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레이디가 살인마에게서 빠져나오는 법
2017.03.16.
마부, 아니, 칼잡이는 희생자를 태운 마차를 타고 콧노래를 부르며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그가 가장 애용하는 장소는 도시 가운데에 위치한 나무와 더불어 강이 있는 이곳이었다.
이곳은 말에게 먹일 물과 마차를 세척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마부들만이 아는 장소였고, 도시 가운데 가장 외진 곳이었다.
마부들이 말에게 먹일 물, 그리고 마차를 세척하는 장소. 그리고 지금 이 시각에는 마차들이 모두 손님을 태우느라 혈안이 되어 있기에 사람들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처음에 그냥 사람을 죽였을 때는 품삯을 주지 않는다고 실랑이하다가 실수로 죽였다.
밤은 어두웠고, 사람들은 한 명도 없이 조용했다. 그는 아주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는 자신의 마차에 천박한 화장을 뿌리며 앉아 있는 여자들이 증오스러웠다.
겨우 얼굴만 반반하게 꾸미면,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짜증 나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은 매일매일 아침마다 말을 타고 가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돈을 번다.
그러나 언제나 만나는 여자들은 자신이 귀부인이라도 되는 줄 알며, 그에게 이것저것 명령했다.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뺨을 때린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분노는 쌓여갔다.
여자 주제에, 여자 따위가. 겨우 얼굴만 반반하면 자신과 달리 편하게 사는 주제에……!
그는 여자를 한 번도 사귀어보지 못했다.
작은 키, 빼빼 마른 몸. 아버지에게 마차를 세 대나 물려받았음에도 여자들은 그를 싫어했다.
그는 여자에게 말 붙이는 법도 몰랐고, 말을 붙여봤자 여자들이 싫어할 만한 행동을 하고는 했다.
로맨틱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며 만난 지 하루 된 여자의 집으로 가 꽃, 그것도 가장 싼 꽃을 주거나, 보통 자신만 마음에 들어 하는 음식점, 남자들이나 찾는 펍을 갔다.
음담패설을 지껄이는 남자들 사이에서 여자는 불안하게 눈을 굴리다가 그와 만남을 거부했다.
또 다른 여자는 조금 호응해 주나 싶더니 마차를 다섯 대나 가진 다른 마부 놈에게 냉큼 안겨 버렸다.
왜 여자는 성격이 아니라 속되게도 부유함만을 보는 것일까.
그는 여자들이 증오스러웠다.
첫 살인 때 그는 덜덜 떨었지만 한편으로는 쾌감을 느꼈다. 이렇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니!
피가 흐르는 목을 부여잡은 여자는 그를 바라보며 숨을 거뒀다.
두려움에 찬 눈. 그는 자신이 무엇이라도 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건 심판이다. 정당한 심판이다! 그는 자신이 비로소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았다.
그 후로 그것은 그의 일상이 되었다.
처음에는 발각될까 두려웠다. 하지만 그는 그 충동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두 번째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내려 무방비한 여자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러곤 마차가 붐빌 시간에 마차를 타고 와 그 여자가 타려고 한 지역 근처에 시체를 내려두었다.
시체를 내려둔 마차는 마차의 행렬에 섞여 사라질 수 있었다.
물론 시체를 마차 한가운데에 놓아두지는 않았다.
사설 마차의 의자는 안이 비어 있어 창고를 겸하고 있었고, 뚜껑을 열고 닫을 수 있어 체구가 작은 여자의 시체를 처넣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길거리에 마차를 세우고 쉬는 마부는 너무나 흔한 풍경이었으므로 어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의심하기엔 그들의 일상이 너무나 바빴다.
그가 인적이 없는 때를 기다려도, 사람들은 마부가 손님을 기다리거나 마차를 수리하는 거라 생각했다.
자신의 왜소한 체격과 작은 키는 더욱더 방심을 키웠다.
심지어 수비대는 그냥 그를 그대로 보내준 적도 있었다. 그 안이 시체의 피로 더럽혀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
멍청한 놈들은 자신이 그저 과시하기 위해서 그런 줄 알고 있었다. 모든 이들이 멍청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물론 과시도 있었다. 그렇지만 피로 글자를 쓴 것도 혹시나 누군가 알아채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번화가 옆에서 시체를 내려놓았던 이유는 그곳이 가장 숨어들기 쉬운 곳이기 때문이었다.
아아, 그 잘난 수비대 녀석들에 이어 황성수호대마저 애꿎은 가이드들을 조사한다는 말을 듣고 어찌나 웃었던지. 이것은 그의 인생에 찾아온 최고의 희열이었다.
그는 점점 더 그 자극을 참지 못했다. 참지 못했기에 계속, 계속 희생자들을 찾아다녔다.
비록 밤 내내 마차를 번갈아 씻어야 했지만, 그는 더 이상 피곤하지 않았다.
언제나 흐리멍덩한 자아는 강해지고 무기력했던 정신은 맑아졌다. 그가 삶의 목표를 찾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칼잡이를 두려워했다. 신문에도 칼잡이에 대한 일들이 실렸다.
그는 마물이라거나 악마라는 소문도 돌았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무시하는 마부가 황제조차도 엿을 먹이는 공포의 화신이 된 것이다.
황실기사단이 수사에 착수했다고 했을 때, 그는 불안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자신감은 더욱 머리끝까지 상승했다,
결국 황실기사단이 제대로 헛다리를 짚은 것을 알고 그는 배를 잡고 미친 듯이 낄낄댔다.
불쌍한 얼샤 놈 같으니라고! 마침 수도에 있다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다니!
귀족 나으리들도 멍청한 건 매한가지였다.
아아, 이렇게나 삶이 즐거운 거라니. 만약 그가 지금 타고 있는 여자를 살해해 광장 근처에 두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칼잡이는 광장 근처 인적이 가장 드문 시간대를 생각해 봤다.
좋아,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모든 병력은 그곳으로 집중될 테니 오히려 중앙 광장의 수비는 약할 것이다.
말을 몰던 칼잡이는 뒤를 돌아 오늘의 희생자를 보며 히죽 웃었다.
어딘지 멍청하게 서 있던 여자였다. 어디를 가냐 물으니 리엄 히르카가 있다는 서북으로 가자고 했다.
리엄 히르카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달려가는 대단하시다는 하인트 공작의 모습을 그 역시도 보고 싶었지만 목숨은 소중했다.
마부들이 정신이 나가지 않는 이상 그녀를 데려가지 않을 텐데 그녀는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마차를 구하려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얼굴도 예뻤다.
칼잡이는 입맛을 다셨다. 저 얼굴이 공포에 질리게 된다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 얼마나 짜릿할까.
그녀는 아까부터 마차를 세워달라는 듯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는 무시했다. 마차를 모는 순간부터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없었다.
분명 반반한 얼굴로 어떤 잘난 남자의 애첩 노릇이나 할 못된 계집이었다. 정당한 심판을 치르게 해주마.
이윽고 칼잡이는 칼을 들고 마차 문을 열었다. 인적이 한 명도 없다는 걸 그는 확인했다.
“손님, 다 왔습니다.”
여자는 조용히 마부를 보며 싱긋 미소 지었다.
다시 봐도 예쁜 여자였다. 체구도 작으며 선량해 보이는 얼굴. 얼굴은 새하얬고 눈은 커다랬다. 이렇게 예쁜 얼굴은 그가 말을 몰면서 처음 보았다.
그는 그녀가 마차에 내리기를 기다렸다. 마차에서 내리려 문 쪽으로 다가갈 때 뒤에서 공격하는 방식을 그는 선택했다. 그러나 그녀는 마차에 내리지 않았다.
“손님?”
자신의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그는 불안을 느낀다. 그녀가 아주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옷자락이 의자 팔걸이 틈새에 걸려 일어나기 힘드네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멍청한 얼굴로 웃고 있는 그녀에게 속으로 욕하며 그는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내 그는 생각을 바꿨다. 마차 안에서 끌어낼 필요 없이 그냥 죽이는 게 더 좋을 성싶었다.
마차에 피가 많이 고이겠지만 근처에 강이 있으니 한 번 씻으면 된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며 한쪽 손은 주머니에 넣어 칼을 만지작거렸고, 한쪽 손은 그 옷이 걸렸다는 곳으로 뻗었다.
그녀가 옷자락에 시선을 주고 있을 때, 그는 칼을 주머니에서 빼 들어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벌어진 상황은 언제나 생각했던 그의 ‘예상’과는 달랐다.
팔에 날카로운 고통이 느껴졌다. 고통의 근원을 보니 주머니에 들어간 손에 단도가 박혀 있었다.
여인네들이 호신용으로 단도를 들고 다닌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사용하는 여자는 처음 봤다.
그가 날카로운 고통에 비명을 지르려 할 때, 여자가 재빨리 몸을 움직여 마차 바깥으로 달아났다.
그는 단도를 뽑아내며 욕설을 내뱉었다. 어찌나 깊게 박혔는지 칼을 쓰는 손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분노해 소리를 질렀다.
“네년은 잡아서 죽인다. 무조건 죽일 거다!”
그는 이를 갈고 마차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칼이 안 된다면 목을 매달아서라도 죽일 거다.
그는 그녀가 사라진 숲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
루시펠라가 이상함을 느꼈던 것은 묘하게 찝찝하던 마차의 냄새였다. 뭐, 이런 마차가 냄새가 향긋하진 않겠지만 이 냄새는 기묘했다.
한동안 리엄에 대해 생각하느라 신경 쓰지 못했지만, 무심결에 이게 피 냄새라는 결론을 내리자마자 그녀의 복잡한 사고는 정지했다.
지독하리만큼 익숙하게 맡아왔던 냄새가 아닌가. 겨우 한 달 만에 향기로운 것, 좋은 것만 만나 이 진득한 냄새를 잊고 있었다.
피 냄새를 맡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당장 이 마차에서 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마차는 위험한 사람이 모는 마차였다.
그러나 마부와 통하는 창문은 닫혀 있었다.
마차 문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 댔을 때, 그녀는 문이 바깥에서 잠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확실히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그녀는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하녀들이 이야기한 연쇄살인마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설마, 자신이 그렇게 재수가 없을까. 아니, 재수가 없다기보다는 그녀가 범죄의 표적이 되기에는 최적이었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겠다.
그 미친놈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강도를 당할 수도 있었으며, 또한 젊은 여자의 육신은 역시 위험했다.
너무 무신경했던 건 그녀가 에스텔로서 행동했던 게 남아 있어 어떠한 일이 벌어져도 혼자서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방심했다. 그녀는 자신이 멍청했음을 인정했다.
다른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둘러싼 환경만이 바뀌는 것이 아님을 알았음에도, 위험에 발을 내디뎌 버렸다. 물론 깨달음을 얻기에는 상황이 충분히 최악이었지만.
살려달라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하기엔 창은 작았고, 이미 자신은 어떤 영역에 들어온 것 같았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 그리고 강 주변에 있는 숲.
이윽고 마차가 멈췄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그녀는 우선 마차의 문이 열리는 것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곤 이 남자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런 위험한 마차를 몰았는지도 알아내기로 했다.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단도를 빼 숨기곤 마차를 멈춘 마부가 자신에게 접근하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목의 급소를 찌를 생각이었으나 남자는 땀을 닦는 용도인지, 아니면 다른 용도인지 두꺼운 손수건을 목에 두르고 있었다. 목을 찌르기는 실패할 확률이 너무 높았다.
그 순간, 느껴진 살기에 그녀는 차선으로 무기를 만지작거리는 것 같은 남자의 왼팔을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곤 그녀는 무작정 숲으로 달렸다. 쫓아오는 일행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그녀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어쩌면 자신은 여자만 죽이는 미친놈에게 잡혀 살해당할 위기인지도 모른다.
강도를 일삼았다면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준비하기엔 위험부담이 컸다. 주변에 일행이 있어 그녀를 바로 붙잡고 목적을 이뤄야 마땅했다.
또한 여자의 몸을 취하기엔 지나치게 강한 살기가 느껴졌다. 즉, 목적은 자신을 죽이는 것에 있었다.
살아남을 확률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우선 가장 급선무는 말을 타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발만으로 이곳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문제는 체력, 이 여자의 체력이었다. 소위 말하는 ‘숨바꼭질’을 해야 하는데 그녀는 체력이 없었다.
게다가 숲. 말이 숲이지, 겨우 스무 그루 남짓한 나무가 심어져 있을 뿐이었다. 숨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평야 쪽으로 간다면 달리기 속도가 느린 그녀는 바로 따라잡힐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공격자는 그녀의 뒤를 쫓고 있었다.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그녀는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끝은 기껏해야 죽음이다. 어차피 에스텔이었을 때도 예상치 못하게 죽었지만 죽음을 각오했었고, 리엄을 찾으러 갈 때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녀는 입꼬리를 들어 올려 웃었다. 죽음을 앞두고 어울리지 않았으나, 기사였던 에스텔은 언제나 그렇게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은 언제나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그냥 나오면 곱게 죽여줄게.”
살의에 찬 목소리는 벌써 가까워지고 있었다. 곱게 죽여준다니, 누가 곱게 죽어줄 줄 아나?
방금 만난 남자는 참으로 개새끼였다.
에스텔은 저런 놈이 제일 싫었다. 우위를 점했다고 다 이긴 것처럼 지껄이며 농락하는. 방금 자기 팔을 아작 낸 사람이 루시펠라라는 건 대가리에 입력하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우선 저 새끼에게 한 방 먹여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루시펠라의 두 눈이 서늘한 빛을 머금었다.
칼잡이는 여자를 쫓았다.
이쪽 지리는 어차피 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이제 그녀를 잡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는 그녀를 어떻게 죽일지 생각해 뒀다. 목을 졸라 죽일 것이다. 목을 부러뜨릴 악력은 없었지만.
숨을 끊을 때까지의 감촉을 느긋하게 즐기는 것,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여자는 자기 아래 깔려 누구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절망 아래 죽게 되겠지. 그러곤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냥 나오면 곱게 죽여줄게, 어서 나와!”
그는 소리쳤다. 여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곧 눈에 띄게 될 것이다. 이곳은 좁았고, 뒤에는 강물이 자리해 있어 뛰어들지 않는 이상 돌아갈 곳은 없었다.
게다가 강 역시 수심이 얕아서 들어간다면 소리로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치마를 입었으니 뛰어들어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아가씨, 빨리 나와. 난 인내심이 별로 없어.”
그는 애써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나 이 재수 없게 똑똑한 여자는 고개도 내밀지 않았다. 멀리는 못 갔을 테고, 어디로 갔을까?
그러다 그는 두고 온 마차에 생각이 미쳤다. 도망자들의 생각이란 뻔했다. 바로 탈것을 확보하는 것!
그는 숲에서 빠져나갔다. 그러곤 마차로 달려갔다.
그러다 그는 그 여자가 마차의 말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이런,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정말 쥐새끼 같은 계집이 아닌가!
그래도 사냥감을 붙잡았다는 희열에 들떠 그는 바로 그 여자를 쫓았다.
행운은 그를 따라줌이 틀림없다. 심지어 멍청한 계집은 도망가다 넘어져 버리고 말았다.
세게 넘어진 모양인지 사냥감은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이제 잡았군.”
그는 바로 쫓아가 여자의 배를 한 번 걷어찼다. 힘없이 그녀의 배가 꺾이며 웅크렸던 그녀가 배를 보이며 누워버렸다.
그는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타 그녀의 뺨을 한 대 때리고 목을 졸랐다.
항상 자신이 쓰던 손이 아닌 것이 아쉬웠지만, 이 여자 하나 죽일 정도의 힘은 있었다.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지?”
손에 힘이 꽉 들어가자 그녀가 몸을 바동거렸다. 그는 더욱더 힘을 주었다. 그 버둥거림에 그녀의 치맛자락이 올라갔다.
“네년이 날 찔러? 감히 너같이 하찮은 계집이?”
남자는 온정신을 그녀의 숨통을 끊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역시 목을 조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숨을 못 쉬어 버둥대는 그 움직임이 손끝으로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는 희열에 차 중얼거렸다.
“어때, 무섭지? 무서워 죽겠지? 넌 죽게 될 거야.”
여자는 은청색 눈으로 살인범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덤덤해 보이는 그 커다란 두 눈이 자신을 향하는 것이 께름칙했지만, 그는 더 손에 힘을 주었다. 입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고 침이 뚝뚝 흘렀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도 모르는 채 입을 놀렸다.
“난 너 같은 년들을 죽이는 게 즐겁거든. 엉? 항상 그 예쁜 외모로 남자들을 무시했을 거야, 그렇지? 아주 남자들한테 알랑방귀 뀌고, 도도하게 고개를 쳐드는 너 같은 계집들은 이렇게 내가 죽여 버리는 게 세상에는 더 나아.”
더러운 계집, 더러운 계집.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욕과 더불어 자신이 여자들을 어떻게 죽여왔는지 모두 다 말했다.
그는 자랑하고 싶고, 과시하고 싶었다.
자신의 손에 목이 졸린 여자가 그 예쁜 얼굴을 공포에 떨며 삶을 마감하길 바라며 그는 웃으면서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러나 항상 쓰던 왼손이 아닌지라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도 이것대로 저 여자에게 고통을 준다면 그는 이 시간을 기꺼이 견딜 수 있었다.
그때 그는 등에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아아악!”
그는 엄청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등이 불에 데인 듯했다.
무언가가 자신을 찔렀다가 뽑혀 나갔다. 뜨뜻한 것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피였다. 너무 아팠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칼잡이는 고통을 어찌할 수가 없어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내 등, 내 등!”
그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라 팔을 뒤로 하려고 했지만, 상처 부위에 손이 닿지 않았다.
겨우 그 남자의 밑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루시펠라는 콜록콜록 거리며 기침하더니 팔로 땅을 짚었다. 그러곤 단번에 일어났다.
칼잡이는 그때까지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죽일 수 있을 줄 알았지, 개새끼야?”
그녀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칼잡이는 격통에 괴로운 와중에도 그 목소리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그가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보며 어, 하며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은청색 눈이 새파랗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가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눈이었다.
그는 그녀의 기세에 압도되었다. 흔들리는 시선으로 그녀를 훑어보자, 그녀의 손에 피가 묻은 단검이 들려 있었다.
그는 자신의 등을 공격했던 것이 그녀의 손에 들린 단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후, 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목을 따려고 했는데 또 실패했군. 아직 이 몸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제야 칼잡이는 함정을 판 것이 자신이 아니라 그녀임을 알았다.
자신을 미끼로 삼아 일부러 넘어졌던 것이다.
그는 깨달았다. 애초에 이 팔을 무력화시킨 것은, 저 여자였다. 너무나 방심했던 것이다.
여자는 언제나 그의 사냥감이었다.
사냥감에게 사냥당한다는 것은 그렇게나 영민하다 과신했던 머리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었다. 이제 그야말로 그녀의 사냥감이 되었다.
“계, 계집이……!”
그는 공포심과 더불어 굴욕감에 손을 뻗으며 달려들었지만, 그녀는 아주 익숙하게 칼을 휘둘러 그가 뻗은 손목을 공격했다.
그 일격에 피가 후드득 쏟아졌다.
“으, 으악!”
루시펠라는 얼굴을 찡그렸다. 목이 졸린 후유증 때문에 시야가 흐려 이번에도 급소는 찌르지 못했다. 그러나 이 한심한 남자는 그것만으로도 고통에 펄펄 뛰었다.
옷이 두꺼워 걱정했으나 그래도 등을 깊게 찔러 넣어 출혈이 커 지금의 루시펠라라면 어렵지 않게 그 목숨을 끊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목에 건 단도가 미덥지 못해 하나 사서 허벅지에 숨겨놓은 것이 다행이었다.
우선 한쪽 손을 무력화시켰기에 저 남자 혼자선 석궁이나 활 같은 무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가 그녀를 죽이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녀에게 접근하는 방법밖에 달리 도리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허벅지에 매어놓았던 단도 외에 아주 강력한 무기를 소유했기에 이길 자신은 있었다.
그녀는 침을 퉤, 뱉으며 말했다.
“그래, 계집이지. 네놈이 그동안 쉽게 죽일 수 있었던 계집.”
검을 든 계집이라고 무시당했던 적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그녀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그 멸시와 더불어 상대의 방심이었다.
여자였기에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방심했다. 그리고 그 방심은 몇 번이고 그녀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지금처럼.
목이 졸린 탓인지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말을 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목이 졸리면서 저 남자의 냄새 나는 입에서 나온 침을 맞으며 살인에 대한 과시욕 어린 수다를 들어줬던 게 상당히 억울했던 탓이다.
그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무척 불쾌한 경험이었다.
“나 같은 계집들을 죽이는 게 즐겁다 했나? 참 이해가 안 가는 취미군.”
그녀는 다시 한 번 퉤, 침을 뱉으며 말했다.
“난 나보다 강한 사람을 꺾는 게 즐겁거든.”
정확히는 ‘즐거웠’지만. 몸이 한계를 호소하며 거의 쓰러질 것 같았다. 지금 쓰러지면 그녀는 죽는다. 단도를 든 채 그녀는 남자의 빈틈을 살펴보며 말했다.
“너 같은 놈들을 패배자라고 하지.”
칼잡이, 아니, 작고 왜소한 체격의 남자는, 저 여자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파악했다. 태세 전환은 빨랐다.
남자는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를 많이 흘렸다. 등이 너무나 아팠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대로 가다간 멀리 도망치지 못하고 붙잡힐 것이다.
저 여자는 다른 여자들과 달랐다. 자신을 망설임 없이 죽일 것이다.
“아아아악! 아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
“살려주세요!”
“너한테 죽은 여자들이 그리 말했겠지. 그 여자들이 아팠던 건 생각도 나지 않았지?”
“제발 살려주세요. 아파요!”
“그 죽은 여자들도 아팠겠지. 난 너에게 똑같이 해줄 생각이야.”
“아아아!”
그는 공포에 질린 채 다리에서 힘이 풀렸는지 오줌을 싸며 무릎으로 기어갔다.
그녀가 비굴하게 도망가는 남자의 뒤를 천천히 쫓았다.
당장 발로 걷어차고 싶었지만, 저 남자가 그 발을 잡아 넘어뜨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었기에 그녀는 아주 신중했다.
정말 혐오감이 드는 놈이었다.
여자를 죽여서 즐겁다니. 왜 살인을 하는데, 하필 ‘여자’들을 죽여서 즐거운 것인가.
남자들에게도 같은 무시를 당했을 텐데, 왜 여자에게 무시를 당하는 것이 더 기억에 남고, 여자들에게 분노를 품는 것인가.
“찌질한 새끼.”
그 답은 너무 간단했다. 여자들은 힘이 없어서. 같은 남자들에게는 감히 화를 낼 만한 용기조차 품지 못하는 저열한 놈이었기 때문에.
버러지만도 못한 놈. 저 가운뎃다리를 잘라 버릴까 보다.
그녀는 혐오스러운 그 목숨을 끊으러 다가갔다.
그때였다. 별안간 말 울음소리가 주위에 가득 찼다. 루시펠라는 말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봤다.
얀스가르의 기사들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와그작 구겨졌다. 시점도 이렇게 구린 시점이 없을 것이다.
그녀가 살인범한테 쫓겼을 때 왔다면 적어도 이런 개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그녀가 일을 다 끝내고 말을 타고 리엄을 찾으러 사라지고 난 후 왔다면 뭐, 그래, 그 정도는 양해할 수 있었다. 한데 이도 저도 아닌 이 타이밍은 뭐란 말인가.
말에서 내린 기사들은 그녀와 그녀의 앞에 쓰러져 있던 남자를 번갈아 보더니 당혹스러운 표정을 했다.
그녀는 제일 앞에 있는 남자, 자신의 약혼자를 보며 말했다.
“참 빨리도 오시는군요, 하인트 공작 각하.”
그렇게 비웃었다.
하인트 공작은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듯 그녀를 한 번 바라보고, 그녀 아래 쓰러져 있는 남자를 보았다.
그러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단검으로 시선이 향했다.
그제야 그가 전후 사정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리엄에 대해서 물어보기 위해 하인트 공작에게 다가갔다.
이 구린 타이밍에 대해 불평 정도는 해주겠다고. 그러면서도 잔뜩 긴장했던 몸에 느른한 안도감이 퍼져 나갔다. 그 순간 그녀는 극심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설마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걸까? 긴장이 풀려서 쓰러지는 사람이 정말로 있긴 했어?
그리고 그게 자신이라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세상에 긴장이 풀린다고 쓰러지는 종잇장같이 약한 인간이 어디 있냐고 욕했던 게 자신이었는데, 이렇게 쓰러진다고? 저 남자 앞에서?! 말도 안 돼!
의식을 잃어가면서도 쓰러진다는 것을 끝까지 납득하지 못하며 그녀의 몸은 무너지고야 말았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가 자신을 받쳐 드는 것이 느껴졌다.
***
“이야, 세상에나. 대단한 아가씨로군요.”
루이르크 공작은 제드의 팔에 안긴 루시펠라를 바라보았다.
레이디답지 않게 하녀복을 입은 채 쓰러진 여자는 꼬질꼬질했으며,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에는 피가 튀어 있었다.
그럼에도 웃긴 것은 쓰러지면서도 단도를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크리세스 경에게 들었습니다. 아이딘 영애가 가출 소동을 벌이다 만난 게 저 연쇄살인마라면서요? 지독히도 극악한 운이군요. 하인트 공도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콕콕 찌르는 말에도 제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눕힐 마차가 올 때까지의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루이르크 공, 리엄을 놓쳤다지?”
“천만에요, 그 사람은 리엄 히르카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닮은 어떤 녀석이었더군요.”
루이르크는 빙긋 웃었다. 제드는 그를 노려봤다.
그의 검이 그 ‘닮았다는 사람’의 목을 단번에 잘랐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2기사단 단원들 역시도 언제나 웃는 얼굴과는 다르게 그자를 처리하는 그 냉혹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리엄이라는 존재가 애초에 없었기에 제2기사단원들은 제드에게 합류했다. 제드가 살인마에 대한 힌트를 발견했다는 것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1기사단 몇 명은 루시펠라를 추적했고, 그는 그 살인마를 추적했다.
“그래도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인트 공은 역시 못 당해요. 어떻게 살인마를 알아내셨던 겁니까? 역시 시체에 피가 너무 적었죠? 피로 적은 그 이름도 적당히 연막인 것 같더라니까요.”
“너…….”
제드가 발견한 것을 루이르크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똑같은 것을 발견했으면서 리엄을 쫓아가는 것을 선택했던 것이다.
박쥐 같은 새끼. 제드가 이를 갈았다.
사설 마차 사업을 하는 상단은 세 개뿐이었고, 사설 마차는 상단에 꼭 등록해 수수료를 지불해야 나라에서 허가받은 정식적인 운송업으로 인정이 된다.
그래야 중간 지점마다 상단에서 설치한 대 마구간 안의 마부 소유의 말을 교체할 수가 있으며, 말에게 여물과 물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차가 두 대, 또는 세 대 있는 사람들의 목록은 대략 스무 명 정도가 되었다. 너무 늙은이를 추려내니 나머지는 열.
그리고 말을 교체하거나 물을 먹인 곳, 여물을 준 곳으로 동선을 추적한 결과, 살인사건이 일어난 날과 비슷한 동선을 보이는 마차의 주인이 있었다.
“잭?”
다소 평범하며 짧은 이름이었다.
너무나 흔한 것 같은. 그럼에도 그 울림이 주는 느낌은 어쩐지 섬뜩했다.
그와 동시에, 잭이 두꺼운 옷을 입고 다닌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하여 제드는 잭을 쫓았던 것이다.
정오쯤에 남동부에서 물을 마시게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루시펠라가 남동부 구역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잭을 쫓으며, 그녀를 찾으라고 시켰던 기사들과 자신이 마주쳤을 때, 설마 했던 최악의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쓰러진 잭과 서 있던 루시펠라였다. 루시펠라는 단도를 든 채 너무 늦었다고 말하며 쓰러졌다.
루시펠라의 목에는 선명한 붉은 자국이 나 있었다.
마차를 조사하니 목에 거는 듯 끈이 달려 있는 단도가 나왔다.
그 단도로 우선 팔을 찌른 후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단도로 다시 남자를 공격한 듯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얼마나 절박한 순간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멋대로 뛰쳐나간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드는 모든 걸 루시펠라의 탓으로 돌릴 정도의 성격은 못 되었다.
그는 정말로 조금이라도 빨리 갔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고약한 성격이 살인범을 맞이할 때도 발휘되었다는 것 정도였다.
잠깐. 제드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보통 귀족 아가씨가 단도를 휘두르는 데 거침이 없을까.
그는 잡혀갔던 그 잭이라는 놈이 입은 상흔을 떠올랐다.
손목에 박힌 검도 그렇고, 등에 박힌 검도 그렇고 어딘지 모르게, 아주 살짝 위화감이 있었다.
보통 그게 당연한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최후의 힘이라도 발휘된 것인가.
손을 찔러 손을 무력화하고 단검으로 남자의 등을 공격했다.
여리디여린 귀족 아가씨가 그렇게 판단을 내리는 게 쉬운 걸까?
그가 루시펠라에 대해 아는 건 황태자와의 염문, 그리고 황태자에게 매달리다 거절당하자 꼴사납게 황궁의 호수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했다는, 그러면서도 황태자를 잊지 못하는 멍청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의외의 모습을 보며 그는 루시펠라에 대한 생각을 달리해야만 했다.
“거기서 살아남다니, 정말 웬만한 남자들보다 낫군요. 이건 정말 진심입니다.”
루이르크가 다가가 루시펠라를 관찰하려 했다. 제드는 얼굴을 찡그린 채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더 깊숙이 안아 들었다.
저깟 놈이 함부로 볼 자신의 약혼녀가 아니었다.
#d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