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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마님이 사라졌다-106화 (106/145)

106화

황실로 떠났던 마차는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벤자민은 에드먼의 재킷을 받아 내면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남작 부인을 다프네에게 보내.”

“예, 알겠습니다.”

에드먼의 그 명령은 벤자민의 생각에 확신을 실어 주는 것이었다.

“각하. 그것이… 손님이 와 계십니다.”

“손님?”

에드먼이 되물으며 집무실의 문을 연 때였다.

“왔는가.”

“…전하.”

에드먼은 제 집무실 한 곳에 자리한 칼리토를 보며 멈칫했다. 가벼운 옷차림의 칼리토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일세. 거의 한 달 만인가. 아, 자리에 앉게.”

칼리토는 제 집무실인 것처럼 에드먼에게 자연스럽게 자리를 권유했다. 에드먼은 칼리토의 앞에 앉으며 말했다.

“편지도 없이 무슨 일이십니까.”

“아무래도 편지가 발각된 것 같아.”

칼리토의 그린 듯한 미소가 사라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칼리토는 느긋하게 뒤로 젖혔던 허리를 폈다.

“잡으셨습니까?”

“아직. 아무래도 쥐새끼가 들어온 것 같은데… 뭐, 다행히 발각된 편지는 그리 중요한 내용도 아니었고.”

칼리토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 슬슬 수도로 올라올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칼리토는 현재 공식적으로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이다. 그가 남부에서 죽었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고 있음에도 황실에서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칼리토의 계획 일부였다. 세르기도 칼리토가 죽었다고 생각하게끔 한 후 몰래 수도로 들어올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 계획을 꾸민 블레드 후작은 칼리토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편지가 발각되었는데도 칼리토가 번듯이 살아 있는 것이겠지.

세르기 칼리토가 황궁으로 알아서 기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건국일 일주일 전 계획을 실행할 생각이다.”

그의 계획은 이러했다.

칼리토가 얻은 정보에 따르자면 성녀는 건국일 당일 모습을 등장한다. 보기 드문 방대한 신성력을 가진 대신관이 있는 마당에 성녀까지 등장한다면 신전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세르기는 차선책까지 생각하여 대신관과 성녀 둘 다 손을 잡은 상태이다. 세르기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다. 지금 여기서 세르기의 세력이 더 커진다면 중립을 고수하던 귀족들도 살기 위해 그의 아래로 붙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칼리토의 쿠데타가 성공할 확률이 반타작으로 줄여 버린다. 그러니 애당초 성녀가 등장하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야 했다.

“전하, 혹시 블레드 후작이 거느린 주술사에 대해 아십니까?”

“주술사? 이미 사라진 것들 아닌가?”

“현재 블레드 후작은 주술사를 이용해 귀족들을 포섭하고 있습니다. 전하의 세력 중에서도 흑마법에 당한 이를 발견했습니다.”

에드먼은 칼리토에게 황실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심문하고 있으나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흑마법을 시전한 주술사가 죽기 전에는 절대 풀리지 않습니다.”

“주술사는 모르지만, 실험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 있네.”

칼리토는 미간을 좁히며 기억을 더듬었다. 워낙 오래전에 들은 것이라 가물가물했다.

“블레드 후작이 어릴 적부터 실험에 대한 관심이 높았는데, 문제는 친척 중 몇 명을 사고사로 위장하고 실험체로 썼다는 거야.”

끔찍한 이야기였다. 20여 년 전, 단 1년 사이에 방계 가문 중에서 총 8명이 사망하고 3명이 실종되었다.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람이 죽은 가문에는 사망 신고 한 달 후 재산이 거의 두 배로 늘어났고 꼭 먼 해외로 떠났다는 것이다.

아이가 죽은 가문의 공통점은 곧 파산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빚이 많다는 것이었다.

“증거도 없는 이야기야. 나도 어디서 주워들은 것에 불과하고.”

칼리토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었으나 에드먼은 왠지 모르게 실험에 대해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실험….’

정답을 계속 코앞에서 놓치는 듯한 불쾌함이 일었다.

“그런데 이미 포섭한 이들에게까지 블레드 후작이 손을 뻗으면 더는 포섭이 힘들어질 텐데….”

“방도가 있긴 합니다. 흑마법에 걸린 이들은 일시적으로나마 붉은 눈을 가지게 됩니다.”

“힘들겠군.”

칼리토는 까슬까슬한 턱을 매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뮤트 백작이 있어서 다행이야. 적어도 그가 있는 한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황실이 완전히 장악될 일이 없으니까.”

유레이트가 다시 나타나고, 황실에서 세르기의 힘이 많이 약해졌다. 세르기가 하는 일마다 유레이트가 방해를 하니 전처럼 힘을 뻗기 힘든 게 당연했다.

“앞으로 그대는 어떻게 할 것이지?”

“건국제 전까지 주최되는 연회는 다 참여할 생각입니다.”

“그래, 그편이 좋겠어. 그대는 연회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뮤트 백작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게 될 테니까.”

에드먼과 뮤트 백작의 피가 이어져 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만약 황제의 패악이 계속되고, 세르기의 무분별한 악행이 계속된다면 겁에 질린 귀족들은 뮤트 백작의 말에 쉽게 회유될 것이다.

“그럼 조만간 다시 만나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칼리토는 로브를 푹 눌러썼다.

창가에 서서 칼리토가 제 수하와 함께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던 에드먼은 이내 자리로 돌아왔다.

두통이 밀려오자 에드먼은 낮게 신음하며 품 안에서 궐련을 꺼내 물었다.

“후회?”

불을 붙이던 손이 멈추었다.

에드먼은 궐련을 입에 문 채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하지 말아요. 그냥,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아요.”

에드먼은 궐련을 손에 든 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땐 궐련이 완전히 뭉개져 피울 수 없는 형태가 된 후였다.

“하아.”

궐련의 연기보다 더 짙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에드먼은 오늘도 잠들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고, 그것은 빗나가지 않았다.

**

다음날, 다프네는 에드먼이 미리 타 있는 마차에 올랐다.

“출발해.”

에드먼은 다프네가 자리에 앉자 말했다.

“데미안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

“오늘 데미안에게 접촉할 예정입니다.”

마치 수하가 상관에게 보고하듯 딱딱한 어투였다.

“…그래요.”

다프네는 대충 대답한 후 다시 창문을 고개를 돌렸다.

연회는 언제나처럼 지루했다. 다프네는 도통 웃음을 터트리는 이들에게 공감할 수 없었다.

‘가고 싶어.’

어디로?

다프네는 문득 이어진 생각에 흠칫했다. 내가 돌아갈 곳에 있었던가. 집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있었던가. 다프네는 한숨을 꾸역꾸역 삼켰다.

더군다나 어제와 다르게 오늘 연회에는 엘리자벳이 참석했다. 마치 시선으로 다프네를 잡아 삼킬 것처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기에 어제보다 더 힘들었다.

“실례할게요.”

연회장에 들어온 순간부터 에드먼과 다프네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던 엘리자벳이 그들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다가올수록 겨우 붓기를 가라앉힌 뺨에서 열이 피어올랐기에 다프네는 긴장감에 몸이 뻣뻣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에드먼과 엘리자벳은 약혼식까지 열었던 사이이고 다프네와 엘리자벳은 하마터면 전처와 현 부인 사이가 될 뻔했으니 말이다.

한땐 모든 이들의 입방아에 오르던 셋이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오랜만에 만나네요, 공작. 그리고 부인.”

“…그렇습니까.”

에드먼은 인사를 하는 대신 애매한 대답을 내놓았다. 누가 봐도 엘리자벳의 등장을 반기지 않는 듯한 태도였기에 주변에서는 숨을 들이켰다.

“공작 부인께서 허락만 해 주신다면, 공작과 춤을 한 곡 추고 싶은데요.”

에드먼은 다프네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될까요?”

에드먼은 문득 불안감에 휩싸였다. 다프네가 이대로 고개를 끄덕일까 봐, 마른침을 삼키며 초조하게 다프네를 보았다.

“…제 의견이 중요할까요.”

다프네는 무심하게 대답하며 눈을 반쯤 내리깔았다.

“그럼 공작에게 물어봐야겠군요?”

엘리자벳은 에드먼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프네가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입을 뻐끔거렸다.

“어때요, 저와 춤추겠어요?”

“…다프네, 잠시 알렉과 있으십시오.”

에드먼은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엘리자벳이 뻗은 손을 맞잡고 중앙으로 걸어갔다.

“저런, 공작 부인을 저렇게 혼자 내버려 둬도 괜찮은 거예요?”

“무슨 속셈입니까.”

에드먼은 음악이 시작되는 동시에 바로 물었다.

“설마설마했는데… 공작의 태도를 보니 확신이 섰네요.”

엘리자벳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공작은 부인께 도대체 어떤 약점이 잡히신 거예요?”

엘리자벳은 에드먼의 눈썹이 움찔거리자 까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노려보지 말아요. 정말 궁금한 걸 어떡해요.”

엘리자벳은 진심이었다.

정말로.

다프네는 도대체 어떻게 에드먼의 약점을 알게 되어 결혼한 걸까. 그리고 그 약점은 무엇일까.

이 정보를 들은 것은 어젯밤 난장판이 된 방에 서서 화를 삭이던 때였다.

“내 누이는 공작의 약점을 잡고 계약 결혼을 한 겁니다, 황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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