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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마님이 사라졌다-127화 (127/145)

127화

에드먼은 자신의 무지함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열흘 동안 왜 아무런 연락도 취하지 않았냐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에드먼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각하께서 더 이상 전령을 보내지 말라 하셨기에 마님을… 내치신 줄로만 알았습니다.”

에드먼은 뒤늦게 충분히 오해할 만한 상황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극독에 당했을 때도 한 번도 비틀거린 적 없는 에드먼이 휘청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다프네는 열흘 동안 황태자의 저택에 머물렀다. 그리고 사라졌다. 방은 어질러진 기색도 없었다고 한다. 다프네가 스스로 따라나섰다는 것이다.

생각나는 인물은 단 한 명이었다.

‘세르기 블레드.’

에드먼은 칼리토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런 그가 다프네를 납치한 이유는 딱 하나. 바로 자신이 다프네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거다.

그리고 그걸 세르기도 눈치채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세르기는 분명 알고 있다.

“…하.”

에드먼은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자신의 약점인 다프네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에드먼은 곧바로 알렉을 불렀다.

알렉이 들어왔을 때 에드먼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친 후였다. 알렉은 에드먼이 잠복 차림을 하고 있자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각하, 설마….”

“다프네를 구해 올 거다.”

“안 됩니다.”

알렉은 단호히 말했다.

칼리토가 고비를 넘겼긴 하지만 언제 깨어날지 그리고 언제 완전히 건강을 회복할지 모른다. 그때까지 에드먼은 칼리토의 역할을 대신해야 했다.

그런 그가 만약 홀로 황궁에 잠복해 큰일을 당하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차라리 저나 크리스를 보내십시오.”

적어도 에드먼이 큰일을 당하는 것보단 이게 나았다.

하지만 에드먼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다른 이가 끼어들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프네가 그렇게 된 건… 내 탓이야.”

에드먼은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그에겐 사죄를 할 권리도 없다는 듯이.

“내가 만약 더 이상의 전령을 받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에드먼의 목소리는 말이 이어질수록 잘게 떨리고 고통에 젖어 들었다. 숨이 막히듯 에드먼의 목소리는 점점 흐려졌다.

“각하께서 짊어지신 무게는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 합니다.”

알렉은 이러한 말을 하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자신이 말하는 그 무게는 그도 모른다. 상상도 못할 만큼 버겁고 힘겹다는 것을 모르기에 말이 술술 나오는 자신이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알렉.”

“하지만 저도 마님께 지은 죄가 적지 않습니다.”

방관하고 무시하고 외면한 것. 알렉도 다르지 않았다.

이것이 그저 마음의 죄책감을 덜어 내기 위한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공작님께서 성녀의 수하로 계셨다고 하셨죠. 성녀가 황궁으로 향했습니다. 소공작님께서도 황궁에 계시겠죠.”

에드먼은 알렉이 하고자 하는 말을 눈치챘다.

“소공작님을 통해 마님을 빼내 올 수 있을 겁니다.”

***

다프네는 굳게 닫힌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섰다.

시체를 태우는 희미한 연기가 보였다.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살결에 그대로 맞닿았다.

다프네는 저도 모르게 오소소 돋아난 팔뚝을 꾹 눌렀다.

머릿속에서 세르기는 이미 잊힌 지 오래였다. 다프네는 조금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성녀는 아름다웠다. 화사한 머리색이 그녀를 더 신성해 보이게 만들었다. 세르기가 성녀와 같은 편이었다는 것을 알아챈 다프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성녀의 얼굴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에드먼과 똑 닮은 얼굴.

칼리토에게 전달 받아서 본 신문에서는 눈을 내리깐 옆모습이기에 그저 아름답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본 성녀는 더욱 아름다운 것은 둘째치고 에드먼과 가족이라고 해도 될 만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에드먼에게 형제가 있다는 것은 들어 보지 못했다. 다프네는 혼란스러움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딸깍.

한창 고민에 빠져 있었기에 다프네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았다.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세르기가 자리를 잡고 앉아 찻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소리를 낸 게 틀림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어, 누이.”

“…이곳을 어떻게 빠져나갈지 고민했어요.”

세르기는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난 누이가 정이 많다는 것을 알아.”

다프네가 결혼하기 전 블레드가에서 살던 때 아끼던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사람도 물건도 마찬가지였다.

일정 시간 시선을 주는 것이 다음 날 갈기갈기 찢겨져 있거나 온몸의 구멍에서 피를 쏟아 내고 있으니 당연했다.

정이 많다는 것을 아는 이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다프네는 여전히 세르기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안나라는 하녀를 꽤 아끼는 모양이야. 충성심도 있는 것 같고.”

다프네의 어깨가 크게 움찔거렸다.

역시, 안나를 데리고 있던 건 세르기가 맞았다.

“어, 어디 있어요? 무슨 짓을 한 건 아니죠? 무사한 거죠?”

다프네는 속사포로 질문을 쏟아 냈다.

그 모습에 세르기가 미간을 좁혔다. 다프네가 이렇게 불안해할 것이라는 걸 알고 한 말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저런 모습을 보니 어딘가 모르게 불쾌감이 일어났다.

다프네는 지금까지 내 것이었다.

내 누이, 내 실험체.

오직 아무것도 담지 않은 채 두려움에 떠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봐야 하는데. 수십 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다프네는 기어코 소중한 것을 만들고 말았다.

비틀린 기이한 형태의 집착이 그도 모르게 점점 몸집을 키워 나갔다.

“누이.”

다프네의 눈이 불안함에 흔들렸다.

그녀는 자신을 향한 세르기의 기묘한 집착을 어느 순간부터 눈치챘다. 만약 여기서 다프네가 조금이라도 잘못 행동한다면 세르기는 그녀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모두 망가트릴 것이다.

안나, 에드먼, 데미안….

그의 손아귀에 떨어질 이들의 이름을 되뇐 다프네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주먹을 세게 말아 쥐었다. 다프네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두려움에 떨면서 그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내가 말했잖아.”

예상과는 다르게 세르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섬뜩한 협박을 했다. 마치 계속 경고를 무시하고 사고 치는 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어투였다.

“소중한 것을 만들면 안 돼. 넌 버림받을 거야. 모두가 누이의 곁을 떠날 거라고.”

유모와 어머니처럼. 다프네는 세르기의 이어질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에게 매번 들은 말이다.

다프네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에드먼과 데미안이 함께 있는 평화로운 모습을 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이런 행복을 조금이라도 더 누를 수 있다면, 버림받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다프네는 무릎을 꿇었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세르기의 눈이 조금 커다래졌다.

“그들을 살려 주세요, 오라버니.”

다프네는 이 전쟁의 결말을 안다. 에드먼은 실패할 것이다.

그리고 에드먼은 실패하기 직전, 마지막 발악인 동시에 최후의 수단을 사용할 것이다. 자살.

“제발, 제발….”

다프네는 그것을 막고 싶었다. 그들을 살릴 수 있다면 다프네는 세르기의 앞에서 몇 번이든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릴 수 있다.

자신이 비참하게 굴수록 세르기가 흡족해한다는 것을 잘 아는 다프네는 눈물을 떨구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들이 네게 그렇게 중요한 이들이더냐.”

“그저… 지난 5년간의 은혜를 갚는 거예요.”

“…좋아.”

안도의 한숨이 나오기도 전에 세르기가 덧붙였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조건, 이라는 단어에 다프네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눈이 마주쳤다. 다프네는 세르기의 입가에 번지는 짙은 미소에 몸을 잘게 떨었다.

이 때문에 다프네는 자신의 몸을 타고 올라오는 어둠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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