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어떻게 된 거지? 이 연관성은 도대체 뭐야?’
막상 의심했던 것과 동일한 결과물을 보게 되자 잠깐 말문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보니, 균열이 발생한 장소와 금단술의 사용이 직접 확인되거나 의심되었던 장소 사이의 연관성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왜 지금까지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시간 순으로 보면, 먼저 금단술이 사용되고 그 후 동일한 장소에 균열이 발생한 것 같았다.
반드시 동일하지 않은 경우에도 그 범위는 반경 10페론 이내.
물론 백 퍼센트의 일치율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유의미한 지표라 할 수 있었다.
지도를 내려다보는 동안 머릿속의 생각이 빠르게 움직였다.
만약 정말 금단술과 균열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거라면…….
‘그럼 설마 솔렘 왕국 사람들이 균열을 연 방법도 금단술인가?’
그러고 보면, 얼마 전에도 균열에서 나온 괴물과 솔렘 왕국 사람들에게서 느낀 마력의 파장을 비슷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일전에 솔렘 왕국 사람들에게 납치되어 갔던 장소에서 그들이 직접 균열을 여는 장면을 목격했다.
금단술의 기본은 살아 있는 제물을 사용하는 것.
하지만 분명 솔렘 왕국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마법을 사용할 때 단 한 번도 내 눈앞에서 제물을 사용하지 않았었다.
불길한 보라색 빛기둥이야 사람을 제물로 할 만큼의 거대한 금단술을 사용할 때만 나오는 것이라 쳐도, 다른 제물을 내 앞에서 버젓이 사용했다면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난 이론만 빠삭하지, 실제로 금단술을 직접 본 적이 있는 건 아니니까 아직 속단할 수는 없어.’
어쨌든,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연결고리를 찾게 되자 생각이 깔끔히 정리되지 않았다.
나는 일단 괴물에게 물었다.
“너, 내 시녀인 마리나 본 적 있지? 평소에 아무 느낌도 받지 못했어?”
만약 금단술과 균열이 정말 연관이 있고 또 마리나에게 걸린 마법이 금단술이 맞는다면, 혹시 균열에서 나온 이 괴물 녀석이 그동안 그녀를 보며 무언가를 감지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마리나? 그, 동족 냄새 풍기고 다니는 애?
그리고 괴물이 몸통을 갸우뚱거리다가 내뱉은 말에 내 눈이 번쩍 뜨였다.
“뭐? 마리나도 동족이라고?”
-아니, 걘 동족 냄새를 묻히고 다니는 애지, 동족은 아니다! 너, 그것도 몰라? 그렇게 코가 안 좋아서 어떻게 사냥해?
시건방진 괴물 녀석이 나를 깔보듯이 말했다.
다른 때 같으면 이 간덩이 부은 놈의 먹이라도 빼앗았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더 알쏭달쏭해졌다.
뭐지? 마리나에게서 동족 냄새가 난다니, 혹시 마리나에게 걸린 마법의 흔적을 말하는 건가?
그런데 마리나에게서는 그냥 동족 냄새가 나는 것뿐이라면서, 나는 동족이라고 확신하는 건 도대체 무슨 차이 때문이지?
괴물 녀석의 말을 듣고 나는 또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균열, 금단술, 솔렘 왕국의 마법사들, 그리고 괴물이 말하는 동족.
‘잠깐.’
그러다 문득 나는 저것들과 또 다른 연결점을 하나 더 찾아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균열을 보았을 때, 다른 무언가와 또 비슷한 느낌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게 뭐였냐면…….
‘그래. 세계의 이면.’
4년 전, 내가 꿈에서 본 신비로운 보라색 공간.
사람의 생애를 담은 책이 무수히 많은 새장 속에 들어있던 끝없이 넓은 지평선 바깥의 세계.
그 순간, 머릿속에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조금씩 형체를 갖추고 모여들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너, 네가 살던 곳 얘기를 다시 해 봐. 빨갛고 파랗고, 뭐가 어떻다고?”
나는 괴물을 결계 속에서 꺼내 들고 눈을 마주한 채 물었다.
“혹시 거기에 새장이 걸려 있지는 않던?”
-새장? 그게 뭐야?
“지붕이 이렇게 동그랗고, 사방이 긴 막대 같은 걸로 둘러싸인 것 말이야.”
-아! 맞아. 우리가 살던 집이 그런 모양이었어. 역시 너도 동족이라 잘 아는구나?
괴물은 내 속도 모르고, 해맑게 고개를 끄덕이며 신이 나서 맞장구를 쳤다.
나는 허를 찔린 기분이 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 땅에 생겨나기 시작한 하늘의 균열. 그게 바로 마법사들이 염원하는 진리의 공간, 세계의 이면이라고?
게다가 그곳에 매달린 새장이 괴물들의 집이라니, 그건 또 무슨……. 그때 내가 새장 속에서 본 건 분명 책들뿐이었는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럼 혹시 내가 예전에 세계의 이면에 다녀온 것 때문에 이놈이 날 동족이라고 착각하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방금 네가 말한 거 말인데! 그 마리나라는 애 말고, 여기에서 너랑 같이 사는 우리 동족은 다른 애잖아?
그리고 고향 얘기를 해서인지 혼자서 신이 난 듯, 묻지도 않았는데 혼자 떠들썩하게 덧붙인 괴물 녀석의 말이 내 상념을 끊어냈다.
-방금 네가 보면서 웃은 그 검은 머리 애 말이야! 걔도 너랑 나처럼, 그냥 어디서 묻혀 온 냄새만 풍기는 게 아니라 진짜 우리랑 같은 동족이잖아!
* * *
‘유디트도 괴물과 동족이라고?’
나는 목적지를 향해 걸으면서 괴물 녀석의 말을 곱씹었다.
놈의 말을 들은 후로 어쩔 수 없이 생각이 많아졌다.
혹시 솔렘 왕국 자체가 균열이나 금단술과 관련이 있어서, 유디트도 그곳의 피를 이은 것 때문에 괴물에게 동족 소리를 듣는 걸까? 아니면…….
‘혹시 유디트도 나처럼 세계의 이면이라도 보고 와서 그런 오해를 받는 거라거나.’
“……님.”
물론 비약적인 생각일 뿐이었다. 어쩌면 이 경우에는, 유디트의 책이 세계의 이면에 있었던 것과 연관이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황녀님.”
그렇게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긴 채 걷느라, 뒤에서 누가 나를 부르는 것을 듣지 못했다.
다음 순간, 이마에 무언가가 툭 하고 살짝 부딪쳐서 반쯤 정신이 돌아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자 내 앞으로 뻗어진 팔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시는 것 같아서.”
그 직후, 바로 옆에서 귀에 익은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조금 옆으로 움직이자마자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제라드와 눈이 마주쳤다.
거리가 생각보다 아주 가까웠다. 내가 정신을 차린 듯하자, 제라드가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나는 깊은 상념에서 깨어나 다시 앞을 봤다.
백야의 전당 건물 앞에 세워진, 역대 마법사들의 이름을 새긴 석판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제라드가 팔을 들어 막아 주지 않았으면 저 돌덩어리에 그대로 이마를 박을 뻔했다.
표정 변화 없이 주위를 한번 쓱 둘러봤다.
내 수행원들은 다들 고개를 숙인 채 뒤를 따르고 있어 아무도 내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다른 때 같으면 마리나가 직접 가까이 다가와 나를 붙잡았겠지만 지금 그녀는 내 옆에 없었다.
제라드의 경우에는 지금 이곳이 개방된 장소라 기사의 신분으로 내 몸에 직접 손을 댈 수가 없어서 이런 식으로 내 이마가 석판에 닿는 걸 막아 준 듯했다.
“음……. 오늘따라 이 석판에 유독 눈길이 가는구나. 카뮬리타의 발전에 이바지한 위대한 마법사들의 이름을 한 글자 한 글자 직접 눈에 새겨 그 업적을 기리며 향상심을 갖는 시간도 한 번씩 필요하지.”
나는 태연한 낯으로 석판 위의 이름들을 살펴보는 척했다.
“과연 카뮬리타의 최고의 지성에서 태어난 1황녀님이십니다.”
제라드도 내 말에 딴죽을 걸지 않고 담담하게 호응했다.
하지만 내 말이 핑계란 걸 눈치채긴 했는지, 겉으로는 정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제라드의 입꼬리가 순간적으로 아주 미세하게 꿈틀거린 것 같았다.
나는 뜻하지 않게 모양을 구기게 되어 살짝 심술이 난 상태로 망할 석판을 지나쳐 백야의 전당 안으로 들어갔다.
“레반테온, 오랜만이야.”
“1황녀님! 어서 오십시오!”
그나마 요즘은 연구실에 처박혀 있는 시기가 아닌지, 드물게도 제법 사람다운 몰골을 한 레반테온이 나를 반겨 주었다.
“이야, 정말 오랜만입니다. 요즘 저도 바쁘고, 1황녀님도 바쁘셔서 이렇게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없었지요?”
그렇게 몇 마디의 적당한 안부 인사 뒤에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그에게 물었다.
“레반테온, 아직도 세계의 이면에 대해 연구하고 있어?”
레반테온은 내가 설마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질 줄 몰랐는지, 의외란 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요즘은 다른 데 집중 중입니다. 세계의 이면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지만, 들이는 시간에 비해 좀처럼 새로운 게 나오지를 않아서요. 황녀님도 아시다시피, 세계의 이면은 자료를 얻는 데 한계가 있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래서 요즘은 4황녀님께 마법을 가르쳐 드리고, 다른 시간에는 균열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지요.”
레반테온의 말을 듣고 나는 그의 소나무 취향에 감탄했다.
얘도 참 한결같단 말이야. 세계의 이면 다음으로 균열 연구라니.
만약 내 생각처럼 진짜 그 두 가지가 동일하다면, 레반테온의 취향은 참으로 일관적인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