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유디트는 난처한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언니, 그냥 더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냥 이 일은 여기에서 덮는 게 좋겠어요.”
“아니, 이런 일은 확실히 해야지.”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젓는 유디트에게 단호하게 손을 내밀었다.
“4황녀님, 1황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더군다나 그 목걸이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요. 어리다고 해서 무조건 용서해 주는 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아요. 반드시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 올바른 성장의 발판으로 삼게 해야 합니다.”
유디트의 시녀도 내게 동의하며 적극적으로 그녀를 설득했다.
결국 머뭇거리던 유디트가 못 이긴 듯이 나한테 목걸이를 건네줬다.
파앗!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마력을 움직이자, 목걸이 위에 마법식이 펼쳐졌다.
예전에 내가 만들어 이제는 상용화된, 마법의 흔적을 읽는 마법식이었다.
“최근에 새로 사용된 마법의 흔적이 목걸이에 남아 있지는 않구나.”
그러나 최근 목걸이에 남은 마법식은 없었다.
즉, 다른 누군가 이 목걸이를 마법으로 몰래 옮겨 이 파르비안이라는 소년의 주머니에 넣어 둔 것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마법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으니까 어차피 확인은 어렵겠네요. 괜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의심해서 진실을 판별하는 마법을 사용하고 싶지도 않고요.”
유디트가 표정을 흐리며 이제 정말 되었다는 듯이 조금 전보다 단호하게 말했다.
나 아직 그 마법 쓸 거라고 말 안 했는데…….
유디트의 입에서 나온 ‘진실을 판별하는 마법’이라는 소리에, 파르비안이라는 소년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간절한 눈빛을 보아하니, 차라리 자신에게 그 마법을 사용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저런 모습을 보면 저 소년은 정말 유디트의 목걸이를 일부러 가져간 범인이 아닌 듯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의 반응은 확실히 떨떠름했다.
범인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진실만 말하도록 강제당하는 마법은 확실히 경험하기에 기분이 좋은 마법은 아니었다.
게다가 유디트도 굳이 되었다고 하는데 지금 이곳에 있는 학생들에게 그런 마법을 강요했다가는 내 여론이 나빠질 수도 있었다.
학생들의 대부분이 자존심 강한 귀족 출신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그들의 나이가 10대 초중반으로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파르비안을 제외한 학생들은 벌써부터 거부감을 느끼는 듯한 얼굴로 웅성거렸다.
그리고 파르비안은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겁을 먹은 듯이 발언을 주저하고 있었다.
사실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서 그렇지, 유디트도 소년을 범인이라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굳이 나서기도 애매한 상황이긴 했다.
“그래, 그런 걸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지. 여기에 손을 댄 사람이 누구인지, 이 목걸이로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으니까.”
“네?”
내 말에 유디트가 멈칫했다. 다른 사람들도 의아한 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살아 있는 생물체는 모두 마력을 가지고 있어 숨만 쉬어도 극소량의 마력을 공기 중에 흘린다고 하잖니.”
나는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하면서 마력을 움직였다.
“그러니 단순히 손끝, 아니 옷깃만 스쳐도 잔향에 가까운 아주 미세한 양의 마력은 묻기 마련이거든. 이건 얼마 전에 개량한 마법식이라 아직 발표하지 않았지만, 기존에 있던 몇 가지 마법식을 조합하면 목걸이에 묻은 마력의 잔향을 먼지 한 톨만큼이라도 쉽게 찾아내 형상화할 수 있어.”
팟!
직접 보여 주는 게 나을 것 같아 바로 목걸이 위에 다른 마법식을 몇 개 중첩해서 사용했다.
잠시 후, 목걸이에 묻어 있던 성질이 각기 다른 마력이 층층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져, 그것은 육안으로 구분하기 쉽게 다양한 색과 형태를 가진 작은 입자로 변해 순차적으로 마법진 위에 떠올랐다.
“우와!”
그것을 보고 아이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참, 이게 뭔지도 잘 모르면서 일단 감탄부터 하고 보다니, 아까도 느꼈지만 반응이 후한 아이들이었다.
“이름이 파르비안이라고 했나? 손을 잠깐 이리 줘 보겠어?”
내가 시선을 맞추며 요구하자, 파르비안이라는 소년이 조금 멍한 얼굴로 나를 마주 보다가 꼭 홀린 듯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바로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소년의 손에 묻어 있던 마력이 회색빛 마름모 모양의 알갱이로 형상화되어 나타났다.
“앗!”
“그게 네 마력이야. 그리고 이 목걸이에는…… 파르비안의 마력이 묻어 있지 않군.”
목걸이에 사용한 마법진에 떠오른 마력들과 지금 눈앞에 나타난 파르비안의 마력을 두고 색과 형태를 비교했을 때, 무엇 하나 일치하는 게 없었다.
나는 더 확실한 비교군을 위해 내가 다른 손으로 들고 있던 지팡이에 직접 마법을 사용했다.
곧 황금색 육망성 모양에 가까운 알갱이가 마법진에 떠올랐다.
“이게 내 마력을 형상화한 건데, 확인해 봐. 목걸이의 가장 위쪽에 남은 마력과 동일하지?”
“와아아아……! 진짜다!”
목걸이는 지금 내 손에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가장 윗표면에 내 마력이 극소량 남아 있었다.
그 바로 밑에는 보라색 역십자가 모양의 마력이 있었는데, 목걸이에 가장 많이 묻어 있는 걸 보면 주인인 유디트의 마력이라 보는 것이 타당했다.
목걸이에 사용한 마법진의 가장 위쪽에 둥둥 떠 있던 황금색 육망성 모양의 알갱이가 확인 후 빛으로 터져 사라졌다.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눈은 이미 휘둥그렇게 떠져 있었다.
보통은 마법을 사용했을 때만 마력의 흔적이 남는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또 성질이 다른 개개인의 마력을 이렇게 형상화해서 육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 같았다.
“저도 해 주세요!”
“저도요! 제 마력도 궁금해요!”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흥분해서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아무래도 애초에 이게 무엇을 위해 사용한 마법이었는지 다들 잊은 것 같았다.
“와, 신기하다! 난 꽃 모양이야!”
“내 마력 봤어? 1황녀님이랑 비슷한 노란색이다?”
진실을 판별하는 마법을 사용한다고 했을 때보다 확실히 비교할 수조차 없이 반응이 좋았다.
다들 놀이라도 한다고 생각하는지,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신이 나서 자신에게 마법을 사용해 달라고 졸랐다.
“자, 얘들아. 다들 잠깐 여기 좀 봐 주겠어?”
나는 아까처럼 마법으로 불꽃을 터트려서 아이들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다들 확인했다시피, 파르비안의 마력은 목걸이에 남은 마력과 일치하지 않았지?”
“앗……!”
본론을 잊고 있던 아이들이 깜짝 놀라서 입을 벌렸다.
“거봐, 나 아니랬잖아!”
하마터면 누명을 쓸 뻔한 파르비안이 반가운 듯이 외쳤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다른 학생 중에도 목걸이에 묻은 마력과 동일한 마력을 가진 사람은 없었으니까…….”
나는 목걸이 위에 떠오른 마법진에 시선을 두며 말을 이었다.
“왜 파르비안의 주머니에 이 목걸이가 들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중에 이걸 건드린 사람은 없어 보이는구나.”
그런 뒤 다방면으로 사용하던 마력을 일제히 거두자, 목걸이와 학생들의 손 위에 떠올라 있던 마법진들이 전부 사라졌다.
아이들이 흩어진 마력의 형체를 눈으로 좇으며 또 한번 탄성을 내질렀다.
“와, 그러고 보니까 지금 1황녀님, 도대체 마법식을 한꺼번에 몇 개나 쓰고 있었던 거야?”
“엄청 멋있어…….”
나를 칭찬하는 말들에 다른 때 같으면 흐뭇해졌겠지만, 지금은 기분이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유디트.”
그래서 그저 옆으로 몸을 돌려 유디트에게 내가 들고 있던 목걸이를 돌려주었다.
“세상에는 생각지도 못한 우연이란 게 예상외로 많은 법이니……. 네가 흘린 목걸이도 정말 우연히 이 학생의 주머니에 들어간 게 아닐까?”
흰 장갑을 낀 유디트의 손에 목걸이가 내려앉았다.
거기에 연결된 체인이 아래로 흘러내리며 차르륵, 소리를 냈다.
유디트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목걸이를 내려다봤다.
모자에 그녀의 얼굴이 가려져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르벨라 언니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다음 순간 다시 고개를 들어올린 유디트의 얼굴에는 다행이라는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렇게 확인해 보길 정말 잘했네요. 언니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오해가 남을 수도 있을 뻔했어요. 하지만 역시 이곳에 나쁜 사람은 없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그러나 유디트의 기쁜 얼굴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곧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시 시선을 내리깔고 표정을 흐리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러고는 반성하듯이 말했다.
“그리고…… 저는 그저 이 목걸이 때문에 난처한 사람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지만, 결과적으로 방금은 제가 조금 경솔했던 것 같아요.”
이어서 유디트가 누명을 쓸 뻔한 어린 소년에게 다가가서 다시 한번 다정하게 그의 손을 붙잡았다.
“파르비안이라고 했지? 내 시녀가 성급하게 너를 범인으로 몰아서 하마터면 네게 억울함이 남을 뻔했구나. 정말 미안해.”
“아, 아니에요…….”
황녀에게 사과를 직접 들은 파르비안이 뺨을 붉히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조금 전에는 억울했지만, 그래도 유디트 딴에는 자신을 감싸 주려고 노력한 걸 알아서 파르비안이란 소년도 그녀에게 악감정을 품지는 않은 것 같았다.
“브리아나. 너도 함부로 말한 걸 사과해.”
유디트는 자신의 시녀에게도 파르비안에게 사과하도록 명령했다.
브리아나라는 시녀는 그 명령을 따르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은 명령에 불복하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며 파르비안에게 작은 사과의 말을 읊조렸다.
“……섣불리 오해하고 함부로 말해서 미안합니다.”
자리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아까보다 더욱 열렬한 눈빛으로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