사실 루시펠라는 클로렌스가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품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 말로 클로렌스가 질투해서 루시펠라를 싫어할 거라던 에레네 부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분노가 치솟아올랐다.
사실 루시펠라의 화는 진작부터 위험 수위에 오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기껏 구해놨더니 짜증이란 짜증은 다 내고 있었다.
이건 예의에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일이었다.
루시펠라가 입술을 비뚜름히 올리고 말했다.
“왜, 그날 황제 폐하가 내게 관심을 가졌던 게 그렇게 못마땅해?”
“네?”
“영애, 날 질투하지?”
그래서 루시펠라는 에레네 부인이 했던 말을 그대로 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죠?”
그녀의 말에 클로렌스가 되물었다.
모르는 척하긴. 루시펠라는 말을 계속 이었다.
“아니면 싫어할 이유가 없잖아? 집안도 좋고, 얼굴도 예쁜 영애가 대체 왜 날 질투하는 거지?”
“아이딘 영애!”
“감사 인사는 고사하더라도 면전에 ‘싫어한다’라고 말하지 않을 예의는 있을 줄 알았는데, 질투가 무섭긴 무섭네. 영애가 그렇게 이성을 잃고 꽥꽥댈 정도라면.”
루시펠라의 그 비꼼에 클로렌스의 붉은 얼굴에 고운 혈관이 섰다.
“내가 왜 그쪽을 질투한다는 거죠?”
클로렌스의 고함 소리는 생각보다 커서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거, 여전히 시치미네.
루시펠라가 무어라고 말하려 할 때 클로렌스가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
“말 그대로 집안도 영애보다 뛰어나고, 얼굴도 예쁜데 제가, 왜, 영애를, 질투한다는 거예요!”
“어, 그건.”
“말해봐요!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예쁜데 왜 그쪽을 질투해요? 그쪽도 나 질투해요?”
“아, 그건 아닌데.”
“혼자 잘난 척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본래 그렇게 혼자 세상을 살아가세요?”
클로렌스의 시퍼런 기세에 루시펠라는 입을 다물었다.
“역시 기억하지 못하는 거죠?”
“뭐를?”
어라, 클로렌스 영애와 루시펠라의 접점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클로렌스를 보고 별생각이 안 들었는데.
그녀도 루시펠라의 몸에 오랫동안 있어봐서 안다.
루시펠라가 아는 사람들은 그 특유의 익숙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클로렌스는 그런 게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까 그 해럴드에 대해서는 불쾌한 감정이 있었을 뿐이다.
“내가 영애같이 예쁜 사람을 어떻게 잊어버리는데?”
루시펠라의 말에 화를 내던 클로렌스가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진짜였다. 루시펠라는 에스텔이 기억에 남을 만큼 예쁘다고 생각했던 얼마 안 되는 미인 중 하나였다.
“잊어버렸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사실 예쁜 사람을 기억하는 건 에스텔이지 진짜 루시펠라는 아니었으니, 클로렌스의 지적은 맞았다.
루시펠라는 아직도 이 상황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지금 어째서인지 클로렌스에게 밀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연약한 꽃과 같은 레이디들이 무서운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화를 내니 더 무섭구나. 루시펠라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야 깨달았다.
“그래, 영애가 날 싫어하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겠어. 지난번 가을 연회 때도 그렇고 영애의 친구들도 날 싫어하니 말이야.”
루시펠라가 떠듬거리며 말했다. 그에 클로렌스의 눈빛이 더욱 험악해졌다.
아니, 말만 해도 화를 내니 도대체 어떤 말을 해야 정답이란 말인가.
그때, 클로렌스가 입을 열었다.
“누가, 걔들을 친구라고 하는 거죠?”
“뭐?”
“아직도 모르겠나요?”
클로렌스가 답답한 듯 말했다.
“저는 영애를 질투하는 게 아니라 도와주려고 했던 거라고요!”
엥? 루시펠라는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원래 레이디들의 방식은 이런 건가. 그런 게 도와주는 거라면 상식을 뛰어넘어도 한참 뛰어넘었다. 아니면 도와준다는 말의 의미를 자신이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다거나…….
“저기, 영애. 내가 이해력이 달리는 건가? 그게 왜 도와주는 거지?”
“정말이지 여자들한테 만만한 게 질투지!”
클로렌스는 루시펠라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저 영애는 아직도 루시펠라가 했던 말에 화가 난 모양이었다.
“참 웃기는 게 왜 내가 영애를 싫어하면 그 이유가 ‘질투’ 때문이 되는 거죠?”
클로렌스의 눈에는 원망이 그득했다.
루시펠라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야 여자들은 서로를 질투하니까.’ 그것이 루시펠라의 대답이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러나 입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자인 지금의 루시펠라는 클로렌스를 질투하는가?
전혀 아니었다. 그녀가 질투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제드였다.
그렇다면 여자들끼리는 서로를 질투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진짜 루시펠라가 클로렌스를 질투했는가?
확신을 할 수 없지만, 아니었다. 심지어 진짜 루시펠라는 클로렌스에게 어떤 감정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루시펠라 자신 역시도 클로렌스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판단 내리지 못했고, 싫어한다니 에레네 부인의 말대로 ‘질투해서’라고 생각했다.
“가문만 번드르르한 자식이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그런 맥락에서, 해럴드 경이 제드에 대해 했던 말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제드의 가문이 뛰어나 그의 휘하에 있기에 터뜨리던 불만.
그렇다면 이 역시 질투가 아닌가. 그렇다면 남자도 질투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루시펠라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또 다른 편견에 휩싸여 이 사람의 마음을 너무나 단순하게 생각해 왔다.
아직도 그녀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클로렌스가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도, 자신에게 지금 화를 내는 이유도, 자신을 도와준 이유도 다.
“영애는 그럼 내가 왜 싫은 건데?”
그렇다면 본인에게 물어보면 되는 게 아닌가. 루시펠라는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었다.
“내가 싫었다면, 왜 나를 도와준 거야?”
그녀의 어조가 누그러지자 클로렌스의 날카로운 기세도 점차 사라졌다.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사과할게. 그러니 적어도 이해는 시켜줘.”
루시펠라의 차분한 표정을 본 클로렌스는 화를 내려는 듯 입을 열다 이내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그리고 클로렌스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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