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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황녀님-107화 (123/203)

107화

24. 우리 집에 왜 왔니?

그레이엄 후작가의 위에 생겨난 균열은 일대 파란을 만들어 냈다.

물론 얼마 전에도 균열 두 개가 제도의 시가지와 상점가가 모여 있는 4지구에 연달아 생겨난 적이 있긴 했다.

그러나 자그마치 세 개의 균열이 이 정도로 시간차 없이 한꺼번에 발생한 건 전례 없는 일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엄청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사건이었기에 황실에서도 그레이엄 소유의 부지를 일시적으로 봉쇄하는 것을 바로 허가했다.

지금까지 중에 가장 대규모의 마법 부대가 신속히 투입되어, 세 군데의 균열에서 나온 괴생물체들을 늦지 않게 처리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레이엄 저택에 있던 사람들도 일찌감치 대피해, 기적적으로 인명 피해 또한 없었다.

이는 1황녀 아르벨라가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놀라운 결단력으로 누구보다 신속한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고 알려져 있었다.

“특이한 경우이니만큼 면밀하게 조사해 봐야 합니다.”

나는 황제 폐하의 어전에서 강경하게 주장했다.

“상공에 두 개의 균열이 나타난 게 불과 얼마 전의 일입니다. 한데 또 이런 문제가 발생했으니, 앞으로도 얼마든지 비슷한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지금까지보다 균열이 발생하는 원인을 찾는 데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폐하.”

황제 폐하는 ‘그 말이 맞긴 하다만.’ 하고 읊조리며 턱을 매만졌다.

‘답답하시긴. 일단 허락해 주면 내가 다 알아서 할걸.’

그는 아직도 그레이엄 후작의 저택을 폐쇄시킨 뒤 조사하는 것에 미온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후작저인 데다 2황비의 외가인데 쥬논 그레이엄의 승인 없이 움직이기는 그렇다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균열이 세 개나 터져도 이 모양이니, 만약 내가 다른 문제를 핑계 삼아 그레이엄 후작저의 조사를 주장했으면 더군다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앞에 놓인 탁자에서는 계속 상소문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레이엄 후작은 이제 거의 초 단위로 황제에게 상소문을 보내는 중이었다.

균열은 물론 중차대한 국가 문제이나,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자신의 저택을 포함한 부지 일부를 대뜸 봉쇄해 버리는 것이 가당키나 하냐는 것이었다.

그레이엄 후작의 반발은 생각 이상으로 엄청났고, 황제 폐하께서는 오히려 그게 거슬리는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귀찮은 듯이 내게 손짓했다.

“1황녀의 뜻대로 하라.”

“감사합니다, 폐하.”

* * *

“황녀님.”

다시 그레이엄 후작가로 가기 전에 1황녀궁에 들렀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마리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연히 오늘의 사냥 대회는 더 이어지지 못하고 일찍 끝났다.

마법약 시음회 사건에 이어 전례 없던 균열까지 연달아 발생한 탓에 자리를 비운 사람들이 많아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후작저 바로 위에 균열이 세 개나 열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쥬논 그레이엄의 얼굴은 정말 봐줄 만했었다.

시음회에 올라간 마법약이 누구 것인지도 모르고 제 꾀에 제가 넘어간 2황비 카타리나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마리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황녀님, 왜 제 방 앞에 다른 사람을 세워 두셨나요? 제가 황녀님의 심기를 어지럽힐 만한 일이라도 했나요?”

그녀는 혼란스러워 보였다.

내 시선을 받고 당혹감 어린 눈을 흔드는 모습이 정말 오늘 생긴 일과 조금도 상관없이 무고해 보였다.

“혹시… 오늘 사냥터에서 있었던 일의 범인으로 저를 의심하는 중이신가요?”

실제로도 마리나는 진실을 판별하는 마법에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오늘 시음회에 나갈 마법약에 부작용이 생기도록 중간에 손을 쓴 것이 마리나란 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오늘 사용될 마법약이 내가 새로 발표할 신제품이라 알고 있던 것도 시음회를 준비한 우리 궁의 시녀들뿐이었다.

더군다나 얼마 전 마리나가 2황비와 접촉하는 모습도 목격했다.

물론 그건 아주 잠깐이었고, 또 우연한 것으로 보였지만 이후에 마리나가 수상한 행동을 보인 건 사실이다.

나는 마리나에게 손을 뻗었다. 차가운 손이 닿자 마리나가 한순간 움찔 몸을 떨었다.

마력을 움직여 마리나에게 혹시 다른 마법적 흔적이 있는지 살폈지만 이번에도 걸리는 건 없었다.

예전이라면 마리나를 좀 더 추궁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에 이런 식으로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 마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 자신을 방에 가두고 감시하는 듯한 상황에 혼란스러워하는 마리나의 모습은 거짓이 아닐 수도 있었다.

“마리나, 너는 나를 믿니?”

마리나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마리나 역시 내 눈을 조용히 마주했다.

잠시 후 마리나가 진심이 담겨 있다고밖에 여겨지지 않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물론이지요.”

“그래, 나도 네가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나도 마리나의 창백한 뺨을 쓸며 말했다.

내가 이렇게 마리나를 방에 두고 그 앞에 지키는 사람을 둔 건 그녀를 감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혹시 그녀도 모르는 새 위험한 짓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카타리나는 마리나를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상태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모양이었으니 말이다.

“나를 믿으면 일단 아무것도 하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다녀와서 다시 얘기하자.”

* * *

그레이엄 후작가의 하늘에는 여전히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한꺼번 여러 개의 균열이 발생한 만큼 거기에서 동시에 쏟아진 괴물들을 처리하는 것도 제법 까다로웠다.

하지만 미리 대비하고 있었기에 신속하게 움직여 인명 피해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레이엄 후작가를 방해 없이 탈탈 털어 볼 구실이 필요했던 건 사실이지만 다른 무고한 카뮬리타 제국민들을 죽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1황녀님, 도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내가 황실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이끌고 그레이엄 후작가에 도착하자마자 쥬논 그레이엄이 분노 어린 얼굴을 한 채 다가왔다.

“이건 제 소유의 저택입니다. 한데 주인인 제가 들어가지 못하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명한 대로 후작저를 둘러싼 반경 5케론까지 출입 금지 결계가 쳐져 있었다.

그래서 그레이엄 후작은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유감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당황스러운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는 후작을 위한 것이기도 해. 처음 균열이 생겨날 때도 후작가의 피해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기억나지 않는가? 혹시 앞으로 더 많은 균열이 오늘처럼 동시다발적으로 후작가 주변에 발생하면 이번처럼 요행으로 막아내지 못할지도 모르지.”

그레이엄 후작을 위한 일인 듯 말하자 그가 이를 악물어 딱딱하게 굳어진 턱을 바르르 떨었다.

“폐하께서 후작을 위해 이렇게 직접 마도학자들을 불러 조사를 명하셨으니 후작은 마음 편하게 쉬고 있어.”

나는 그레이엄 후작을 지나쳐, 그는 들어가지 못하는 결계 안으로 몸을 들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또 다른 결계가 나타났다.

“1황녀님, 꽤 견고하고 복잡한 결계라 그레이엄 후작님께 마법식 해제를 요청드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 결계는 해제식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든 것이라 저도 손을 대기 어렵습니다.”

결계를 들여다본 마법사가 조심스럽게 꺼낸 말에 그레이엄 후작이 뒤에서 조소 어린 음성으로 대꾸했다.

그에게서는 누가 뭐라고 해도 후작저를 둘러싼 결계를 절대 해제해 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후작저를 견고하게 지키고 있는 이 두꺼운 결계는 물론 저택의 주인인 쥬논 그레이엄의 작품이었다.

일전에도 몇 번 몰래 깔짝거려 봤지만, 이 나조차도 쉽게 건드리는 게 어려울 만큼 복잡한 마법식이었다.

‘하지만 그건 들키지 않게 결계를 해제하려고 할 때의 이야기이고, 오늘은 조심할 필요가 없지.’

“괜찮다. 고작 이런 일로 후작이 나설 필요 있나.”

카가가각! 콰앙!

나는 인정사정없이 마력을 움직여 그레이엄 후작가를 둘러싼 결계를 산산이 부숴 버렸다.

뒤에서 그레이엄 후작이 경악하며 ‘안 돼!’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을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폐하께서 명하신 대로 대지에 고인 마력 상태를 상세히 점검해라. 나는 저쪽으로 가 보지.”

사실 내가 허가받은 건 후작가의 반경 5케론 이내의 마력장을 조사하는 것까지였고, 후작저 안에 직접 들어가는 건 협의된 내용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후작저로 향했다. 어차피 이 근처는 봉쇄되어 있으니 나를 방해할 사람은 없었다.

또, 혹시 나중에 문제가 되면 후작저 안에서 수상한 마력의 흐름을 느껴 조사했다고 얼마든지 핑계를 댈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그래, 마음대로 해.”

그래도 내가 데려온 사람들이 보면 귀찮아질 수 있어서, 그들이 다른 곳을 조사하는 동안 제라드만 동행해 후작저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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