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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마님이 사라졌다-100화 (100/145)

100화

“주술사가 자리를 뜬 것 같습니다.”

주변을 뒤져 보았지만 별다른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영지 내에서 별다른 피해가 발생한 것도 아니었기에 주술사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잠적하고 있거나 떠났거나 둘 중 하나인데… 전자일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후자라고 해도 지금까지 모습을 숨기고 있는 거 보면 아직 때가 아닌 것 같고요.”

“일단 계속 성벽 근처를 주시하도록 해.”

황제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마당에 주술사까지 합세한다면 상당한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대단한 주술사라면 단 한 명만으로도 한 군대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니, 주술사란 존재 자체는 방심하면 큰 사달이 난다.

“그리고… 전령이 왔습니다. 수신지는 황제입니다.”

“…건국일 초대군.”

매년 이맘때 오는 것이었기에 에드먼은 굳이 전령을 뜯어보기 전에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시국에 건국일이라니….”

요한은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말마따나 나라가 한 사람의 손에 넘어가게 생겼는데 꿋꿋하게 건국일을 개최하는 황제를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쩌면 블레드 후작의 계획 중 일부분일지도 모르지.”

모든 귀족은 물론 대신관까지 모인 건국일.

에드먼은 건국일이 세르기의 계획 중 하나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판단력이 흐려지고 권력을 잃어 가는 황제가 건국일을 개최하고 싶다고 해서 개최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 뒤에 분명 세르기가 있었을 것이다.

“각하를 초대하셨습니까?”

“전과 같다.”

사냥 대회 때가 생각났다.

윈터가 일가 모두 참석하라는 내용의 전령을 보는 에드먼의 미간에 자리한 인상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다프네는.”

요한의 보고가 끝나자 에드먼은 넌지시 물었다.

“…어제와 별다를 게 없으십니다.”

그런가, 에드먼은 눈을 내리깐 채 대꾸했다.

에드먼은 고개를 들었다.

“그래, 이만 가 봐.”

“예.”

요한이 나가고 에드먼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두통에 자연스레 품 안으로 손을 뻗었다.

“궐련은 끊어라. 몸에 안 좋다.”

궐련통이 손에 닿아 잘그락거렸으나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대마법사의 목소리에 멈칫했다.

에드먼의 고민은 짧았다. 궐련을 꺼내 입에 문 때였다.

“각하, 들어가겠습니다.”

벤자민은 차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벤자민은 에드먼이 궐련을 입에 문 것을 보고는 차를 따르며 말했다.

“근래 두통이 심해지신 모양입니다. 궐련을 더 자주 찾으시는 것 같습니다.”

에드먼은 아직 방에 남아 있는 궐련 연기를 바라보다가 물고 있던 궐련을 뺐다.

“드십시오. 두통이 좀 가라앉을 겁니다.”

에드먼은 차를 한 번에 들이켜고 다시 궐련을 집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창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이 순식간에 방 안을 훑었다.

에드먼은 창문 바로 앞에서 궐련에 불을 붙였다.

“각하.”

“말해.”

“각하의 방식은 현재 잘못됐습니다.”

궐련을 이제 막 빨아들이려는 에드먼의 몸이 멈칫했다.

“요한에게 전달받았다면 잘 아시겠지요. 마님이 오늘도 홀로 나가시려고 했다가 실랑이까지 났습니다.”

에드먼이 다프네의 방이 들르고 또다시 이틀이 흘렀다.

다프네는 더 이상 에드먼을 찾지 않았다. 그러나 저택을 탈출하려고 했고 그럴 때마다 번번이 붙잡혀서 방으로 돌아갔다.

“…다프네를 위한 일이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벤자민의 목소리는 간절하기까지 했다. 그는 실제로 간절했다. 그의 주인은 어려서부터 ‘혼자서도 잘하는 아이’였다. 그는 뭐든지 혼자 했다.

하물며 감정을 나누는 것조차 혼자였다. 그 말인즉, 감정을 내비치는 일이 없었다는 것과 같다.

감정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에드먼의 감정은 아주 오래전부터 제 아비에 의해 야금야금 갉아 먹혀 바닥을 드러냈을 뿐.

이 때문에 에드먼은 완벽해 보였다.

그러나 그가 아이였을 적부터 보필해 온 벤자민은 불안할 뿐이다. 벤자민이 보는 에드먼은 어딘가 모르게 위험한 구석이 있었다.

에드먼이 그것을 드러낸 적이 없고 벤자민이 그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애써 문제 삼지 않았던 것뿐이지, 그는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에드먼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컸다. 그 때문에 그에게 사랑이라는 복잡하고 단순하고, 어려우면서도 간단한 감정은 해일 같았을 것이다.

사랑만큼이나 거대한 감정 변화를 일으켜 오는 것은 없다.

사랑 하나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데, 하물며 이전에는 별다른 감정을 느껴 본 적 없을 에드먼이 사랑을 하기엔 그는 아는 것도 경험도 없어 위험할 뿐이다.

에드먼은 견고하다. 그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러는 동시에 위태로웠기에 벤자민은 차마 자신이 오래전 깨달은 것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벤자민은 지금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 말을 너무 늦게 했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각하의 그 방식은 마님을 더 메마르게 할 뿐입니다.”

감금하고 곁에 두는 것.

에드먼은 큰 실수를 했다.

“…….”

어느새 궐련을 입에서 땐 에드먼은 타들어 가는 궐련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벤자민, 나는….”

겁쟁이다.

미처 내뱉지 않은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각하께서는 분명 정답을 찾으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벤자민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었는데 각하를 보니 기사들에게 붙잡혀 소리를 치던 마님의 모습이 떠올라 도무지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게 아니라, 제가 온 이유는 드릴 말씀이 있어섭니다.”

“…말해.”

“소공작님이 수도로 떠나신 데에는 제 책임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에드먼이 몸을 비틀던 찰나였다. 예고도 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

“각하!”

뉴벨 남작 부인은 창백한 얼굴로 거친 숨을 헐떡였다.

“마, 마님께서… 마님께서…!”

에드먼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바람이 불었다. 공기가 찬 탓인지 유난히도 따갑게 느껴지는 칼바람이었다.

다프네는 새하얀 북부를 멍하니 바라보며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한데 모았다. 하지만 바람이 워낙 센 탓인지 자꾸만 풀렸다.

“다프네!”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렸다. 다프네는 고개를 돌려 정면을 보았다. 모여 있는 이들을 뚫고 나타난 것은 에드먼이었다.

“가까이 오지 말아요.”

다프네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에드먼은 마법에 걸린 듯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추었다.

“다프네, 지금 뭘, 뭘 하는….”

“이걸 원한 게 아니었어요?”

다프네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운 채 물었다. 그 말에 에드먼은 더듬더듬 말을 이어 갔다.

“그게,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가 언제 이런 걸 원했다는….”

에드먼의 목소리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날 숨이 막혀서 죽이려 하길래, 내가 죽기를 바란 줄로만 알았어요.”

다프네는 커다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그녀의 말은 틀린 게 없었기에 에드먼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여기서 떨어져도 운 좋으면 식물인간일 것 같은데.”

다프네가 걸터앉은 곳은 테라스의 난간이었다. 4층에 위치한 에드먼의 방의 테라스 난간.

“사람들을 물려요. 저 아래 기사들도.”

다프네는 흘끔, 아래에서 떨어질 자신을 대비해 모여 있는 기사들을 보며 말했다.

“…나가. 아래 기사들도 물리고.”

“각하, 그건….”

“어서!”

에드먼은 외쳤다.

모두가 나가자 방은 한순간에 고요해졌다. 그저 휘이잉, 하는 바람 소리만 둘 사이를 시끄럽게 어지럽힐 뿐이었다.

“…원하는 게 있다면….”

“날 사랑한다고 했죠.”

다프네는 에드먼의 말을 끊었다.

“그 말, 믿어 줄게요.”

“…다프네.”

에드먼은 눈을 깜빡였다.

“왜요? 내가 기뻐하면서 눈물이라도 흘릴 줄 알았나요?”

다프네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 미소가 너무나도 차가워서, 에드먼은 자신을 스치고 가는 칼바람 따윈 잊어버렸다.

“기쁨의 눈물이라… 5년 전이라면 그랬을지도 몰라요.”

다프네는 담담히 읊조렸다. 그래, 5년 전이라면 그랬을지 모른다. 아니, 하다못해 1년 전이었다면 상황은 달랐겠지.

하지만 다프네는 이 말을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1년 전으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에드먼의 태도는 똑같았을 테니까.

“그런데요, 에드먼. 시간이 너무 늦었어요.”

“…다프네.”

“당신이 버린 거예요, 내 마음을. 5년 동안.”

그것을 딱히 원망하지 않는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서로의 시간이 서로를 비켜 나간 것뿐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이 왜 갑자기 나를 사랑하게 됐는지 몰라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프네는 에드먼을 보았다. 누군가에게 목이 졸리는 듯, 금방이라도 질식해 버릴 것 같은 표정을 한 에드먼이 낯설었다.

다프네는 눈을 부릅떴다. 저를 스쳐 간 차가운 바람이 에드먼을 스쳤고, 어느새 풀어진 머리카락은 나부끼며 에드먼을 향했다. 시야가 머리카락으로 가려져 흐릿해졌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꽤 많았다. 이 난간에 걸터앉아, 안절부절못하는 이들을 앞에 두고 태연하게 생각에 잠겼다. 무슨 말을 먼저 할까, 하고.

언제부터일까? 이유는 뭘까? 나를 사랑했을 때도 모진 말로 나를 헤쳤을까?

하지만 막상 마주한 그를 보니 할 말은 단 하나였다.

“늦었어요.”

“…….”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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