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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마님이 사라졌다-111화 (111/145)

111화

다프네가 그 자취를 따라가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힘이 억지나 억센지 에드먼은 다프네를 붙잡은 손을 놓쳤다.

데미안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다프네의 목소리를 미처 듣지 못한 에드먼이 당황하는 것도 잠시 손을 뻗었다.

쾅!

그러나 둘 사이의 벽돌이 허물어지면서 복면을 쓴 이들이 쏟아지듯 뛰쳐나오는 것이 더 빨랐다.

“다프네!”

에드먼은 먼지와 연기가 뒤섞여 뿌옇게 올라와 시야를 가리자 미간을 찡그리며 걸음을 옮기는 다프네의 뒷모습을 향해 외쳤다. 분명 그 외침이 닿았을 것이 분명한데 다프네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에드먼은 작게 욕을 중얼거리며 복면을 쓴 이들을 베었다. 피가 튀겼으나 에드먼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다프네의 모습을 응시했다.

복면을 쓴 이들의 실력은 형편없었고 에드먼은 두 번째 사람을 베는 순간 이들이 단순히 시간 벌기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더 불안해졌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다프네가 모퉁이를 꺾는 모습이 보였다.

“다프네!”

다급히 외쳤으나 다프네는 끝내 모습을 감추었다.

“각하!”

모습을 숨기고 있던 알렉이 나타나 에드먼의 뒤에 있던 이를 베어 냈다.

“나머지를 처리해. 다프네를 찾아!”

거칠게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명령하던 에드먼은 곧바로 다프네가 사라진 모퉁이를 돌았다.

‘젠장….’

텅 빈 골목을 보는 에드먼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

다프네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계속 시야에서 아슬아슬하게 사라지는 로브 자락을 따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마침내 앞서가던 이가 멈춰 서자 다프네도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췄다.

“데, 데미안.”

다프네는 떨리는 목소리로 데미안의 이름을 불렀다.

로브를 쓴 이가 뒤를 돌고, 머지않아 턱 아래까지 썼던 모자를 잡아 올렸다.

“……!”

“어머니.”

다프네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데미안….”

오랜만에 보는 데미안의 얼굴은 퍽 초췌했다.

다프네는 머뭇거리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으나 데미안은 흠칫, 뒤로 물러났다. 다프네가 다가온 걸음보다 정확히 두 배였다.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금방이라도 훌쩍 떠날 것 같은 모습에 걸음을 멈춘 다프네는 다급히 물었다.

“어, 어디에 있었니? 별일 없었고? 왜 돌아오지 않는 거야. 응?”

다프네의 재촉에도 데미안의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때가 되면 알게 되실 겁니다, 어머니.”

그 의미심장한 말에 다프네의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다프네의 입가가 잘게 경련했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거니.”

“어머니.”

데미안은 이번에도 대답 대신 자신이 할 말을 했다.

“아직… 아직 남았습니다. 아직….”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다프네는 황궁 정원에서 데미안이 한 말을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말을 했다.

“아직 부족합니다. 어머니의… 전 아직 다 느끼지 못….”

다프네는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무엇이 부족하다는 건지. 무엇을 다 느끼지 못했다는 건지.

“어머니, 최대한 황궁에서 멀리 떠나세요.”

“뭐…?”

“제 마지막 부탁입니다.”

마지막.

그 단어에 다프네의 혀가 굳었다. 다프네는 뒤도는 데미안을 향해 입술을 달싹였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붙잡아야 하는데, 말해야 하는데. 걱정했다고….

“다프네!”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와 동시에 몸이 휙 돌아갔다.

“괜찮습니까?”

에드먼의 눈이 다프네를 샅샅이 훑었다.

그의 등장에 다프네의 굳은 혀가 조금은 풀렸다. 다프네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데… 미안….”

다프네가 하고자 하는 말을 곧바로 알아챈 에드먼이 로브를 푹 눌러쓰고 사라지려는 데미안을 발견했다.

“데미안.”

“아버지가 지금 하시려는 일, 그만두세요.”

에드먼보다 데미안이 한 발 더 빨랐다.

데미안은 고개를 비스듬히 튼 채 둘을 향해 말했다.

“큰 피해를 입으실 겁니다. 애당초 성공 가능성도 낮은 일입니다.”

에드먼은 데미안이 무슨 일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차렸다.

“그걸 네가 어떻게….”

“블레드 후작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안다.”

세르기는 알고 있다.

칼리토는 저를 향해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는 짐승에게 스스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을 그도, 에드먼도 진작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얼핏 드러난 눈은 당황으로 물들어 있었다.

“우리에게 피해는 없을 거다.”

“아니요. 그들이 가만히 놔둘 리 없습니다.”

데미안은 초조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으며 그 말을 부정했다. 확신의 찬 목소리였다.

“그녀는….”

데미안의 시선이 다프네에게 향하는 것과 함께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흐리게 번졌다.

“…돌아와, 데미안.”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다프네가 앞으로 나왔다.

“돌아와.”

다프네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짰다.

그 간절한 목소리는 그 무엇이든 들어줘야 할 것 같았다. 데미안 역시 홀린 듯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갑작스러운 인기척을 느낀 데미안과 에드먼이 동시에 고개를 돌린 것은 그때였다. 에드먼은 말없이 검을 움켜쥐었다.

데미안은 걸음을 멈추었고 인기척을 모르는 다프네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데미안을 향해 땅을 박찼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인기척을 읽던 데미안과 에드먼의 시선이 다프네에게 집중되었다. 때를 놓치지 않은 이들이 골목 어귀에서 튀어나왔다.

“다프네!”

“어머니!”

둘은 동시에 다프네를 감쌌다.

“윽.”

다프네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눈을 깜빡였다.

바로 앞에 데미안이 있었다. 계속 일정 거리를 유지하던 데미안이 눈앞에. 다프네는 안도했다. 데미안이 맞았다. 허상이나 환영이 아니었다.

데미안은 곧바로 검을 빼 들었다. 달빛을 머금은 검이 은은한 색으로 다채롭게 빛났다.

“…데미안.”

에드먼은 데미안의 검을 휘감은 검은색 연기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명은 나중에 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일단은 저들을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수가 꽤 많았으나 처리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 이의 심장에 칼을 꽂았던 검을 빼낸 데미안은 검은 기사단의 인기척을 느끼고는 로브를 꾹 잡은 채 뒤로 물러났다.

“조만간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데미안의 시선이 다프네에게 옮겨졌다.

“제 마지막 부탁을 제발 들어주세요, 어머니.”

“데미안!”

데미안은 그대로 사라졌다.

다프네는 조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데미안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 뒤였다.

알렉을 비롯한 검은 기사단이 나타나 에드먼과 이야기를 나눴다. 다프네는 그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알고 있었죠.”

알렉과 대화를 멈춘 에드먼이 고개를 돌렸다.

“데미안이 날 찾아올 거라고 당신은 알고 있었죠.”

확신을 답은 어조에 에드먼은 다프네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알렉을 향해 말했다.

“먼저 가 있어.”

알렉은 불안한 눈으로 다프네와 에드먼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물러났다.

어딘지 모를 골목길에는 다프네와 에드먼 단둘만 남게 되었다.

“습격도 다 알고 있었어, 당신은. 그래서 그렇게 태연하게 검을 빼 들고… 저들을 누가 보냈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았잖아요.”

다프네는 중얼거렸다.

길드에 고용된 암살자라도 에드먼은 꼭 꼼꼼하게 확인을 하곤 했다. 그러나 에드먼은 시체를 건드리기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배후가 누구인지 안다는 듯이.

“데미안과 접촉을 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다른 방도를 찾다가….”

“데미안이 날 찾아올 거라는 걸 알게 된 거군요.”

다프네는 에드먼의 뒷말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데미안이 자신을 찾아오고, 데미안과 접촉해야 했던 에드먼. 데미안을 찾는 것을 막지 않은 데미안.

그런데 데미안은 다 알고 있음에도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창백한 얼굴로 이리저리 살폈다. 그의 이중성에 토가 나올 것 같았다.

“하.”

다프네는 작게 조소했다. 모든 게 에드먼의 계획이었다.

“…말을 흘린 것도 일부러였죠?”

에드먼 같은 오러 각성자가 다프네의 인기척을 읽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됐다.

다프네는 데미안에게 정신이 팔려 미처 자각하지 못한 구멍투성이 거센 파도처럼 자신을 감싸는 감각에 어깨를 떨었다.

“데미안과 만나기 위해 날 이용한 거네요.”

“…….”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아요.”

고개를 든 다프네의 얼굴은 그의 예상을 벗어났다. 지독히도 무표정이었다.

텅 빈 눈과 마주한 에드먼의 입 안이 버석하게 말랐다.

“그냥 계속 이렇게 입 다물고 있어요.”

입술을 달싹이던 에드먼이 멈칫했다.

“당신이 다른 한마디라도 하면… 내가 진짜 죽어 버릴 것 같아.”

다프네는 숨을 헐떡이며 말을 한 후 에드먼을 지나쳤다.

에드먼은 멀리 떨어진 알렉을 향해 눈짓했다.

다프네를 위해 가져온 마차에 그녀는 타지 않을 게 불 보듯 뻔했다. 분명 고집을 꺾지 않고 걸어서 저택으로 돌아갈 것이다. 에드먼은 그녀에 대해 다 알지 못했지만 이것만은 확신했다.

알렉은 에드먼의 눈빛을 알아듣고 조용히 발소리를 죽인 후 다프네의 뒤를 따랐다.

홀로 남은 에드먼의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에드먼은 결단을 내렸다. 다프네의 눈에 아무런 감정도 남지 않을 바에는, 경멸이 낫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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