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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마님이 사라졌다-137화 (137/145)

137화

에드먼은 창문 앞에 섰다. 선선한 바람이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스쳐 방 안으로 들어왔다.

“뭐 해요?”

아직 잠에 취한 듯한 낮은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리는 동시에 가는 팔이 에드먼의 목을 감쌌다. 그러나 멈칫하더니 팔을 풀었다.

고개를 돌린 에드먼은 다프네가 자신의 어깨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갈 시간을 놓치는 바람에 붕대에는 피가 조금 비쳤다.

“아팠어요?”

가느다란 손이 조심스럽게 붕대 뒤에 닿았다. 에드먼은 다프네의 손을 쥐고 어깨에서 떼게 했다.

“내가 갈아 줄래요.”

“보기 흉합니다.”

“그래도요.”

에드먼은 고집스럽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다프네와 눈이 마주치자 서랍에서 깨끗한 붕대를 꺼냈다. 다프네는 의자를 하나 끌어와 그의 앞에 앉았다.

단단하게 묶인 붕대를 풀자 상처를 지압하고 있던 헝겊이 모습을 드러냈다. 헝겊은 피로 완전히 젖어 있었다. 상처는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다프네는 아물다가 터지고 또 터진 상처를 가만히 보았다.

“다프네.”

“다신.”

“…….”

“다신 이런 짓 하지 마요.”

다프네는 헝겊으로 상처 주변을 닦아 냈다. 상처 위에 헝겊을 올리고 붕대를 단단히 감자마자 에드먼은 다프네의 겨드랑이 아래에 손을 넣어 번쩍 들어 올렸다.

“아….”

푹식한 침대에 눕혀진 다프네가 옅은 신음을 냈다. 밤새 혹사당한 몸은 곧 벌어질 일로 딱딱하게 굳었다. 에드먼은 뻣뻣해진 다프네의 몸에 약하게 입술을 묻으며 중얼거렸다.

“살살하겠습니다.”

시선이 줄곧 자신의 어깨로 향해 있다는 것을 아는 에드먼이 속삭였다. 걱정스러운 얼굴이던 다프네의 표정이 묘해지는 것도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다프네가 눈을 감는 것과 동시에 에드먼이 입을 맞추었다.

둘은 계속 살을 맞댔다. 세상에서 단둘만 남은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놓지 않았다.

다프네는 늘 기절하듯 잠이 들었고 에드먼은 그때 주방으로 내려가 간단한 음식을 만들었다. 다프네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내려와 음식을 같이 먹고 난 후 휴식은 짧았다.

둘은 눈이 마주치면 입을 맞췄고 살이 닿으면 몸을 맞췄다. 눈을 떠 보니 한낮일 때도 있고, 해가 막 지는 무렵일 때도 있고, 깊은 새벽일 때도 있었다.

그렇게 나흘이 지났다.

“…에드먼?”

잔뜩 쉰 목소리가 들렸다. 에드먼은 와이셔츠 단추를 채우던 손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이불을 돌돌 만 다프네가 반쯤 감은 눈을 비비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에드먼은 다프네의 관자놀이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잠시 마을에 다녀오겠습니다. 음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먼은 바로 집을 나와 30분 거리에 떨어진 마을로 향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마을에 딱 하나 있는 허름한 술집이었다. 환한 낮인데도 몇몇 사람들이 술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에드먼은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으나 수도와 관련된 소문은 들을 수 없었다.

‘아직 다 퍼지지 않은 건가.’

이곳이 제국의 변방 중 가장 외진 곳에 있다지만 소문이 정말 더뎠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무려 쿠데타가 일어났는데도 마을은 평화롭기만 했다.

에드먼은 술집을 나와 음식 재료를 샀다. 그리고 집으로 향하기 전 숲에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며칠 전에 써 놓은 종이가 들려 있었다.

에드먼은 망설였다. 손을 들어 휘파람을 불면 그의 오랜 전령이 나타날 것이다. 에드먼이 전령으로 쓰는 매는 후각이 뛰어나기에 에드먼이 어디에 있든 일주일 안으로 그를 찾아왔다.

검은 매가 제 주인을 발견하고 하늘 위를 날아다녔다.

생각을 마친 에드먼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다프네?”

에드먼이 집으로 돌아왔을 땐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재료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에드먼은 고요한 저택에 귀를 기울였다.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열어 보았지만, 그들이 나흘간 함께했던 에드먼의 침대는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다프네?”

에드먼은 애써 불안감을 억누르고 다프네의 방문을 열었다.

“…….”

에드먼은 테이블 위에 개어진 다프네의 숄을 들어 올렸다. 숨이 턱 막히고 시야가 어지러웠다. 에드먼은 비틀거리며 의자를 짚었다.

‘도대체 왜….’

숄을 쥔 손이 잘게 떨렸다.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을 것이다.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잡아서…. 그 후엔 어떻게 해야 하지? 왜 떠났느냐고 물어봐야 할까. 아니면 떠나지 말라고 무릎을 꿇고 애원해야 할까.

하지만 이건.

‘내가 원했던 일인데….’

다프네가 떠나는 것. 다프네가 자신을 떠나 행복하게 사는 것.

에드먼은 깨달았다. 이건 자신이 원하는 일이고, 그렇다 해서 고통스럽지 않다는 건 아니라는 것을.

‘고통….’

에드먼은 자신의 심장 부근을 더듬었다. 욱신거리고 따끔거렸다. 숨만 쉬어도 고통스럽다. 아팠다.

에드먼은 자신을 비웃었다. 고통스러워할 자격이 없다는 걸 잘 아는데도, 지난 나흘간 다프네는 진심으로 자신을 대한 적 없다는 걸 아는데도 에드먼은 다프네를 도무지 놓을 수 없었다.

“에드먼?”

에드먼은 몸을 휙 돌렸다. 뺨이 붉게 상기된 다프네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왜 이곳에 있어요?”

“다프네…?”

“이리 와요.”

다프네가 에드먼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약한 힘인데도 에드먼은 무너질 뻔한 것을 간신히 참고 다프네의 뒤를 따랐다.

“할 게 없어서 집을 둘러보다가 발견했어요.”

허리까지 오는 작은 문을 연 다프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벽 한 면이 모조리 창문으로 이루어진 작은 다락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는 새끼 개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프네는 창가 바로 앞에 앉았고, 굳어 있던 에드먼은 겨우 다리를 움직여 그녀의 옆에 앉았다.

어느새 해가 완전히 지고 밤하늘의 별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다프네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프네의 녹색 눈에 별이 비쳐 반짝였다. 에드먼은 그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떠난 줄 알았습니다.”

그 말에 다프네는 고개를 돌렸다. 다프네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다.

“돌아가요.”

“…….”

“돌아가요, 우리.”

“다프네.”

에드먼은 다프네가 하고자 하는 말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아직 할 일이 남았잖아요.”

“…….”

“지켜야 할 사람들이 남았잖아요.”

다프네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 돌아가요.”

“…….”

“같이.”

***

황궁으로 향한 에드먼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한 점은 블레드 후작이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서부에서 지원군이 왔다고 해도 블레드 후작이 가진 언데드로 충분히 맞설 수 있었다.

하지만 블레드 후작은 갑자기 전원 후퇴 명령을 내리더니 황실의 문을 걸어 잠갔다.

요한과 유레이트는 포기하지 않았다. 몇 년 전 심어 놓은 첩자까지 이용해 황궁의 상황을 전달 받기까지 열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각하와 마님이 독을 드셨고 소공작님께서 두 분을 빼돌리셨다고 합니다. 빼돌린 방도는 텔레포트 스크롤로 예상되고 마법사들이 경로를 추적 중이라고 합니다.”

유레이트, 요한, 알렉, 벤자민, 뉴벨 남작, 우넬을 포함한 단 몇 명의 측근이 모여 첩자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을 풀었다.

“각하와 마님께서 살아 계시는군요….”

벤자민은 안도하였다. 제일 중요한 문제였던 둘의 생사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그는 만족했다.

“그럼 소공작님은 어디 계신답니까?”

요한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까진 무리였나 봅니다. 다만 기사들에게 끌려가셨다고 합니다.”

“블레드 후작이라면 소공작님마저 패로 쓰기 위해 분명 살려 두었을 겁니다.”

모두가 침착하게 하고자 노력했다. 그때, 천막의 입구가 열리더니 누군가 들어왔다.

“소식 들었네.”

“전하!”

우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로브를 쓴 이를 부축하려고 했다. 그러나 칼리토는 손을 내저었다.

“다 회복했다고 하지 않았나. 난 괜찮아.”

“하지만….”

칼리토가 북부에서 올라온 것은 고작 며칠 전이었다. 그를 한 번 잃었던 우넬은 그의 작은 행동에도 전전긍긍했다.

아무리 신성력으로 가득 찬 마력석으로 몸을 회복했다고는 하지만 시간이 촉박했기에 내상을 완전히 치료하지 못했다. 칼리토는 조금 무리해서 수도로 올라왔고 물지 않은 내상 탓에 무리하게 행동하면 가벼운 각혈을 하곤 했다.

“마저 이야기하게.”

요한은 잠시 멈추었던 말을 이어 갔다.

“일단 블레드 후작보다 먼저 각하와 마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녀 쪽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성녀가 포섭한 귀족들이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고 이것을 이상하게 여겨 조사해 본 결과… 저희와 접전이 있던 이들입니다.”

아주 사소하고 작지만 모두 접전이 있던 이들이다. 정확히는 북부와.

“원하는 것이 있는 듯한데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원하는 것이라….”

칼리토는 요한의 말을 되짚으며 중얼거렸다.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십니까?”

“아니, 그냥.”

요한의 말에 칼리토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런 단서가 없으므로 이것을 파악하는 건 어려울 듯싶습니다.”

“그래. 그래서 회의 말일세.”

열흘 내내 닫혀 있던 황실의 문이 긴급회의와 함께 열렸다. 당연히 유레이트를 비롯한 칼리토가 포섭한 귀족들에게는 참석 권한이 없었다.

칼리토는 자신이 몰래 심어 놓은 귀족의 수하인 척 회의에 참석했다.

“…황비가 회임했다는군.”

삽시간 경악으로 물들었다.

“블레드 후작이 황비의 배 속에 든 씨를 이용해 귀족들을 포섭할 생각이군요.”

이렇게 되면 중립을 지키던 이들도 블레드 후작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칼리토가 이미 포섭한 귀족들 사이에서도 배신자가 생길 수 있다. 칼리토가 더는 유일한 황위 계승권을 가진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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