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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법-32화 (32/173)

#32화 레이디들의 티파티 (1)

2017.06.19.

“글쎄, 그 영애가 수도로 올라온다니까요? 미쳤으면 곱게 영지에나 처박혀 있을 것이지.”

클로렌스는 조용히 손잡이를 들어 올려 찻잔을 바라보았다. 붉은색 찻물 위에는 샛노란 레몬이 동동 띄워져 있었다. 찻잔의 손잡이를 잡은 그녀의 손가락이 하얗고 고왔다.

그녀는 조용히 차를 마셨다. 찻물을 머금은 그녀의 입술이 붉디붉었다.

“영애?”

“듣고 있어요.”

잔잔한 물이 흐르는 것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는 우아하게 찻잔을 내려놓고 눈을 내리깔았다. 풍성한 금빛 속눈썹이 햇살처럼 반짝였다.

이내 그녀, 클로렌스의 유리알 같은 벌꿀색 눈동자가 앞에 있는 여자를 향했다.

여자는 시선을 받고 열심히 떠들어댔다.

“정말 화나지 않아요? 그렇게나 추태를 부리고서 어떻게 이곳에 돌아올 생각을 할 수가 있죠?”

“뜻하는 바가 있어 다시 돌아온 거겠죠.”

클로렌스는 담담하게 말했다.

“무엇을요? 하인트 공작 각하를 옆에 두고 또 황태자 전하께 꼬리라도 치겠다는 뜻이요?”

그 말에 차를 마시고 있던 영애 중 한 명이 말했다.

“황궁 호수, 황궁 발코니, 그다음에는 어디려나? 황궁의 종탑에서 뛰어내리려나요?”

그에 여자들 모두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러나 클로렌스의 얼굴은 아주 작은 움직임조차 없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어떤 영애가 어떤 말을 하는지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여자들은 자신의 선에서 걸러내려고.

“얼굴만 예쁘면 정말 뭐든지 다 되나 봐요.”

“그래 봤자 클로렌스 영애가 더 아름다운걸.”

“맞아요.”

모든 영애가 입을 모아 클로렌스의 아름다움을 찬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자 그녀는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기 계신 분들 역시 아름다운걸요. 과분한 칭찬이에요.”

뻐기는 어투가 아니라 담담한 어투였기에 티파티에 모인 영애들은 모두 미소를 지었다.

“정말 로에르 후작 영애는 겸손하다니까요. 이렇게나 예쁜데.”

“그 루시펠라 아이딘과는 참 달라요.”

앞에 서 있는 붉은 머리칼의 레인 남작 영애가 열띤 시선으로 그녀를 칭찬했다.

“그 사람이 대체 뭐가 예쁘다는 건지 알 수 없다니까요.”

몇몇 영애가 그 말에 찬동했다. 그러곤 루시펠라의 외모에 대해 나이를 먹었다는 둥, 가슴이 너무 커 천박하다는 둥, 피부가 너무 하얘서 유령 같다는 둥의 험담을 했다.

“얀스가르의 샛별이라니, 누가 그런 유치한 별명을 붙인 거죠?”

“맞아요.”

“남자들이란 알 수가 없다니까.”

클로렌스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런 별명을 붙인 사람은 다름 아닌 폐하세요.”

그 말에 영애들의 수다가 뚝 멎었다. 이들의 수다는 본의 아니게 이 나라의 가장 위에 선 황제를 비난한 것이 되었다.

“레인 영애는 앞으로 발언에 주의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영애의 티파티에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면 안 되잖아요?”

그녀가 개최한 티파티에 이런 말이 오갔다는 것을 알면 혹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멍청이들.’

클로렌스는 입을 다문 채 두려움이 가득 찬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레이디들을 향해 차가운 조소를 보냈다.

누군가를 험담하는 것, 공동의 적이 있다면 결속은 강해지며 대화는 꽃을 피우게 마련이다. 레이디들의 티파티에서는 더더욱.

달콤한 디저트와 향긋한 차, 가문이 이름을 내걸고 연 연회와 다르게 티파티는 소규모의 친목을 다지기 위한 격식 없는 작은 파티였다.

그러나 실로 평화로워 보이는 이 사교의 장은 칼날 같은 혀를 움직여 서로를 가늠하거나 결속을 다지는 또 다른 전쟁터였다.

‘얀스가르의 샛별.’

클로렌스는 루시펠라가 처음 사교계에 등장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아직도 선연히 기억했다.

어린 클로렌스는 그날 아버지를 졸라 겨우 황궁을 방문할 수 있었다. 왕비(그 당시에 얀스가르는 왕국이었다) 프리실다가 클로렌스를 귀엽게 여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식 데뷔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드레스를 입고, 연회에 출입할 권리를 얻었다.

당시 황궁은 클로렌스를 비롯한 어린 레이디들의 꿈의 공간이었다. 국왕과 왕자들이 사는, 왕국 최고의 귀하고 아름다운 것들만 모아놓는 장소.

클로렌스는 연회 전날부터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와본 왕궁은 기대 이상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집보다 큰 연회장, 샹들리에의 크기는 또 얼마나 컸던지, 꼭 태양을 가져다 걸어둔 것 같았다. 그 빛 때문에 연회장의 모든 벽은 마치 황금을 물들인 것처럼 빛이 났다.

오색의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들과 사교계에 데뷔한 여인들은 마치 천사같이 웃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 자신이 자리하게 될 이곳을 그동안 눈물 쏙 빠지게 습득했던 우아한 걸음걸이로 거닐었다.

모든 이가 그녀의 기품과 아름다움을 칭찬했다. 앞으로 2년 후 그녀가 열넷이 되면 누구보다 더 아름다워질 거라며, 듣기만 해도 행복한 덕담을 남겼다.

오늘 연회의 주인공은 클로렌스였다.

어머니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자랑스럽다는 듯 미소 지었다.

“오늘은 어느 가문의 여식들이 데뷔하는지 알고 있나요?”

어머니, 로에르 후작부인의 물음에 옆에 있던 귀부인이 말했다.

“레인 남작 가문과 아르핀 백작 가문이 있네요.”

“아르핀 백작 영애야 그리 호들갑스럽게 드레스를 맞췄으니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고, 레인 가문의 여식이 벌써 열네 살인 모양이네요.”

“아, 한 명 더 있잖아요. 아이딘 백작가!”

조용히 있던 다른 가문의 귀부인이 생각났다는 듯 외쳤다.

“아이딘 백작가요? 그 변방의 귀족 가문 말인가요? 한데 수도에서 데뷔를 한다고요?”

로에르 후작부인의 물음에 다른 이들이 대답했다.

“본래는 수도에 발도 못 디딜 형편이었는데 보석 광산을 발견하고 형편이 나아진 모양이더군요.”

“어머, 그래요?”

“돌아가신 1왕비님과 인척 관계라서 정계에 발을 디딜 심산인지 몇 년 전부터 수도에 올라와 있더래요. 남편 말을 들으니 몇 번 연회에도 나왔다던데요?”

“어머, 겨우 돈이 생겼다고 그게 그렇게 쉬울 줄 아나. 참,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다른 귀부인이 그렇게 말하며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어떤 귀부인이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짝 치며 작게 외쳤다.

“아이딘 백작가, 이제 생각났네요! 그 가문 아닌가요?”

“어떤 곳을 말하는 거죠?”

“‘그 여자’가 시집간 가문 말이에요.”

“그 여자?”

“왜, 있잖아요, 그 얼샤에서 온 여자.”

“아, 그 여자!”

여자들 사이에 기묘한 기운이 맴돌았다.

“하인트 공작가를 걷어찬 그 여자가 시집간 가문이 아이딘 백작가였어요?”

“네, 참 별난 여자라니까요. 병으로 죽었다던데 그 와중에 딸은 낳았나 보네요.”

클로렌스는 이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지방의 아이딘 백작가의 영애가 데뷔를 할 거라는 것은 알았다.

그녀는 오늘 데뷔한다는 이들이 너무 궁금했다.

과연 어떤 이들일까?

특히나 방금 말한 아이딘 백작가 역시도 변방의 귀족 가문에서 올라온다면 드레스가 촌스러울지도 몰랐다. 그럼 비웃음을 당할 텐데.

클로렌스는 아이딘 백작 영애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로라, 왕비 전하에게 인사드려야지.”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데. 아쉽지만 그녀는 어머니의 손에 끌려갔다.

왕비는 언제나처럼 따스하게 그녀를 맞아주었다.

자신을 따스하게 지켜보는 왕비를 보니 클로렌스는 아까의 대화 따윈 다 잊고 이 황궁이 얼마나 예쁜지에 대해 재잘거렸다.

“이리 오련. 참 귀엽기도 하지.”

“전하!”

연회장에 내려가 있던 국왕이 다시 상석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국왕의 초록색 눈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마치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같은 표정이었다.

‘왜 사람들은 저분이 무섭다고 하는 걸까.’

클로렌스는 치마를 부여잡고 인사를 올렸다. 국왕이 껄껄 웃었다.

그 무섭다는 국왕 전하도 자신을 예뻐하신다. 클로렌스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국왕의 시선이 향하자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그녀와 국왕을 지켜보았다.

이 나라의 주인이신 전하마저 나를 예뻐해!

클로렌스는 그것이 자랑스러웠다. 어머니 쪽을 바라보자 어머니 역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잘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아이딘 백작과 영애 드십니다.”

원래 국왕과 왕비가 연회장에 생각보다 빨리 나타난 상황이었고, 본격적으로 연회가 시작되지 않아 귀족들은 계속 연회장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많고 많은 알림이었지만 그것이 특별한 주문이라도 되는 듯 사람들의 수다가 멎었다.

클로렌스는 어렸지만 연회장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바뀐 것을 알 수 있었다.

클로렌스에게 향해 있던 국왕의 시선 역시 연회장 입구 쪽으로 옮겨갔다. 그녀 역시도 입구 쪽을 돌아보았다.

클로렌스는 자신이 예쁘다는 자각이 있었다. 모두가 그녀를 아름답다고 칭송했다.

그러나 그때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은, 걸어오는 이에 비할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카락을 수도식으로 틀어 올리지 않고 길게 늘어뜨려 다이아몬드 핀으로 고정했다.

그에 그녀의 새까만 머리카락의 아름다움이 눈에 더 잘 들어왔다.

그녀가 발걸음을 옮기자, 그녀의 머리카락에 알알이 박힌 작은 다이아몬드 머리핀이 다채롭게 반짝였다.

검은 머리카락 안에서 반짝이는 그 모습이, 새카만 밤의 장막 아래 별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아버지, 아이딘 백작의 팔짱을 끼고 어딘지 화가 난 듯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그녀의 얼굴은 아름다웠다.

모든 이의 시선과 관심은 그녀를 향했다. 국왕이 그녀를 불러들였다. 그러곤 루시펠라 아이딘은 국왕에 의해 ‘얀스가르의 샛별’이라고 불리었다.

연회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자신이 아니라, 그 여자.

그날을 떠올리던 클로렌스는 미소를 지으며 싸한 분위기를 수습했다.

“그 말은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니, 따로 바깥에서 말하지 않도록 해요. 모두들 알겠죠?”

그 말에 영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클로렌스는 저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무언가가 생각난 듯 미소를 지었다. 이전 무도회에서 자신을 당당하게 마주해 오던 그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아이딘 백작 영애는 레인 남작 영애에게 제대로 한 방 먹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눈치챈 듯 자신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기사단의 기밀’을 누설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덕분에, 결국 입을 연 자신의 오라버니는 크게 혼이 나야 했다. 그리고…….

클로렌스의 얼굴에 살짝 드리운 미소가 사라졌다.

“아이딘 백작 영애가 수도에 거할 거라면 아무래도 도움이 필요하겠지요?”

“네?”

레인 남작 영애의 눈이 거의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떴다. 클로렌스는 그 모습이 천박하다 생각했다.

“아이딘 백작 영애가 언제까지 혼자 두기엔 너무 가엾잖아요. 명색이 미래의 공작부인이 되실 분인데.”

클로렌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영애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몇몇 영애만이 그녀의 뜻을 알아듣고 미소를 지었다.

“로에르 가의 온실은 겨울에도 어여쁘답니다.”

“그 말씀이라면…….”

클로렌스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초대하도록 해요, 우리의 티파티에.”

***

제드는 자신의 책상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더없이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또다시 검지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치고 있었다.

“그래서 이 돌이 진짜 보석이었다는 거로군.”

책상 위에는 작은 아이의 주먹만 한 붉은 돌이 놓여 있었다.

창문 너머 태양빛을 받은 그 돌은 반짝거렸다. 버나드 역시 그 원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피죤 블러드(Pigeon Blood)라…….”

제드는 입술을 움직이며 이 돌의 이름을 말했다.

피죤 블러드. 비둘기의 피와 같은 짙고 투명한 붉은색을 띤 최상품의 루비를 이르는 말이었다.

이 정도 크기의 피죤 블러드라면 남작령의 절반을 살 수 있을 정도의 가치를 지닐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아이딘 백작의 마물이 나온다는 쌍둥이 산에 나왔다는 것에 있었다.

넘어진 루시펠라를 부축하다가 발견한 돌멩이였다.

산에서 내려와 자세히 보니 그것은 커다란 루비 원석이었고, 버나드에게 은밀히 조사를 시키자 이런 결과가 나왔다.

“그러니까 그 산이 피죤 블러드가 채굴되는 광맥이 자리한 곳이었다 이거지?”

“맞습니다.”

버나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드는 부하들을 은밀히 보내 그 산을 조사해 보도록 했다. 백작이 그 산의 경계를 따로 하지 않았기에 조사는 너무 쉽게 이루어졌다.

그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제드가 발견한 크기보다는 작지만 돌무더기 사이에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피죤 블러드 원석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이전에 채광한 것을 미처 다 숨기지도 못해 산에 돌멩이처럼 나뒹굴 만큼 매장량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한쪽만 보석이 채굴될 리가 없었던 거죠. ‘쌍둥이 산’이라고 불릴 정도로 비슷한 성질을 지닌 두 개의 산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백작이 숨긴 나머지 한쪽 산에는 그동안 생산해 왔던 고만고만한 보석이 아닌 최상품의 보석이 매장되어 있었던 거란 말이지.”

제드는 허, 하고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이 아이딘 백작을 향해 벼락부자다, 졸부다, 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던 것을 제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벼락부자 수준이 아니었다.

그 이드리스 공작가의 위세를 따라잡을 만한 어마어마한 부가 아이딘 백작의 손아귀에 들어 있었다.

“황태자가 이런 어마어마한 자산을 숨겼을 리는 없겠지.”

“당연합니다. 황태자 전하의 습관으로 볼 때 전하는 손아귀 안의 돈을 그대로 쥐고 있는 성격은 아니니까요.”

이드리스 공작가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가주인 프레디 이드리스가 황태자보다는 정치적 감각이 더 뛰어났지만, 이러한 부를 알고도 그대로 넘어갈 사람은 아니었다. 만약 알고 있었다면 작년 렌스터 가문과 영지전을 벌였을 때, 그걸 쓰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즉, 아이딘 백작은 중앙 정계의 발판을 마련해 준 이드리스 공작가와 황태자에게도 이것을 숨겼던 것이 된다.

“자기가 맹수들이라고 착각하는 멍청이들이 시골 쥐에게 신경 쓸 겨를이 있었을까.”

아이딘 백작은 황태자파에 있음에도 존재감이 매우 흐릿한 사람 중 하나였다.

바반드 가문이나 포에르 가문, 그리고 가장 큰 권력을 지닌 이드리스 공작가와는 달랐다.

그에게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그 누가 예상했단 말인가. 그렇게 대놓고 방치한 곳에서.

“백작은 일부러 마물을 잡지 않았던 거야.”

“그런 것 같습니다.”

기사들을 양성하면 당연히 무력이 강해진다. 무력이 강해지면 자연스럽게 쓸 곳이 필요하다.

아이딘 백작가의 기사들이 정상적으로 육성된다면, 가장 먼저 날카롭게 벼린 검을 겨눌 곳은 단 한 군데밖에 없었다.

마물 토벌.

무력이 있으면 마물 토벌을 해야 마땅했다. 굳이 기사들을 키우고 마물을 토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그림이 되어 의심을 산다. 황제의 조사관이 조사에 착수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저 어리숙한 듯, 그런 곳에 쏟을 영리함은 없는 듯, 권력자들에게 이끌리는 모습을 했기에 그 누구도, 심지어 황제마저도 그에 대해 제대로 신경 쓰지 않았다.

제드는 헛웃음을 지었다.

숨기는 게 많은 자신의 약혼녀의 성격은 아버지를 지독히도 많이 닮은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제드의 얼굴이 점점 굳었다. 그는 아이딘 백작도, 자신의 약혼녀에게도 정보가 거의 없었다.

그러고 보면 루시펠라는 이것을 알고 있었나? 아니, 무언가를 숨기는 데 익숙한 사람도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는 어색함이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그 당시 습격을 받았던 루시펠라를 떠올려 보면 그녀는 이 보석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다가 그는 눈썹을 찌푸렸다. 아이딘 백작이 조용한 데 비해 약혼녀, 루시펠라 아이딘은 언제나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얀스가르의 샛별이라고 불릴 정도의 아름다운 외모, 오만한 성격, 황태자와의 가십까지.

아이딘 백작이 딸을 끔찍이도 아껴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털어서 루시펠라에게 쓴다는 것은 사교계에 거의 나가지 않던 제드도 한 번 들어보았던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아이딘 백작가 자체보다는 루시펠라에게 주목하며 그녀에게 손가락질하기에 바빴다.

가문의 힘은 미미하지만 화려한 옷을 입은 성격 나쁜 레이디. 이보다 더 좋은 사교계, 아니, 수도의 가십 거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것이 만약, 가문에게로 향하는 관심을 차단하려는 백작의 연막이었다면?

영지 안 기사들을 등한시하는 백작을 보고 세간에서는 딸에게 모든 정성을 쏟아버렸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이 말하곤 했다.

그러나 이런 애정도, 관심도 모두 저 보석 광산을 숨기기 위한 거짓 연극일 수도 있었다.

루시펠라가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아이딘 백작에 대한 평가는 그저 팔불출에 의지가 약한 남자라는 평면적인 모습으로 남게 된다. 제드도 그렇게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백작에 대해 조사하라고 했었지? 특이한 점은 있었나?”

과한 생각이라 생각하며 묻자 버나드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아이딘 백작부인께서 병으로 목숨을 잃고, 부인을 따라 자결을 시도하신 적이 있었답니다.”

그 말에 제드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멎었다. 그에 방 안에 정적이 일었다.

그 숨 막힐 정도의 침묵 후, 그의 적갈색 두 눈에 서서히 분노의 기색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때 어땠지?”

“어떤 걸 물어보십니까?”

“루시펠라 말이야.”

그는 자신이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가장 처음으로 발견하셨답니다. 당시 열 살이셨다고 하더군요.”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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