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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마님이 사라졌다-139화 (139/145)

139화

황궁 회의실.

모든 귀족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상석은 텅 비어 있었기에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 바빴다. 무리는 갈라져 있으나 그들이 얘기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황태자의 쿠데타.

황제가 쓰러지자 황태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처음에는 어차피 앉게 될 황좌를 굳이 먼저 쟁취하려는 건지 이해 가지 않았다. 그저 황태자의 사춘기 즈음이라 생각했다.

황태자가 포섭한 이들 중 윈터 공작과 뮤트 백작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기 전까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아챈 눈치 빠른 소수 귀족은 곧바로 중립을 표하고 칩거에 들어갔다. 황태자가 포섭하기 위해 접근했던 몇몇 귀족들은 뮤트 백작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윈터 공작은 미처 알지 못했다. 윈터 공작은 그만큼 뜻밖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윈터 공작이라고 해도 황궁의 병력을 이길 수 없었다. 더군다나 황태자는 전사했다. 뒤늦게 황태자의 세력이 붙었던 이들이 땅을 치며 후회하는 것도 잠시,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졌다.

윈터 공작이 실은 소드 마스터라는 것이다. 그의 마나는 모든 것을 재로 만들어 버렸고 기세는 순식간에 황태자에게 기울어졌다. 비록 머리 잃은 뱀이지만 윈터 공작이 황위에 앉는다면? 계산을 마친 귀족들은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않기 위해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약 3주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윈터 공작이 실종됐다는 소문이 돌았고, 세르기는 긴급회의를 열어 황비의 회임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황태자의 쿠데타 이후로 두 번째 긴급회의가 열린 오늘, 저번과는 다르게 황태자의 세력임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귀족들이 참석했다. 눈치를 살피고 있던 귀족 중 한 명이 용기 있게 물었다.

“윈터 공작이 죽었다는 말, 사실이오?”

“…….”

질문을 받은 귀족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다른 귀족이 소리쳤다.

“말을 안 해 주겠다는 거요? 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소!”

“정말 양심도 없구먼.”

“…나도 모른단 말이오!”

쏟아지는 질책에 결국 입을 다물고 있던 귀족이 외쳤다.

“그런 소문도 처음 들었소! 윈터 공작이 죽었다면 내가 진작…!”

“‘내가 죽었다’라.”

낮은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소란 속에 문이 열린 것도 몰랐던 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렸다.

“…윈터 공작?”

검은 머리카락, 회색 눈. 그들의 기억보다 좀 더 마른 에드먼이 회의장에 나타났다.

회의장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에드먼은 그사이를 유유히 걸어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어디 한번 자세히 말해 보게.”

에드먼의 시선이 맨 처음 황태자가 포섭한 귀족에게 질문을 던진 이로 향했다.

“내가 죽었다는 그 소문 말이야.”

***

똑똑.

노크 소리에 세르기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들어와.”

낮게 잠긴 목소리로 말하자 문이 열리고 긴 로브를 치렁치렁하게 늘어트린 연로한 마법사 셋이 안으로 들어왔다.

“오셨습니까.”

세르기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자리에 앉으시지요.”

마법사 셋은 차례대로 세르기의 앞에 앉았다.

“뭔가 나온 게 있나요?”

“크흠, 그게 말이오….”

제일 나이가 많은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대마법사가 만든 텔레포트 스크롤이기도 하고 시간이 한 달은 훌쩍 넘지 않았소. 마법의 흔적은 보통 이틀 안에 사라진다오. 근데 후작은 우리를 일주일 뒤에나 부르지 않았소. 그러니 마법의 흔적은 거의 사라졌고….”

탁.

세르기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마법사의 말을 끊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그린 듯한 미소가 걸쳐져 있었다.

“그러니까.”

세르기는 찻잔의 손잡이를 느리게 매만지며 고개를 들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마법사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는 말씀이군요.”

“그, 우리도 노력했소. 다만 대마법사는 무려 영웅 중 한 명이오. 대륙의 마법사들이 전부 모여도 대마법사를… 으아악!”

쨍그랑, 하는 파열음과 함께 마법사가 눈을 부여잡았다. 깨진 찻잔 조각에 찔린 눈에서 피가 멈추지 않았다.

“지, 지금 이게 무슨 짓인가, 후작!”

고상하게 앉아 차만 들이켜던 마법사 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만히 앉아 계십시오.”

부드러운 목소리와 옅은 미소는 여전했다. 그와 눈이 마주친 마법사는 마법을 시전하려다가 주춤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마법의 시전하려면 주문을 외워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주문을 외우기도 전에 저 유리 조각에 찔리는 게 더 빨랐다.

“가만히 계시는 게 좋을 겁니다.”

세르기는 걸음을 옮겼다.

“전 대가를 충분히 치렀습니다. 원하는 것을 다 들어드렸죠.”

세르기는 눈을 움켜쥐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마법사를 바닥에 쓰러트린 후 명치를 발로 밟은 채 말을 이어 갔다.

“안 그런가요?”

“크윽… 후, 후회할 것이오…! 이러지 마시오!”

“하.”

평소 고상하던 태도는 어디 가고 비굴한 표정으로 말하는 마법사의 모습에 세르기는 헛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 마법사 셋을 불러오기 위해 나라의 1년 예산을 탈탈 털어야 했다.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맞추고 성력을 사람의 몸에 운반처럼 옮겨 담는 방법을 알려 주는 조건까지 걸었다.

하지만 마법사 셋은 정말 쓸모없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인내를 가져라, 곧 결과가 나온다. 똑같은 말을 매일 반복하며 시간을 끌며 이렇다 할 성과도 내지 못했다. 세르기의 인내심은 결국 바닥을 드러냈다.

“노아.”

그리 큰 목소리가 아닌데도 곧바로 문이 열렸다.

“데려가.”

노아가 손짓하자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이 바닥에 쓰러진 마법사에게 다가갔다.

“이, 이놈들! 내가 누구인 줄 알고 감히 손을 함부로!”

철컥, 무언가가 마법사의 목에 채워졌다. 이상함을 감지한 마법사는 자신의 목을 더듬었다.

“어… 이, 이건….”

“마력 억제구입니다. 쓸데없이 마력 낭비해 봤자 소용없습니다.”

“후, 후작!”

마법사는 무릎을 꿇었다. 마법사에게 마력 억제구를 채우는 것은 사지가 잘리는 것과 같다.

마법사는 눈에서 흐르는 피가 얼굴을 흠뻑 적시는 것도 개의치 않은 채 세르기의 발치에서 빌었다.

“내, 내가 잘못했네! 무슨 일이 있어도 대마법사의 흔적을 찾겠네!”

“리콜라스 마법사.”

세르기는 그제야 마법사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이름이 불린 리콜라스는 멈칫하는 것도 잠시 한 가닥 희망을 붙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내가 바로 리콜라스네! 대마법사 다음으로 현존하는 마법사 중 가장 마력이 많다는 걸 잘 알지 않는가!”

“좋은 재료가 될 것 같습니다.”

“재료…?”

자신에게 벌어질 일을 알게 된 리콜라스의 몸이 덜덜 떨렸다.

“내가 잘못했네! 후작! 후작! 내게 마지막 기회를…!”

목에 마력 억제구가 채워진 마법사는 반항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끌려 나갔다.

세르기는 손에 쥐고 있던 유리 파편을 카펫 위에 대충 던지고 자리로 돌아왔다. 남은 마법사들은 세르기의 작은 행동에도 어깨를 떨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세르기가 그들을 향해 싱긋 웃었다.

“자, 그럼 얘기를 마저 할까요? 곧 있으면 회의가 시작할 시간이라.”

“세르기 님!”

문이 벌컥 열리고 노아가 들어왔다. 세르기는 미간을 좁혔으나 별일 아닌 걸로 노아가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그는 말을 멈추었다.

“이렇게 급하게 들어온 마땅한 이유가 있어야 할 거예요, 노아.”

“죄송합니다. 그것이….”

노아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회의에 윈터 공작이 참석했습니다.”

***

ㅎㅂㄹㄱ.공금

그 시각, 황궁 안에서 조용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블레드 후작이 회의장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검은 복면을 쓴 이가 칼리토에게 보고했다.

“블레드 후작이 회의장을 나오면 곧바로 연락을 취하거라.”

“예, 전하.”

칼리토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뒤에는 로브를 푹 눌러쓴 이가 있었다.

“부인, 준비됐습니까.”

“…네.”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은 내렸고 준비는 이미 다 끝냈다. 다프네는 로브를 쥔 손에 힘을 가했다.

칼리토가 다프네를 찾아온 것은 수도로 돌아온 당일 밤이었다.

“부인이 살아 있는 한 이 전쟁은 패배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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