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상태를 살폈다.
솔렘 왕국의 마법사들은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확연히 초췌해진 몰골들을 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몸에는 여기저기에 범상치 않은 외상이 생겨 있었는데, 이건 유디트가 만든 게 맞는지 좀 애매했다.
지금도 솔렘 왕국의 마법사들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아주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스스로 머리나 가슴을 쥐어뜯고 있었기 때문이다.
몸부림치면서 목을 손톱으로 마구 긁어, 보기만 해도 아파 보이는 핏자국을 만들고 있는 마법사도 있었다.
특히 지하 감옥에 있던 라칸은 다른 마법사들보다 상태가 심각해 거의 빈사 상태에 가까워 보였다.
그래도 일단 유디트의 말대로 숨들은 붙어 있긴 했지만, 정말……. 빈말로도 정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그냥 자고 있는 것뿐이에요.”
“그냥 잠든 게 아닌 것 같은데.”
이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도 아니고…….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대놓고 눈앞에 있는데, 이걸 그냥 자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해 봤자 그 말을 믿을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이어서 유디트가 생긋이 예쁘게 웃으며 덧붙인 말을 듣고, 나는 하얀 천장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물론 다들 사이좋게 귀여운 악몽을 꾸고 있기는 하지요.”
“…….”
이상하다……. 난 이 애를 이렇게 키우지 않았는데.
아까 킬리안에게 보이던 반응도 그렇고, 왠지 유디트가 지금까지 내가 알던 모습의 그녀와 좀 다르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유디트가 이전의 기억을 자각해서 생긴 변화는 아닌 듯했다.
예전에도 클로에나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종종 나오던 말을 듣고, 사실은 유디트가 내 앞에서만 내숭을 떨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었던 적이 아주 가끔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마법사들의 상태가 생각보다 안 좋아서 화났어요?”
그런데 내가 입을 다물고 있는 걸 어떻게 생각했는지, 유디트가 내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역시 제가 좀 심했나요?”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는 눈에는 약간의 불안감이 어려 있었다.
예전에 내가 이 얼굴을 가지고 있을 때는 한 번도 거울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의 유디트는 꼭 깨끗한 카펫에 더러운 발자국을 찍어 놓고 눈치를 보는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귀여웠다.
“그래도 당신의 심복들이었는데, 내가 너무 잔인한 짓을 해서 실망했어요?”
혹시 유디트가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해 달라느니 하는 말을 했던 게, 이 솔렘 왕국의 마법사들을 이만큼 초주검으로 만든 걸 두고 밑밥을 깔았던 것이었을까?
그러나 사실 유디트가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그녀에게 화를 내거나 실망할 자격은 나한테 없었다.
솔직히 그녀가 솔렘 왕국의 마법사들을 보자마자 곧바로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인내심을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그녀가 예전의 아르벨라였다면, 이렇게 내가 오기 전에 진작 그들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갈기갈기 찢어서 흔적도 없이 죽여 버렸으리라.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예전보다 마음이 약해져서, 어쨌거나 원래 내 휘하에 있던 마법사들을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이렇게 초주검으로 만든 것에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럴 리가 있겠어?”
나는 불안한 눈으로 나를 보는 유디트의 머리를 손으로 끌어당겨 도닥였다.
“너도 참 괜한 걱정을 하는구나.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실망하지는 않았어. 오히려 생각해 보니, 이 정도면…… 음. 우려한 것보다 양호한 것 같기도 하고.”
말하다 보니, 정말 유디트가 분노를 꾹 참고 이들의 숨을 얌전히 붙여 놓은 것이 오히려 대견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물론 고통스러워하는 솔렘 왕국 마법사들을 보는 동안 나도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지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다시 한번 예전에 무지한 상태로 그들에게 휘둘려, 이후에 일어난 여러 일을 막아내지 못한 것을 사과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또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하면 화를 낼 거라고 했던 유디트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디트는 나한테 얌전히 안겨서 쓰다듬을 받다가, 슬그머니 팔을 뻗어 나를 꽉 끌어안았다.
생각보다 힘이 세서 숨이 조금 막혔지만,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왠지 유디트에게서 흘러나오는 분위기가 전보다 몽실몽실해진 게, 기분이 한결 좋아진 것 같아서 나도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유디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예전처럼 균열이 세상을 뒤덮지 않게 막을 방법을 안다고 했죠? 이 사람들로 이제 뭘 할 거예요?”
나는 유디트의 말을 듣고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도 하늘은 붉은 틈을 낸 채 열려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 안에서 무언가가 한가득 쏟아질 것 같았지만, 아직까지는 태풍의 핵처럼 기이할 정도로 잠잠하고 고요한 공기만 허공에 흐르고 있었다.
“그래, 그럼 한번 시험해 볼까.”
나는 유디트를 살짝 옆으로 떼어 놓고 손가락 끝으로 마력을 뽑아냈다.
파앗!
곧 황금색 빛이 기절해 있는 솔렘 왕국 사람들의 위로 복잡한 마법진을 그렸다.
그것은 내 손짓을 따라, 그중 한 사람의 몸에 스몄다.
그 직후, 녹색 마력의 결정이 솔렘 왕국 마법사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그것은 내게로 날아와서, 내 마법진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반대로 내 몸에 스며들었다.
완전히 다른 두 마력 간에 반발 작용이 일어났는지, 잠깐 속이 들쑤셔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내가 하려는 건 마력의 융합이 아니었으니, 고통을 감내하며 억지로 두 마력을 내 안에서 완전히 어우러지게 애쓸 필요는 없었다.
나는 요동치는 마력을 이용해 바로 아무 마법이나 사용해 보았다.
팟!
뒤이어 방금 솔렘 왕국의 마법사에게서 가져와 흡수한 녹색 마력과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황금빛 마력이 뒤섞여 눈앞에 퍼져 나왔다.
뜨겁지 않은 불길이 눈앞에서 거칠게 일렁거렸다.
“이 정도면 그래도 남의 마력을 처음 사용한 것치고는 꽤 안정적인가……. 마력량도 확실히 늘었고, 강도도 전보다 뛰어난 것 같긴 한데.”
나는 내가 사용한 마법을 면밀하게 살피며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아까부터 내가 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던 유디트가 숨을 죽인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금단술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마력을…… 빼내 온 거예요?”
“잠깐 빌린 거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든 게 아니라.”
유디트가 무엇에 놀란 건지 알 만했다.
하지만 이건 그녀가 예전에 실패했던, 타인의 마력을 빼앗는 금단술과 종류가 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건 솔렘 왕국의 사람들이 외부의 마력을 빌려 마법을 사용하는 데서 착안해, 내가 변형해 본 마법식이었다.
다른 마력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빌리는 것뿐이었기에 금단술처럼 제물을 따로 필요로 하지도 않았고, 자연의 마력을 사용하지 않기에 솔렘 왕국의 사람들이 마법을 사용할 때처럼 균열을 부르지도 않았다.
실제로 이 방법을 시도해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솔렘 왕국의 마법사에게서 빼 온 마법을 내 것처럼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이런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건 오직 솔렘 왕국의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마법이었다.
어째서 그런지 쉽게 설명하자면, 솔렘 왕국의 사람들이 가진 체내의 마력은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 자연물의 마력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지금처럼 내가 간섭하기에도 용이하기 때문이었다.
원래 보통의 다른 사람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마력을 어릴 때부터 계속 사용하며 그것을 끊임없이 갈고닦았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마력은 주인의 뜻대로만 움직이도록 길들여졌다.
하지만 솔렘 왕국의 사람들은 애초에 정식으로 마법을 익히기 시작할 때부터 외부의 마력을 끌어다 사용하도록 교육받다 보니, 오히려 그들의 체내에 존재하는 고유 마력은 방치되어 주인과의 연결이 희미했다.
그런 이유로, 이렇게 내가 그들의 마력을 쉽게 끌어와서 빌릴 수 있는 것이었다.
“일시적으로 빌리는 것뿐이라고요…….”
“지속 시간은 좀 더 시험해 봐야 해. 타인의 마력을 얼마나 끌어다 쓸 수 있을지, 한계를 확인해 보는 작업도 필요하고.”
“솔렘 왕국의 마법사들 말고 다른 사람에게서 같은 방법으로 마력을 빌려 올 수는 없나요?”
“가능하긴 하지만 쉽지는 않을 거야. 솔렘 왕국 사람들이 특이한 경우라서.”
마법사의 열병 때문에 마력량이 줄어든 지금의 나로서는 이것이 현재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이후로 몇몇 실험을 좀 더 해본 뒤 솔렘 왕국의 마법사들에게서 마법을 거두어들였다.
“오늘은 이 정도만 하고 그만 돌아가자.”
아직 균열을 닫을 적절한 시기가 오려면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솔렘 왕국의 사람들은 그때까지 한동안 이대로 재워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물론 도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다들 퍽 고통스러워 보이는 모습이긴 했지만……. 예전에 했던 짓이 있으니 이 정도 일을 당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유디트와 나는 솔렘 왕국 사람들을 숨겨 둔 곳에서 빠져나왔다.
유디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쩐지 조금 전부터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