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법-38화 (38/173)

#38화 그 기사, 에스텔

2017.07.10.

그 티파티가 내게 우호적이지 않았기에 이곳에 왔다고?

내가 그걸 몰랐을 것 같아? 왜 쓸데없는 참견이지?

루시펠라 안에 있던 에스텔이라면 응당 그렇게 말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반발심은 어째서인지 사라졌다. 대신 루시펠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걱정되었다는 거야?”

“……여기나 저기나 꼭 똑같은 걸 물어보는군.”

제드는 하, 하고 한숨을 쉬며 루시펠라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찌 되었든 영애는 내 약혼녀니까, 어디 가서 곤란한 일을 겪는 것도, 당하는 것도 달갑지 않아.”

그건 자신의 명예 때문일까? 그러나 그 명예 때문에 황자를 움직여서 자신을 빼내오는 마땅한 이유는 되지 않았다. 진정 명예를 위했다면 감히 제국의 황자를 움직일 생각 따윈 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녀는 제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걱정되었다는 그 말은 제드의 진심이었다. 조롱도 아니며 가식도 아닌 그 얼굴을 보며, 루시펠라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고민 끝에 겨우 말을 내뱉었다.

“고마워.”

루시펠라의 순순한 감사 표현에 오히려 제드가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는 무언가 더 물어보려 했으나 루시펠라가 대화를 차단하듯 고개를 숙이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을 태운 마차는 후작가를 떠나 대로변을 달리고 있었다.

그동안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자리했다.

정말 루시펠라가 몸이 안 좋은 건가 싶어 마차를 돌려 의원에게 가야 하나, 그가 고민하는 동안 그녀가 고개를 들어 말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루시펠라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에 표 나지 않게 할 말을 찾고 있던 제드가 흠칫 놀라며 루시펠라를 보았다. 루시펠라는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루이르크 공작과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때 그렇게 말했던 건 약혼녀인 내 편을 들어주기 위해서야?”

루시펠라는 제드에게 물었다. 제드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렇게 말했다니, 무엇을 말하는 거지?”

”얼샤와 루이르크 공작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말이야.“

적국의, 단 한 번 마주하며 대화했던 이 기사에게 자신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왜 이제 기대하는 쪽은 10년이 넘도록 같이 자라왔던 칼리드가 아니라 이 남자인 것일까.

어느 쪽 대답을 바라는지는 명확했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해주길 그녀는 애타게 바랐다.

“딱히 영애의 편을 든 건 아니야.”

루시펠라의 두 눈이 커졌다. 그는 그녀가 바라왔던 대답을 그대로 말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지. 내가 그 녀석에게 화가 나서 그런 거였어.”

제드는 멋쩍은 듯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번 가을 연회 때 말했던 거 기억나? 아니, 영애의 성에서도 그 녀석을 피해 다니는 걸 봤으니 알겠군. 나는 그 녀석을 혐오하고 경멸해. 영애는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 다시 말하는 거야.”

“……왜?”

그녀의 물음에 제드는 잠시 동안 복잡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생각을 정리한 듯 그의 입이 다시 열렸다.

“에스텔이라는 기사는 정복전쟁 때 단 한 번 만난 적이 있었어.”

갑자기 에스텔의 이름이 나오자 그녀는 놀라움을 감추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야만 했다.

타인의 입에서 죽기 전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기묘했다.

제드는 에스텔에 대해 이야기하자마자 눈썹을 찡그리며 다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루시펠라는 더욱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에스텔은 당신에게서 어떤 사람이었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녀는 안달이 났다.

“그 여자는 어떤 사람이었는데?”

루시펠라의 말에 제드가 눈을 돌려 루시펠라를 바라보았다.

“‘그 여자’가 아니야.”

“뭐?”

“‘그 기사’야.”

그의 두 눈은 단호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루시펠라의 온몸이 전율했다. 지금 깨달은 단 한 가지 사실에, 어둑했던 마음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것 같았다.

제드는 에스텔을 여자로 규정하지 않고 기사로 보고 있었다.

“에스텔은 기사의 귀감이었어. 그건 성별을 떠나서 존경할 만한 일이었지. 난 에스텔 슈페르트가 샛별, 이슈타르라고 불렸던 걸 충분히 이해해.”

“…….”

“불행이라면 그녀가 얼샤에 태어났다는 것뿐. 아니, 따지고 보면 얼샤 같은 나라에 태어났기에 검을 잡아 기사가 될 수 있었겠지. 아니, 성별이 문제였을지도 모르겠군.”

제드는 혼잣말을 하듯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루시펠라에게 있어 그 목소리는 귀에 똑똑히 울려 퍼졌다.

“그냥, 특이한 여자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게 착각이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지.”

“…….”

“에스텔 슈페르트는 훌륭한 기사였어.”

그녀의 입술이 떨려왔다. 어떤 기사였냐는 물음에 제드는 너무나 진실된 얼굴과 어조로 진지하게 훌륭한 기사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칼리드 루이르크, 아니, 칼리드 가브라인은 그녀를 죽였지. 종전 날, 그 녀석이 목을 들고 있는 것을 봤어. 자신이 직접 죽였다고 말하더군.”

그의 눈썹이 찌푸려지며 눈빛에 살기가 돌았다.

“아까운 기사였어. 그깟 놈에게 죽어서도 모욕받아서는 안 될 정도로.”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에스텔 슈페르트의 전반적인 생애에 대해 제드는 알지 못한다.

그녀는 죽어간 수많은 기사 중 하나였고, 출신이 불확실한 평민이었으니 알고 싶어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스쳐 지나갔음에도 그녀가 빛나는 존재라는 것은 또렷이 보였다.

여자라고 그녀를 무시했던 제드에게 에스텔은 시원하게 한 방 먹였다. 제드는 그것이 분했으나 싫진 않았다.

왜 전장의 여신인 샛별, 이슈타르라고 불리는지 그는 에스텔을 보고 납득했다.

그녀는 별과 같은 사람이었다. 어둠 속에 방황하는 이들을 매료시키는.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그런 놈에게.

그러다 제드는 자신이 지나치게 살기를 드러냈다는 것을 알고 기운을 갈무리했다. 그가 스리슬쩍 루시펠라를 볼 때였다.

루시펠라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제드는 그렇게 고요히 우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울음을 유난스럽게 숨기려는 것도 아니며, 알아달라며 과장스럽게 요구하지도 않았다.

유리알 같은 아름다운 은청색 눈동자에 눈물이 또르르 맺혀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미친 생각이지만, 제드는 그 모습에 잠시 동안 홀렸다.

그러다가 그는 그녀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방금, 자신이 너무 살기를 흘려대 무서운 모양이었다.

그럴 수도 있었다. 기사의 기합이라는 게 무형의 기운이라 우습게 보이지만, 실제로 접하면 일반인들은 숨을 제대로 못 쉴 정도였다. 더군다나 제드는 그날을 생각하며 루이르크 공작을 정말로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정제되지 않은 살기를 마주한 루시펠라가 얼마나 두려웠을까. 게다가 그녀와 제드는 마차 안이라는 밀폐된 공간에 단둘이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가 그럴 의도가 아니더라도 루시펠라가 무서워하는 것이 당연했다.

“내가 영애를 미처 배려하지 못했군.”

제드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머릿속에 밀려왔던 분노가 순식간에 흩어져 버렸다. 그는 자신의 멍청함에 혀를 찼다.

“마차를 세우는 게 낫겠어. 괜찮겠지?”

그는 밀폐된 공간에 ‘단둘’이 있다는 그녀에게 위협으로 다가올 상황을 없애기 위해 마차를 세우고자 했다.

루시펠라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고, 제드는 광장 한복판에 마차를 세웠다.

그는 먼저 내려 마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루시펠라를 안심시키기 위해 마차의 문을 활짝 열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루시펠라는 순순히 제드의 손을 잡고 바깥으로 나왔다.

겨울이라 서늘한 바람과 더불어 밤이 빨리 찾아왔기에 그린힐의 광장은 벌써 한산했고, 사람들의 인적이 드물었다. 그러다 제드는 아차 싶었다.

바람이 심하게 찼다. 너무 추운 때 내려 버린 모양이다.

루시펠라는 온실에 가기 위해 다소 가벼운 차림을 입고 있었다. 제드는 루시펠라에게 허둥지둥 망토를 벗어주었다.

“다시 들어갈까?”

제드의 말에 루시펠라가 고개를 저었다. 답답한 마차 안보다는 춥긴 해도 바깥이 훨씬 좋았다.

그녀는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시원한 바람은 울음기에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식혀주고 있었다.

‘재밌네.’

결국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제드가 말했다. 가족보다 더 가깝다 생각했던 십년지기 친구가 아니라, 전쟁 중에 단 한 번 만났던, 이 재수 없는 적국의 기사가.

그 친구가 부정해 버린 자신의 인생에 옷깃만 스칠 정도로 가벼웠던 그 인연을 지녔던 사람이, 그 적이었던 남자가, 훌륭하다 평했다.

그렇다면 에스텔의 인생은 어떻게 평가를 할 수 있을까.

그녀의 삶은 훌륭했나? 아니면 칼리드의 말대로 그녀는 전쟁에 스러져 가는 병사들의 목숨을 생각하지 않은 어리석은 기사였나?

아니, 이 시점에서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에스텔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이 남자가 했다는 것이다.

이름이 남겨지고자 검을 들어 싸웠던 자신. 그러나 남았던 것은, 어리석게 검을 든 여자라는 모욕이었다. 그리고 죽은 그녀 대신 그가 분노하고, 대신 싸워주었다.

저 남자가, 바로 제더카이어 하인트가.

“영애, 마차 안에서는 내가 경솔했어. 그게, 딱히 영애에게 화를 내거나 위해를 끼치려고 했던 건 아니야.”

그는 애써 자신의 무해함을 말하려고 했다. 덩치도 큰 남자가 당황해서 안심시켜 주려는 꼴이 우스웠다. 그답지 않은 다정함이었다. 누가 그 사람을 전쟁의 흑사자라고 알겠는가.

“알고 있어.”

말투가 재수 없고 그가 가지고 있는 게 여전히 마음이 아릴 정도로 질투가 나긴 하지만, 그의 올곧은 성격은 변함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못남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한 번 인정했다.

이젠, ‘나쁜 사람이 아니다’로 그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를 피해서는 안 되었다.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좋은 사람이었다.

당신은 처음 만날 때부터 좋은 사람이었다. 에스텔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날, 에스텔과 제드가 처음 만났던 날, 얀스가르의 기사들에게 위해를 당할 뻔했던 에스텔을 구해준 이는 바로 제드였다.

“저 머리가 쥐 색깔이지 어디 봐서 별빛 머리카락이지? 그 이슈타르인지, 샛별인지는 저 여자가 아니야. 아니, 여자가 맞긴 하나? 내가 보기엔 천둥벌거숭이로 보이는데.”

그 비아냥거림이 마냥 재수 없었다. 그 침략자의 오만한 얼굴을 눌러 버리겠노라고 소리쳤다.

그렇게 악연이라고 생각했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제드의 비틀린 말이 없다면 그녀는 그 당시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드가, 저 하인트 공작이 자신을 보고 지시를 내렸기에 그녀는 에스텔이라는 게 밝혀지고 나서도 무사할 수 있었다.

“고마워.”

“어?”

루시펠라는 제드가 안심시키려고 그들 사이에 벌려둔 거리를 단번에 좁혔다. 그러곤 그녀의 이마가 그의 가슴팍에 닿았다. 이마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진심이야, 정말 고마워.”

생전 에스텔은 익숙한 사람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으면 안심하던 버릇이 있었다.

어머니에게도, 친구에게도, 그것은 칼리드에게도 그러했고, 지금 루시펠라가 되어서도 그녀가 잃지 않은 버릇이었다.

머리를 숙인 그녀는 제드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왜냐하면 칼리드는 가끔 그녀가 가슴에 머리를 기댈 때 그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드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버팀목처럼 그렇게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제드의 품에서, 그의 온기를 느끼며 자신이 칼리드를 죽여야 함을, 그에게 처절한 복수를 해야 함을 절감했다.

자신보다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 하지만 그녀는 칼리드를 알지 못했다.

칼리드는 검을 든 에스텔이라는 이의 인생 자체를 부정했다. 이것이 그의 진실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인생을 박탈당했던 거라면, 그녀는 응당 복수해야 함이 옳았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그녀의 눈이 번뜩였다.

***

클로렌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티파티는 초반부터 삐걱이더니 완전히 망해 버렸다.

제드와 루시펠라가 돌아가고 난 뒤 어색한 분위기는 회복되지 않아, 그녀는 파티의 중단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방에서 레인 영애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이야기가 아니라 일방적인 ‘나무람’이었다.

그녀는 레인 영애에게 서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의자를 가지고 장난질한 것까진 봐줄 만했어요. 그러나 내 저택의 하녀를 이용해서 장난을 친 건 어떤 자신감에서였는지 궁금하네요.”

클로렌스의 서늘한 분노에 레인 영애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영애에게 제가 그렇게 시켰던가요?”

클로렌스의 서늘한 물음에 레인 영애가 안절부절못하며 겨우 입을 열었다.

“저는, 그러니까, 가을 연회 때…… 아이딘 백작 영애에게 망신을 줘야 한다는 영애의 말을 기억하고…….”

이래서 지나치면 못하는 법이었다. 그녀를 잘 따르고, 그녀의 수족처럼 행동했던 것은 분명 고마운 일이나 선을 넘었다.

“그때도 제 오라버니에게 들었던 정보를 함부로 이용해 오라버니를 곤경에 처하게 하셨지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하인트 공작은 격노했다.

“그건, 그 백작 영애가 마음대로 말해서잖아요.”

“영애.”

클로렌스가 서늘하게 말했다. 그것은 루시펠라가 받아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또 그녀의 명예에 흠집이 날 게 뻔했으니까.

언제나 차분한 클로렌스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도 드문 일이었다.

레인 영애는 자신의 잘못을 알고 고개를 숙였다. 그저 그녀는 클로렌스 영애가 그 보기 싫은 아이딘 백작 영애를 짓밟아주길 바랐다.

그녀는 레이디들의 수치와도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클로렌스 영애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영애는…….”

“그건 그냥 평범한 티파티였어요, 그저 그뿐이었다고요!”

클로렌스는 소리쳤다. 처음부터 합이 맞지 않았다. 하찮은 수작질에 루시펠라가 몇 번 공격을 당했다.

그때부터 이상하다 생각했더니, 둘째 오라버니가 루이르크 공작을 끌고 오면서 망했다.

“다 망쳐 버렸어.”

그녀가 붉은 입술을 깨물었다. 목을 자라목처럼 움츠리고 있던 레인 영애가 위로하듯 말했다.

“하지만 영애, 영애의 티파티에 무려 루이르크 공작 각하와 하인트 공작 각하, 2황자 전하까지 참석하셨어요. 그렇다면 더 좋은 게 아니었을까요?”

“그게 아니란 말이에요!”

이 티파티의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그 사람들의 유명세나 지위, 참석 여부 따위는 그녀의 목적에 크게 상관이 없던 일이었다.

클로렌스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레인 영애에게 그녀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순 없었다. 이미 자신의 감정조차 자신이 알 수 없는데,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자신이 주최한 파티는 너무도 쉽게 남자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겨 버렸다. 클로렌스는 그것이 너무나 억울해 견딜 수 없었다.

그 주도권, 주도권이 그녀에게 가장 큰 목적이었는데.

“하인트 공작 각하가 그렇게나 아이딘 백작 영애를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 점에는 클로렌스도 동의했다. 그가 해럴드에게 벌을 내린 이유는 그저 약혼자로서의 체면치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인트 공작은 그동안 보여왔던 행동과는 전혀 다르게 루시펠라에게 호의적이었다.

“그 사람은 대체…….”

어떻게 보면 황태자에게 버림받은 아이딘 영애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왜 공작은 그녀에게 그렇게나 친절하단 말인가.

이제 아이딘 영애를 초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인트 공작이 경고 아닌 경고를 하지 않았는가.

레인 영애처럼 그도 클로렌스가 루시펠라를 곤경에 처하게 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굳이 이오지프를 따라서 이곳에 온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아이딘 영애도 대체 왜 그 여자 기사 이야기에 발끈해서는! 뭐, 같은 샛별이라고 동질감이라도 느낀대요?”

“조용히 하세요, 영애!”

레인 영애가 애써 그녀의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지만, 처참히 실패했다.

그렇게 입술을 짓씹던 클로렌스는 문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루시펠라는 이상했다. 루이르크 공작에게 정면으로 반박했다.

클로렌스는 루시펠라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처음이라 그녀가 화를 낸다는 사실에만 집중했지 다른 것엔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클로렌스는 결국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가 문득 느껴지는 기척에 그녀는 방문 쪽을 바라보았다.

누가 있었나? 그녀는 일어나 방문 쪽으로 걸어 손잡이를 돌렸다.

당연히 복도는 아무도 없었다.

‘기분 탓인가?’

다시 문을 닫고 방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나빠진 기분을 애써 추슬렀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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