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법-6화 (6/173)

#6화 복수의 별

2017.03.20.

“옷이 잘 어울리는데?”

칼리드가 미소를 지으며 거울을 보는 에스텔을 보았다. 그의 얼굴은 여신이 정성스레 빚어놓은 예술품처럼 섬세하며 아름다웠다.

칼리드는 소파 위에 풀어진 자세로 반쯤 눕듯이 앉아 있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는 단검의 검집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얼굴은 에스텔을 향해 있었다.

미의 정점을 달리는 칼리드의 외모에 비해 에스텔의 외모는 평범했다.

화장을 하고 꾸민다면 좋게 봐준다면 예쁘장하다는 수준에 머물 수 있겠으나, 에스텔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현재 에스텔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의 앞에 있는 기다란 거울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옷에 짜증이 난 상태였다.

그때, 그녀의 눈이 거울 너머 칼리드의 눈과 마주했다.

그 시선이 어쩐지 기분 나빠 그녀는 얼굴을 확 구기며 자신이 방금까지 입었던 셔츠를 칼리드의 얼굴에 홱 던져 버렸다.

칼리드는 능숙하게 옷을 잡아챈 뒤 그것을 곱게 개어두었다.

“한 번만 더 그따위로 쳐다보면 다음엔 단검이 날아갈 줄 알아.”

“아, 미안, 미안.”

에스텔의 서늘한 경고에 칼리드가 항복의 의미로 두 손을 들어 장난스럽게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에스텔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것이 여전히 불쾌했으나 으레 남자들이 그러는 더러운 느낌은 들지 않았기에 에스텔은 그냥 경고에 만족하며 고개를 돌려 다시 자신 앞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제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짙은 남색과 흰색이 섞여 있는 제복, 왼쪽 가슴에는 얼샤의 상징인 별의 여신 아스트라가 낳은 오망성, 쌍둥이 별 중 하나인 하조하르(Ha―zohar)가 금실로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그 튀어나온 부분을 쓰다듬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기사다. 기사가 되었다.

드디어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검술로, 나라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명예도 꿈꿀 수 있었다.

뒷골목 출신이던 그녀가 이곳에서 기사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죽은 할아범도 기뻐할 것이다. 어머니도 기뻐할 것이다.

에스텔은 부스스한 자신의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정리했다.

후, 하고 숨을 내쉬던 그녀는 가슴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에 얼굴을 찌푸리며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신체의 한 부분 때문에 제복의 상의는 짧아 허리가 살짝 드러나 보였다.

그녀가 가장 원하던 꿈이 이뤄졌다고 해서 지금 그녀가 느끼는 불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짜증의 원인은 그녀가 그렇게도 동경했던 기사의 제복에 있었다.

“답답해.”

“뭐가?”

“가슴이.”

그 말에 칼리드가 풉, 하고 비웃음 소리를 냈다.

결국 에스텔이 거울 앞 탁자 위에 단검의 검집을 빼자 칼리드가 또다시 항복이라는 듯 두 손을 올렸다.

“여자가 기사가 된 전례가 없었으니, 재단사들도 그냥 치수만 맞는 걸 가져온 모양이네.”

“아, 그래. 뭐, 평민에다가 여자가 기사라니 어지간히 못마땅하겠지. 귀족들처럼 맞춤옷을 달라고 할 수도 없고.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녀가 머리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가 일어나서 에스텔의 등 뒤로 다가왔다.

그의 시선이 거울 너머 그녀가 답답하다고 하는 어떠한 부분에 머물렀다.

에스텔은 그 시선을 알면서도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보일까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투덜거렸다.

“치수를 더 큰 걸 달라고 하면 될 것 같지? 지금은 너무 답답해.”

제법 가슴의 굴곡이 없는 편이 아니라 옷이 팽팽하게 늘어져 허리가 짧아 보였다. 에스텔의 말에 동의하는지 칼리드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생각해 보니 굉장히 야하게 들리는데. 가슴이 커서 한 치수 큰 걸 입겠다니. 남자들이 들으면 환호할 일이야.”

“이 새끼가.”

그녀의 손이 다시 탁상 위의 단검으로 가자 칼리드가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내 말은, 그런 소리는 함부로 하고 다니지 말라는 말이었어.”

가끔가다 그의 발언은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는 했다. 뒷발차기로 급소라도 차줘야 정신을 차리려나. 하지만 그걸 그대로 맞아줄 위인은 아니었던지라 그녀는 인내해야 했다.

“한 치수 큰 걸 입으면 팔이 길어서 어린애가 입은 것처럼 보일 것 같은데. 어깨 역시도 이것보다 더 늘어나 볼품없어서 어느 쪽이나 국왕 전하 앞에서 추태겠군.”

칼리드의 조언에 에스텔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다시 벗고 가슴을 동여매는 수밖에 없겠어.”

“그래, 그렇게 해. 네가 답답하겠지만.”

칼리드가 속삭였다. 그는 웃으며 그녀의 짧은 잿빛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야. 그만 좀 만지라고 했잖아.”

“실례. 그냥 예쁜 색깔이라 만져 보고 싶었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게 칼리드의 버릇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에스텔은 한숨을 쉬며 ‘만질 테면 만져라. 나는 나만의 길을 가련다. 언제는 내 허락 맡고 만졌냐?’ 투덜거리며 제복 단추를 끌러 내렸다.

어깨에 어정쩡하게 걸친 상의를 완전히 벗어 내리는 순간 칼리드가 다시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리 내 앞에서라지만 좀 너무하지 않아. 일단 나도 남자인데.”

“뭐라는 거야. 여자 가슴 처음 봤냐?”

에스텔이 귀찮다는 듯 머리를 흔들어 그녀의 머리카락 위에 있던 칼리드의 손을 떼어냈다.

아쉬움 때문일까. 칼리드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꼼지락거리다가 내려갔다. 그는 무언가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입술을 움직였다.

“에스텔.”

“어, 말해.”

“내 앞에서는 괜찮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는 부탁이니 조심해 줬으면 해.”

“그래, 그럴게.”

귀찮은 일이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에스텔은 고개를 끄덕였다.

칼리드가 무슨 말을 한다면 적어도 그녀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었기에 그녀는 대체로 그의 말을 따랐다.

에스텔은 거울 너머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칼리드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고,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이리저리 눈을 굴리고 있었다.

그러다 거울 속에서 눈이 마주쳤다. 에스텔은 칼리드의 보라색 눈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따스한 시선이 오갔다.

그 두 눈이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 모른다.

에스텔이 보기에 그것은 밤처럼 깊었고, 숲처럼 고요했으며, 그것보다 더 깊은 곳에는 기묘한 반짝임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다. 이것은 칼리드가 지었던 평소의 표정이었지만, 절대로, 절대로 그녀에게 다신 지어줄 수 없는 표정이었다.

순간 에스텔은 깨달았다. 이것은 이미 벌어졌던 일이다. 그녀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일이었다. 칼리드는 언제나 저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에스텔은 딱히 그 묘한 얼굴에 관심 따위 가지지 않았다. 이유는, 당연히 관심이 없었으니까. 칼리드는 그저 그녀의 좋은 친구였다.

그러나 지금, 이 과거의 추억 속에 떨어진 에스텔은 묻고 싶었다.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 이 과거 속의 그에게.

“칼리드.”

“응?”

“이거 꿈이지.”

“…….”

칼리드는 아무 말도 없었다. 아까까지 그들 사이에 자리했던 미소는 사라졌다.

“날 왜 죽였어?”

그 물음을 들은 칼리드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진다. 삐뚜름한 미소가 보이며 수줍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쩌적, 쩌적.

그녀의 앞에 있던 거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칼리드의 얼굴 부분이 조각나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등 뒤를 돌아봤을 때 칼리드는 사라져 있었다.

“칼!”

루시펠라는 겨우 눈을 떴다. 시야가 자리한 곳에는 생각보다 낮은 천장이 보였다.

그녀가 몸을 틀려고 했으나, 자신이 지금 굉장히 좁은 곳에 눕혀져 있다는 것을 알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이곳이 어디 있는지 짐작했기 때문이다.

타닥타닥, 규칙적인 말발굽 소리와 함께 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지금 마차 안에 있었고, 누워 있는 곳은 마차의 의자 위였다.

“다른 남자 이름을 부르며 깨어나는 꼴을 보니 꿈을 꿀 정신도 있나 보군.”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그녀의 시선이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했다. 맞은편에 있는 것은 팔짱을 낀 채 앉아 있는 제더카이어 하인트, 하인트 공작이었다.

그 오만한 얼굴을 보니 루시펠라의 멍했던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왜 여기 있더라? 아, 그래. 리엄을 쫓으려 했다. 리엄을 쫓으려다가 재수 없게 연쇄살인마에게 붙잡혔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고 나자 저 남자가 이곳에 왔다.

그녀는 입을 열고 무슨 말을 하려 했으나 콜록, 기침밖에 안 나왔다. 아무래도 목이 졸려서 그런 모양이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고통스럽게 기침을 했다. 하인트 공작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얼굴을 찡그리며 하나마나한 충고를 했다.

“목을 세게 졸린 건 알고 있겠지? 지금은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깔끔히 무시한 채로 목소리를 가다듬어 물었다.

“리엄 히르카는 잡힌 건가?”

대놓고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루시펠라를 보고 기분이 더러웠는지 하인트 공작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대답을 재촉할 셈으로 하인트 공작을 보니 그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곤 빈정거렸다.

“그렇게 리엄 히르카가 무서웠으면 이런 대형 사고는 치지 않으면 되지 않았나?”

루시펠라는 이 남자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생각했다.

갑자기 실신하다 일어나서 그런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리엄 히르카를 무서워한다고? 내가? 하인트 공작이 말을 이었다.

“영애를 습격한 그놈은 리엄 히르카가 아니야.”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리엄 하르카는 살인범이 아니었고, 영애를 습격한 그놈이 진짜 살인범이었지.”

당연한 거 아닌가? 무슨 뻔한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아! 루시펠라는 이 대화의 어디가 어긋난 건지를 깨달았다.

저놈은 자신이 그 찌질한 놈을 리엄이라 여긴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루시펠라 아이딘이 리엄을 절대 봤을 리가 없을 테니까.

나는 그 찌질이가 아니라 진짜 리엄 히르카를 물어봤는데, 라고 잘난 척하는 면상에 물어보고 싶었지만 루시펠라는 참았다. 괜히 수상한 말을 해서 의심을 살 필요는 없었다.

“그럼 진짜 리엄 히르카는 붙잡혔나?”

“아니, 제보가 잘못된 것이었다. 그냥 닮은 사람이었어.”

“…….”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제보가 거짓이라 붙잡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 한숨의 의미를 오해한 것일까, 하인트 공작이 말했다.

“뭐, 이제 영애가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어. 살인범은 붙잡혔고 리엄 히르카는 애초에 수도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가 말했던 것 중 가장 온기가 있는 다정한 말이었다.

세상에, 다른 것도 아닌 제더카이어 하인트에게 저런 말을 듣다니!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 인생이 놀랍다며 순수하게 감탄할 시간은 없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당연히도 하인트 공작은 그녀가 낑낑대며 몸을 일으키는 것 따윈 도와주지 않았다.

사실 그녀 역시 도움은 바라지 않았으니 큰 불만은 없었다.

긴 머리가 흐트러지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루시펠라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미 하늘은 어두워져 달과 별이 떠 있었다. 발광석을 넣은 가로등이 지나가며, 도시의 모습이 어슴푸레 비쳤다. 이곳 수도는 참 넓기도 넓었다.

“영애를 찾으려고 기사 몇이 동원되었는지 알고는 있나? 다음부턴 이런 생각 없는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나 역시 그대 뒤처리를 하려고 존재하는 건 아니라서 말이야.”

“…….”

“앞으로도 계속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그대의 아버지에게 말해 바깥을 돌아다니는 걸 제한하도록 할 거야.”

루시펠라는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순한 수긍에 오히려 제드가 놀랐다. 제드는 갑자기 온순하게 나오는 저 여자가 미심쩍었다.

“명심하도록 하지. 그쪽을 포함한 다수의 사람이 고생한 건 사실일 테니까 말이야. 지나치게 내 입장에 대해 자각이 없었어.”

“…….”

제드는 루시펠라의 순순한 반성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사실 자신이 그 현장에 있었던 것은 쥐새끼를 쫓아다니느라 그런 것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루시펠라를 찾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이 오해를 바로잡아야 하나, 순간 고민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말에 따라 그 감정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앞으로 그쪽이 내 뒤처리를 하지 않아도 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거니까.”

“뭐?”

“아…… 버지께도 말씀 드려서, 다시는 당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이 없도록 할게. 지나치게 실례가 많았어.”

다시는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딱 잘라내려는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니었건만 루시펠라는 단호했다.

제드는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 얼굴에 서린 것은 칼같이 잘라내는 단호함이었다.

그녀는 마치 자신과 이렇게 얽혔다는 것을 기분 나빠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무언가 영애에게 잘못한 거라도 있나?”

그녀는 서늘했다. 제드는 대체 자신이 저 여자에게 잘못한 게 있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봐도 없었다.

그 시선을 눈치챈 것일까. 루시펠라가 말했다.

“적어도 약혼을 중요시 여겼다면 아픈 날 이렇게 그쪽 반대편 좌석으로 내던지지는 않았겠지. 양심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건…….”

제드는 그녀를 안자마자 짜증스럽게 그녀를 마차에 내려두었다.

보통 약혼한 사이라면, 아니, 그저 아무 관계가 아니더라도 무릎에 뉘이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굴러가는 마차의 의자 위에서 떨어지지 않게 보호 정도는 해주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자 제드는 망설임 없이 건너 의자에 내려두고, 언제 깨어나나 그 얼굴을 관찰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건 좀 심한 것 같긴 했다.

양심을 지적하니 양심이라는 게 좀 찔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루시펠라는 입으로 기껏 올라오는 죄책감을 지워 버리는 능력이 있었다.

“뭐, 그쪽의 더러운 인간성에 어떠한 기대도 안 했으니 이 부분에 대해 반성은 안 해도 돼. 약혼이 많이 불만인 모양인데, 약혼했다고 해서 내 두 다리가 어딜 가려는지까지 제한하려 들면 곤란해, 하인트 공작.”

가로등 불빛이 그녀의 두 눈에 담겼다. 그 나직한 경고의 말이 너무나 가소로우며 불쾌했다. 그랬기에 제드는 대답 대신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루시펠라 아이딘은 참 이상한 여자였다. 제드는 저 여자의 돌발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황궁에서 마주한 루시펠라는 이런 타입의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틀에 박힌 것 같은 얼굴만 예뻤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녀는 그렇게나 내숭을 잘 떨었던 건가.

그때, 창문을 바라보던 루시펠라가 어느 한 지점을 보더니 그곳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다 그녀는 이내 얼굴을 떼고 고개를 흔들었다. 마치 그럴 리가 없다는 것처럼.

“뭐, 아는 사람이라도 있나?”

생각을 벗어난 그녀의 행동 때문일까. 제드는 문득 저 사람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리하여 제드는 드물게 자신 쪽에서 먼저 입을 열고야 말았다.

하지만 루시펠라는 그 질문을 무시했다. 그에 제드가 무슨 말을 하려 했으나, 이내 입을 다물었다.

새파란 불빛이 비쳐 오는 마차 안, 푸르스름한 빛이 드리워진 그녀의 얼굴에 묘한 서글픔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제드는 이 여자에게 호기심이 생긴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리 좋은 의미는 아니었지만 제드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림?”

여자의 목소리에 두건을 쓴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거리를 느릿한 속도로 지나가는 사륜마차에 고정되어 있었다.

“뭐야, 왜 그러는데?”

두건을 쓴 남자가 그 마차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자 자연스럽게 남자 일행 중 한 명의 시선이 그 마차로 향했다.

“화려한 마차군.”

“그러네, 아주 화려하네. 굉장한 귀족 나으리가 타셨나 보군.”

마차의 크기와 디자인이 가문의 위엄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저것은 중앙 귀족 중에서도 고위 귀족의 소유일 것이다.

마차를 끄는 말들은 어두운 시야에서도 윤기가 번들거릴 정도로 최상급이었으며, 화려하게 세공되어 번쩍이고 있었다.

“부숴 버릴까?”

“미친놈. 저기 타고 있었던 건 여자다.”

다른 일행의 호기 섞인 말에 두건을 쓴 남자가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오, 역시 여자에는 약한 모양이군. 여성만 죽인다는 연쇄살인마 씨.”

킥킥거리며 던지는 농담에, 남자, 리엄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만 더 그렇게 부르면 목을 부러뜨려 버린다.”

그 말에 다른 남자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리엄은 고개를 돌렸다.

“재수 없게 그린힐에 올라오던 때가 미친놈이 활개를 치고 다닐 때라니. 참, 기분 더럽군.”

하필 리엄이 수도에 있던 때 살인사건이 발생함으로써 리엄은 그 죄를 모두 뒤집어쓰게 되었다.

최악으로 얼굴을 목격당했기에 수도 곳곳에 그의 초상화가 나붙었다. 모두 그를 잡으려고 혈안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수도에 올라오자마자 이곳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기회는 또 있어.”

“그래, 또 있겠지.”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수하게 많이 새겨진 별 중에서, 복수의 별, 아레스(Ares)는 피를 먹은 듯 붉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샛별, 이슈타르를 앗아가 버린 이를 용서하지 않았다.

남자가 이를 으득 갈며 말했다.

“칼리드, 그 새끼가 살아 있는 한.”

복수의 별은 남자의 두 눈에도 담겨 번뜩이고 있었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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