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장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요! 정말 이대로 손 놓고 내용증명 날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
해가 넘어가고 밤이 찾아든 지금까지 도 실장은 정신 사납게 가게 안을 빙글빙글 돌며 징징거리는 소리를 했다.
“아까 그 직원의 충고대로 다음 달에 차 실장님을 찾아가 보도록 할게요.”
몇 번째 같은 대답을 하는 그녀도 점점 지쳐갔다.
이 집에서 쫓겨나게 되면 도 실장도 그녀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처지가 되기에 충분히 이해가 갔던 것이다.
하지만 한성 로비에서 도 실장이 벌였던 해프닝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가 지나쳤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특히 눈앞에서 곤히 잠든 석을 보고 있자니 위험했던 그 상황이 떠올라 아찔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같이 떠오르는 얼굴이 있어 오후 내내 그녀를 당혹스럽게 했다.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냐고요. 그러지 말고 박 회장님 집으로 직접 찾아가 보는 건 어때요? 박신우라는 자식, 그 집에 살고 있을 거 아니에요. 집 이름이 현와원이라고 하던데, 택시 타고 가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주희는 도 실장이 현와원의 현 자도 모르는 소릴 하는 걸 듣고야 머릿속을 내내 잠식하고 있던 남자의 얼굴을 지웠다.
“도 실장님, 현와원이 어떤 곳인지 할아버지한테 못 들으셨어요? 집도 집이지만, 그 집 고용인이 수십 명에 경호원도 수십이랬어요. 우리 같은 사람에게 문을 열어 줄 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일단 가서…….”
“그만하세요. 이 늦은 시간에 택시 타고 간다 한들 뭘 어쩌겠다고요? 만나 줄 리가 없는데. 도 실장님은 피곤하지도 않으세요? 전 지금 죽을 것같이 피곤해요.”
인간으로 환생해서 처음 당해 보는 당혹스런 일들로 인해 그녀는 정신과 육체 모두 한계였다.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며 짜증을 내고 말았다.
“많이, 피곤하세요? 택시 타러 가기 힘들 정도로요?”
도 실장이 그녀의 눈치를 보며 여전히 택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물었다.
주희는 좀 더 확실하게 대답했다.
“네. 타러 가는 것도 힘들고, 타고 가는 긴 여정이 더 힘들 것 같아요.”
“주인님이 택시는 피곤하시다니 그럼 다른 길을 알아봐야……. 너무 오랜만이라 잘될지 모르겠네.”
그녀의 거절에 많이 실망했는지 도 실장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주방 겸 탕비실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계약서 일은 제가 어떻게든 알아볼 테니 도 실장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가게 문 닫으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지만 오늘은 피곤하니 일찍 닫는 게 좋겠어요.”
평소 같지 않은 도 실장이 좀 안돼 보여 그녀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도 실장을 다독였다.
그리고 오늘같이 힘든 하루는 조금이라도 빨리 마감하고 싶은 욕심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닫을게요. 주인님은 앉아 계세요.”
도 실장이 먼저 일어서 가게 문을 안에서 잠갔다.
좌르르, 블라인드까지 치는 것으로 마감이 끝났다.
이가서림과 주희,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가 사는 위채, 도 실장이 사는 아래채는, 중앙 마당을 기준으로 모두 연결이 되어 있는 한집이었다.
그래도 평소엔 도 실장이 남의 이목을 생각해 밖으로 나갔다가 옆 대문을 통해 아래채로 들어가곤 했는데, 오늘은 도 실장도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같이 마당을 통해 퇴근하려는 걸 보니 말이다.
달칵. 가게 불도 꺼졌다.
주희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제가 좀 길치라 자신은 없지만 어쨌든 이게 최대한 빠른 길임에 틀림없어요. 가요!”
딱,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어두운 가게 안에 팟, 도깨비불이 켜졌다.
“……?”
도 실장의 뜬금없는 말과 좀처럼 보기 힘든 도깨비불을 본 주희가 영문을 몰라 멍청히 서 있을 때였다.
“식충이, 넌 집 잘 지키고 있어. 금방 다녀올 테니.”
도 실장이 막 고개를 드는 석에게 이해가 안 되는 인사를 했고, 그 순간 그녀의 몸이 갑자기 휙 탕비실로 끌려 들어갔다.
“무슨…….”
“꽉 잡으세요.”
놀랄 틈도 없이 도 실장이 도깨비불과 함께 그녀가 한 번도 열어 보지 않은 창고 문을 휙 열어젖히고 돌진했다.
아아아악!
속으로 길고 긴 비명을 질러댔지만 막상 너무 놀라니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현와원으로!”
도깨비길!
도 실장의 목소리 같지 않은 묵직한 소리를 듣고서야 주희는 자신이 그 험하다는 도깨비길에 들어섰음을 알았다.
신들이 공간이동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거친 길.
저녁에 억지로 먹었던 음식을 다 토할 것같이 속이 울렁거렸다.
* * *
달칵!
신우가 서재 안으로 들어서니 차 실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는데 바로 퇴근하지 그러셨습니까.”
한 가지 알아보라고 시키긴 했지만 내일 보고해도 충분한데 굳이 또 이 늦은 시간에 보고를 하러 온 모양이었다.
“나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알아본 건 정리해서 책상 위에 올려놨습니다.”
언제나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차 실장이다.
할아버지를 닮아 워커홀릭이라 건강이 좀 걱정되긴 하지만, 차 실장만큼 입이 무겁고 잔머리 굴리지 않는 사람은 보지 못했기에 그의 비서는 차 실장일 수밖에 없었다.
막 샤워를 끝내고 나와 다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지만 신우는 개의치 않고 책상으로 향했다.
“난방을 켤까요?”
책상 가장자리에 기대서며 보고서를 드는데 차 실장이 물었다.
허리만 느슨하게 묶은 긴 로브 차림.
차 실장의 시선이 아직 젖어 있는 그의 훤히 드러난 앞가슴에 가 있었다.
“춥진 않지만 난방은 켜는 게 좋겠네요.”
사실 그는 추위도 더위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11월의 초입, 밤이 되면 기온이 더 떨어지니 차 실장은 다를 터였다.
이 집에 자주 드나드는 차 실장나 직원들을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
“현와원의 직원들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출퇴근시키실 생각입니까? 저녁에 불편하지 않으세요?”
“불필요한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더 불편합니다. 차 실장님이 배치해 놓은 경호원들만 해도 충분히 많습니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야 할아버지를 생각해 현와원에 직원들이 살도록 했지만 지금은 혼자가 좋았다.
“경호원 수만큼은 이대로 유지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방직원들이 요즘 통 식사를 못 하신다고 걱정이던데, 어디 안 좋으십니까? 건강검진을 한번 받아 보시는 게 어떨까요?”
“별걱정을 다 하시네요. 보시다시피 전 너무 건강해서 탈입니다. 이 보고서가 한 문화재연구소에 대해 조사한 전부인가요?”
최근 할아버지의 걱정과 염려를 차 실장이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 같은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차 실장의 마음이 읽혀 싫은 건 아니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라 말을 돌렸다.
“네. 현재 저희 쪽에 있는 자료는 그게 전부입니다. 아마 그동안 회장님께서 여지를 많이 두셨을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도 적지 않은 돈이 쏟아져 들어갔을 텐데, 이번엔 그 두 배나 되는 투자금을 유치해 달라고 했다는 말이죠?”
신우는 보고서 첫 장에 적혀 있는 한 문화재연구소라는 이름과 특이한 문양의 로고를 보며 말했다.
“네. 더 자세한 건 들어오는 대로 다시 보고서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던 이가서림 부동산 건은, 알아보니 황 변호사님이 보내신 게 맞답니다. 회장님의 개인 재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너무 터무니없는 계약을 발견해서 처리 중이시라고요. 제가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이가서림은…….”
차 실장이 말을 하다 말고 그답지 않게 미적대며 뜸을 들였다.
“할아버지 친구분이 운영하셨던 그 가겐가요? 2년쯤 전인가, 할아버지께서 일주일을 방에 틀어박혀 계시게 했던 그분?”
“네. 그 이후 손녀분이 그대로 이가서림을 운영하시게 됐는데, 회장님께서 특별히 더 챙기셨습니다.”
이가서림을 한 번도 찾아가 본 적은 없지만 할아버지가 종종 읽지도 않는 고서들을 잔뜩 사오시는 이유를 미루어 짐작하고는 있었다.
로비에서 마주쳤던, 유난히 시선을 끌던 맑은 눈동자의 여인을 떠올리니 할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알아요. 회사 마치시고 돌아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안 오시면 어김없이 책 꾸러미를 들고 오시더라고요. 돌아가시기 3일 전에도 그러셨죠. 원래 계약서는 어디 있죠?”
“아마 금고 안에 따로 보관해 두셨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 건도 제가 다시 한번 볼 테니 차 실장님은 이만 퇴근하십시오.”
차 실장답지 않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지 몇 번이나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걱정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차 실장님.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할아버지께서 직접 사인하신 계약서를 제 마음대로 바꿀 생각은 없으니까요. 살펴 가십시오.”
차 실장의 불안을 알면서도 외면할 생각은 없어, 신우가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보탰다.
“감사합니다. 편히 쉬십시오.”
차 실장은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걱정으로 어두웠던 안색이 순식간에 밝아졌고, 그의 일도 아니면서 감사 인사까지 하고 나갔다.
탁!
“저러니 좋아하지 않을 수 있나.”
차 실장이 나가고도 한참을 더 닫힌 문을 바라보던 신우가 피식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문득 로비에서 본 여인이 떠올랐다.
툭, 들고 있던 보고서를 던지곤 책상 옆에 붙어 있는 금고 앞으로 갔다.
삑삑삑삑, 비밀번호를 눌렀다.
찰칵, 잠금장치 풀리는 소리가 났고, 금고 문을 연 순간 신우는 저도 모르게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순간 신우의 눈동자에 심연 같은 어둠이 담겼다.
한참을 그렇게 금고 안을 무심하게 쳐다보던 신우가 손을 내밀어 뭔가를 꺼냈다.
옷이었다.
할아버지와 처음 만났던 날, 그가 입고 있던 옷.
“태워 버려야지.”
감정이라곤 한 톨도 느껴지지 않는 시선으로 옷을 내려다보던 신우가 말과는 달리 툭, 다시 금고 속으로 옷을 밀어 넣었다.
그리곤 어둡게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로 다른 무언가를 찾아 금고 속을 헤맸다.
“이건가?”
찾던 계약서가 있었다.
대부분의 계약서는 황 변호사가 보관하고 있는데, 이가서림 이주희라는 이름이 들어간 계약서는 왜인지 이곳에 보관되어 있었다.
“평생? 훗, 귀엽군.”
말도 안 되는 계약 기간을 보며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웃고 말았다.
그러다 계약서 뒤에 종이가 한 장 더 있는 걸 발견하고 펼쳐 들었다.
“맞선 각서? 이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3일간 계속 뒤를 쫓아다니며 맞선 얘기로 괴롭혔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막무가내로 맞선을 보라며 할아버지답지 않게 토라지시기까지 했던 기억이.
“그러고 보니 약속을 했었지, 맞선 보겠다고.”
사내대장부가 무르기 없다는 약속까지 받아가며 좋아하셨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새삼 떠올라 무심코 중얼거렸다.
“이주희.”
할아버지의 추억에 계약서에 적힌 여인의 이름이 더해지니 겨우 한 번 봤던 그녀의 얼굴이 더욱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쿵, 내려앉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서재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작은 창고에서 난 것 같아 고개를 돌리는데, 그 순간 창고 문이 벌컥 열리더니 뭔가가 쏟아져 나왔다.
“우아악!”
처음 보는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쿠당탕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느닷없는 침입자에 신우가 눈을 가늘게 떴을 때였다.
남자의 뒤를 이어 곧바로 또 한 사람이 빛과 함께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눈을 질끈 감고 있는 여인이었다.
신우는 놀랄 틈도 없이 본능적으로 움직여 팔을 뻗었다.
털썩!
여인이 바닥에 떨어지게 하지 않으려고 그녀의 몸을 꽉 보듬어 안았다.
이주희.
이 여자가 왜 여기에서 나오는 것인지 머리가 이해하기 전에, 그의 맨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늘어져 있는 여인의 부드러운 감촉이 먼저 머릿속에 들어와 박혔다.
서재에 더 이상 떨어진 게 없는데도 갑자기 쿵, 그의 가슴속 어디선가 뭔가 내려앉는 소리가 나는 듯도 했다.
“아야야! 씨이, 내가 이래서 이 길을 사용하지 않는다니까. 아이고, 삭신이야. 그런데 여기 어디야? 현와원을 잘 찾아오긴 한 거야? 응? 누구세요?”
삼십 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죽는 소리를 하며 어기적거리고 일어나 혼잣말을 하던 남자와 눈을 가늘게 뜬 그의 시선이 마주쳤다.
상냥하지 않은 그의 눈매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어이없는 질문을 하고 있었다.
“왜 현와원을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길을 잃은 것 같진 않군. 그쪽이 서 있는 이곳이 바로 현와원의 심처니까.”
“그렇습니까? 이히, 나 혹시 길눈 어두운 게 고쳐졌나? 이렇게 단번에 찾아온 건 처음…… 헉! 주인님!”
뭐가 잘못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헤벌쭉 웃는 놈을 보며 미친놈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안고 있는 여인을 향해 주인님, 이라고 외치기 전까진.
놈이 앞뒤 잴 것도 없이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고 득달같이 달려들고 있었다.
달려드는 놈이 미친놈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그의 몸도 그 못지않게 이상하게 반응했다.
몸이 반사적으로 달려드는 놈을 슬쩍 피한 것까진 이해가 되는데, 왜 그랬는지 탄력을 멈추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놈을 슬쩍 밀어 버리기까지 했던 것이다.
“우왁!”
쿠당탕!
“으음.”
넘어지는 남자의 비명 소리보다 나직한 여인의 신음 소리가 더 크게 그의 귀에 와닿았다.
신우는 무심하게 땅바닥을 내려다보던 시선을 거둬 여인을 봤다.
품에 든 여인이 새삼 무척이나 작고 여리게 느껴졌다.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였기에 이토록 작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한 팔에도 감기는 작은 여인이었다.
왠지 조금만 세게 힘을 주면 으스러져 버릴 것 같아 신우는 저도 모르게 여인을 안고 있는 팔에서 느슨하게 힘을 풀어야 했다.
그림자를 드리운 여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밀려 올라가고, 물기 머금은 투명한 검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초점이 잡히지 않는지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던 여인의 눈 속에 그의 얼굴이 또렷이 비쳤다.
순간 그녀의 맑은 눈동자가 굴러떨어질 듯 커졌고, 허둥거리며 그의 품을 벗어나려 했다.
“앗, 미안합니다. 미안…….”
여인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벗어나려 버둥거렸지만 그는 이상하게 놓기가 싫어 잡은 팔에 더욱 힘을 주고 말았다.
“아야야! 주인님, 괜찮으세요?”
넘어졌던 남자가 다시 일어서 주인님을 찾을 때였다.
쾅!
서재 문이 부서질 듯 열리더니 경호원 응산이 험악한 기세로 들어왔다.
“대표님! 괜찮으십니까? 방금 이상한…… 넌!”
신우를 살피던 응산이 바로 앞에 있는 도 실장과 눈이 마주치고는 와락 미간을 찌푸렸다.
“허어억! 네, 네가 왜……. 읍읍!”
숨이 멈출 것같이 놀란 표정으로 응산을 향해 삿대질까지 하던 도 실장의 몸이 순식간에 제압당하고 입이 틀어막혔다.
“침입자 놈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맞아, 침입자지. 그런데 이쪽과는 얘기를 좀 나눠야 하니 그 시끄러운 녀석만 잠시 데리고 나가 있어 주면 고맙겠군.”
“괜찮으시겠습니까?”
응산이 신우의 품에 있는 여인을 세세히 살피며 물었다.
“왜, 이쪽도 위험해 보입니까?”
“아닙니다. 나가 있겠습니다. 언제든지 필요하면 부르십시오.”
왠지 모르게 진지한 신우의 말에 응산이 순순히 물러났다.
죽을상을 하고 입이 틀어막힌 채 읍읍거리는 남자를 가볍게 끌고 나갔다.
서재 문이 닫히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제 얘기를 좀 나눠 볼까요, 이주희 씨?”
상대가 먼저 알은체를 했다.
오후에 로비에서 봤던 그 아름다운 남자였다.
의식이 완전히 돌아오기 전에 어렴풋이 들린 현와원이라는 말과 대표님이라는 말을 조합해 보면, 이 남자가 바로 그녀가 꼭 만나야 할 박신우인 듯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최악의 만남이지 뭔가.
어쩌다 이 꼴이 된 건지.
건물주와의 첫 만남이, 느슨하게 걸쳐진 로브 사이로 드러난 맨가슴에 코를 박을 것 같은 헐벗은 만남이라니.
제정신을 유지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돌아가면 도 실장과 쓴 계약서를 갈가리 찢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몇 번이나 들었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 이 위기를 벗어나야 하는 건 그녀였다.
2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