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에드먼은 황제가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황제의 눈은 초점을 잃었고 입술 사이로 침이 그대로 흘러내렸다.
“당장… 당장 저 반역자를 미로 감옥에 가둬라!”
그 외침에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에드먼의 실력을 아는 기사단장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다가왔다.
“공작님, 큰 소란을 만든다면 좋을 게 없다는 거 잘 아시겠지요.”
에드먼은 고개를 틀어 창밖을 보았다. 해는 이제 막 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에드먼이 가만히 있자 기사단장은 빠르게 자신의 동료들과 시선을 주고받았고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에드먼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은 채 포박되었다.
기사단장은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누가 보아도 이길 수 없는 숫자로 달려드니 그런 것이라 여겼다.
“난… 난 할 수 있어. 나를 보라고….”
에드먼이 잡히는 것을 보고는 침을 뚝뚝 흘리며 중얼거리던 황제는 이내 자신의 애첩에게로 향했다.
“마력 억제구는?”
“그것이… 황태자 전하께서 필요하시다며 다 가져가시는 바람에 수중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내일이면 마력 억제구를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기사단장은 이대로 에드먼을 데리고 가는 게 영 마음을 놓을 수 없는지 혀를 찼다. 에드먼은 수십의 기사들에게 포위된 채 미로 감옥으로 향했다.
미로 감옥은 말 그대로 미로로 되어 있는 감옥이다. 미로 감옥을 만든 이와 설계도를 가지고 있어야만 길을 찾을 수 있으며 이곳에서 길을 잃는다면 평생 떠돌아야 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복잡한 곳이었다.
“모두 정신 똑바로 차리고 따라와라!”
미로 감옥은 좁았지만 에드먼을 고작 몇 명이 맡을 순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느리지만, 숫자까지 세어 가면서 갈 수밖에 없었다.
한참 후 철장이 드러나고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죄수들을 지나쳐 빈 곳에 철장이 열렸다.
“들어가시죠.”
에드먼이 안으로 들어가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공작가로 향하면 됩니까?”
“아, 그래. 2 기사단은 윈터 공작가로 향하도록.”
원래대로라면 2 시가단은 진작 윈터 공작가로 향해야 했으나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지금까지 함께 있었다.
그들이 돌아서려는 찰나.
“으악!”
에드먼이 들어간 철장의 문을 잠그던 기사 하나가 붕 날아오르더니 벽에 처박혔다.
기사단장은 서둘러 인파를 헤집고 앞으로 나왔다. 철장은 반쯤 부서져 있었고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윈터 공작이 탈옥했다!”
***
“가셔야 합니다.”
크리스는 요한을 재촉했다.
“조금,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요한은 초조함에 숨을 내쉬며 제자리를 빙빙 돌았다.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던 해는 어느새 온 세상을 붉게 물들고 있었다.
준비를 다 끝마친 것은 해가 지기 전이었다. 이대로 시간을 끄게 된다면 다프네의 상태가 더 안 좋아질 거라는 뉴벨 남작 부인의 말에 따라 인원을 추슬러 선발대로 보냈고 남은 이들은 에드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말 하나가 빠르게 다가왔다.
“어떠냐.”
요한은 황궁에 몰래 심어 놓은 첩자에게 전갈을 전달받았을 수하를 닦달했다. 쉬지 않고 달려온 수하는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내저으며 말문을 열었다.
“감옥에 갇히셨답니다.”
요한은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며 어느 정도 눈치는 챘다. 그러나 직접 입을 통해 그 사실을 듣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요한 님, 가셔야 합니다. 각하께서 감옥에 갇히셨다면 곧 남은 식솔들을 잡기 위해 기사들이 들이닥칠 것입니다.”
크리스는 요한보다 먼저 정신을 차렸다.
“각하께서는 돌아오실 겁니다. 전장에서 홀로 포로로 잡히셨을 때도 말살하고 돌아오신 분입니다.”
크리스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반드시 살아 돌아오던 에드먼을 기억한다.
“각하를 믿으신다면 지금 출발하셔야 합니다.”
그사이 진 해를 보던 요한은 이내 굳은 결심을 한 얼굴로 몸을 틀었다.
“우리의 목표는 선발대와 합류 후 무사히 북부에 도착해 각하를 기다리는 것이다. 출발한다!”
***
ㅎㅂㄹㄱ.공금
“이게 무슨 고생이야.”
기사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두들겼다. 윈터 공작이 탈옥하고 몇 시간이 지났다. 그를 발견했다는 정보는 꾸준히 들어오지만, 막상 잡지 못하고 있었다.
다섯 명이 한 조가 되어 설계도를 한 장씩 들고 돌아다니는 것도 지쳤다. 긴장하는 것도 처음이지, 몇 시간 동안 돌아다니기만 하자 대부분이 느긋하게 미로 감옥을 살피기만 할 뿐 찾으려는 의욕을 잃었다.
“찾아봤자 잡지도 못할 텐데 말이야.”
“왜 못 잡습니까?”
그 중의 가장 나이가 어리고 유일하게 의욕이 살아 있는 기사가 되물었다.
“상대는 하나도 저희는 다섯입니다. 게다가 무려 황실의 제2 기사단에 속해 있는 인재라고요.”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은 자신감이 넘쳤다.
“네가 윈터 공작의 실력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나이가 가장 많은 기사는 혀를 찼다.
“다들 그 얘기이십니다. 도대체 윈터 공작이 얼마나 잘난 사람이길래 이러십니까? 소드마스터까진 아니더라도 저희 모두 마력 각성자 아닙니까.”
자존심이 상한 신입은 대뜸 화를 냈다.
평소라면 어린놈이 건방지다면서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겠지만, 지금은 혀만 찰 뿐이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이 꼭 너 같은 얘기를 하지. 그리고 윈터 공작의 실력을 보고는 입을 다문다.”
말을 하던 기사는 주위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제1 기사단장님보다 실력자이시다.”
“예?”
신입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기사를 꿈꾸는 이들의 종착지는 다름 아닌 황실의 제1 기사단이다. 그리고 그들의 대부분은 제1 기사단장을 보고 꿈을 키워 왔다. 그 드물다는 소드마스터. 제국에서도 손에 꼽는 소드마스터였기 때문이다. 그런 기사단장보다 윈터 공작이 더 실력자라니.
“에이,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게다가 윈터 공작은 비 마력 각성자이지 않습니까.”
신입의 반응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아무리 말해줘 봤자 네가 직접 보는 게 더 빠르겠다.”
그때였다. 선두에 있던 기사는 모퉁이 돌자 저 끝에 보이는 이를 발견했다.
“윈, 윈터 공작이다!”
서둘러 느슨하게 쥐었던 검을 세게 움켜쥐고 달려갔다.
에드먼은 기사들이 달려드는 것을 개의치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도 잠시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신입은 에드먼을 코앞에 두고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에드먼을 잡으면 자신은 제1 기사단으로 옮겨질지도 모른다. 꿈에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다는 기대감에 신입은 자신을 말리는 이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검을 휘둘렀다.
콰앙!
‘어라…?’
신입은 벽에 처박힌 채 먼지가 가득 찬 시야에 눈을 깜빡였다.
에드먼은 맨손으로 벽을 뚫었다. 우수수 쏟아지는 먼지 사이로 에드먼은 홀연히 사라졌다.
“허.”
칼리토는 에드먼이 유유히 미로 감옥을 빠져나오는 것을 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도움이 필요 없다고 하긴 했으나 통 믿을 수 없어 언제든지 수하를 보낼 준비를 하며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에드먼은 미로 감옥에 들어서자마자 탈옥에 성공하였다.
몇 시간 동안 미로 감옥을 돌아다니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머지않아 칼리토는 에드먼이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게 아니라 시간을 끌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북부로 넘어간 후에 수하를 보내 주십시오.”
칼리토는 스스로 팔을 그은 후 피를 뚝뚝 떨어트리며 남긴 에드먼의 부탁을 떠올렸다.
그의 부탁대로 윈터 가의 사람들이 북부에 들어선 후에 사람을 보냈고, 에드먼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쉽게 감옥을 빠져나왔다.
“전하, 시간이 늦었습니다.”
에드먼에게 시선이 쏠린 것은 잠시뿐이고 그들은 다시 칼리토를 감시할 것이다. 이제 다시 사치만 부릴 줄 아는 멍청한 황태자로 돌아갈 때였다.
“그래도 도망칠 시간은 끌어 줘야지. 사람을 풀어 황궁을 혼란스럽게 만들어라.”
수하에게 내린 명령을 마지막으로 칼리토는 이내 남부로 돌아가기 위해 돌아섰다.
‘다음 만남은 꽤 시간이 흐른 후가 되겠군.’
칼리토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 에드먼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소원했다.
다시 만났을 수 있기를. 그리고 그때까지 무사히 살아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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