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에드먼은 눈을 깜빡였다. 그가 입수한 정보로는 데미안은 현재 감옥에 갇혀 있었다.
에드먼이 세르기를 돌아보자 그 역시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에드먼은 데미안의 등장이 그의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음과 칼리토가 성공했음을 깨달았다.
에드먼은 언데드를 썰어 내며 데미안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본 데미안의 몰골은 처참했다. 얼굴의 뼈가 도드라질 정도로 말랐고 옷은 반쯤 찢어져 있었다.
“데미안, 다리가….”
에드먼은 데미안이 오른쪽 다리를 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 괜찮습니다. 별일 아닙니다.”
“하, 왜 전하를 따라가지 않았어.”
“전하께서 볼일이 있다 하시고 저를 먼저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이 계획에 참여하셨습니까?”
“다프네가?”
에드먼은 제게 달려드는 언데드를 베어 낸 후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다프네가 왜 이곳에 있어.”
“분명, 분명… 어머니셨습니다.”
데미안을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최소 고문이라도 당할 줄 알았던 예상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조용히 시간이 흘러갔다. 그런 와중에 바네사는 데미안을 딱 한 번 찾아왔다. 구속되어 감옥에 들어간 당일이었다.
바네사는 데미안을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딱 한 마디를 하고 사라졌다. 때가 될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 준다고.
바네사의 말이 이해 가지 않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감옥을 벗어난 후였다.
데미안은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사람. 바로 다프네였다.
‘어머니의 흔적을 찾은 건가?’
그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대마법사의 텔레포트 스크롤을 사용했고 현존하는 마법사 중 대마법사의 마법 흔적을 쫓을 만큼의 대단한 실력을 갖춘 이들은 없다.
더군다나 다프네의 곁에는 에드먼이 있었다. 에드먼이 마음먹으면 그 누구도 둘을 영영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생각에 데미안은 갈수록 초췌해졌다.
며칠이 지났을 무렵 황태자가 심어 놓은 간수가 데미안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 대한 간단한 설명 후 황태자가 그를 구출하러 올 것이라 말했다.
그다음 날, 정말로 칼리토가 데미안을 구하러 왔다. 칼리토의 뒤에는 두 명의 수하가 로브를 뒤집어쓴 채였다. 그중 한 명이 다프네와 굉장히 체격이 비슷했기에 시선을 떼기 어려웠다.
“전하, 제 어머니는 무사하십니까?”
“공작 부인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몸을 피했네. 무사하니 걱정 말게.”
“…다행입니다.”
당시 데미안은 어두운 곳에 며칠 동안 있던 터라 갑작스레 밝은 곳으로 나오자 정신이 조금 없는 상태였다.
자꾸만 다프네를 연상하게 하는 칼리토의 수하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그가 데미안을 재촉했다.
“마저 할 일을 끝내고 돌아가겠네. 소공작은 일단 대피하게.”
“저도 돕겠습니다.”
“나 말고 공작을 돕게. 현재 회의장에 있을 터이니.”
“하지만….”
“어허. 빨리 가게.”
데미안은 어쩔 수 없이 회의장으로 향했다.
회의장에 도착해 언데드를 처리하면서 그의 의심은 거의 확신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맞습니다!”
에드먼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확실하냐.”
“확실합니다! 제가 어찌 어머니를 착각할 수 있겠습니까!”
“어디, 어디로 갔느냐.”
“그건….”
그때였다.
쿵!
커다란 소리와 함께 땅이 울렸다. 에드먼과 데미안은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새들은 목이 터져라 울며 하늘을 빙빙 돌고 있었고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그것으로 악마를 깨운다고 하지 뭡니까.”
“…악마.”
에드먼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건 악마를 깨우려는 것이다. 그리고 악마를 깨우기 위해서는 중요한 딱 하나가 있다.
“다프네.”
에드먼은 더는 생각을 이어 나갈 틈도 없이 땅을 박찼다.
***
“정말 이거면 충분하겠나.”
다프네의 시선은 데미안이 사라진 방향에 박혀 있었다.
다프네가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바로 데미안을 보게 해 달라는 것. 그러나 그것도 둘이 마주 보고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는 것이었다.
칼리토는 몇 번이나 다프네에게 데미안과 대면해 얘기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으나 단호한 거절만 돌아왔다.
다프네는 자꾸 권하는 칼리토가 조금 우스웠다. 하지만 그것을 굳이 티 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충분합니다.”
“…알겠네.”
“다른 말 하지 않아요. 걱정 마세요.”
다프네는 칼리토가 걱정하는 부분을 정확히 짚어 말했다.
칼리토는 잠시 멈칫하더니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칼리토와 다프네, 우넬이 향한 곳은 검은 숲이었다. 우넬은 다프네를 흘끔 보다가 말의 속도를 높여 칼리토의 옆에 섰다.
“전하, 굳이 이러실 필요까지 있으십니까.”
우넬은 이 계획을 알고 있는 소수 중 하나였다.
“무엇이 말이냐.”
“그저 함정이면 충분합니다. 공작 부인에게 해를 입혔다간 공작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요. 차라리… 공작 부인이 아예 사라지시는 게 더 안전했을 겁니다.”
우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다프네를 죽이고 악마를 깨울 수 있는 피를 이 세상에서 없애 버리는 것만큼 후환이 적은 방도는 없다. 비록 모든 내막을 알게 된다면 에드먼이 돌아서겠지만, 그것이 최선이었다.
“나는 윈터 공작을 포기할 수 없어. 윈터 공작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소리야.”
“전하.”
“단순히 세르기를 처단한다는 것만으로는 내 명성을 쌓기 힘들다.”
칼리토는 세간에 알려진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잘 알았다.
명성을 쌓고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겠지만 모자라다. 과거 칼리토가 한 행동들이 추후 그가 황제가 된 후에도 발목을 잡을 것이다.
그렇기에 칼리토는 또 다른 명성이 필요했다.
가령, 악마를 처단했다는 명성이.
“이제 그것에 대한 말은 일절 하지 마라. 이미 끝난 일이다. 내가 한 말을 잊지 않았겠지?”
“…기억합니다.”
“그래, 그럼 됐다.”
칼리토는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말에서 뛰어내렸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하네.”
검은 숲 안에서는 짐승들이 겁을 먹고 도망가기 때문에 말을 이용할 수 없다.
말을 묶어 두고 셋은 고요한 검은 숲을 걷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한 신전이었다. 이곳을 기억하는 다프네가 멈칫하자 그것을 알아챈 칼리토가 물었다.
“와 본 적 있는 곳인가?”
“…예. 데미안과 검은 숲에서 실종됐을 때 우연히 찾았던 곳입니다.”
“그렇군.”
다프네는 눌러쓴 로브를 꾹 붙잡고 칼리토와 우넬을 따라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아, 와 있었군.”
칼리토가 누군가를 향해 반갑게 말했다.
“전하.”
제단 앞에 서 있던 바네사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그녀의 허리께에는 검은 머리카락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나에게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는 건가?”
“이미 다 들킨 이에게 숨겨 봤자 무엇 하겠습니까.”
바네사는 눈꼬리를 접으며 웃었다.
그러나 시선은 우넬과 다프네를 꼼꼼하게 훑어 내렸다. 바네사의 시선이 다프네에게 향하더니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게 바로… 미지의 존재군요.”
“그걸 어떻게 알지? 저 이는 성녀와 만난 적이 있는데 왜 그땐 못 알아본 거지?”
“아마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겠지요. 혈향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데 이 심장이 반응했던 적은 단 한 번이니 멀쩡했던 모습이었을 테고요. 지금 제가 알아차린 이유는 이곳이 악마의 본체가 잠든 곳인 만큼 천적을 향한 반응이 거세기 때문입니다. 혈향 따윈 필요도 없지요.”
바네사는 품 안에서 검은 무언가를 꺼내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
“…악마의 심장인가?”
쿵쾅거리며 홀로 뛰는 검은 심장의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예, 그렇습니다.”
바네사의 눈이 흥분으로 번들거렸다.
“자, 어서 미지의 존재를 넘기세요, 전하.”
“내 조건은 잊지 않았겠지.”
“그럼요. 미지의 존재를 받는 대신 견고한 황권을 지닌 황제로 만들어 드리겠다는 조건. 잊지 않았습니다.”
칼리토가 다프네를 향해 눈짓했다.
다프네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겼다.
저 심장은 익숙한 기운이었다. 북부에 있을 당시, 선대의 무덤 근처에는 저 기운이 맴돌았다.
그 기운과 맞닿을 때면 다프네의 몸에 거부 반응이 나서 경기를 일으켰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데미안이 그 기운이 묻은 꽃을 가져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데미안에게 피해를 줄까 봐 그 꽃을 쳐 낸다는 게 그만 그의 손을 쳤던 적이 있었다.
“제가 전대 공작의 무덤에서 따온 꽃이 안 좋은 기운이 묻어 있고, 어머니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것의 정체를 왜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때의 실수는 데미안에게 상처로 남았다.
나는 겁쟁이였다. 회피하고 외면하고 불우한 과거를 들먹이며 자위하기 바빴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중얼거리면서. 그러나 그저 볼품없는 겁쟁이에 불과했다. 서로 상처 입는 것을 알면서도 입을 다물었다.
나는 죄인이고, 자격이 없었다.
바네사는 느릿하게 다가오는 다프네의 팔을 낚아챘다. 다프네가 화들짝 놀라며 로브를 꾹 누르자 바네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 미지의 존재인 것이 확실하니 진짜 정체는 상관없지.”
중얼거린 바네사는 망설임 없이 다프네의 손목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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