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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황녀님-115화 (131/203)

115화

* * *

2황비의 외가인 그레이엄 후작가에서 금단술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당연히 이는 카뮬리타 전역에 대서특필될 만한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건 부작용이 있는 마법 약을 만들어 판매한다든가, 저택의 밀실에 사람을 본뜬 인형을 은밀히 만들어 수집한다든가 하는 것과는 종류가 다른 일이었으니까.

제라드의 경우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금단술을 사용했다는 건 한 가문이 모조리 풍비박산 날 수 있는 중죄 중에서도 중죄였다.

그러니 아무리 황비의 친정이라 해도 금단술과 연관된 이상 절대 처벌을 면할 수 없었다.

“이건 흉계입니다! 3황자님의 납치 사주부터 금단술까지, 전부 저와는 무관한 누명이란 말입니다!”

물론 그레이엄 후작은 자신의 저택에서 발견된 금단술의 흔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했다.

자신은 저택에 그런 밀실이 숨겨져 있는지도 몰랐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그레이엄 후작은 금단술의 흔적이 남은 밀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후작가 소속 마법사가 자신도 모르게 비밀리에 저지른 일이라고 주장했다.

황실에서는 이 일에 자세한 조사를 명령했으나 사실 상황은 그레이엄 후작에게 썩 유리하지 못하게 돌아갔다.

일단 세드릭 황제부터 그레이엄 후작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바로 직전에 그레이엄 후작이 3황자의 납치 사건을 사주한 진범으로 지목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 일이 없었다면 또 몰라도, 먼저 의심의 씨앗을 뿌렸으니 황제 폐하도 더 샅샅이 수색하려 하겠지.’

지하 감옥에 있던 솔렘 왕국의 마법사, 라칸인지 라쿤인지 하는 놈이 그레이엄 후작의 사주를 받았노라 고한 건 물론 내가 시킨 일이었다.

다른 솔렘 왕국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구워삶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쉬웠다.

카뮬리타 황실의 지하 감옥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놈이니 오죽하랴. 한참 고초를 당하고 있을 때 찾아가 시키는 대로 하면 살려 주겠다고 하니까 결국은 처음의 자존심을 버리고 순순히 말을 듣더라.

그가 거짓말을 하고도 진실을 판별하는 마법에 걸리지 않은 건, 솔렘 왕국의 정신 계열 마법을 라칸이 자기 자신에게 걸었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이 정말 통할 줄 모르고 한번 시험 삼아 해 본 건데, 생각보다 효과가 있어서 나도 놀랐다.

사실 나는 라칸이 거짓말을 한 게 탄로 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설령 진실을 판별하는 마법에 바로 걸린다 해도, 어차피 황실 조사관의 입장에서는 한번 범인의 입에서 거론된 이름을 마냥 무시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분명 그레이엄 후작을 불러 그를 조사하긴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후작저에서 확실한 증거를 찾을 때까지만 허튼짓을 못하게 그레이엄 후작을 잡아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라칸이 생각보다 일을 너무 확실하게 한 데다, 또 후작저에서 나온 게 생각 이상의 대어여서, 세드릭 황제의 마음은 북부 만년설보다 더 차갑게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2황비 카타리나가 몇 번이나 황제 폐하를 찾아갔으나 아예 문 앞에서 번번이 축객령이 떨어졌다고 하니까.

“정말 놀랐어요. 그레이엄 후작가에서 금단술이라니……. 그럼 설마 예전에 제가 본 것도 금단술과 연관이 있는 거였을까요?”

마리나도 소식을 듣고 불안한 얼굴을 했다.

나는 나대로 찝찝했다.

물론 그레이엄 후작의 덜미를 잡은 건 속이 후련했지만, 그게 다른 것도 아닌 금단술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금단술을 사용할 생각을 일찍부터 하고 있던 사람으로서, 그레이엄 후작이 이렇게 먼저 선수를 치고 나니 현실적으로 걸리는 문제들이 생겼다.

당장 황제 폐하부터도 금단술에 대한 경계심이 전보다 높아진 듯했으니……. 이러다 향후 몇 년 동안 단속이 심해지기라도 하면, 덩달아 나도 몸을 사려야 할 수도 있었다.

“그럼…… 이제 그레이엄 후작님은 종신형이나 사형을 선고받는 건가요? 2황비님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1황자님과 2황녀님은요?”

마리나의 물음에, 나는 마력을 흘려보내 그녀의 몸을 살피며 말했다.

“그래도 역시…… 황비의 가족이니 전례대로 형을 때리지는 않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 금단술인 만큼 아예 처벌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 해서 그레이엄 후작과 그 식솔들에게 일반적인 극형이 선고되지도 않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일단 그레이엄 후작은 황비의 가족이었고, 황자와 황녀의 친척이기도 했다.

그러니 전례대로 금단술을 사용한 죄인의 가족들까지 묶어서 형을 집행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이참에 시대에 맞지 않는 연좌죄가 끊기는 것도 괜찮겠지. 물론 그 계기가 황족과 얽힌 사건인 건 우습지만.’

하지만 나도 라미엘과 클로에가 그레이엄 후작과 엮여서 고초를 겪는 건 바라지 않았다.

그러니 그레이엄 후작만 형을 선고받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레이엄 후작은 일단 잡아 뒀으니 이제 남은 중요한 일은 마리나에게 걸린 마법을 푸는 것이었다.

일단 마리나에게 걸린 마법이 어떤 식으로 발동하는 것인지 모르니, 2황비와의 접촉을 철저히 금하게 하고 한동안 1황녀궁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할 듯했다.

혹시 궁지에 몰린 그레이엄 후작이나 2황비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으니까.

‘그 두 사람이 마리나에게 걸린 마법을 해제하는 방법을 알지 않을까?’

그레이엄 후작가에서 금단술의 흔적을 발견한 이후, 내 고민도 깊어졌다.

혹시 마리나에게 사용된 마법도 금단술이 아닌가 의심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마법식을 해제하는 데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마리나의 방에서 나오자 그 앞에 서 있던 제라드가 내게 말했다.

“2황비님의 시녀가 지금 1황녀궁 앞에서 황녀님과의 만남을 청하며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어쩐 일로 직접 시녀를 보내셨나 모르겠군.”

나는 그저 그러냐는 듯이 반응한 뒤 내 방으로 향했다.

그레이엄 후작의 일로 몸이 달은 카타리나가 이 시점에 이렇게 나한테 시녀를 직접 보낼 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짚이는 부분은 있었지만 이렇게 바로 카타리나와 만날 생각은 없었다. 좀 더 마음이 급해질 때까지 기다리게 해야지.

“그레이엄 후작에게도 종신형이 선고됩니까?”

그때 조용히 내 뒤를 따르던 제라드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물음을 듣고 나는 눈매를 작게 떨었다.

하긴, 귀가 있는데 제라드도 그레이엄 후작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리 없지.

잠깐의 동요를 내색하지 않고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건 폐하께서 결정하실 일이야.”

제라드도 감정의 기복이 느껴지지 않는 차분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금단술을 사용한 자는 이유를 불문하고 사형, 혹은 종신형이 선고되는 게 아니었습니까?”

“이번엔 경우가 조금 달라.”

“무엇이요?”

“그레이엄 후작은 직접 금단술을 사용하는 현장을 적발당한 게 아니니까. 그러니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직 확신할 수 없어.”

그래도 똑같이 금단술 때문에 일가가 패망하고 신분을 잃은 제라드에게는 부조리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지금도 가끔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 제라드의 부친은 벌써 4년째 카뮬리타의 고립된 최북단의 수용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니, 아마도 죽기 전까지 바깥 공기를 쐬게 될 일은 없을 터였다.

제라드는 그 후로 말이 없었다. 등 뒤로 느껴지는 침묵이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졌다.

조용한 복도를 걸으면서 내 머릿속에도 여러 생각이 오갔다.

“제라드…….”

“황녀님.”

그러다 내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며 제라드를 불렀을 때, 제라드도 동시에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한순간 멈칫한 제라드가 말했다.

“먼저 말씀하십시오.”

“아니, 너부터 말해.”

제라드는 잠깐 말없이 나를 보다가 다시 천천히 입술을 뗐다.

“황녀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잠시 다녀오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어디를?”

“라스너 백작가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이번에는 내가 멈칫했다.

“라스너 백작가? 갑자기 거긴 왜?”

“제가 살던 곳이기도 하고, 그래서 언젠가 한 번쯤은 들러 봐야겠다고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라드는 살짝 눈을 내리깔면서 말을 이었다.

“이번에 직접 가서 확인하고 싶은 게 생겨서요.”

그러나 다음 순간, 다시 시선을 들어 나를 마주한 제라드의 눈에는 망설임의 흔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니, 제가 꼭 가서 확인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니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라드가 살았던 라스너 백작가는 당연히 황성과 굉장히 먼 곳에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다녀오는 걸 허락해 달라니.

제라드는 내 종속 기사이자, 미래를 위해 준비해 둔 제물이었다. 한데 그런 그를 황성 밖으로 내보내 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다 만약 제라드가 돌아오지 않기라도 하면…….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손을 움찔했다.

나는 단순히 제라드가 내 제물로 쓰일 사람이라 그런 걱정을 하는 건가?

“생각해 볼게.”

왠지 또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껄끄러워졌다.

그래서 그냥 제라드에게 그렇게 말한 뒤 먼저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앞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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