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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마님이 사라졌다-135화 (135/145)

135화

다프네는 억지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작은 발자국 소리와 헥헥거리는 소리는 바로 뒤에서 들렸다. 걸음을 조금 더 빨리했지만 변함없었다.

결국 다프네는 몸을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새끼 개는 까만 두 눈을 반짝이며 다프네를 올려다보았다. 마르고 작은 마지막 새끼 개를 떠올리기 충분했다.

“…나 따라오지 마. 기다려.”

짐승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 기분이 이상했으나 다프네는 몸을 돌려 다시 걸었다. 다행히 다프네를 끈질기게 쫓아오던 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았다.

다프네는 하루에 30분간 홀로 숲을 거니는 이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다프네는 새끼 개를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숲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평화롭고 아름답다. 다프네는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황실에서 주최하는 연회에만 참석할 수 있었다. 그때를 제외하면 다프네는 단 한 번도 저택을 벗어난 적 없었다. 애당초 벗어날 수 없었다. 다프네가 밖을 나가려면 세르기의 허락이 필요했으나 물어볼 때마다 거절만 돌아왔으니 사실상 갇혀 지낸 것과 다름없었다.

‘…벗어났어.’

다프네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정말로 그곳을 벗어났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더불어 현재 자신이 있는 곳은 평소 다프네가 꿈꿔 오던 평화로움이었다.

낮에는 따스하며 저녁에는 선선한 바람이 분다. 날씨는 대체로 맑으며 외부인의 소리는 바람에 차단되어 고요하다.

얼마 안 있으면 북부로 가야 하는 만큼 다프네는 이 자연을 최대한 눈에 담고 느끼고자 다짐했다. 남은 평생을 이 짧은 기억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툭, 툭.

다프네는 차가운 물방울이 얼굴 위로 떨어지자 미간을 찡그리며 눈을 떴다. 맑았던 하늘은 어느새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돌아가야겠어.’

지금은 조금씩 내리고 있지만,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걸음을 옮기려던 다프네는 문득 자신을 졸졸 따라오던 새끼 개를 떠올렸다.

에드먼은 애를 키웠다고 한 만큼 새끼 개를 꽤 잘 관리했다. ‘앉아’와 ‘손’, ‘기다려’도 할 만큼 새끼 개는 똑똑했다.

설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까? 다프네는 기다리라는 말에 자신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던 검은 두 눈을 떠올렸다.

‘없어지면 좋아. 난 동물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다프네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이내 땅을 박찼다.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짧은 사이에 빗줄기는 굵어져 있었기에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다프네는 기억을 더듬으며 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끼잉, 낑….

제발, 제발.

다프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걸음을 멈추었다. 분명 이곳은 새끼 개와 떨어졌던 장소였다. 하지만 텅 비어 있었다.

“하아, 하….”

다프네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녀는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끼 짐승이 비를 피해 들어갈 만한 나무 구멍이나 작은 동굴을 찾아보았으나 없었다.

“소중한 것을 만들면 안 돼. 넌 버림받을 거야. 모두가 누이의 곁을 떠날 거라고.”

세르기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귀를 틀어막은 다프네가 무릎을 쪼그려 주저앉았다.

‘이 말은 언제 들은 거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프네는 개의치 않았다.

세르기는 마치 주문을 외우듯 다프네를 보며 중얼거렸다. 다프네, 넌 버림받을 거야. 모두 네 곁을 떠날 거야. 그러면서 손을 내밀었다. 마치 자신의 손을 잡으라는 듯이.

다프네는 숨을 헐떡였다. 단 한 번도 그 손을 잡고 싶은 적 없었다. 하지만 절벽 끝에 내몰려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은 세르기가 유일했다.

세르기는 한 발짝 떨어져 손을 내밀었다. 기어코 다프네가 자신에게 다가오게 하였다. 그는 그녀를 고립시켰고 가두었다. 오래전 양쪽 날개가 잘린 새는 다 큰 후에도 날개를 펄럭거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다프네는 몸을 한껏 웅크렸다. 차가운 빗줄기가 다프네의 마른 몸을 사정없이 때렸다.

“아가씨, 왜 제 딸을 죽이셨어요? 아가씨 때문이에요. 아가씨가 자진해서 가셨으면 제 딸은 죽지 않았어요.”

“아가씨, 제게 그 말을 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 유모가 죽길 바라셨던 거죠? 아가씨 때문에 죽었어요.”

“아가씨, 왜 제게 시선을 주셨나요? 시종에 불과했던 제가 아가씨의 시선을 받았다는 이유로 죽었어요. 너무 고통스러워요.”

“아가씨, 아가씨. 아가씨… 다 아가씨 때문이에요.”

“다프네, 네 탓이야. 네가 빨리 결정을 내렸으면, 네가 말하지 않았다면, 네가 시선을 주지 않았다면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아아, 다프네. 누이. 다 네 탓이야.”

“미안해. 미안해…. 다 나, 나 때문이야. 미안해요, 미안해요. 오라버니….”

다프네의 몸이 무너졌다.

캉캉거리는 짖는 소리가 들렸다. 다프네는 흐릿해지는 시야에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프네! 다프네!”

익숙한 얼굴이 가까이 다가와 다프네를 들어 올리는 순간까지, 그녀의 시선은 바닥으로 향해 있었다.

낑낑 앓는 소리를 내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까만 두 눈.

아, 살아 있구나.

다프네는 안도하는 동시에 정신을 잃었다.

***

다프네는 축축한 무언가가 자신의 뺨을 핥자 눈을 찡그리며 얼굴을 돌렸다. 하지만 또다시 축축한 게 뺨을 핥았다. 가슴이 묵직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다프네는 순간 눈을 번쩍 떴다. 시야에 가득 찬 것은 새끼 개의 얼굴이었다.

“……!”

다프네는 화들짝 놀라 상체를 휙 일으켰다. 다프네의 가슴에 자리를 잡고 뺨을 핥던 새끼 개가 데굴데굴 침대를 굴렀다.

다프네는 조금 멍한 얼굴로 축축하게 젖은 뺨을 문질렀다.

“다프네! 일어났습니까?”

문이 열리고 에드먼이 들어왔다. 그는 들고 있던 것을 테이블 위에 허둥지둥 놓고 다프네에게 다가왔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괜찮아요.”

에드먼은 다프네의 이마를 손으로 덮어 열을 쟀다. 살짝 미열이 있긴 했지만 열이 많이 내렸다.

다프네는 새벽 내내 고열에 시달렸다. 약을 먹고 찬 수건으로 몸을 닦아도 열이 내리지 않았다.

“다 내 탓이야. 미안해, 미안해.”

다프네는 고열에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녀가 이곳에서 지내기 시작한 사흘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악몽을 꾸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누군가를 향할 사죄를 계속 늘어놓았다.

그럴 때마다 에드먼은 굳은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옆에서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그게 맞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제는 조금 달랐다. 다프네는 발작을 일으키다시피 발버둥을 쳤고 계속 눈물을 흘렸다. 에드먼은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에드먼은 다프네를 단단히 끌어안고 속삭였다.

“모든 해도 됩니다. 무슨 짓을 해도 됩니다. 그러니까… 제발 울지 마세요.”

한참을 그렇게 귓가에 속삭였다.

다프네의 발작은 점차 느려지더니 동이 틀 무렵이 돼서야 멈췄다.

“한참이 지나고 다프네가 오지 않아 찾아가려고 할 때 비가 내렸습니다. 그런데 빗물에 자국이 다 지워져 도무지 찾을 수가 없더군요.”

에드먼은 다프네가 떠난 줄 알았다. 모든 기억을 되찾고 자신을 떠난 줄로만 알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던 그의 정신을 깨운 것은 이 새끼 개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새끼 개는 그의 바짓가랑이를 물어 당기고는 마치 따라오라는 듯 어딘가로 뛰어갔다. 에드먼은 홀린 듯 뒤를 따랐고 다프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원한다면 지금 입양 보내겠습니다.”

에드먼은 침대 위를 뒹구는 새끼 개를 보며 말했다. 다프네가 좋아할 줄 알았으나 그녀는 사흘 동안 단 한 번도 새끼 개를 만지지도, 보지도 않았다.

“…아니요.”

에드먼이 가져온 수프를 먹던 다프네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새끼 개의 머리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뿐, 다프네는 머뭇거렸다.

새끼 개는 제 머리 위에 닿을 듯 말 듯 떠 있는 다프네의 손바닥을 보다가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아!”

손바닥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에 다프네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거두었다.

“제게는 통 정을 주지 않았는데, 다프네가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다프네의 창백한 뺨 위로 옅은 미소가 번졌다. 다프네는 아까보다 조금 덜 조심스러워진 손짓으로 새끼 개의 머리를 어색하게 매만졌다.

“이 아이는… 뭐라고 부르면 되나요?”

“아직 없습니다. 다프네가 지어 주세요.”

이름.

다프네는 입술을 달싹였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이름이 없어요.”

“그럼 천천히 지어 주면 됩니다.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돼요.”

다프네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먼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어느새 비가 그친 하늘은 언제 비가 내렸느냐는 듯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시원한 바람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다프네의 남은 식은땀을 식혀 주었다.

“…몸이 완전히 회복하면.”

에드먼은 소박한 커튼을 손가락을 비비며 말문을 텄다. 왠지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 모습에 다프네도 덩달아 뻣뻣하게 그의 말을 기다렸다.

“같이 소풍을 가시겠습니까.”

“…….”

“저 아이도 같이.”

에드먼의 시선을 따라 돌리자 새끼 개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다프네는 다시 에드먼을 돌아보았다.

그는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다. 긴장으로 입꼬리가 뻣뻣해져 있었고 그의 시선은 하염없이 다프네를 살폈다. 바람이 불어서 자신이 어떻게 된 게 틀림없다.

“…좋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대답을 했을 리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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