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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마님이 사라졌다-97화 (97/145)

97화

“다프네.”

에드먼은 곧바로 다프네에게 다가갔다.

다프네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입을 뻐끔거렸다. 목이 쉰 탓에 목소리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당혹스러움에 목을 움켜잡은 다프네의 머릿속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몸부림쳤던 기억에 스며들었다.

“……!”

다프네는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며 몸을 떨었다.

에드먼은 자신의 몸에 손톱을 세우려는 다프네의 손을 붙든 채 대마법사를 돌아보았다.

“다프네가 왜 이러는 겁니까.”

“후유증이다.”

대마법사는 바닥에 떨궈진 자신의 로브를 주웠다.

“흑마법에 당했으니 후유증이 상당할 거다. 아가, 조금만 더 기다리지 그랬니. 그렇다면 이토록 고통스러워하진 않았을 텐데.”

대마법사는 혀를 차며 밖으로 나갔다.

에드먼은 다프네의 어깨를 붙잡아 끌어안고 마른 등을 쉼 없이 쓸어내렸다. 가뜩이나 마른 몸은 정신을 잃었던 동안 더 말라 있었다.

“이제 괜찮습니다. 진정하세요.”

다프네의 몸이 간헐적으로 떨리더니 이내 힘없이 쓰러졌다. 지쳐 기절한 것이었다.

에드먼은 다프네를 그대로 들어 올려 방 밖으로 나갔다.

“마님께서는….”

“단순히 기절한 것이니 걱정 안 해도 된다.”

그 말에 뉴벨 남작 부인은 눈을 질끈 감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알렉은 에드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각하, 제가 마님을 옮기겠습니다.”

“됐다.”

에드먼은 알렉의 손을 피해 몸을 틀었다.

“내가 하마.”

알렉은 민망함에 손을 내렸다.

“요한, 집무실로 가 있어. 그동안의 일을 들어야겠다.”

요한은 그간 있었던 일을 모두 에드먼에게 전달했다.

에드먼은 잠시 생각에 빠진 듯 책상을 툭툭, 두들기다가 머지않아 입을 열었다.

“시녀장과 시종장은 죽인 후 마물의 먹이로 던져 놔.”

그들은 아직 형벌이 정해지지 않아 지하 감옥에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데미안은….”

에드먼은 말을 하다 말고 옅은 한숨을 내뱉으며 미간을 문질렀다.

“따로 소식을 듣지 못했나?”

“아직 새로운 소식은 없습니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으신 듯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무르셨습니다.”

에드먼은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떠난 데미안의 행동이 혼란스러웠다.

둘의 사고방식이 비슷하니 충돌이 적었고 데미안은 지금까지 반항 한 번 해 보지 않은 순종적인 아들이었다.

“다른 일이 생기면 곧바로 내게 보고하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노예 상인들에게서 정보를 얻었습니다.”

요한은 얻은 정보를 그대로 전했다.

“사람을 풀어서 인근에 다른 피해가 있는지 알아보고... 이만 나가 봐.”

에드먼은 문 쪽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요한이 집무실의 문을 열자 바로 앞에 있던 대마법사가 자연스럽게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아가, 네 부인은 도대체 어떤 원한을 산 거니.”

대마법사는 들어오자마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드먼은 난데없는 그의 말에 미간을 좁혔다.

“무슨 말씀입니까.”

“보통 원한이 아니야. 아니면 네가 다른 이에게 무슨 원한 살 짓이라고 한 게냐.”

에드먼은 침묵했다.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높은 직위에 있고 전쟁터에서 몇 년 동안 검을 휘두른 에드먼에게 원한을 가진 이들이 한둘일 리가 없었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역시나 너무 많았기에 어림도 되지 않았다.

“아시잖습니까. 전쟁터에서 몇 년 동안 있었는데 원한 하나 없을까요.”

“그런 종류가 아니란다.”

대마법사는 어디 그런 같잖은 것과 비교를 하냐며 고개를 내저었다.

“증오보다 더 깊어. 아주 오랫동안 준비했어. 혹시 상태가 나빠지기 전에 평소와 다른 점이 없었니.”

“다른 점….”

에드먼은 기억을 더듬었다.

다프네의 몸이 악화하기 전이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성녀.”

작게 중얼거린 에드먼은 급하게 벤자민을 호출했다.

“성녀가 신성력을 불어넣은 마력석을 가져와.”

벤자민은 곧바로 그 마력석을 가져와 대마법사에게 전달했다. 마력석을 살피던 대마법사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게 성녀의 마력석일 리 없다. 이렇게 더럽혀진 신성력은… 그때 이후로 처음 보는구나.”

“그때라면, 대전쟁 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대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력석을 내려놓았다.

“흔히들 천족이 성스럽고 순수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악마와 다를 바가 없었지.”

대마법사의 얼굴 위로 오랜 세월이 지나도 무뎌지지 않은 깊은 혐오감이 스며들었다.

“천족은 인간을 사냥해 신성력을 얻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신성력과 이건 똑같은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한 마디로, 자연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죽여서 인공적으로 만든 신성력이라는 것이었다.

“어째서 이런 게 나온 건지…. 이건 너무 위험한 물건이야. 흑마법까지 섞여 있으니 독과 다름없어. 내가 보관하마.”

대마법사가 손가락을 튕기자 마력석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대마법사는 이내 에드먼을 빤히 응시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나저나 아가, 너….”

눈을 가늘게 뜨던 대마법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에드먼에게 다가갔다.

“너, 그를 만난 것이냐?”

“무슨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그의 기운이 어째서 네게….”

대마법사는 에드먼을 이리저리 살폈다.

“…됐다. 내게 늙긴 했나 보구나. 이런 착각을 다 하고.”

그는 어딘가 모르게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몸을 뒤로 뺐다.

“사람을 찾으신다고 들었습니다.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됐다.”

대마법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사실상 대마법사가 찾고자 하면 찾지 못하는 것이 없다. 그가 아직 찾고 있다는 것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대마법사가 문 쪽으로 향하자 에드먼이 물었다.

“가시는 겁니까?”

“그래. 하지만 이 근처인 것 같으니 당분간은 북부를 돌아다닐 생각이다.”

“예.”

“네 부인의 상태는 온전치 않을 것이다. 네가 방해했으니 응당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만… 상태가 심각해지거든 나를 찾아오거라.”

에드먼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마법사는 문득 걸음을 옮기다 말고 몸을 틀었다.

“아가, 잘 기억해. 나는 인간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단다. 그러니 위기에 순간 내게 도움을 요청하지 말려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대마법사는 대륙을 돌아다니는 수많은 시간 동안 인간을 수천 번 도왔고 수천 번 배신당했다.

인간은 언젠간 죽는다.

오랜 시간 동안 대마법사가 깨달은 것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어느 순간부터 인간이라는 존재에 큰 가치를 두지 않았다.

그는 에드먼이 죽기 직전 도움을 요청해도 도울 생각이 없었다. 대마법사가 처음 만난 에드먼은 고작 열두어 셋의 나이였다. 대마법사는 인간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 그 때문에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에드먼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예전처럼 아가, 하고 부를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마법사는 에드먼을 위아래로 훑다가 말했다.

“궐련은 끊어라. 몸에 안 좋다.”

한순간에 대마법사가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에드먼의 오러를 억제해 주는 역할을 하는 팔찌가 하나 떨어져 있었다.

***

“각하가 말씀하신 장소에서 마력석을 가져왔습니다.”

알렉이 가까이에서 본 마력석은 예상보다 훨씬 더 컸다. 그가 꽤 장신인 것을 감안해도 2미터는 훌쩍 넘는 크기였다.

“당장은 필요가 없어졌으니 잘 보관해 놔.”

“예, 알겠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다프네가 사용했겠지만, 그녀는 대마법사의 도움으로 몸 상태가 회복되었으니 마력석은 쓸 데가 없어졌다.

“각하, 한데… 그 수많은 마물들은 어떻게 처리하신 겁니까?”

“죽였다.”

“예?”

알렉의 반문에 에드먼은 뭐가 문제냐는 듯 눈을 깜빡였다.

“수가 많고 마력석에 컸기에 몰래 가져오는 건 불가능했다. 자칫하다간 뒤를 밟혀 마물이 습격할 수도 있었으니 그 방법뿐이었다.”

“그렇… 군요.”

수천 마리가 잠을 자는 모습이 눈앞에 생생했기에 알렉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집무실을 나온 알렉은 수하를 설산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문득 본 하늘이 어두컴컴했고 저 멀리서부터 모래바람 같은 것이 불어왔다.

알렉은 그것을 자세히 살폈다.

“……!”

정체를 눈치챈 알렉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모래가 아닌 검은 재였다. 에드먼이 마물을 없애면서 생긴 수많은 재가 불어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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