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레이디는 드레스에 미소 지었다
2017.06.12.
“실패했다고?!”
쨍그랑!
탁자 위에 있던 꽃병이 벽에 부딪혀 깨져 버렸다.
테미르는 씩씩거리며 호흡을 고르려고 했다.
“루이르크, 그 녀석은 얼마나 멍청하기에 일을 이따위로 만들어, 어!?”
이드리스 공작은 입을 다물었다. 황태자의 분노가 자신을 향하는 것보다 루이르크 공작을 향하는 게 더 나았기 때문이다.
“고, 고정하십시오, 전하. 그게…… 하인트 공작이 갑자기 방문하는 바람에 일이 엉망이 된 모양입니다.”
“개새끼!”
바반드 백작의 말에 황태자는 욕설을 내지르며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려쳤다.
그는 화풀이할 대상을 찾아 헤맸으나 마땅한 대상이 없었다. 요즘 그가 주로 학대의 대상으로 삼던 아랫것들은 황제의 명령으로 하루 최소한으로 방문하고 있었다.
“죽여 버릴 거야!”
그는 이를 아드득 갈며 소리쳤다. 그의 초록색 두 눈에 광기가 넘실거렸다.
“하인트 그 개새끼, 이제 사사건건 날 방해해!”
테미르도 듣는 귀가 있었다. 그가 자신의 행동을 황제에게 몰래 귀띔해, 자신을 금족령으로 묶어두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잘난 척하는 면상에 칼을 꽂아줄 거야!”
모든 이들이 황제는 황태자에게 약하다고 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황제는 그에게 유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테미르에게 만족했던 것은 아니다.
“네가 하인트 공자의 절반만이라도 되었으면 좋았을 거다.”
테미르가 어렸을 때부터 황제는 언제나 그렇게 말하고는 했다.
비실하고 멍청한 아우 이오지프는 황제의 머릿속에 들어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겨우 한 살 어린 그놈과 자신을 황제는 사사건건 비교해 왔다.
제드는 아주 가끔씩 연회에 나타났다.
그러나 자신이 황태자라는 범접 못 할 지위가 있음에도 황제를 포함한 모든 이들은 하인트 공자가 얼마나 뛰어난지에 대해 칭찬했다.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그들이 비교 대상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귀족들의 선망 어린 시선.
자신에게는 무뚝뚝하지만 제드에게는 다정했던 황제.
테미르로서는 제드를 미워하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수도에 간간이 나타날 때마다 모든 이의 주목을 받았던 그놈은 성인이 된 뒤 전쟁터에 나간 이후로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냥 거기서 콱 죽어버리라고 저주를 내렸으나 돌아오는 것은 부고가 아닌 언제나 그가 울리는 승전보였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의 존재감은 언제나 테미르를 짓눌렀다.
테미르는 그가 증오스러웠다.
황제의 신하인 공작이며 황궁의 개인 기사임에도 불구하고 비굴하지 않고 고고한 모습인 그의 목을 잘라 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이딘 백작가의 기사들 역시도 이번엔 매섭게 추적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이딘 백작이라면 걱정 없어! 그 멍청한 놈은 벌벌 길 테니까. 나한테 쩔쩔매는 놈이 알아낸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아?”
테미르가 이를 갈며 말했다. 이드리스 공작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당연히 전하의 말이 옳습니다. 아이딘 백작이라면 이 일을 수면 위로 드러내기보다는 묻겠지요.”
테미르는 그 말에 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이딘 백작, 그 유순한 겁쟁이가 감히 이 일을 드러내지 못할 것을 테미르는 알고 있었다. 알고 있기에 이런 일을 벌였다.
“그래도 전하, 이번에는 하인트 공작 쪽도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습니다. 테로 상단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뭐?”
“아무래도 테로 상단이 떨어져 나갈 것 같습니다.”
“이 무슨 개소리야!”
그는 다시 한 번 고함을 질렀다. 고요한 방 안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년 하나 건드린 놈들을 잡겠다고 하인트 그 녀석이 이렇게까지 행동해?”
테미르는 이를 갈았다. 그래도 태도만이라도 언제나 그와 부딪치지 않았던 하인트 공작이 이렇게까지 나올 정도면 무언가 일이라도 생길 모양이었다.
그놈이 루시펠라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며, 그녀를 위해 움직일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테미르는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누구라도 한 명 잡아서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년! 그년 하나 잡아버리고 싶다는데 대체 왜 이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가!
제더카이어 하인트가 그를 무시한다는 것을 테미르라고 모르지는 않았다. 그래서 언제나 짓누르고 괴롭히려고 했다.
그가 루시펠라의 약혼녀라고 했을 때 얼마나 기뻤던가! 자신이 놀고 버린 여자를 주워가는 공작이라니, 이보다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다시 제드의 약혼녀인 루시펠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제드에게 향하던 증오가 다시 루시펠라에게 향했다.
“이, 더러운 계집!”
자신에게 맹목적이라 조금 귀여워해 줬더니 자신을 배신해? 자신에게 그딴 짓을 저질러?
놀고 버리려 했지만, 제드의 약혼녀가 되었다는 소식에 황태자는 그녀를 불러들였다.
어차피 머리가 비어 있는 계집이라 자신이 하라는 대로 할 것이 뻔하니 그녀의 약혼이 발표되는 그 자리에서 그녀와 질펀하게 놀아나 제드를 조롱할 생각이었다.
루시펠라의 이용 가치란 그런 것이었다.
예쁜 외모, 순진함, 손을 뻗으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아둔함과 맹목적임. 그리고 제드를 조롱할 수단.
그런데 그년도 제드에게 가버린 거다. 가버린 것이 틀림없다!
안 그랬으면 자신이 하자는 대로 무엇이든지 할 멍청한 년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테미르는 가을 연회가 벌어졌을 당시, 자신이 당한 일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특히나 제드가 그것을 알까 봐 더욱 전전긍긍했다.
그것마저도 화가 나는데, 그 일이 있고 나서 제드와 루시펠라가 춤을 추었다는 사실에 그는 치를 떨었다.
그래서 그녀를 수도로 몰래 데려와 그녀가 누구의 것인지 몸소 가르쳐 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마저 실패하다니!
제드는 그를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고, 황태자의 편에 붙어 있던 테로 상단은 관련된 일로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단 말인가!
황태자는 분노에 다시 고함을 질렀다. 그 모습을 황태자파의 귀족들은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
“루시!”
마차에 내리자마자 백작이 루시펠라에게 뛰어 들어왔다. 루시펠라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백작에게 안겼다.
제드는 루시펠라의 표정을 보며 의아했다. 오랜만에 아버지를 보는데 왜 어색한 표정을 짓는단 말인가.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백작이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며 거의 울 것처럼 말하자, 루시펠라의 손이 어색하게 허공에 머무르다가 그의 등에 얹어졌다.
모두 이 따스한 상봉을 눈물 어린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제드 역시도 자신이 느꼈던 게 기우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분위기가 어색했기에 그의 시선은 슬쩍 한쪽에 서 있는 칼리드를 향했다.
오랜만에 보는 면상이었다. 칼리드는 대부분 방에 틀어박혀 있었고, 제드 역시 차마 남의 영지 내에서 싸움을 벌일 수는 없어 그와의 만남을 피하려 했기에 이들은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듣자 하니 루시펠라 역시 첫 만남 이외에는 그를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성의 주인이 찾아왔을 때는 이 유쾌하지 않은 만남을 피할 수 없었다.
다행인 것은 그와 마주했을 때도 칼리드는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었기에 거슬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인트 공, 고맙소.”
백작의 말에 그는 칼리드에게 향한 시선을 거두었다. 백작이 허리를 숙이려 하자 제드가 나서서 그의 어깨를 잡아 만류했다.
“마침 방문했을 뿐입니다. 감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 고맙소.”
그는 손을 잡고 제드의 어깨를 두드렸다. 백작의 시선이 칼리드에게로 향했다.
“루이르크 공.”
“오랜만입니다, 아이딘 백.”
제드는 살짝 불쾌해졌다. 자신에게는 조금 딱딱하다시피 하던 백작의 얼굴이 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쪽은 오히려 딸의 약혼자다. 그런데 왜 저놈에게 더 친절한 것인가.
“이야기는 들었소. 루시를 구하려다가 상처를 입었다지?”
“뭐,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런, 의원은 다녀간 거요?”
“네, 아이딘 영애가 극진히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칼리드는 루시펠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루시펠라 역시 동의를 구하는 칼리드의 눈을 보며 불편한 시선으로 그의 얼굴을 피했다.
누가 지금 누구의 이름을 들먹여?
제드는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칼리드를 노려보았다.
“루시를 구하려다 몸을 다치기까지 하지 않았소? 경이 루시를 먼저 발견해 주지 않았다면 딸아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지. 이 고마움은 어떻게 표현해도 부족할 것이오.”
제드는 심기가 더욱 불편해졌다. 칼리드 저놈은 루시펠라를 해치려 한 황태자 놈의 심복인데, 오히려 더 극진한 감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루시펠라를 발견했던 이유도 그놈들과 한패였기 때문일 텐데 말이다.
“오신 김에 편히 쉬다 가시오.”
심지어 백작은 제드에게는 그런 말은 하지도 않았다. 제드는 억울해졌다.
그는 루시펠라에게 눈짓했다. 유치하긴 했지만 제드가 얼마나 결정적인 시점에 그녀를 구했는지 말을 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루시펠라는 얼굴을 살짝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눈짓 한 번도 안 준 것으로 보아 아직도 화가 안 풀린 모양이었다.
그때 칼리드와 대화를 끝마친 백작이 루시펠라에게 다가가 그녀를 다정한 시선으로 살펴보았다. 한눈에 봐도 애정 어린 시선이었다.
딸이라면 깜빡 죽는 팔불출 같은 인간. 유약한 성격을 가진 황태자파의 귀족.
세간에서는 백작을 그렇게 말하고는 했다.
제드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과연 백작은 어떤 인간일까. 제드는 자신이 이곳에서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루시펠라는 턱을 괸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칼리드가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더군다나 칼리드가 수도로 떠난다고 하자 제드 역시 같이 돌아가겠노라고 했다.
제드는 아마 칼리드가 허튼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감시할 계획인 듯했다.
칼리드가 간다. 이곳에서 떠난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를 떠나보낸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만약 그와 재회를 하게 된다면 적어도 더 극적인 상황일 거라 생각했다. 이상한 상황에 서로 목숨을 의지하게 되는 그런 상황이 와버렸기에 루시펠라는 그를 어떻게 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지, 라며 그녀는 계속해서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아직 그녀는 칼리드를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에게 복수해야 한단 말인가.
얀스가르에서 이 여자의 몸으로 그에게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드를 이용하는 그런 방법밖에 없었다.
검을 잃어버린 에스텔이 대체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지, 그녀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런 멍청한 짓은 제드에게 입을 맞췄던 행동으로 끝내야만 했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아무렇게나 앉아 있던 그녀는 치마를 정돈하며 들어오라고 말했다. 로이자였다.
“아가씨!”
로이자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왜? 무슨 일인데?”
또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아니면 적이 습격이라도?
루시펠라의 몸이 긴장으로 굳었다. 하녀들이 뒤를 이어 들어왔다. 하나같이 다 로이자의 표정과 비슷했다.
“아가씨, 어서 나와 보세요.”
그녀들이 루시펠라를 에워싸고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이상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루시펠라는 정말로 적이 쳐들어온 건가 생각하며 몸을 긴장으로 뻣뻣이 했다.
“무슨 일인데.”
“보시면 알아요.”
루시펠라는 얼굴을 살풋 찡그렸다.
그들이 이끄는 곳은 이전에도 가봤던 장소였다. 바로 드레스룸.
여기에 무엇이 있나? 루시펠라가 그 문 앞에 서서 하녀들을 보자 하녀들이 굳은 표정을 풀고 웃음을 터뜨렸다.
“뭔데?”
“보면 아신다니까요.”
하녀들이 드레스룸의 문을 열자 루시펠라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
“어?”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다 팔아 치웠…… 아니, 처분했는데?”
텅 비어야 할 게 분명한 드레스룸이 가득 차 있었다.
“아버님이 또 옷을 사주신 모양이네.”
루시펠라의 중얼거림에 로이자가 웃었다.
“아니에요.”
“그럼 누가 사준 건데?”
그녀의 물음에 로이자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공작 각하께서요.”
“뭐?”
루시펠라의 얼굴이 와그작 구겨졌다.
대체 왜? 묘하게 기분이 더러웠다.
왜 그가 자신에게 ‘드레스’를 선물해 준단 말인가. 꼭 모욕을 당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분노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걸어가서 옷에 걸려 있는 드레스를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보드라운 옷감의 감촉이 손에 느껴졌다.
“단시간에 어떻게 이런 옷을 가져오지? 재주도 좋네.”
언제부터 준비했는지는 모르지만, 단기간에 이런 많은 옷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어마어마한 돈이 들었다는 소리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이것들은 새삼 절망적이던 그녀의 현실을 자각시켜 주었다. 제복보다는 드레스를 입어야 하는 그녀의 현실 말이다.
“마음에 별로 안 드나 보지?”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그녀가 재빨리 몸을 돌렸다.
언제 온 건지 제드가 그녀의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을 따라왔던 하녀들은 이미 드레스룸에서 나간 뒤였다.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야?”
드레스 때문에 굳이 자각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자각했기에 루시펠라의 목소리는 매우 차가웠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것 같군.”
“화?”
화라면 지금 또 나는 것 같은데. 루시펠라의 말에 제드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그는 무언가 망설이는 듯하는 표정이었다.
루시펠라는 애써 진정하려 했다. 제드는 에스텔이 아닌 루시펠라를 대하는 것이다. 검술을 가르쳐 준다는 것도, 드레스를 선물해 준 것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
“영애가 기사단에 그렇게 애정을 품고 있는 줄 미처 알지 못했어.”
“뭐?”
기사단? 시토라 기사단을 말하는 건가?
너무나 의외의 말을 들었기에 루시펠라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순간 파악하지 못했다.
“드레스를 포기하고 지원해 줄 정도니 말이야.”
“어?”
갑자기 드레스 얘기가 여기서는 왜 나와? 루시펠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사단과 드레스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그러다가 그녀는 자신의 시토라 기사단이 아닌 이곳 아이딘 백작가의 기사들을 말하는 것임을 알았다.
“기사단의 수준에 대해 내가 함부로 논했던 것은 확실히 기분 좋은 행동은 아니었어. 다른 가문의 기사들이며, 영애의 기사들 수준을 대놓고 평가하다니, 내가 무례했더군.”
지금 이 사람이 대체 왜 이렇게 정상적인 말을 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 정상적인 말을 왜 지금 이때 하는 걸까?
“그걸 지금 왜?”
제드가 그에 의아해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내가 아이딘 백작가의 기사들의 수준에 대해 말해서 영애가 화가 난 게 아니었나?”
“아닌데.”
루시펠라의 대답에 둘 사이에 침묵이 일었다.
루시펠라는 어이가 없어서 드레스를 훑어보다 확인차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게 사과의 의미로 준 거란 말이야?”
제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럼 대체 내게 왜 짜증을 낸 거지?”
“그거야…….”
검을 알려주겠다고 말했던 게 자존심이 상했으니까.
그러나 그것을 대답할 수 없었던 루시펠라는 생각을 고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제드는 그녀의 제멋대로의 감정 기복에 대해 무어라고 말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벽에 기대 웃음을 터뜨리는 그 모습이 보기 싫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어딘지 모르게 화가 나 있고, 요사이에는 고민에 빠진 듯 복잡해 보였던 표정이 환하게 펴지자, 너무도 아름다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제드는 또다시 기묘함을 느꼈다. 그 얼굴이 마치 빛이 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웃느라 가늘게 접힌 그녀의 은청색 눈이 그를 향했다.
또다시 ‘감동’을 느껴서 그런 것인가. 머리에 꼭 피가 몰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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