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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마님이 사라졌다-125화 (125/145)

125화

에드먼이 바네사의 흔적을 쫓지 않은 건 아니다.

공작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는 전대 공작의 무덤에서 바네사의 초상화를 발견하고 곧바로 수색했다.

하지만 바네사는 분명 죽었다.

그녀가 머물렀던 빈민가를 싹 다 뒤져 보았으나 죽었다는 증언밖에 없었다. 에드먼에게 돌아온 것은 이미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썩은 시체였다.

“그녀는 죽었습니다.”

“분명 살아 있네.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

에드먼은 혼란스러움울 감추지 못한 채 눈을 깜빡였다.

“…이것은 소공작이 내게 알려 준 걸세.”

“데미안이… 말입니까?”

“그래. 소공작은 내게 지금까지 신전에 관한 정보를 전달했네.”

칼리토가 언데드에 대해 알고 언질을 주었던 것이 생각났다.

신전에 사람을 심었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성녀의 진짜 목적이 뭔지 모르겠지만 미지의 존재를 찾고 있다고 들었네.”

“미지의 존재가 실존합니까?”

칼리토는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실존하니까 찾으려는 거 아닌가.”

에드먼은 바네사가 살아 있고 성녀라는 것에 이어서 미지의 존재가 실존한다는 이야기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칼리토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일단 성녀가 신전에 있는 게 확인되었네. 중요한 건 언데드야.”

칼리토는 언데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소드 마스터인 우넬과 페롤라를 들여보냈고 에드먼은 알렉을 불러왔다.

“검은 기사단장은 어딜 가 있었지?”

그가 안 보였다는 것을 알아챈 칼리토가 날카롭게 질문했다.

“제 명을 받아 다른 곳에 있었을 뿐입니다.”

칼리토는 미간을 좁혔다가 이내 언데드 이야기로 넘어갔다.

“윈터 공작님의 마력 외에는 다른 마력은 별로 통하지 않았습니다. 잠깐 주춤할 뿐이고 잘려도 움직입니다.”

언데드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이다.

완전히 잘린 부위는 재생되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붙어 있다면 재생된다.

머리를 잘라도 움직인다.

지능이 낮다.

몇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 보았지만 뚜렷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에드먼은 문득 손에 묻어 있는 재와 바닥에 흐트러진 재를 번갈아 보았다.

“…불.”

“불?”

“불로 혹시 지져 보셨습니까. 불에 타면 재가 되어 움직일 육체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칼리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우넬 역시 따라 일어났다.

“혹시 몰라 생포한 언데드가 하나 있습니다.”

우넬은 언데드와 횃불을 가져왔다. 우넬에게서 횃불을 받은 칼리토가 발버둥 치는 언데드의 몸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피부가 코팅이라도 된 듯 불이 금방 다시 꺼졌다.

“아무래도 이 약점이 들통날 것을 우려해 방지를 해놓은 것 같습니다.”

에드먼은 기름통을 언데드의 위에 뿌리고 불을 붙였다. 그러자 아까와는 다르게 불이 활활 붙어 타올랐다.

“……!”

언데드가 괴성을 지르며 몸을 비트는 것도 잠시, 몸이 빠르게 재로 변하면서 무너졌다. 언데드가 있던 자리에 재가 쌓인 것은 한순간이었다.

“…방법을 찾았군요.”

에드먼은 횃불을 구석에 던졌다.

***

“벌써 열흘이 지났습니다.”

유진은 소파에 널브러진 채 중얼거렸다.

원래대로라면 그도 그 일에 합류해야 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 그랬는데, 지금은 소파에서 널브러진 신세이다.

계획대로 일이 진행된 것이 틀림없다. 열흘 전 진작 열렸어야 할 건국제는 조용히 지나갔다. 치열한 물밑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유진은 벌떡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 주변의 인기척을 살폈다.

“부단장님, 이 정도 인기척이면 금방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마님이 하신 말씀 못 들었나.”

“진짜 마님 말대로 하려고요?”

다프네가 그들에게 남긴 말을 간단했다.

기다려라.

“그냥 진짜 기다리고 있겠다고요?”

“마님께서 생각이 다 있으실 거다, 유진.”

“부단장님! 지금 그런 태평한 말씀이 나오십니까? 저는 몰라도 부단장님 같은 인력이 빠지면 분명 피해가 더 막심할 겁니다.”

크리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유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을 진행하기 위해 황태자는 아주 최소한의 인원을 남겨 두고 떠났다. 저택에 남은 인원은 유진이 눈 감고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각하께 전령이라도 보내 봅시다, 네?”

“각하께서… 더 이상의 전령을 받지 않겠다 하셨다.”

“예?”

유진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게, 무슨….”

유진의 눈이 잘게 떨렸다.

유진은 처음 이 명령을 받게 되었을 때만 해도 상황 파악이 안 됐다. 갑자기 당일 아침에 통보받았기 때문이다.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와중에 목적지와 자신이 맡은 역할을 들었다.

“저희… 각하께 버림받은 겁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크리스는 버럭 소리쳤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유진, 그 말은 각하께서 마님을 버리셨다는 말과 같다. 각하께서 마님을 버리고자 굳이 우리를 이용하실 것 같으냐.”

“…아닙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유진은 다시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진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부단장님.”

“왜.”

“집사님이 저택 앞을 서성거리고 계시는데요.”

크리스는 유진의 말에 창문 앞으로 달려갔다. 로브를 뒤집어쓴 채 저택 앞을 서성거리는 이는 벤자민이었다.

“어찌 여기 계십니까.”

크리스보다 더 날쌘 유진은 곧바로 몰래 방을 빠져나와 벤자민을 방 안으로 데려왔다.

벤자민은 창백한 얼굴로 물었다.

“제가 물을 말입니다. 왜 남부가 아니라 이곳에….”

“그게….”

유진이 우물쭈물하자 크리스가 나섰다.

“이곳은 황태자 전하가 몸을 숨기고 계시던 저택입니다.”

“황태자 전하라니….”

노인의 얼굴이 혼란스러움에 휩싸였다.

“저희도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마님에게 해를 가하고 있는 것 같진 않습니다.”

벤자민은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저희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닉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벤자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마님을 만나 봬야 합니다. 당장.”

“무슨 일 있습니까.”

받은 전령도 없고, 전령을 보낼 수도 없는 크리스와 유진은 초조해 보이는 벤자민의 모습에 긴장한 얼굴로 되물었다.

벤자민은 이들이 열흘이 넘도록 갇혀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는 도로 자리에 앉았다.

“일단 상황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벤자민은 숨을 고르듯 후우, 하고 내뱉은 후 충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황태자 전하는… 전사하셨습니다.”

***

일주일 동안 수많은 일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황태자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황태자는 두 번째 전투에서 전방에서 전투를 하다가 화살에 맞고 즉사하였다. 급하게 신관을 데려왔지만 이미 꿰뚫려 멈춘 지 오래된 심장은 뛰지 않았다.

황태자의 사망에 아군은 사기를 잃었고 이탈하는 이들이 발생했다.

그때 에드먼이 나섰다.

모두 패배를 예상했던 세 번째 전투에서 에드먼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마력을 썼다. 세 번째 전투는 온통 재만 남은 전투로 압도적인 대승을 거두었다.

사기는 다시 일어났다.

“제가 알기론 각하께서 팔찌를 벗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크리스는 펄쩍 뛰어올랐다.

대마법사가 준 팔찌는 힘을 막는 것으로도 쓰이지만 에드먼이 폭주하지 않게 막는 임시방편이었다.

그것을 벗은 채 폭주를 한다면 대피할 시간을 벌 새도 없이 그의 주변이 온통 재로 변할 것이다.

“각하는 분명 아슬아슬한 상태이실 겁니다. 제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 일에서 각하를 빼 오는 겁니다.”

“집사님.”

“각하께서 계시니 이 일은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런 후에는요? 각하께서 황위 욕심이 있으신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다른 이를 주기엔 마땅한 이가 없다.

또한 그러한 이유로 에드먼이 억지로 황위에 오른다면 반말이 거셀 것이다. 황실 핏줄을 전혀 잇지 않았으니 나라는 추문에 휩싸일 것이다 점차 망하게 될 것이다.

벤자민이 하고자 하는 뒷말을 예상한 크리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집사님의 말이 맞습니다.”

크리스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계획이 어떻게 되십니까.”

“일단 각하를 설득하여 전투에서 전사하신 척하실 겁니다. 그리고 각하를 빼 내와 나라가 진정이 될 때까지 몸을 숨길 겁니다.”

“하지만… 각하께서 분명 넘어오시지 않을 겁니다.”

에드먼은 한 번 내린 명력을 거의 번복한 적 없다. 그만큼 선택을 할 때 신중을 가하고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각하를 설득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누가….”

크리스는 말을 잇다 말고 멈추었다. 벤자민이 아까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설마 마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벤자민은 침묵으로 긍정하며 일어났다.

“한시가 급합니다. 빨리 마님을 만나 봬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가시죠.”

셋은 기척을 숨긴 채 몇 없는 이들의 눈을 피해 다프네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

“남작 부인!”

그 안에는 뉴벨 남작 부인이 쓰러져 있었다. 유진은 곧바로 다가가 인중에 손을 가져다 댔다. 숨을 쉬고 있었다.

“단순한 기절입니다.”

벤자민은 뉴벨 남작 부인의 옆에 놓인 것을 발견하고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마님을 잠재울 때 썼던 약입니다.”

크리스는 활짝 열린 창문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저희가 한발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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