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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마님이 사라졌다-144화 (144/145)

144화

“…공작, 소공작.”

“…예.”

답을 한 이는 데미안이었다.

데미안은 칼리토의 부름에 답하였고 에드먼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향한 곳은 부서진 제단 위에서 아주 느리지만, 분명히 뛰고 있는 검은 심장이었다.

에드먼은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주워 들었다. 금이 갔지만, 칼날 부분은 그나마 멀쩡했다.

“공작, 그건 이미….”

늦었다고 말하려던 찰나였다.

푹, 푹, 푹!

에드먼은 그 작은 칼날로 몇 번이나 심장에 박았다. 그리고 마침내 칼날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과 동시에 심장에서 붉은 기운이 빠져나오면서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아버지, 이제 됐습니다.”

“…그래.”

에드먼은 조각난 칼날을 내려다보다가 몸을 돌려 다프네를 들었다. 고개가 뒤로 젖혀지자 창백한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에드먼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받치고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순간.

“…안 돼.”

긁는 듯한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렸다.

바네사가 바닥을 기어 오며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정확히는 다프네에게.

칼리토는 바네사의 질긴 생명력에 혀를 찼다. 몸에 비축된 성력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목을 그어도 살아남았다. 그 성력을 어떻게 얻었는지 아는 칼리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놔…. 못 줘…! 당장…!”

바네사는 말이 부자연스럽게 뚝 끊어지는 것과 동시에 움직임이 멈추었다. 바네사는 눈을 부릅뜬 채 정면을 응시했다.

“너… 네가 어떻게 감히….”

“그건 내가 할 말입니다.”

세르기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의 뒤에서는 로브를 쓴 이들이 일렬로 서 있었고 커다란 마물을 중심으로 수많은 마물들이 침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었다.

바네사는 성력으로 상처를 치료하려고 했으나 마기는 이미 온몸으로 퍼져 있었다.

“성력은 쓸모없을 겁니다. 원래 다른 이를 위해 준비한 것인데… 당신에게 쓰게 될 줄은 몰랐네.”

“무슨 짓을… 한 거야….”

에드먼은 바네사의 복부에 박힌 검을 살펴보았다. 일반 검이 아니었다.

“…마기.”

마기가 압축되어 검의 형태로 되어 있었다. 때문에 바네사가 곧바로 성력을 끌어모았지만, 마기가 몸 안에 퍼지는 속도가 더 빨랐던 것이다.

바네사의 숨이 멎었다.

에드먼은 일말의 감정을 담지 않은 시선으로 바네사를 내려다보는 것도 잠시 세르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방해꾼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공작.”

“…원하는 게 뭐지?”

“그것참 너무 늦은 질문이군요.”

세르기가 손을 들어 올리자 뒤에 로브를 쓴 이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가만히 있던 마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드먼은 로브를 쓴 이들이 주술사라는 것을 깨닫고 다프네를 칼리토에게 넘겼다.

“잠시 부탁하겠습니다.”

“…알겠네.”

다프네를 넘겨받은 칼리토는 뒤로 물러나 몸을 피했다.

에드먼은 마물을 응시하며 마나를 끌어 올렸다. 검은 아지랑이가 빠르게 그의 주변으로 피어올랐다.

세르기가 손을 튕기는 것과 동시에 주술사가 움직였고 마물이 에드먼에게 달려들었다. 에드먼은 몸을 비롯하여 자신의 검에 마나를 두르고 마물을 상대했다. 데미안은 에드먼이 상대하는 것보다는 작은 마물을 처리하며 그를 도왔다.

마나를 두른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하지만 마물은 아주 미세하게 꿈틀거릴 뿐 물러서지 않았다. 장기전으로 이어질 것 같은 예감에 에드먼은 다프네를 향한 신경을 놓지 않은 채 다시 검을 휘둘렀다.

다른 주술사들은 마기로 만든 날카로운 것을 끊임없이 날렸고 그중 몇 개는 에드먼을 스쳐 지나갔다. 중간중간 데미안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데미안은 마나를 사용하고 있지 않고도 마물을 상대하였으나 발을 절뚝거리고 있었기에 아주 미세하지만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을 낭비해 봤자 좋을 게 없었다.

에드먼은 자신의 내면에 눌러 담았던 마나를 최대치로 끌어 올렸다. 그것을 알아챈 세르기의 여유로운 얼굴에 금이 갔다.

“멈춰.”

세르기의 말 한마디에 마물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에드먼은 이에 굴하지 않고 마물에게 달려들기 위해 발에 힘을 실었다. 그대로 땅을 박차려는 순간.

“황태자 전하, 저와 거래를 하시겠습니까.”

에드먼과 데미안의 시선이 동시에 칼리토에게 돌아갔다.

“…어?”

초조하게 전투를 지켜보던 칼리토가 멍하니 되물었다.

“다프네의 목을 그어 그 피를 심장에 젖히세요. 아직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피가 충분할 겁니다. 그럼 황태자 전하께서 성녀와 거래한 그 조건을 제가 충족시켜 드리겠습니다.”

칼리토는 자신의 바로 옆에 누워 있는 다프네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나뒹구는 말라비틀어진 심장을 번갈아 보았다. 심장은 이미 여러 번 난도질당했음에도 그 형태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전하, 그 조건은 제가 들어 드리겠습니다.”

에드먼은 침착하게 말을 이어 갔다.

“악마가 깨어난다면 세상은 온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권력을 얻어 봤자 무엇 하시겠습니까? 전하의 위로 악마가 군림해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의 전투를 보지 못한 것입니까, 전하? 공작은 질 싸움입니다.”

지나친 확신을 담고 있었다.

에드먼이 문득 섬뜩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을 때, 무언가 빠르게 그에게 날아오고 있었다.

에드먼은 피하는 대신 검으로 쳐 냈다.

하지만 에드먼은 세르기의 입가에 퍼지는 비릿한 미소를 발견하며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검을 뒤집어 확인한 에드먼의 얼굴이 굳었다. 날아온 것은 마기가 아니었다. 마나였다. 에드먼과 같은 검은 마나. 그것은 검을 타고 이미 에드먼의 손에 닿자 빠르게 몸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소공작이 순순히 실험체가 되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검은 마나를 뽑을 수 있을 줄 누가 알았겠나요, 공작.”

“아버지!”

데미안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에드먼은 자신의 마나를 다급히 끌어 올려 내부에 침투하는 마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에드먼은 비틀거렸다.

고개를 돌려 다프네를 보았으나 이미 칼리토가 단검을 움켜쥔 채 다프네에게 손을 뻗고 있었다. 그의 눈은 초점을 잃은 듯 몽롱했고 붉은빛을 띠었다. 그 짧은 사이에 흑마법을 건 것이었다.

에드먼은 칼리토에게 흑마법을 건 주술사를 찾으려 했으나 모두 체격이 비슷하고 손을 들어 올리고 있어 불가능했다.

칼리토가 손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내리기 직전, 그는 에드먼이 마지막 힘을 다해 던진 검이 팔에 꿰뚫렸다.

“으아악!”

칼리토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단검을 놓쳤다. 그리고 그는 번뜩 정신을 되찾았다.

“하, 끝까지 도움 안 되는 것.”

세르기는 낮게 혀를 차며 손짓했다. 마물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프네를 향해 절뚝거리며 뛰어가던 데미안은 달려드는 마물에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추어야만 했다. 에드먼은 겨우 중심을 잡으며 서서히 다가오는 세르기와 마물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에드먼은 마나를 끌어 올렸다.

“아직 힘이 남아 있다는 건가….”

세르기의 중얼거림을 무시한 채 마나를 끄집어낸 에드먼은 제 눈앞에 있는 마물이 아닌 데미안을 향해 뻗었다. 데미안은 상대하던 마물이 재로 변하자 에드먼을 돌아보았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데미안은 에드먼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프네를 향해 뛰어갔다.

그 모습에 세르기는 미간을 좁혔다.

“묻고 싶은 게 있다.”

“마지막 이야기를 들어 드리지요.”

“악마를 왜 깨우는 것이지? 깨운 후 무엇을 할 거고?”

세르기는 잠시 멈칫하는 것도 잠시 웃음을 터트렸다.

“공작께서 이런 질문을 제게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흠, 딱히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 그저 원하기에 하는 것이지.”

“…….”

“다프네를 이용해 악마를 깨운 후, 시체는 제가 잘 보관하겠습니다. 오라비의 소원을 이루어 준 누이에게 그 정도는 베풀어 줄 수 있지요.”

“…난 다프네에게 믿음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다프네가 왜 내게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인지 아직도….”

“그 아이는 영원히 공작께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확신을 담은 말에 에드먼이 자꾸만 바닥으로 떨어지려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제가 그리 교육했으니까요. 다프네는 정이 참 많죠. 다프네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주변 사람들이 죽었는데, 그러고 보니 말해 주는 걸 까먹었네요.”

“…….”

“날 원망하면서도, 내게 매달려 애원하는 모습이 꽤 보기 좋았….”

세르기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가늘게 피어오른 마나가 그에게 날아들었으나 옆에 있는 마물이 대신 맞아 가루가 되었다.

“하, 정말 끝까지….”

세르기는 자신의 옷소매가 재로 변한 것을 보고는 검을 든 채 에드먼에게 다가갔다. 마물에게 씹어 먹히게 할 예정이었으나 마음이 바뀌었다.

사실 세르기는 에드먼의 품 안에 다프네가 있는 것을 본 순간부터 이러고 싶었다. 다프네의 마지막 순간을 보지 못했다는 게 그를 분노케 했다.

다프네의 마지막은 이게 아니다. 자신 때문에 죽은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상기시켜 주면서, 죽는 순간까지도 고통스럽게 눈을 감아야 했다. 그녀가 아끼는 사람들의 품에서 잠드는 게 아니라.

에드먼은 달려드는 세르기를 보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더, 더….’

조금만 더.

“이제 정말 죽어 줘야겠습니다, 공작.”

세르기는 동시에 검을 높게 들었다.

에드먼은 세르기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남은 마나를 끌어 올렸다. 더 이상 남은 마나가 없다고 생각했던 세르기는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설마 자살을…!”

세르기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에드먼은 데미안이 다프네를 안은 채 신전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다프네.’

혀를 굴려 소리 없이 이름을 불러 본다. 주위가 느리게 흘러갔다. 에드먼은 그것을 응시하며, 데미안의 품 안에 축 처진 다프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후회된다.

사랑한다고 한 번이라도 더 말할 걸. 일찍 알아차릴 걸. 그랬다면 우리가, 지금과는 조금 더 괜찮지 않았을까. 소리 없이 차오른 눈물이 그의 뺨을 훑고 떨어졌다.

“에드먼.”

다프네의 목소리와 함께 뺨을 훑던 손이 떠오른다. 얼굴을 담던 그 눈도.

다프네.

우리가 현생에서 함께하지 못했으니 죽어서라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대가 있는 곳이 지옥이라고 해도 곧 따라가리다. 부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다프네.

느리던 주위가 원래의 속도를 되찾고 빠르게 지나갔다. 그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 마나는 순식간에 신전을 집어삼켰다.

에드먼은 세르기와 주줄사, 마물이 비명도 제대로 못 지르고 재로 변하는 것을 모두 눈에 담았다.

기둥이 재로 변하자 신전은 빠르게 무너졌다. 에드먼은 자신의 위로 떨어지는 잔해를 피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에드먼이 눈을 번쩍 떴다. 누군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익히 아는 이의 등장에 에드먼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대마법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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